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덩치도 산만한 놈이 바보도 아니고, 송가람이 납치한다고 납치가 되겠어?”차미주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너 방금 연회장에서 송가람이 강한서에게 계속 술 먹이는 거 못 봤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해.”한성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송가람이 한서를 취하게 만들어서 관계라도 가질까 봐 걱정되는 거야?”차미주가 한성우를 노려보았다.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만약 강한서가 취해서 인사불성인 채로 선을 넘는 짓을 하면 현진이는 절대 강한서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그 말에 한성우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는 차미주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도둑아, 넌 연애 경험이 없어서 남자를 몰라도 너무 몰라.”한성우가 다정하게 말했다. “술 취해서 실수했다는 건 그저 어떻게 해보려는 핑계에 불과해. 남자는 말이야, 정말 그저 자는 게 목적이면 식초를 마시고도 취할 수 있고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면 뭘 마셔도 소용없어. 그리고 강한서가 어떤 녀석인지 생각해 봐. 걘 그런 짓 못 해.”그제야 차미주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어쩐지 그쪽으론 빠삭한 것 같은 한성우의 태도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너도 혹시 그런 핑계를 자주 댔었던 거 아냐?”한성우가 피식 소리 내 웃으며 차미주의 손을 끌어와 그녀의 손등에 입 맞추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다정한 눈빛으로 차미주를 바라보았다. “내가 비록 성인군자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런 품위 떨어지는 짓은 한 적 없어.”잠시 말을 멈춘 한성우가 차미주를 나무라며 말했다. “나보단 오히려 네가 더 문제인 것 같은데? 넌 여자애가 왜 그렇게 술버릇이 나빠?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취해서는 영화에 나오는 엉덩이 얘기나 하고 말이야.”차미주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그녀는 손을 빼내더니 한성우의 머리를 후려치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화를 냈다. “입 좀 닫아.”한성우는 욱 화를 내는 차미주의 모습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
한성우가 변명하며 말했다. “웬만하면 불필요한 희생은 하지 말자는 거지.”차미주가 이를 악물었다. “너 이 개자식. 네가 그러고도 강한서 친구라고 할 수 있어? 이까짓 차가 강한서 순결보다 중요해?”한성우는 여유로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마마님, 이까짓 차가 14억이 넘어요. 강한서 순결이 그 정도 가치는 아니야.”차미주가 다급한 마음에 한성우의 손을 물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떤 인영이 갑작스레 송가람 차 앞에 나타났다. 강민서였다. 한성우는 힘을 실어 차미주의 손을 잡았다. “민서 왔어. 우리 오늘 어쩌면 재산 피해를 안 봐도 되겠어.”차미주는 여전히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차창 쪽으로 걸어가는 강민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창을 통해 뭐라고 말을 건네던 강민서는 곧 다른 쪽으로 걸어가 뒷좌석의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강민서와 강한서를 실은 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강민서도 차에 탄 거야?”한성우가 차를 출발했다. “민서도 차에 있으니까 송가람도 한서에게 무슨 짓은 못할 거야. 이제 마음이 좀 놓여?”“아무 짓도 못 할 거라고 네가 어떻게 장담해?”차미주는 송가람의 인성을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 한성우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송가람은 밖에선 줄곧 온순한 이미지를 연출해 왔어. 현명하고 사리에 밝고 예의가 바른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무슨 꿍꿍이가 있든 강민서 앞에서 대놓고 드러내진 않을 거야. 송가람이 강한서를 좋아한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송가람이 왜 여태 고백하지 않은 것 같아?”“자기가 고백하는 순간 그동안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금이 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냥 썸만 타려는 거고. 그리고 그 선을 넘더라도, 선을 넘는 사람은 자기가 아닌 한서여야 해. 자기 자신은 언제든 발을 뺄 수 있게 한 발 물러선 채 말이야. 그러니까 송가람은 민서가 있는 앞에선 감히 한서를 어쩌지 못할 거야.”차미주가 욕설을 지껄였다. “손가락 이게
물론 송가람은 강민서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한현진을 보는 신미정 모녀의 생각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송가람은 시선을 내리며 미소 지었다. “네가 오해한 거야. 현진 씨는 당연히 한서 오빠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현진 씨는 어렸을 때부터 유씨 가문에서 자랐잖아. 그 집 사람들 인품 나쁜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현진 씨도 그런 환경에서 오랫동안 지냈으니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겠지. 게다가 한서 오빠는 뭐든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을 거야.”유씨 가문 얘기가 나오자 강민서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욕심에 눈이 먼 유 대표님 모습을 빼다 박았네요.”송가람은 그 말에 맞장구치는 대신 말을 돌리며 강민서에게 물었다. “민서야, 너 지금 아름드리에서 지낸다며?”강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현진이 오빠 기억이 돌아오는 걸 도울 수 있다면 저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현진이 아름드리에서 지내면 저도 거기서 살아야죠. 항상 주시하고 있을 거예요. 오빠와 다시 잘될 것 같은 징조가 보이기만 하면 그런 일말의 가능성도 생기지 않게 할 거고요.”송가람이 미소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하는 짓이 꼭 애 같아.”강민서가 송가람의 손을 꼭 잡았다. “가람 언니, 어차피 오빠도 지금 취했고 차라리 이 틈에 오빠랑 자버려요. 우리 오빠는 꽉 막히게 정직한 인간이라 언니랑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면 어떻게든 책임지려고 할 거예요. 그러면 한현진은 얼마든지 쳐낼 수 있어요.”송가람의 귓불은 빨갛게 열이 올랐다. 그녀는 강민서의 손등을 툭툭 치며 나지막이 나무랐다. “그런 말 하지 마.”강민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에요. 여긴 도처에 CCTV가 깔렸잖아요. 오빠가 조금만 알아보면 바로 누가 벌인 짓인지 알 수 있어요. 전 또다시 오빠 손에 의해 유치장에 들어가고 싶진 않거든요.”그 말에 송가람은 조금 이성을 되찾았다. 일이 계획대로 흘러갈지는 둘째 치
