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유현진은 SNS에 이혼 합의서가 첨부된 게시글 하나를 올렸다.“싱글, 만남 추구. PS: 생리적으로 건강한 사람 우선”그녀의 이 게시글은 예전에 그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주 강씨 가문에 시집갔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헤어지고 난 후, 전 남편이 남성 불임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게시글을 올리다니.정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걸까?강한서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언론사를 고소하여 그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게 만든 독한 남자다. 그런 그가 아무런 재산도 갖지 않고 이혼한 전처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얘기하도록 내버려 둘 리가 있을까?하지만 20분이 흐른 후, 누리꾼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유현진의 게시글 아래, 새롭게 가입한 계정으로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날 블랙리스트에서 내보내 줘.”
더 보기하지만 한성우의 지금 이런 모습들이 모두 다른 여자와 사귀었던 경험을 통해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니 차미주는 또 표현하기 힘든 짜증이 치밀었다. 예전의 차미주는 연애라는 것은 비슷한 사람끼리 끼리끼리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지장 같은 자신이 한성우처럼 물이 든 남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느끼하고 의심이 많은 한성우를 차미주처럼 단순한 여자가 감당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한성우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그를 대하고 싶지 않았다. 한성우의 한두 마디 말이면 차미주의 원칙은 쉽게 흔들렸다. 차미주는 한성우의 손을 밀어내며 불편한 듯 얘기했다. “너와 상관없어. 나 다이어트 중이야.”“뚱뚱하지도 않은데 웬 다이어트? 너무 날씬하면 안 좋아.”한성우와 만나면서 4kg이나 쪘지만 그럼에도 한성우가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칭찬해 주니 차미주는 어쩐지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만 주는 연인은,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차미주의 부모님은 바로 서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사업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내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칭찬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집에서 아이는 돌보지 않고 왜 늘 그렇게 야망에 차 있냐며 나무랐다. 그러다 사업에 문제라도 생기면 또 얘기했다. “거 봐. 내가 넌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게 왜 애초에 내 말을 안 들어. 손해를 봐야 정신을 차리지.”차미주는 부모님이 왜 다른 집 부모님과는 달리 계속 싸우고, 사이가 멀어지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야 두 사람의 관계에서 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그 사람이 단 한 번도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도 주지 않으며 점차 나의 감정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성우는 차미주의
“넌 내가 애 낳는 기계인 줄 알아, 열이나 낳게? 쳇, 누가 너랑 애를 낳아?”한성우가 종아리를 주무르며 한참을 숨죽여 웃더니 그제야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나더러 많이 사라며. 난 지금 죄를 지은 사람이잖아. 네 명령을 어떻게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어.”차미주는 하마터면 한성우의 능글맞은 언사에 휘말릴 뻔했다. 그녀는 한성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에게서 썩 꺼지라니까 그 말은 왜 안 듣는 건데?”한성우가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그 말은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말했다. “형수님, 얼른 한 번 해보세요. 임신인지 아닌지, 테스트 해 봐야 마음이 놓이잖아요.”차미주가 얼른 한성우와 한 편에 섰다. “얼른 테스트해 봐.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만약 정말 임신이면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애가 잘못되면 어떡해. 조심하는 게 좋아.”한현진은 결국 두 사람에게 등 떠밀려 임신 테스트기 하나를 가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차미주는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화장실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성우는 그런 차미주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그녀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도둑아, 너 아이 좋아해?”“좋아하지. 착한 애 좋아해. 말썽 피우는 애 말고.”어릴 적 차미주는 집에 형제가 많은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었다. 