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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성도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동안 아무런 의지가 없는 꼭두각시처럼 따분한 줄만 알았던 여자에게 이토록 날카롭고 톡 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왜 인제야 깨달았지? 마치 발톱을 바짝 세운 새끼 고양이가 긁어대는 것처럼 사람을 미치게 했다.

대체 어딜 봐서 보호가 필요한 모양새인가!

이를 본 임채원은 곧바로 다시 아양을 떨며 성도윤의 팔을 잡아당겼다.

“도윤아, 설아 씨 탓하지 마. 따지고 보면 나랑 아기 잘못이지, 뭐. 설아 씨가 널 그렇게 사랑하는데 우리의 행복을 지켜주려고 강제로 이혼당했으니, 나랑 아기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냥 화풀이하도록...”

“아니.”

차설아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굳이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있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당신들의 행복 따위를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개념도 없는 쓰레기를 버렸다가 마침 그쪽이 재활용했을 뿐이야. 그래서 아이 이름이 성재기라고 하는 게 찰떡이라고 했잖아.”

곧이어 그녀는 성도윤을 바라보며 웃는 둥 마는 둥 했다.

“개념이 없는 사람은 보통 운이 좋지 않기 마련이라던데, 성도윤 씨... 최근에 재수 털리는 일이 생길 거로 감히 예상해 볼게.”

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웠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재수 없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라고 가르쳐줬거든. 아니면 같이 불행해질 수 있다고. 둘이 끼리끼리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오래오래 함께하길 바랄게. 축하해, 안녕!”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해안시에서 ‘성도윤’이라는 세 글자는 절대적인 권위를 의미하기에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따라서 성도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차설아는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

어차피 화풀이는 다 했으니 기분은 후련했다. 물론 한 쌍의 불륜 남녀가 화를 내든 말든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차설아가 떠난 후 임채원은 성도윤을 몰래 살폈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대놓고 모욕당했으니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일자로 굳게 닫힌 남자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갈 줄이야?

“도윤아, 이제 그만 화 풀어. 설아 씨가 너무 열받아서 막말했을 거야. 이게 다 내 탓이고, 우리 아기의 잘못이니까 내 탓 해. 채원 씨는 절대 원망하지 마.”

임채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계속 재잘거렸지만, 성도윤은 귀에 들리기는커녕 시끄럽게만 느껴졌다.

그의 시선은 차설아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녀가 떠난 방향에서 떠나질 않았다.

예비 전 와이프가 색다르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병원을 나선 차설아는 기분이 바닥을 쳤다.

다만 화가 나면서도 마음이 시렸는데, 쓰레기 같은 남녀 때문에 분노하는 반면 뱃속의 작은 생명만 떠올리면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뱃속에서 천천히 자라나고 있는 작은 새싹이 앞으로 꽃길만 걸어야 하지만, 단지 아빠가 인간쓰레기라는 이유로 요절할 운명에 놓이자,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심호흡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개인용 노트북을 꺼냈다.

늘씬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자 모스 부호처럼 복잡한 코드가 화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10분도 채 안 되어 침입형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실행 버튼을 누른 차설아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30분 뒤, 성대 그룹의 업무 시스템이 다운되고 대량의 고객 정보가 유출되었다.

아직 병원에 있는 성도윤은 전화를 받자 펄쩍 뛰었다.

“바이러스 침입이라고? 범인은?!”

한편, 커피잔을 들고 통유리창 너머로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는 차설아는 드디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성도윤에게 요 며칠 재수 없는 일이 생길 거로 장담한다던 그녀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성대 그룹은 아마 이 바이러스 프로그램 때문에 한동안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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