몹시 화가 난 명원제는 목여태감으로 하여금 원경릉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손왕은 동정어린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 부황이 화를 원경릉에게 풀까봐 걱정이 되었다. 듣자하니 우문호가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고 하던데, 우문호에게 가서 초왕비를 데려올 방법을 찾아보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경릉이 궁 안으로 들어오자 명원제는 “무릎을 꿇어라!” 하고 소리쳤다. 그녀는 명원제의 말에 따라 무릎을 꿇고는 “부황을 뵙습니다!”라고 말했다. 궁 안은 어수선해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손왕을 향해 물건을 던진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바닥 한켠에는 남주 한 꿰미도 떨어져 있었다. “방금 목여가 돌아와 전해주었다. 짐이 네게 하사한 남주를 한 꿰미 잃어버렸다고? 어디서 잃어버린 것이냐?” 명원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건곤전에서 잃어버렸습니다.”“보아라. 이 바닥에 떨어져있는 남주가 네가 건곤전에서 잃어버린 남주가 아니더냐?”원경릉은 바닥에 남주를 보며 “맞습니다.” 라고 했다. “이 남주는 황후를 모시는 집사가 가져온 것이다. 네 말이 맞다면, 황후가 남주를 훔쳤다는 말이냐?” 명원제의 목소리에 실망스러움이 가득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소인은 누가 남주를 가져갔는지 알고 있습니다.”“어?” 명원제의 눈빛이 얼어붙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알고있다고?”“네. 누가 가져갔는지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냐?” 명원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원경릉이 잠시 침묵하더니 “희상궁.”이라고 말했다. 명원제가 분노하여 탁자를 내리쳤다. “터무니 없는 소리!”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여태감이 급히 달려왔다. “왕비!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다니요. 희상궁은 태상황님의 사람이지 않습니까?”“네. 그렇죠.” 원경릉은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난해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원제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는 방금 원경릉이 뱉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
남주의 바친 목적은 무엇인가?현비는 인삼차를 내려놓고 원경릉을 보더니 머뭇거리며: “초왕비도 있었군요? 그럼 신첩은 이만 폐하를 방해하지 않고 물러나겠습니다.”명원제가: “기왕 온 김에 앉으시게. 이 일은 그대의 아들과도 관계가 있으니.”:초왕과 관련이 있다는 말에 현비는 원경릉을 능지처참해도 성이 풀리지 않을 지경이다.현비는 분노를 삭이며, 입술엔 변함없이 웃음을 띤 채, ‘예!”현비가 발길을 돌려 앉는 동안, 빠른 속도로 상황을 되짚어봤다. 원경릉이 황후에게 아첨한 것이 다섯째 의도라고 황제는 생각하지만, 다섯째가 그럴 리 없다. 안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서지 말아야 할 때에 다섯째가 이런 경거망동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아내를 잘못 얻었군.만약 이 일로 다섯째가 황제의 눈 밖에 나서 추방이라도 당하면, 현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원경릉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어쩌다가 이 따위 여자에게 휘둘리게 되었지? 당초에 순리대로 주명취를 아내로 맞았으면 오늘의 이런 상황이 벌어질 리 없는데. 현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원경릉의 뼈마디를 분질러도 시원치가 않은 마음이다. 원경릉은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죽일 듯이 노려보는 현비의 시선을 못 느낄 수가 있겠는가? 이 일 때문이 아니어도 현비는 원경릉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그때 “황후 마마 납시오!” 태감의 목소리가 들렸다.명원제는 손을 흔들어, 뜻을 표하자 목여태감이 달려 나가고, 황후가 옥집사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목여태감이 보니 희상궁도 방금 도착했기에, 황후께 나아가 몸을 숙이며, “마마, 폐하께서 들라 하십니다!”목여태감은 이제 다시 희상궁을 보니, 희상궁은 얼굴이 태연하고 꾸밈없는 기색이다.목여태감이: “상궁은 안으로 들게!”황후와 옥집사가 앞서 가고, 희상궁이 뒤를 따르는 모습으로 세 사람이 어서방에 들어갔다.현비는 황후를 보고, 황급히 일어나 예를 취하며, “신첩 황후마마를 뵙습니다.”황후는 평상시처럼 현비를 한 번 쳐다보고, “현비도
