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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유현진이 이를 꽉 깨물었다.

‘오늘 부탁할 일만 없었더라면 당장 이 자식을 발로 확 차버리는 건데! 멀쩡하게 생겨서 왜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지, 참. 그냥 말 섞지 말아야지!’

유현진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얄미운 남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작성한 문자를 민경하에게 보내며 말했다.

“경화로의 ‘화원 향료’라는 가게에서 사면 돼요. 그 집에 향료 종류가 많아서 한꺼번에 다 살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사모님.”

유현진이 자신을 무시한 뒤로 강한서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여 분이 지나 약속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유현진이 차에서 내리려는데 강한서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목을 빼려 했다.

“움직이지 마!”

강한서의 힘이 어찌나 센지 그녀의 힘으로는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네 번째 손가락이 갑자기 차갑게 느껴지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나타났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그들의 결혼반지였는데 아름드리 펜션에서 나올 때 결혼반지도 함께 두고 나왔었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었다. 결혼식 날 송민영이 나타나는 바람에 강한서는 결혼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장을 떠났다. 결국 그녀는 결혼반지를 스스로 손가락에 꼈다.

“엄마가 보시고 괜히 이것저것 물어볼까 봐 그래. 별 뜻은 없어.”

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유현진은 생각에서 헤어나왔다. 그녀는 손을 거두며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내 주제를 알아.”

그러고는 차 문을 열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강한서는 어두운 얼굴로 뒤따라 내렸다.

강한서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강민서였다. 올해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두 달 전 친구와 함께 졸업 여행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

한주 강씨 가문의 가장 막내인 데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가 돌아간 바람에 집안 어른들은 특히 그녀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한 성격이 되고 말았다.

금방 시집왔을 때 사실 유현진은 시누이와 잘 지내고 싶어 그녀의 비위를 맞췄다. 하지만 강민서는 집안 어른들 앞에서와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그동안 사이가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갈등만 심해졌다. 강한서는 늘 강민서 편만 들기 때문에 결국 속상하고 억울한 건 그녀였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송민영이 없었더라도 그녀와 강한서는 백년해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출신, 가정환경 그리고 인생 관념까지 그들은 어느 것 하나 맞는 게 없었다.

그들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예약룸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강민서와 신미정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모녀는 얼굴이 꽤 비슷하게 닮아있었다. 하지만 신미정은 오랜 세월 쌓아온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고 강민서는 훨씬 더 앳되고 상큼했다.

유현진을 보자 강민서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런데 강한서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달콤하게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오빠!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엄마가 기어코 오빠가 온 다음에 음식을 올리라고 하지, 뭐야. 왜 이제야 와!”

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입에 묻은 기름을 닦고나 말하면 조금 더 믿었을 텐데.”

강민서는 말문이 턱 막혔다.

“짜증 나! 오빠 선물도 사 왔는데 이럴 거야?”

남매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신미정이 그들을 말렸다.

“됐어, 그만하고 얼른 앉아.”

그러고는 유현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현진아, 종업원한테 음식 올리라고 해.”

사실 종업원이 바로 문 앞에 있어 부르면 될 일이었지만 굳이 그녀에게 시켰다. 아무래도 평소 그녀를 부려 먹는 게 적응됐나 보다.

전에 저택에서 가족 모임을 할 때도 그녀는 늘 끝자리에 앉았다. 왜냐하면 그 자리가 식구들의 심부름을 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이젠 습관이 되어 유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데 강한서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강민서에게 말했다.

“민서야, 네가 가서 말해. 말하는 김에 와인도 한 병 가져오라고 하고.”

강민서는 언짢아하며 툴툴거렸다.

“새언니가 나간다잖아.”

그러자 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 사람은 엄마가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몰라.”

유현진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 알아. 노블 와인 맞죠, 어머님?”

신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강한서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이 갔다.

종업원과 얘기한 뒤 다시 룸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강민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새언니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 엄마 취향뿐만 아니라 할머니 취향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다니까? 상류층 행세를 하려고 아주 난리야, 진짜. 그때 할머니가 왜 두 사람 결혼 허락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 차라리 송민영이 더 낫겠어.”

손잡이를 잡고 있던 유현진은 도무지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강민서의 말이 끝나고 강한서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누구랑 결혼하든 다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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