차미주는 한성우의 연기 톤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앞잡이 같은 놈.”——아름드리.한현진은 송가람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며 굳은 얼굴로 탕탕 고기를 다지고 있었다. 잠자리에 누우려던 황씨 아주머니는 고기를 다지는 소리에 시끄러워 잠에 들 수가 없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사모님. 이 저녁에 잠은 안 주무시고 주방에서 뭐 하세요?”손에 칼을 들고 몸을 돌린 한현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아주머니. 한서가 내일 아침으로 물만두가 먹고 싶다고 해서요. 마침 잠도 안 와서 만두 속이나 만들어 놓을까 해서요. 저 때문에 깨셨어요?”한현진의 입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가엔 웃음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칼을 들고 있는 한현진의 모습은 기괴할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황씨 아주머니가 말을 더듬었다. “아, 아뇨. 주방에 민찌기 있어요. 제가 도, 도와드릴까요?”“괜찮아요. 고마워요.”한현진의 눈이 예쁜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손으로 직접 다진 게 맛있잖아요.”“그, 그럼 마저 하세요. 전 들어가서 쉴게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히 주무세요.”황씨 아주머니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지금 한현진의 모습은 고기를 다지는 것이 아니라 시체를 토막 내는 것 같았다. 11시가 거의 되어갈 때쯤, 문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운전기사와 강민서가 강한서를 부축하며 들어왔다. 주방에서 나온 한현진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들려져 있었다.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한서를 소파에 눕힌 강민서는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한 한현진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아직 안 잤어?”한현진이 미소 지었다. “딸기 푸딩 해주겠다고 약속했잖아.”강민서가 꿀꺽 침을 삼켰다. “난 이미 밥 먹고 왔어. 푸딩은 내일 먹을게. 오빠 부탁할게.”말을 마친 강민서는 재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운전기사가 그 모습을 보더니 더는 강한서를 부축하지
소파 위의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현진은 아예 나머지 단추를 전부 풀었다. 강한서의 가슴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니 술에 취한 것이 맞는 듯했다. “강한서?”한현진이 또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날 데리러 오던 날 나에게 했던 말 아직도 기억해?”한현진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들고 있던 칼은 어느새 강한서의 벨트를 향해 있었다. 그러자 강한서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차가운 칼날이 살며시 강한서의 아랫배를 툭툭 건드렸다. 한현진을 손을 뻗어 강한서 이마에 맺힌 땀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넌 기억력이 좋으니까 당연히 잊지 않았겠지?”강한서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순간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앞으로 기억이 돌아오든 아니든, 만약 다시 송가람과 썸씽이 있으면 네 대를 끊어버릴 거야.”칼날이 점점 더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며 강한서의 몸은 긴장으로 바짝 굳어졌다. “정말 취한 거야?”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뻗어 강한서의 얼굴을 만졌다. “너 대체 얼마를 마신 거야?”그녀는 칼을 내려놓고 강한서의 옆에 앉았다. “송가람은 네가 술 못 마시는 걸 알면서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렇게까지 술을 먹인 거야?”말하며 한현진은 강한서의 얼굴을 꼬집었다. “설마 네가 인사불성인 틈을 타 너랑 관계라도 가지려고 한 거야?”한현진이 또 혼자 중얼거렸다. “역시 송가람은 아직 널 잘 모르네. 넌 술에 취하면 아예 서질 못하는데 설사 송가람이 선녀 같은 미모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제구실도 못 하는 사내 앞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누가 제구실도 못 한다는 거예요?”한현진의 등 뒤로 강한서의 목소리가 여유롭게 울려 퍼졌다. 움찔한 한현진이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 소파에 누워있던 사람이 이젠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현진이 한 템포 느리게 대답했다. “취한 거 아니— 아—”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서의 한현진의 손을
“23번 유현진 씨, 가족분께 연락하셨나요?“이제 간호사가 몇 번째로 유현진을 재촉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흘긋 확인해보았으나 강한서에게 건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한주시 북부 환형 육교에서 연속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하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기울다 강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직 그녀의 남편은 늦도록 연락되지 않았다.처참했던 사고 현장이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보다 이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유현진 씨?”간호사의 부름에 유현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셔츠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몰골이 처참했으나 여전히 품위 있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연락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좀 바쁜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사인해도 될까요?”