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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성도윤의 진지한 눈빛과 단호한 표정을 본 차설아는 손에 검사 결과를 꼭 쥔 채 속으로 몇 번이고 망설였다.

옆에 있던 임채원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재빨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더니 자기 검사 결과를 꺼내 차설아에게 다가갔다.

“설아 씨, 우리 아가 좀 봐봐. 벌써 3개월이야. 방금 입체 초음파 검사를 받았거든? 벌써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대, 사진 볼래? 어때? 귀엽지? 오늘 모처럼 설아 씨를 만났는데, 배 속의 아이를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야겠어. 설아 씨가 넓은 마음으로 허락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이한테 온전한 가정은 사치였을 테니까. 게다가 도윤처럼 완벽한 아빠도 없었을 거야.”

이건 누가 봐도 자랑이었다.

차설아는 임채원이 건넨 입체 초음파 사진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팔다리와 이목구비가 또렷한 다 자란 아기 사진이었다.

반면, 그녀의 아이는 엄밀히 따지면 아직 생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배아에 불과했다.

이러한 격차는 그녀에게 무언의 조롱거리로 다가왔다.

마치 그녀와 아이가 성도윤에게 얼마나 불필요한 존재인지 조롱하는 것처럼 말이다.

말없이 꾹 참고 있는 차설아가 만만하게 느껴진 임채원이 계속해서 비꼬았다.

“설아 씨는 우리 아기한테 은인과 다름없잖아. 참,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설아 씨가 우리 아기의 이름을 대신 지어주는 거야. 그렇다면 아기도 감사한 마음을 안고 평생 고마워할 테니까.”

차설아는 처음으로 임채원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장난하나?

자기 남편과 바람 핀 것도 모자라 그녀한테 아이의 이름마저 지어달라니? 지금 너 죽고 나 죽자는 건가? 그녀의 아픈 곳에 비수를 꽂는 상황이 따로 없었다.

차설아는 피식 웃으며 마치 임채원이 하찮은 듯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당연하지, 설아 씨만 원한다면.”

임채원은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물론 본심은 성도윤 앞에서 차설아를 망신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차설아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이 넓고 인내심이 강하더라도 자기 남편이 내연녀와 낳은 자식의 이름까지 지을 만큼 관대한 여자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성도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편하면 거절해도 돼.”

비록 이혼은 이미 정해진 일이지만, 난처하고 어색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지켜주고 싶었다.

물론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불편할 게 뭐 있어? 작명이 뭐 어렵다고.”

차설아는 난처하고 어색해하기는커녕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눈썹을 까딱하더니 입을 열었다.

“성재기로 해.”

“성... 재기?”

임채원은 차설아가 진짜 이름을 지어줄 줄 몰랐기에 당황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재기한다는 뜻이야?”

“아니, 재활용 쓰레기의 약자야. 즉, 남이 버리거나 필요 없는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는 뜻이지. 어때? 뜻풀이가 기가 막히지 않아?”

차설아의 말에 임채원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당장이라도 노발대발하고 싶었지만, 성도윤이 지켜보고 있는지라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애써 화를 삭였다.

이때, 차설아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채원 씨가 기어코 부탁해서 이름을 지었는데 나중에 꼭 써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일부러 보여주기식으로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거든.”

성도윤은 흙빛이 된 얼굴로 차설아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그만해, 정도는 지켜야지.”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이 예비 전 남편아.”

차설아는 성도윤의 매서운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참, 염치도 모르고 개념도 없는 불륜남이 더 정확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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