비록 평소엔 투덕거렸지만 밖에서 괴롭힘을 당하면 한 팀이 되어 복수해 줄 수 있었고 나쁜 짓을 해도 벌을 나눠 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부모님이 없을 때면 형제자매끼리 서로 의지할 수 있었고 큰일이 있을 때면 머리를 맞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혼자 외로울 일도 없었다. 그러니 한성우의 그곳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차미주는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그녀가 한성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것이 아니었다. 차미주는 정말 아이를 좋아했다. 그녀가 한성우를 받아들인 순간, 차미주 마음속에서 한성우는 이미 그녀가 그리던 미래보다 더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을 아는 사람이야 강한서가 유현진을 아끼는 마음에 수술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소문을 퍼뜨릴지 모를 일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강단해와 권력다툼을 하는 상황에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이용하여 이슈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한현진은 이 일로 강한서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안줏거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오바하는 거야.”한현진이 아무렇게나 변명을 둘러댔다. “전에 내가 몸이 안 좋아서 김 교수님께 갔을 때 일단 건강부터 회복하고 임신 준비를 하라고 하셔서 우리도 줄곧 조심하고 있었어. 임신했을 리가 없어.”한성우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콘돔으로도 100% 피임은 장담할 수 없어요. 그러니 안전한 날 같은 건 더 말할 것도 없고요.”차미주는 번뜩 무언가 떠올랐는지 한현진에게 물었다. “현진아, 너 이번 달 생리 했어?”한현진이 멈칫하더니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5일이 밀렸어.”한현진이 곧 말을 이었다. “동상도 입었었으니까 며칠 늦어지는 것도 당연한 거야. 그리고 5일 정도는 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차미주의 표정이 점차 진지해졌다. “이렇게 많은 우연이 겹쳤을 땐 더 이상 우연이 아닌 거야. 자자자, 얼른 병원 가.”한현진은 해탈해졌다. “넌 왜 그렇게 앞서가는 거야. 병원에 갈 땐 가더라도 저녁에 가는 건 아니잖아? 의사도 쉬어야지.”“하긴.”차미주가 머리를 탁 쳤다. “임신테스트기 써보면 되잖아.”말하더니 한성우에게 심부름시켰다. “내려가서 사와. 이왕이면 여러 개.” “...”“남자인 내가 사러 가는 건 좀 그렇잖아?”드디어 한성우를 비꼴 기회가 생긴 차미주가 말했다. 说完又补充道,“之前受了凉,推迟也正常,而且五天也不算推迟吧。”唐笑笑表情严肃起来,“这么多巧合凑到一起,那就不是巧合了,走走走,去医院去。”韩若星无奈,“你怎么说风就是雨,就算是去医院检查,也不是大晚上去的吧?人医生不休息吗?”“也是,”唐笑笑一拍脑袋,“可以用验孕棒啊。”说着使唤沈青川,“你下楼
깜짝 놀란 차미주가 얼른 수저를 내려놓고 한현진을 따라갔다. 한현진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었다. 오후에 주강운과 함께 술을 사러 가서 시음한 것이 전부였다. 그 탓에 구토물에도 알코올 냄새가 조금 섞여 있었다. 차미주가 한현진의 등을 쓸어주었다. “봐, 내가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빈속에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아직도 네가 어린 줄 알아?한현진은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차미주가 건넨 물을 받았다. 입을 헹군 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얼마 안 마셨어. 네가 내 주량을 몰라서 그래? 뭐 얼마나 마셨다고.”“이렇게 토하면서 입은 아직 살아있네.”한현진이 컵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며 물었다. “백숙의 비릿한 국물 냄새를 맡으니까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어. 너 혹시 비린내 제거하는 거 잊은 거 아냐?”“그럴 리가.”요리부심이 있는 차미주는 절대 다른 사람이 자기 음식 솜씨를 의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생강도 아직 냄비에 그대로 있다고. 오늘은 특별히 맛술도 넣어서 재우기까지 하고 삶았는걸.”그러더니 차미주가 소리 높여 한성우에게 물었다. “개자식아, 백숙에서 비린내 나?”한성우가 눈 깜짝할 사이 화장실에 나타났다. “안 비려. 담백하던데. 나에게 만들어준 백숙보다 훨씬 더 맛있어. 날 해준 건 혹시 맛술 넣기도 아까웠던 거야?”차미주는 자연스레 한성우가 뒤이어 한 말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너 위장이 안 좋은 거 아냐? 며칠 사이 너 토하는 것만 벌서 세 번째야. 같이 병원 가서 검사받아. 조 선생님 친구가 소화기내과 교수님이셔. 그분께 가서 뭐가 문젠지 제대로 검사받아봐.”그 말에 한성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뭘 조준을 찾아? 우리 형이 한주 병원의 소화기내과 의사인데. 내일 내가 같이 가줄게.”차미주가 멈칫하더니 한성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 형이 의사라고?”“아, 내가 얘기 안 했나?”“얘기하긴 뭘 해.”차미주가 바득 이를 갈았다. “우리가 사귈 때
