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성우의 지금 이런 모습들이 모두 다른 여자와 사귀었던 경험을 통해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니 차미주는 또 표현하기 힘든 짜증이 치밀었다. 예전의 차미주는 연애라는 것은 비슷한 사람끼리 끼리끼리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지장 같은 자신이 한성우처럼 물이 든 남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느끼하고 의심이 많은 한성우를 차미주처럼 단순한 여자가 감당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한성우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그를 대하고 싶지 않았다. 한성우의 한두 마디 말이면 차미주의 원칙은 쉽게 흔들렸다. 차미주는 한성우의 손을 밀어내며 불편한 듯 얘기했다. “너와 상관없어. 나 다이어트 중이야.”“뚱뚱하지도 않은데 웬 다이어트? 너무 날씬하면 안 좋아.”한성우와 만나면서 4kg이나 쪘지만 그럼에도 한성우가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칭찬해 주니 차미주는 어쩐지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만 주는 연인은,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차미주의 부모님은 바로 서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사업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내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칭찬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집에서 아이는 돌보지 않고 왜 늘 그렇게 야망에 차 있냐며 나무랐다. 그러다 사업에 문제라도 생기면 또 얘기했다. “거 봐. 내가 넌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게 왜 애초에 내 말을 안 들어. 손해를 봐야 정신을 차리지.”차미주는 부모님이 왜 다른 집 부모님과는 달리 계속 싸우고, 사이가 멀어지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야 두 사람의 관계에서 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그 사람이 단 한 번도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도 주지 않으며 점차 나의 감정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성우는 차미주의
한현진의 물음에 차미주가 멍해졌다. 그녀 역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차미주는 임신 테스트기 설명서를 보며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성우가 오히려 차미주보다 빨리 설명서를 확인하고는 설명했다. “여기엔 지금 같은 경우를 약양성이라고 하고 임신 초기일 수 있고 화학적 유산일 수도 있대요. 간단히 얘기하면 연하든 진하든 두 줄이 나타나기만 하면 임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정확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면 두 날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해보거나 바로 병원에게 가서 검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차미주가 순간 흥분하며 한현진을 안았다. “현진아, 내 새끼! 너 아기 생겼어. 세상에, 나 양딸이 생기는 거야. 하하하하하.”한현진은 조금 어안이 벙벙했고 심지어 이 상황이 조금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방방 뛰어대는 차미주를 말렸다. “순둥아, 임신 테스트기가 유통기한이 지난 건 아닌지 확인해 봐. 내가 임신일 리가 없을 텐데.”‘그러니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강한서는 정관 수술을 했는데. 어떻게 임신을 해.’“왜 임신일 리가 없어. 너 너무 기뻐서 어떻게 된 거 아냐?”차미주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봉투에 손을 넣어 새로운 임신 테스트기 하나를 꺼내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차미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자식아. 너 또 돈 아끼려고 싸구려 샀지. 유통기한이 6개월이나 지났잖아.”“설마.”한성우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유통기한 확인했어.”차미주가 한성우를 노려보며 임신 테스트기를 그에게 던져버렸다. “네가 직접 확인해 봐.”한성우가 차미주가 던진 임신 테스트기를 주워 날짜를 확인하니 정말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다. 주머니 가득 담긴 임신 테스트기를 하나하나 꺼내 확인하니 단 두 통의 임신 테스트기를 제외한 모든 제품이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다. ‘어쩐지 대폭 할인이라 했더니. 유통기한이 지난 것과 아닌 걸 섞어 파는 거였어.’잔뜩 화가 나 경멸하는 눈빛으로 자기를 보고 있는 차미주에 한성우는
“강한서 전화 받고 갔어.”송민준이 또 한 번 한현진의 가슴을 쿡 찔렀다. 한현진이 몸을 뒤척였다. “지금 절 모른다고 딱 잡아떼고 있는데, 제가 간다고 하더라도 대접도 못 받을 거예요. 송가람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두 사람이 계속 같이 있다 보면 눈이라도 맞지 않을까 걱정 안 돼? 강한서는 지금 널 기억하지도 못한다고.”한현진이 멈칫 행동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며 물었다. “오빠. 송가람이 강한서를 어떻게 찾았는지 얘기했어요?”“너희가 사고를 당한 곳에서 5km 정도 떨어진 강가에서 찾았다고 했어. 당시 강한서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2주일 만에 의식을 찾았대.”한현진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오빠는 그 말 믿어요?”송민준은 대답 대신 말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니, 그때의 흔적을 찾는 건 힘든 일이야.”그 말은 송가람의 말 이외엔 진실을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뜻이었다. 한현진은 어젯밤 했던 임신 테스트기를 떠올리고는 갑자기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말했다. “오빠. 선물 좀 준비해 줘요. 강한서 본가에 병문안하러 가야겠어요.”송민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준비해 뒀어. 너만 일어나면 돼.”“...”한 시간 뒤, 한현진은 단정하게 차려입고 강한서의 본가에 나타났다. 그 시각 송가람은 강한서를 부축해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가끔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제법 화목해 보였다. 한현진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씨가 한현진을 불러서야 그녀의 시선이 그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한현진 씨.”한현진이 시선을 돌려 진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좋은 아침이에요.”진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현진 손에 들린 물건을 건네받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따라오세요.”감사의 인사를 전한 한현진이 진씨의 뒤를 따랐다. 한현진이 막 마당에 발을 들이자 웃고 떠들던 송가람이 갑자기 강한서를 부축하고 있던 손을 놓으며 조금 어색한 태도로 말했다. “현진 씨가 어
