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이 말했다. “그럴 가능성은 아마 없을 겁니다. 현장에 있는 물건이라면 저희가 꼭 찾았을 거예요. 아마 기억을 잘못하신 것 같아요.”그러자 한현진도 더 이상 여경과 따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 토끼 인형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마 하늘만 알고 있겠지. 한현진은 추모회 때 연행된 강현우를 떠올리고는 여경에게 물었다. “이번 납치 사건 말인데요. 지난번에 잡혀 온 강현우 씨와 연관이 있는 건가요?”여경이 말했다. “강현우 씨는 이미 석방되었어요. 강현우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어요. 게다가 두 명의 용의자 모두 강현우 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했고요. 용의자 동생이 강현우 씨 술자리에 나타난 건 단순한 우연이었어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고마워요.”강현우가 납치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단해가 연루된 것만은 분명했다. 강현우를 연행하도록 한 강한서의 행보는 분명 일부러 강단해에게 경고하려는 것일 테였다. 진범은 이미 죽었고 나머지 두 명의 용의자는 납치 혐의만 인정했다. 그들은 사망한 범인에게 고용되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꾸민 것이라고 잡아뗐다. 그 외에 그들은 아무런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그 납치 사건은 그렇게 종결될 수밖에 없었다. 한현진은 정말이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썬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한현진은 송병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오늘 집에 계시죠?”친구와 낚시하러 가려던 송병천은 귀하디귀한 따님이 스케줄을 묻자 대답했다. “집에 있지. 왜 그러니, 우리 딸?”“별일은 아니고요. 점심 먹으러 집에 가고 싶은데 아빠가 안 계시면 안 가려고요.”송병천은 어이가 없었다. “얘는, 내가 집에 없으면 와서 밥도 안 먹을 거냐?”한현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아빠와 같이 먹고 싶어서요.”송병천은 딸내미의 달달한 말에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아졌다. “집으로 오렴. 아빠가 오늘은
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의아한 눈길로 송가람을 바라보았다. 송가람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빠, 한서 오빠가 저한테 얘기했는데 제가 아빠께 말씀 안 드린 거예요. 서프라이즈로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거든요.”송병천은 어이가 없었다. 깜짝 놀란 건 사실이지만 기쁨은 대체 어디 있단 얘기일까?‘현진이도 집으로 와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강한서 이 자식이 가람이와 함께 집에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귀한 딸이 얼마나 화가 나겠어.’‘가람이 얘는 많고 많은 남자 중에 하필이면 강한서 이 자식을 좋아하다니. 게다가 이 자식은 지금 기억을 잃어 현진이를 알아보지도 못하잖아.’송병천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니 강한서를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송가람이 서해금을 도와 주방으로 과일 깎으러 간 틈을 타 송병천이 강한서에게 말했다. “정말 현진이 기억 못 하는 거니?”강한서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네.”“그럼 너 가람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강한서가 말했다. “아저씨, 가람 씨는 저를 살려준 사람이에요. 저에겐 은인이죠.”“그것뿐인 거냐?”송병천은 당연히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 실종되고 한 달 후 가람이와 함께 나타났어. 그 사이 너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단지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가람이와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거니?”강한서가 입꼬리를 내리더니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아저씨, 그 한 달 사이 일어난 일은 제 사생활이에요. 지금은 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송병천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강한서, 네가 가람이에게 어떤 마음이든, 네가 감히 가람이와 만나서 현진이에게 상처를 준다면 난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강한서가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가람 씨도 아저씨께서 20여 년을 키우신 딸이에요.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야박하게 구시는 건가요?”화가 치민 송병천이 막 입을 열려는데 거실
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 송병천이 주강운과 강한서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극명했다. 송병천은 강한서가 가져온 선물은 받기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주강운이 가져온 선물은 한현진이 골라준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예전의 강한서라면 아마 이런 대접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송가람의 매력이 너무 큰 탓인지 심지어 강한서는 말대꾸조차 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송병천이 한껏 비꼬며 자신을 욕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보다 못한 한현진이 마른기침을 하며 송병천의 말을 끊었다. “아빠, 술은 넣어두세요. 강운 씨가 오후에 일이 있어서 오늘 저희는 술 안 마실 거예요.”송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강운이 좀 챙기고 있어. 금방 다녀오마.”한현진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송병천은 보물이라도 되는 듯 술 두 병을 안고 지하로 내려갔다. “강운 씨, 앉아요.”한현진은 등받이를 뒤로 젖히며 주강운에게 말했다. 그러자 주강운은 한현진 옆에 앉았고 그 위치는 마침 강한서의 맞은편이었다. 한현진은 외투를 한쪽에 놓고 고개를 돌려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강운에게 뭘 마실 건지 물었다. “물이든 차든 다 괜찮아요.”주강운은 손을 뻗어 한현진 어깨에 있던 낙엽을 떼어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무 얇게 입었어요. 안 추워요?”한현진이 곁눈질로 힐끔 강한서를 쳐다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안 추워요. 많이 입었어요.”“겨울에 치마를 입었는데 많이 입은 거라고요?”그러자 한현진은 치맛자락을 살짝 위로 걷어 종아리를 드러냈다. “입어도 티 안 나는 스타킹을 신었거든요.”말하며 그녀는 손가락으로 종아리 쪽의 스타킹을 살짝 잡아당겼다. “엄청 두꺼워요.”주강운은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 맨 다리인 줄 알았어요.”한현진이 살풋 웃으며 말했다. “한겨울에 제가 미쳤어요?’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맞은편 잔이 탁 맑은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놓였다