하지만 강한서는 아무런 이상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영상통화를 해야 했다. 목소리만으로는 잘 판단이 되지 않았다. “직접 가지러 오시죠.”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도 여배우인데, 남자와 동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제 앞날은 어떡하라고요.”강한서가 말했다. “주강운과 이미 몇 번이나 실검에 올랐으면서 그건 신경 쓰이시나 봐요?”“그건 언론에서 멋대로 추측한 거고요. 해명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 남자의 옷과 콘돔이 나왔다는 사실이 언론사에 알려지면 청순한 제 이미지가 깨지잖아요. 그러면 손해가 얼마인지 아세요? 전 제 미래를 걸고 도박하고 싶지는 않네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참지 못하고 말했다. “결혼도 했었으면서 청순한 여자 이미지를 이어가는 건 관중과 팬들에 대한 기만 아닌가요?”“그게 뭐 어때서요?”한현진이 편안하게 소파에 기댔다. “지금 연예인 중 이미지 관리 안 하는 사람도 있어요? 팬분들이 좋아하시고 관중이 기뻐해 주시면 그런 것쯤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요.”그 말은 당연히 강한서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한현진의 페이스북은 영화나 드라마 홍보 때에만 업로드하고 평소엔 인터넷이 되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다. “봄의 연인”이 인기를 얻고 같이 출연했던 다른 배우들은 새로운 드라마에 들어가거나 예능에 출연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한현진은 홍보를 위해 한 번 출연한 것 외에 그 어떤 활동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전에 한열과 촬영할 때도 진열커플의 팬들로 인해 꽤 떠들썩해 매니저도 그 기회를 이용해 한현진의 인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결국 한현진과 송민준에게 동시에 거절당했었다. 한현진은 인기로 먹고사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송민영처럼 팬들에게 잘 보이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영원히 회사에서 포장해 준 이미지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사람은 언젠가 그 이미지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서를 놀리기 위해 그녀는 눈
한현진이 실소를 터뜨렸다. ‘개자식! 날 기억하지는 못하면서 내 카톡은 기억하고 있네.’한현진은 얼른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당연하게도 전화번호 역시 차단당한 상태였다. 굳은 얼굴로 한참을 생각하던 한현진은 갑자기 강한서가 하던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강한서의 휴대폰에 20억이 계좌 이체되었다는 문자가 울렸다. 계좌 이체와 함께 덧붙인 말은 없었다. 곧 그 20억은 다시 돌아왔고 부언으로 물음표 하나가 왔다. 한현진은 또 20억을 송금했다. [네가 전에 나한테 뒀었던 돈이야. 돌려줄 게.]그 돈을 송금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강한서에게서 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른 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강한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한현진이 아마 분노에 휩싸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투는 평온하기만 했다.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보내는 건 무슨 의미예요?”“파혼하겠다며. 네가 나에게 보관하라고 줬던 돈이니 돌려줘야지. 혹시 모를 경제 분쟁을 막으려면 말이야.”강한서가 말했다. “민 실장이 우리 사이에 금전적 거래가 있었다는 얘기는 없었는데요.”한현진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거래는 없었지. 네가 주기만 했으니까. 네가 날 꼬실 때 사적으로 나에게 계좌 이체해 준 거야. 민 실장님은 몰라.”강한서가 잠시 침묵했다. “연애할 때 송금한 거라면 증여네요. 헤어졌다고 다시 돌려받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남들이 들으면 절 어떻게 생각하겠어요?”“그러면 난? 헤어졌는데 아직도 네가 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날 꽃뱀이라고 생각하겠네.”“...”몇 분 후, 강한서가 다시 한현진에게 전화했다. 한현진은 전화를 받는 대신 거절을 눌렀다. 그러자 또다시 몇 분이 흐르고 카톡 알람이 울렸다. 누군가 친구 추가를 한 것이다. 힐끔 휴대폰을 쳐다본 한현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거절을 누르며 답장했다. [모르는 사람은 추가 안 해요
숙희가 집에 있으니 차미주가 간다고 하더라도 숙희를 걱정하고 있을 테였다. 역시 901호로 이사 갔지만 매일 시간 내 고양이를 챙기러 902호로 갔다. 투덜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숙희 넌 귀엽게 생긴 애가 응가는 왜 이렇게 냄새가 지독한 거야?”“개자식 이 무책임한 주인은 널 집에 내버려두고 신경도 안 쓰잖아.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야, 그렇지?”“숙희, 내가 개자식과 헤어지면 넌 누굴 따라갈 거야?”CCTV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성우는 웃픈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집안의 CCTV는 강한서가 사고 나기 며칠 전 설치한 것이었다. 출근한 차미주가 한성우에게 숙희가 보고 싶다고 하자 한성우는 바로 CCTV를 설치했다. 원래는 서프라이즈로 알려줄 생각이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강한서에게 사고가 생겼고 한 달 내내 그 일 때문에 뛰어다니느라 차미주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그 CCTV가 이렇게 오히려 몰래 훔쳐보는 도구가 될 줄이야. 한성우는 쓸쓸하기도 하고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꿈에도 그리던 사람이 자기를 위해 음식을 차리는 모습을 보니 순간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는 아무도 자기 여자친구에게 눈독 들이지 못하도록 당장이라도 차미주를 데리고 혼인신고 하러 가고 싶었다. 한성우가 여전히 그만의 상상에 빠져 있을 때, 차미주가 숟가락 손잡이로 한성우의 배를 찔렀다. 찌릿한 통증에 한성우가 손을 내렸다. 차미주가 고개를 돌려 숟가락으로 한성우를 가리켰다. “변태야,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거야?”한성우가 배를 문지르며 억울한 듯한 말투로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차미주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옆에 있던 주방 세제를 한성우에게 던지며 욕을 내뱉었다. “그 느끼함 좀 씻어버려.”한성우는 전혀 타격감 없이 세제를 원위치시키며 나긋하게 말했다. “음식 아직 몇 가지 남았어? 내가 도와줄까?”차미주가 한성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할 줄 알아?”“말 또 섭섭하