진주 사건이 밝혀지자, 구전단의 범인이?주황후는 의아하다는 듯 옥집사를 보고, “뭘 잘못 들었다는 거지? 진주를 돌려 드리라고 했는데, 뭐라고 아뢴 것이냐?”“마마……” 옥집사는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며, “제가 멋모르고, 초왕비가 보낸 진주는 초왕을 위해서라 생각해서, 그만,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초왕비가 황후께 초왕에 대해 잘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고.”주황후가 노발대발하며, “넘겨짚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간이 배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그때 황후가 문득 정신이 들며, 옥보가 황후를 따른지 오래되었고 평소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이라, 황제 폐하 앞에서 결코 함부로 넘겨짚은 말을 내뱉을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황후는 바로 주명취를 떠올렸다.전에 주명취가 현비를 찾아가자고 했으나, 황후는 당장 현비와 맞붙을 필요도 없고, 현비는 태후의 조카라 눈 밖에 나면 오히려 일이 힘들어 진다고 생각했다.명원제의 낯빛이 졸지에 험악해 졌다. 옥보가 어찌 감히 단독으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황후의 명령이었겠지, 명원제의 싸늘한 눈빛이 황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주황후는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기에, 손으로 옥집사의 따귀를 때리며, 성난 목소리로: “방자한 것, 제멋대로 추측하고, 함부로 폐하 앞에서 지껄여?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옥집사는 바닥에 꿇어 앉아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폐하 용서해 주소서. 폐하 용서해 주소서!”명원제는 무표정하게 명령했다: “여봐라, 옥보를 끌어내 곤장 30대를 매우 쳐라.”주황후는 가슴이 아팠지만 옥보를 위할 수 없어 길길이 날뛰며: “좀 봐주려 해도 말이야. 어서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빌지 못해?”옥집사는 머리를 땅에 찧으며 반쯤 축 늘어진 몸으로 얼굴에 핏기가 없다. “소신을 벌해 주시니 폐하의 은혜가 망극하옵니다.”옥집사가 끌려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퍽퍽하는 곤장 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주황후는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표
희상궁의 자백“감히 자네가 약을 바꿔 치기 한 것이 아니란 말이냐?” 원경릉이 물었다.희상궁은 침묵했다.명원제는 탁자를 치려 했으나, 천천히 손을 내려 놓으며 고요하게 희상궁을 바라본다.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는다.희상궁은 분명 한 마디로 반박할 수 있음에도, 아무 말이 없다.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명원제는 놀라움과 분노가 몰아쳤다. 어째서 희상궁이란 말인가?“왕비 마마, 증좌는 있는 것이겠지요?” 목여태감은 가슴이 철렁해서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원경릉은 평소처럼: “증좌는 건곤궁에 있지요, 태상황 폐하의 곁에 말입니다. 희상궁, 자네는 태상황 폐하 앞에 가야 이실직고 하겠느냐? 자네가 태상황 폐하를 해하였으니, 폐하께서 자네 때문에 화병을 일으키셔도 할 수 없지, 건곤궁에 가서 대질하자 꾸나.”희상궁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이 시시각각 암담해지고 팽팽하던 얼굴이 푸석해 지며 눈꼬리가 처지고 순식간에 나이를 먹은 것 같다.“건곤궁까지 가실 필요 없으십니다. 쇤네가 했습니다!” 희상궁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실내는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명원제의 분노에 찬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명원제의 목소리가 다시 천천히 울려 퍼지나 공허하고 창백하게, “왜 그랬지?”희상궁은 얼굴에 울음보다 흉한 웃음을 흘리며, “쇤네는 태상황 폐하를 해하려는 마음을 먹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약은 쇤네가 바꿨지요, 독약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알고 난 뒤엔 이미 너무 늦었지요.”“그래서 남나인을 죽여 네 죄를 대신 씌웠느냐!” 원경릉이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희상궁이 말했다.“누가 너에게 약을 바꾸도록 시켰느냐?” 명원제는 등골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궁중에서 희상궁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희상궁은 머리를 땅에 찧으며, “폐하, 쇤네를 죽여 주시옵소서, 쇤네는 말할 수 없습니다.”“자네……” 명원제는 실망이 극에 달해, “일이 이지경이 되었거늘, 배후에서 지시한