가시 돋친 한현진의 말은 듣기 거북했다. 중고를 쓰는 여자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중고는 더 말한 것도 없이 불만을 표현했다. “누가 중고라는 거예요?”한현진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당연히 강한서 씨를 말한 건 아니죠.”강한서의 마음이 조금 수그러질 때쯤 뒤이은 한현진의 말이 들려왔다. “손을 한 번 거치면 중고잖아요. 두 번 거치면 중중고죠. 강한서 씨는 이미 한 번 거치셨잖아요.”“...”“현진 씨, 저와 한서 오빠는 현진 씨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그런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요?”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얘기해 봐요.”송가람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전... 전 그저 한서 오빠가 빨리 나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다른 건 바라지 않아요.”“이상하네요. 가람 언니가 있으면 강한서 씨가 빨리 낫나요? 가람 언니가 의사예요 아니면 강한서의 몸을 지배할 수 있는 묘약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예요?”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한참 동안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송가람은 안 그래도 얼굴이 울상이라 억울한 표정을 짓자 한결 더 가여워 보였다.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걸 보니 총알이라도 장전하고 온 거예요?”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람 언니가 강한서 씨를 구했기 때문에 계속 봐주고 있는 건데요.”말하더니 한현진은 강한서의 귓가에 다가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한서, 네가 날 기억하든 아니든, 네가 송가람을 보호하려고 할 때마다 난 송가람을 디뎌 버릴 거야. 네가 감히 송가람과 만나기라도 하는 날엔, 네 대를 끊어버릴 줄 알아.”한현진은 제법 나긋한 모습으로 말을 꺼냈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은 강한서의 아랫도리를 서늘하게 했다. 한현진이 진씨를 따라 멀어질 때까지도 강한서는 멍해 있었다. “한서 오빠, 물 마실래요?”송가람이 강한서를 부르고 딸랑 종소리가 울려서야 그는
정인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괜찮단다.”“정말 괜찮으세요? 전에 한서가 실종되었을 때 사람도 만나시지 않으시고 아저씨는 할머니께서 병상에서 내려오시지도 못한다고 하셨거든요. 정말 그러셨어요?”정인월이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 “현진아, 너처럼 똑똑한 아이가 눈치 못 챘을 리가 없잖니?”한현진의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인제 보니 정말 그녀가 예상했던 것처럼 당시 정인월은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강단해의 뜻이었는지 아니면 강단해와 신미정이 함께 도모한 작품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현진이 뭔가 얘기를 꺼내려는데 정인월이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정인월은 위생 장갑을 끼며 얘기했다. “올 때 한서 보러 안 갔어?”강한서 얘기가 나오자 자연스레 송가람과 함께 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 한현진은 짜증이 치밀었다. “같이 있어 줄 사람이 곁에 있는데 제가 왜요? 절 화나게 하는 짜증 나는 얘기 들으러 가겠어요?”정인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서가 돌아오고 나서 많은 일을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꽤 변했더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한현진이 멈칫했다. 그녀가 떠보기도 전에 정인월이 먼저 얘기를 꺼내 더 이상 뭘 물어볼 수도 없게 만들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할머니, 죄송해요.”정인월이 고개를 들어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한현진이 말을 이었다. “전부터 계속 죄송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강한서를 꽉 잡지 못했어요. 만약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다면 한서가 손을 놓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고가 일어난 뒤, 사실 할머니를 뵐 낯이 없었는데, 강한서가 돌아와서 너무... 너무 다행이에요.”잠시 침묵하던 정인월이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마음에 응어리가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이 할미는 널 원망할 자격이 없단다. 넌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 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정인월이 멈칫하더니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한현진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고 표정은 얼어붙었다. “그럼 가렴. 현진이도 같이 데려가. 현진이도 방금 준이 본지 오래됐다고 얘기했었거든.”한현진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정인월을 쳐다보았다. 정인월은 기회를 잡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인월의 말에 강한서는 멈칫하더니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 같이 가요.”