“모르겠어. 그냥 감이야.”차미주가 말했다. “머리가 다친 것도 아니고 그냥 물에 빠졌었잖아. 갑자기 기억상실? 게다가 하필 다른 일, 다른 사람은 다 기억하면서 유독 너만 잊었잖아. 너무 판타지 같은 얘기야.”잠시 침묵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하지만 날 모른 척하는 이유가 뭘까? 이해가 안 돼.”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린 채 머리를 쥐어짜더니 머리를 탁 치며 말했다. “나 알았어!”한현진이 차미주를 쳐다보았다. 차미주가 입을 열었다. “봐봐, 그때 강한서가 얼마나 심하게 다쳤어. 당연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잖아. 그러니까 손가락은 쉽게 강한서를 쥐락펴락했을 거야. 강한서에게 너와 헤어지고 자기와 만나지 않으며 살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한 게 틀림없어. 강한서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가락에게 복종하면서 널 모르는 척하는 거고.”한현진은 말문이 막혔다. “강한서는 기억상실이 온 거지 바보가 된 게 아니잖아. 송가람은 그렇게 쉽게 강한서를 쥐락펴락할 수 없어.”차미주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면 강한서가 기억상실인 척할 이유가 뭐가 있어?”잠시 침묵을 지키던 한현진이 갑자기 말했다. “진짜인지 연기인지 방법이 있어.”차미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무슨 방법?”한현진은 손으로 아까 와이너리의 매니저가 준 시식용 술병으로 장난하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한서 건강 회복되면 그때 다시 얘기해.”차미주는 한현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한현진을 무조건 신뢰했다. “현진아, 넌 멘탈이 너무 단단한 것 같아. 만약 개자식이 사라진 지 한 달 만에 여자까지 데려와서 날 나 몰라라 하면 난 그 X놈들에게 달려들어 찢어 죽였을 거야.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차라리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보단 나아. 송가람의 의도가 얼마나 불순했든, 어쨌든 살려서 돌아왔잖아.”송가람 얘기가 나오자 차미주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강한서를 구하긴 했지만 정말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어. 아까 거기
당시 한현진은 강한서에게만 정신이 팔려 다른 곳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강운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한현진이 물었다. “저희 아빠가 왜요?”주강운이 멈칫했다. “아저씨가 얘기 안 하셨어요?”한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강운은 생각 끝에 한현진에게 얘기하기로 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며칠 전 아저씨를 집으로 초대하셔서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전 그때 집에 없어서 나중에 아주머니를 통해 듣게 됐어요. 아저씨가 식사도 안 하시고 그대로 가셨다고 하시던데, 안색도 안 좋으셨다고 하더라고요.”한현진은 그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송병천이 단 한 번도 한현진에게 그 일에 관해 얘기를 꺼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차미주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아저씨 성격이 얼마나 좋으신데, 할아버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기에 화가 나신 거예요?”주강운이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저와 현진 씨가 교제하는 줄 아시고 마음대로 혼사를 정한 것 같더라고요. 한평생을 마음대로 사신 분이니 모든 사람이 자기 뜻대로 할 거라고 생각하셨겠죠. 아저씨가 거절하시니까 체면이 구겨졌다고 생각하셔서 말을 험하게 하신 것 같아요.”“...”‘이 입을 놀리지 말았어야 했어.’주진철에 대해서 한현진도 강한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현진이 강한서의 전 와이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강운과의 결혼을 주선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한서는 주강운에게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고 했었다. 한현진은 자신에게 주진철의 눈에 들만한 특별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송씨 가문 친딸이라는 신분이 크게 작용할 수 있겠지만 주씨 가문이 이 정략결혼을 통해 얻게 될 이득은 많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빠는 저에게 그 얘기를 하신 적이 없어요. 아마 신경 쓰고 계시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강운 씨가 그렇게 얘기한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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