말문이 막힌 강한서가 버럭 화를 냈다. “대체 어딜 봐서 제가 약혼남인 척했다는 거예요? 전 단지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쪽팔리니까 그래요.”“아, 네.”한현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강한서 씨와 가람 언니도 제 체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는데 제가 왜 강한서 씨 눈치를 봐야 하는 거죠?”강한서가 눈을 부라리며 한현진을 노려보았다. “제가 언제 가람 씨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어요? 전 그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온 거라고요.”그러자 한현진은 날카롭게 강한서와 맞서며 말했다. “그럼 강운 씨는 사과하러 온 건데, 그것도 안 되나요?”기억을 잃지 않았을 때의 강한서도 말싸움으로는 한현진을 이길 수가 없었는데 기억을 잃은 그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강한서는 주강운에게 화살을 돌려 그를 노려보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현진이 손을 뻗어 주강운의 얼굴을 가리며 강한서의 시선을 막았다. 그러더니 강한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강한서 씨와 싸우고 있는 건 전데 왜 강운 씨를 노려보는 거예요?”“어리지도 않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왜 아직도 분수를 모르는 거지?”자식을 보호하듯 편을 드는 한현진의 모습에 강한서는 화가 치밀었다. 한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 말은 강한서가 질투를 할 때에나 할 법한 대사였다. 강한서는 잔뜩 꼬여있는 사람이라 질투가 나도 명확히 얘기하지 않고 도리를 따지며 논쟁을 벌이고는 제삼자에게 화살을 돌렸다. 어차피 한현진을 탓하면 그녀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한서의 말에 반박하고 나중엔 아예 그를 무시해 버리기 때문에 전혀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강한서가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졌다. 안전하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제삼자에게 화풀이도 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분명 동갑이면서 강한서는 주강운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며 인신공격했다. 그런 강한서를 보는 한현진의 눈빛에 애틋함이 묻어있었다.
한현진은 고개를 들어 입술을 짓이겼다. “그렇군요. 제가 가람 언니를 오해한 거였네요. 전 원래부터가 예민한 사람이라 가람 언니가 늘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사실은 절 좋아하지 않으셔서 가족으로 여기지 않아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그 말에 송가람은 멍해졌다. 한현진이 이렇게 얘기할 줄 몰랐던 송가람이 얼른 그녀의 말에 부정했다. “아니에요, 현진 씨.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주강운이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 씨가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그는 말하며 또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현진 씨는 20여 년을 가족과 떨어져 힘들게 지내왔어. 이제 겨우 가족을 찾았는데 아버지는 또 다른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셨지. 안 그래도 현진 씨는 이 집에서 안전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넌 언니라는 애가 매번 현진 씨가 올 때마다 손님 대하듯 대하면서 예민하다고 타박까지 하다니. 이러는 경우가 어딨어?”한현진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에게 주강운은 늘 다정하고 점잖고 법정을 나서면 공격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현진은 지금에서야 자신이 한 변호사의 언변 실력을 얕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정에서 수많은 재판에 이겨 온 주강운이 일상생활에서의 말다툼에서 질 리가 없었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는 단지 그가 얘기를 하고 싶은가 아닌가에 달렸을 뿐이었다. 송가람은 전혀 주강운의 상대가 아니었다. 주강운의 말에 송가람의 얼굴은 역시나 잔뜩 일그러졌고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강운 오빠. 저한테 너무 큰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 아니에요? 전 정말 그냥 한 말이에요.”송가람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도움을 구했다. “한서 오빠, 저 정말 그런 뜻 아니었어요. 현진 씨를 당연히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죠.”한현진이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개자식, 어떻게 송가람 편을 드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그러나 강한서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관자놀이를 만졌다. “죄송해요. 저 잘 못