희상궁, 원경릉과 함께 초왕부로희상궁은 쓴웃음을 지으며, “인정에 빚을 지면 결국 갚아야 하나 봅니다. 쇤네가 작년에 큰 병에 걸렸는데 초왕비께서 좋은 약을 보내주셔서 나았지요. 이번에 초왕비 마마를 도와드린 것으로 그때의 빚을 갚은 셈 쳐주세요. 쇤네 생각에 초왕비께서는 벌을 받지 않으실 겁니다. 태상황 폐하께 마마가 필요하니 기껏해야 욕이나 좀 들으시는 정도겠지요. 쇤네는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희상궁은 말을 마치고 머리를 땅에 세게 조아리고 고개를 들며 평온한 안색으로, “쇤네는 더 말씀 드릴 게 없습니다. 폐하, 쇤네에게 독이 든 술을 내려 주시옵소서!”이생에 진 빚을 희상궁은 이미 다 갚았다.내일 저승길을 떠나도 그분께 빚진 건 없다.명원제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자네가 만약 배후에 있는 자를 실토하면, 짐은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다.”희상궁은 침묵했다. 이미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결연함이다. 명원제는 극도로 미우면서도 가슴이 아려 도저히 희상궁을 죽일 수 없으며, 태상황께 이 사실을 고할 수도 없다. 태상황이 지금 이 일로 마음의 병을 얻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곁에서 자신을 수십 년간을 모셔온 사람이 자기를 해치려 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잠시 침묵한 끝에 황제가: “태상황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자네 말을 믿겠네, 추궁하지도 않을 것이네, 단지 자네는 나이가 들었으니 다시 태상황 폐하의 시중을 들기엔 적합하지 않아. 초왕비와 자네가 마음이 맞는 것 같으니 짐이 초왕비를 위해 태상황께 양해를 구해 보지. 초왕비는 희상궁을 초왕부로 데려가라.”명원제는 결국 자기가 손을 쓰기 싫으니, 희상궁이 원경릉을 해치려 했는데도 그녀에게 딸려 보내 처리하도록 시켰다.원경릉은 눈이 동그래지며 말문이 막혔다!“희상궁은 먼저 물러가라.” 명원제는 노기를 거두고 평소처럼 얘기했다.희상궁은 복잡한 심경으로 원경릉을 보고 예를 취한 뒤 물러났다.명원제는 상선에게, “살펴보러 가거라, 가서
우문호가 후궁을 맞는다? 명원제는 원경릉에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 혹시라도 말이다, 초왕부에 돌아가서 네 아버지께 여쭤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원경릉은 속수무책이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떠보는 게 정말 나은 걸까?“아버지 걱정 시키지 말아야죠.” 원경릉이 말했다.이 대답에 명원제는 만족하며 잠시 원경릉을 보더니 갑자기: “방금 희상궁 말이 제왕비가 널 미워해서 해치려고 했다는데, 미리 말해두지만 사적인 복수를 해서는 안된다, 알겠느냐?”“그녀가 먼저 절 건드리면?” 원경릉이 반문했다. 결코 순순히 당할 사람이 아니다.“못 그럴 거야. 주씨 집안도 제왕비가 멋대로 구는 걸 다시는 가만두지 않을 테니, 그리고 한 가지 더.” 명원제는 낮게 기침을 하더니, 원경릉을 바라보며, “현비가 짐에게 언급한 적이 있는데, 다섯째와 제왕비는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였지만 마지막에 인연이 닿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남아있는데다, 제왕비한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생긴 게 제왕비와 쏙 빼 닮아서, 짐도 다섯째에게 보상해주는 심정으로 주씨 집안 둘째딸을 후궁으로 들여줄까 하는데, 무슨 다른 의견 있느냐?”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없어요!”명원제는 다소 의외다. 이렇게 대범하다고?주씨 집안 둘째는 정부인의 딸로 그녀가 시집을 오면 정비는 옆으로 비켜줘야 되는데 진짜 신경이 안 쓰인다고?아니면 원경릉은 주씨 집안의 세력을 모르는 건가?원경릉이 둔한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니 이점은 알고 있을 것이다.“가거라.” 명원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원경릉이 물러나왔다.문을 나서며 원경릉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후궁을 들여? 좋아, 안 좋을 게 뭐 있어? 후궁을 들이면 우문호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니 앞으로 둘이 알콩달콩 살며 다시는 원경릉을 귀찮게 하지 않겠네. 별전 밖으로 나와 희상궁이 홰나무 아래 서 있는 것을 보고 두 손을 떨군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희상궁의 눈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인다. 원경릉과 희상궁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