“...”‘개자식, 무슨 표정이 저래. 난 가고 싶은 줄 알아?’‘됐어. 머리에 물이 들어찬 사람과 따질 필요 없어.’한현진은 송가람의 말투를 따라 하며 비꼬았다. “잘 부탁드려요, 한서 오빠.”강한서와 송가람 모두 말문이 막혀버렸다.세 사람이 마구간에 도착했을 때 사육사가 준이의 갈기를 빗겨주고 있었다. 멀미서부터 그들이 오는 것을 확인한 준이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말발굽을 들어 왔다 갔다 하는 준이의 모습은 심지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았다. 준이는 일반 말보다 몸체가 훨씬 큰 편이었다. 말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 준이와 가까운 거리에 서 있으면 덮칠 듯한 위압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송가람은 튼실한 준이의 모습을 보더니 겁에 질렸다. 그녀는 준이의 한쪽 눈 위의 흉터를 보더니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러니 오빠가 준이를 흔히 없을 준마라고 했던 거군요. 하지만 한 쪽 눈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깝네요.”강한서가 손을 뻗어 준이의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도 그래요. 비록 속도는 빠르지만 길들이기 어려운 말이었어요. 경주마는 순종이 잘 된 말로 선택되거든요. 이렇게 길들이기 어려운 말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탈락이죠. 준이 눈은 바로 훈련 도중 채찍에 맞아서 멀게 된 거예요.”송가람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하네요. 많이 아팠겠죠?”한현진이 힐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강한서의 공대남스러운 사유방식이라면 그는 아마 누가 맞든 아팠을 거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그러나 강한서
강한서는 자기 몸을 훑어보며 말했었다. “우리 몸무게를 합하면 150kg은 거의 될 텐데, 준이를 낙타로 만들 셈이야?”‘나쁜 자식. 송가람이 나보다 가벼우면 얼마나 더 가볍다고. 너희는 준이를 낙타로 안 만들 수 있나 보지?’송가람은 당연히 강한서의 대답에 기쁜 기색을 내비쳤다. 특히 한현진의 어두워진 얼굴을 확인하더니 송가람의 얼굴은 더 밝아졌다. 한현진은 준이를 만진 적도 없다고 생각하니 송가람은 어떻게든 이 말을 길들여 강한서 앞에서 자기가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한서 오빠. 한 번 해보게 해줘요. 사람을 가리는 준이가 전 만지게 해줬다는 건 우리가 인연이라는 뜻이에요. 저도 이렇게 예쁜 말을 본지 너무 오래됐어요. 한 번 시도는 하게 해줘요.”한현진이 입술을 짓이겼다. “가람 언니, 말 위에서 떨어지는 건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고집부릴 일이 아니에요. 만약 다치기라도 하면 제가 집에 돌아가서 아주머니께 뭐라고 말씀드리겠어요?”송가람은 한현진이 강한서 앞에서 지고 싶지 않아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한현진의 충고는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말을 길들이면서 다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현진 씨, 현진 씨가 준이를 순종시킬 수 없다고 저도 못하는 건 아니에요.”그녀는 말하더니 다시 강한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서 오빠, 하게 해줘요. 딱 한 번만요. 만약 준이가 올라타지도 못하게 하면 그만둘게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래요. 보호 장비 잘 착용하고 조심해요.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내려오고요.”송가람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그녀가 나긋하게 대답했다. “네.”그러더니 그녀는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현진 씨, 다른 말을 골라서 시합해 볼래요?”한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다음에요.”한현진이 창피해서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확신한 송가람이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강한서가 한현진을 훑어보더니 냉소 지었다. “입김을 불면 낫는다니, 한현진 씨 입김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돼요?”“네.”한현진이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전엔 계속 저더러 여왕님이라고 했잖아요. 여왕님이 불어준 입김인데 당연히 만병통치약 아니겠어요?”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 “헛소리하지 말아요. 제가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했을 리가 없잖아요.”한현진이 혀를 찼다. “고작 그게 뭐라고요. 강한서 씨가 저에게 했던 느끼한 멘트는 이것보다도 더 오글거렸어요.”강한서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한 번 얘기해 봐요. 제가 무슨 오글거리를 멘트를 했었는지.”“너무 많죠. 예를 들면 네가 없으며 어떻게 살아, 평생 너만 사랑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특히 그 뭐냐...”강한서가 말끝을 흐린 한현진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뭐라고요?’한현진이 강한서의 귓가에 다가가려고 하자 그가 손을 뻗어 한현진을 막았다. “거기 서서 얘기해요.”한현진이 말했다. “여기서 얘기하긴 좀 그런데.”강한서가 물병을 열며 덤덤하게 말했다. “여기서 못 할 얘기가 뭐가 있어요? 말해요.”한현진이 입을 삐죽였다. “특히 섹X할 때면 절 ‘자기’라고 부르길 좋아했어요. 제가 말랑하고 맛있다면서, 제 위에서 죽어도 좋다고...”“풉—켁켁—”막 물을 마시던 강한서가 입안에 있던 물 절반을 뿜어냈다. 남은 물 절반에 사레가 들려 얼굴과 목이 다 새빨갛게 변했다. 한현진이 다가가 걱정스레 강한서의 등을 토닥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제가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라고 했는데도 굳이 말하라고 했잖아요. 절 기억하지도 못하니 강한서 씨 기억엔 본인이 아직도 총각 같을 테니, 이런 주제가 한서 씨에겐 얼마나 자극적으로 들리겠어요.”강한서는 귀가 빨개질 정도로 기침을 해댔다. 그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함께 밀려와 한현진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얘기했다. “한현진 씨는 정말, 켁켁... 저속하네요.”한현진은 마음속으로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