한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신기한 약이기에 그렇게 바로 효과가 나타나?’한현진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의심을 억누르며 강한서 앞으로 다가갔다. 소파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있는 강한서는 전보다 안색이 어두워 보였다.한현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요? 아직도 아파요?”강한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에 서 있는 한현진을 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멀리 떨어져 주시면 안 아플 것 같네요.”한현진은 멈칫하더니 얼른 강한서 옆으로 다가가 그와 바짝 붙어 앉았다.“그러면 계속 아프던가요.”“...”송가람이 나지막이 말했다. “현진 씨, 자꾸 한서 오빠 자극하지 말아요. 교수님이 최대한 교수님 말씀대로 하라고 하셨어요.”한현진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교수님 말대로요? 화장실 가고 밥 먹는 것도 교수님 말대로 해야 하나요?”강한서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옆에 앉아도 죽네 사네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한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안 그래요? 우리 약혼남?”“저질.”강한서가 단 두 글자로 한현진을 평가했다. 한현진 역시 두 글자로 받아쳤다. “약골.”“무슨 약인지 보여줘요.”한현진이 말했다.강한서는 그녀를 훑어보았다. “독이라도 타려고요?”한현진이 그를 노려보았다. “네. 일단 벙어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지부터 봐야겠네요.”말하며 한현진은 강한서가 긴장을 늦춘 틈을 타 그의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뻗어 약을 찾았다. 흠칫 표정을 굳힌 강한서가 얼른 한현진의 손을 밀어냈다. 그러자 한현진은 강한서의 손을 쳐내며 그를 째렸다. “움직이지 마.”그리고 그 순간 한현진의 손에 뭔가가 잡혔다. 약병이라고 생각한 한현진은 호주머니의 안감 쪽으로 손을 넣어 힘껏 그것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한현진이 힘을 쓴 순간 강한서는 갑자기 감전된 사람처럼 한현진을 소파에 밀어버리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강한서의 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렸고 눈빛도 볼품없이 흔들리고 있었
‘강한서는 날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왜 내가 만지니까 몸이 반응하는 거야?’‘다른 나라 야동을 보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연기를 못한다며 평가하던 사람이잖아. 지금 자기에겐 전혀 모르는 여자에 불과한 내가 조금 만졌다고 반응을 보인다고?’‘말도 안 돼... 완전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이 개자식, 언제까지 아닌 척 연기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잠시 후, 송병천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비록 강한서가 기억을 잃은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딸의 마음이 아직 강한서에게 있으니 송병천도 더 이상 못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송민준은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고 한현진 바로 옆이자 송병천 쪽에 있는 송민준의 자리엔 주강운이 앉게 되었다. 그리고 강한서는 송가람과 서해금 쪽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두 딸이 각자 사위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송병천은 예전에도 이런 장면을 그린 적이 있었다. 아들딸이 각자 가정을 꾸려 명절 때마다 집에 모이는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송병천이 상상했었던 것은 절대 지금처럼 어색한 분위기의 장면은 아니었다. 그는 주강운의 접시에 닭다리를 올려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운아, 요즘 일은 바쁘니?”주강운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대답했다. “요즘은 괜찮아요. 연말엔 사건이 별로 없거든요. 요즘엔 주로 법률 지원이나 법률 상식을 알리는 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송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의미가 있는 활동이니 보기 좋구나. 현진이한테 들었는데 전에 현진이의 명예권 소송도 강운이 네가 변호해 준 거라며?”“네. 그땐 현진 씨를 금방 알게 되었을 때었어요.”송병천이 갑자기 한현진에게 물었다. “현진아, 넌 그때 왜 강운이에게 이혼 소송을 맡기지 않은 거야? 강운이 실력이라면 널 맨몸으로 쫓겨나게 하진 않았을 텐데.”강한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빠, 저 빈털터리로 나간 게
송가람이 얼른 대답했다. “닭내장볶음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못 드셔보셨어요?”강한서가 말했다. “전 동물 내장을 좋아하지 않아서요.”말하며 잠시 멈칫하던 강한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번 시도는 해보죠.”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강한서도 먹어보려는 줄 알았던 송가람은 순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른 닭내장볶음을 강한서 앞으로 돌렸다. 그러자 목이버섯 돼지고기볶음이 한현진 앞으로 돌아왔다. 멈칫하던 한현진이 얼른 음식을 한 젓가락 집었다. 그 뒤로 강한서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 말할 때마다 한현진의 앞에는 그녀가 원하던 담백한 음식이 놓여있었다. 기가 막힌 우연이라 오히려 우연 같지 않게 느껴졌다. 한현진은 금세 배불리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보다 못한 송병천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계속 그렇게 테이블을 돌리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먹으라는 거니?”‘우리 귀한 딸은 좋아하는 음식을 한 입도 먹지 못하고 오히려 저 자식이 황제처럼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앉아 있네.’송병천이 화를 내자 서해금이 입을 열었다. “가람아, 예의를 지키렴.”송가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강한서의 환심을 사는 데만 정신이 팔려 그런 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한서가 바로 그때 입을 열며 송가람 편을 들 듯 말했다. “가람 씨 저 안 챙겨도 괜찮아요. 먹고 싶은 건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가람 씨도 많이 먹어요. 한 달 사이 많이 야위었어요.”그 말에 송가람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고마워요, 한서 오빠.”한현진은 말문이 막혔다. 전엔 아마 강한서의 마음이 온통 한현진을 향해있고 송가람과는 별다른 친분이 없었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송가람은 정말 강한서에게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심지어 송가람에게 음식도 집어주지 않고 그저 많이 먹으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송가람은 감동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강한서가 음식이라도 집어주면 방부제로 표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