태상황은 다 알고 있다?건곤전에 도착하자, 태상황은 의외로 반쯤 걸터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다.건곤전 안은 상선 외에 한 명 더 있는데, 이 사람은 온통 검은색 옷에 허리에 검을 차고 귀밑머리가 하얀 것이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이다. 그는 원경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굴빛이 확 바뀌는데 섬광처럼 차갑고 날카롭다.태상황이 해바라기씨를 벗기며: “나가게.”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예를 취하고 물러났다.그 사람 발소리가 가볍길래 자세히 보니, 걸어가는 동안 내내 발이 땅에 닿지 않다가 금방 건곤전 밖으로 사라졌다.“뭘 봐? 저 사람은 외로운 그림자 무사야. 일은 잘 풀렸나?” 태상황은 원경릉을 쏘아보며 한가하게 묻는데 정신은 생각보다 또렷해 보인다.원경릉은 문득 이 늙은이가 실은 뭐든 다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희상궁을 사주한 인물을 포함해서 말이다.늙은이가 그녀를 보고 괴상한 웃음을 터트렸다.원경릉은 머리털이 쭈뼛하게 곤두섰다. 제대로 맞춘 게 틀림없다. 늙은이가 뭐든 다 알고 있다.“상선, 내가 태상황 폐하와 단둘이 나눌 얘기가 있는데,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 원경릉은 바보취급을 당할 순 없으니, 정확히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상선은 눈치가 있는지 바로 나갔다.태상황은 여전히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한 대 패고 싶은 표정으로, “뭐 물어볼 게 있나? 과인이 반드시 답을 해준다는 법은 없지만.”“누가 약을 바꿔 치기 했어요?” 원경릉이 다가가 물었다, “알고 계시죠?”“알지!” 눈을 감은 채, “남나인.”“저한테 어수룩한 척 하지 마세요……”“무엄하다!” 태상황이 일갈하자, “네가 지금 누구와 얘기하는지 알고 있느냐?”원경릉은 눈을 감고 웃겨서 배가 당기는 걸 간신히 참으며,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태상황은 ‘풉’ 하고 계속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지만 착실하게 원경릉의 말상대를 하며, “그렇지, 과인은 알고 있지.”원경릉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태상황을 본다. 다들 태상황이 어떻게 느낄까 전전긍긍
우문호를 찾아온 손왕, 경조부 부윤이라니?“안 기쁘냐?” 태상황이 안색을 살피더니 묻는다.“기쁠 만한 일이 없네요.” 태상황이 웃으며, “다섯째가 측실을 들이는 것 때문이지? 이건 현비 생각일 게야. 보아하니 너 다섯째한테 그다지 관심도 없던데,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신경 쓸게 뭐가 있어?”태상황도 이 일을 알고 있네? 측실을 들이는 거에 대해 벌써 얘기가 오간 모양이군.“그 일 때문 아니에요. 제 입장엔 그건 일 축에도 못 끼어요.” 굳이 일이라고 한다면 좋은 일 쪽이다, “희상궁 저랑 궁을 나갈 건데 아시죠?”“알고 있어!” 알아? 이건 방금 전에 정해진 일인데, 누가 이렇게 빨리 보고했을까? 누가 이렇게 재빠르지? 원경릉은 저도 모르게 방금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떠올렸다. 아마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태상황의 귀와 눈 역할을 하고 있겠지?“희상궁한테 잘해 주렴, 과인이 희상궁에게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미워하고 원망한 적은 없다.” 태상황은 눈을 감고 손을 닦으며 말했다.태상황과 같은 존귀한 신분의 사람이 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죽이려 했는데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는데다 심지어 그 사람한테 잘 해주라니 정말 야릇하다.궁중 어서방의 별전, 손왕은 우문호가 궁 안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이토록 상처가 심각한지 몰랐다. 우문호가 조금의 생기도 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니 고무공처럼 동그란 머리에 열이 받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서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어느 놈이 한 짓이야? 토막을 내서 죽이고 시체를 잘근잘근 씹어도 분이 안 풀리네.”화가 나서 한 손에 약 먹을 때 먹으라고 보낸 약과를 입에 넣으며, 노기가 등등하게 와그작와그작 씹는다. 우문호는 오히려 평온하게 손왕이 끊임없이 먹는 걸 지켜보며, “저쪽에 간식 있어, 상선이 보내온.”원경릉에게 보낸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우문호는 사실 마음이 안절부절해서 줄곧 밖을 쳐다봤다.탕양이 간식을 가져다 손왕 앞에 놓아두니, 손왕이 손을 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