“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가족분께서 사인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뇌진탕은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병원에선 당신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해요.”유현진은 입술을 꾹 닫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볼게요.”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의료 기기를 담은 플라스틱 카트를 들고 지나가던 두 간호사를 만나자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그때, 간호사 중 한 명이 말했다.“16번 환자, 누군지 알아요?““아뇨. 누구죠?““송민영 몰라요? 엄청나게 유명해요! 얼마 전에 찍은 핫한 드라마 ’비밀의 연인‘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분이에요.““저런! 그분, 많이 다치셨어요?““조금 늦게 오셨어요. 그리고 팔에 스친 상처가 있긴 한데 그때 이미 약간 아문 상태였어요. 하지만 연예인들 얼굴이 간판이잖아요. 당연히 우리 같은 일반인과 비길 수 없죠. 내가 만약 송민영과 같은 얼굴과 몸매
뜨거운 열기가 귓가에 뿜어지고 달아오른 체온까지 더해 유현진의 귓불을 뜨겁게 달구었다. 다만 그녀는 복부에 난 멍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다행히 불이 꺼져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목젖에 키스했다. 강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짙은 눈빛으로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다. 곧이어 유현진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나 오늘 배란기야, 할 때가 됐어.”강한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눈가에 스친 욕망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네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야?”유현진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귓불도 서서히 열기가 식었다.“너희 엄마가 계속 날 다그치잖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차라리 너 정자 기증할래? 그럼 내가 시험관시술 할게.”강한서가 비난 조로 되물었다.“엄마가 재촉한 게 아니라 네가 사모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봐 아이라도 낳으려는 거 아니야?”유현진은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팠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만 지었다.“맞아, 네가 날 버리면 어떡해?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둘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지.”강한서는 단추를 채우고 짜증 섞인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이런 데 신경 쓰지 마. 난 아이 안 가질 거야.”유현진의 미소 짓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녀는 문밖을 나서려는 강한서를 불러세웠다.“강한서, 넌 대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아니면 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강한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쏘아붙였다.“뭐가 다른데?”유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같은 뜻이라면 결혼도 아무 의미 없겠지. 이혼해 그냥.”“네 마음대로 해.”강한서는 이 한마디를 내뱉은 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유현진은 베개를 문에 힘껏 내던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다음 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강한서는 식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아침을 준비한 지 반나절이 됐지만 그는 도통 수저를
차미주는 꿈속에서 헤매다가 노크 소리를 듣고 잠이 깼다. 문을 연 순간 유현진이 한 손에 캐리어를 들고 떡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청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숙박 좀 할 수 있을까?”차미주는 그녀에게 아이스 콜라 한 병 건넸다. 유현진이 콜라를 건네받자 그녀는 불쑥 제 머리를 툭 쳤다.“내 정신 좀 봐. 너 탄산음료 안 마시지? 우유 갖다 줄게.”“아니야, 괜찮아.”유현진은 캔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못 마시는 게 어디 있어?”전에는 임신 준비 때문에 술과 담배, 음료 및 자극적인 것들을 싹 다 멀리했지만 이혼을 앞둔 지금은 이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인 것을.‘임신 준비? 그딴 건 무능한 강한서더러 하라고 해!’“너 정말 강한서 씨랑 이혼할 생각이야?”차미주는 소파의 반대편에 앉으며 확실치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응.”유현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그 사람 또 송민영이랑 만나.”차미주는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그 여잔 대체 왜 이렇게 뻔뻔한 거야? 애초에 결혼할 때도 찾아와 소란을 피우더니 3년이 지난 후 또다시 나타나? 세상에 남자가 없대? 아니 왜 유부남을 물고 늘어지는 거냐고? 강한서 그 자식도 한심해. 놀다 버린 장난감에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야?”유현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지금 대체 누굴 욕하는 거지?’차미주는 마른기침을 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너 지금 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야. 그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넌 그냥 빠지려고? 왜 그런 비겁한 인간들을 봐줘? 끝까지 맞서 싸우란 말이야! 그 여자가 온갖 청순한 척을 다 떨잖아. 사람들 앞에서 그 가면을 확 벗겨버려! 청순은 개뿔, 유부남이나 만나는 뻔뻔스러운 년인 주제에!”“그래서? 내 결혼생활이 파탄 났다는 걸 온 세상에 알려? 남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가여운 여자로 남아?”유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이 결혼은 이미 실패야. 떠날 때까지 비참하게 굴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