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명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끝까지 한 번 해보겠다는 건가? 내가 정녕 도마 위의 생선처럼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장 장인어른한테 연락해서 효과적인 반격 방법을 의논하자고.”한진영이 서둘러 물었다.“화하 상업그룹을 상대하게요?”만약 사실이라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 따로 없었다.화하 상업그룹은 워낙 방대한지라 구씨 가문이 대항할 정도가 아니었다.“아니.”비록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구천명은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분석을 이어갔다.“솔직히 전태웅이 염무현을 위해 나설 줄은 생각지 못했어. 다만 둘이 각별한 사이는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해. 아마도 단지 도움을 주는 것에 불과할 뿐, 신세를 갚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자고. 어쨌거나 화하 상업그룹은 비즈니스계에서 우세를 보이므로 우리는 다른 수단으로 염무현을 상대하는 거야. 그렇다면 속수무책이기 마련일 테니까.”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여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아빠한테 연락할게요.”얼마 지나지 않아 한씨 가문이 차를 보내 두 사람을 데려갔다.세인시의 한 고급 찻집.우아한 분위기의 내부에 구수한 차향이 은은하게 퍼졌다.위층에 있는 VIP룸, 한수로가 예사롭지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성의를 다해 소개했다.“딸, 구 서방, 이분이 바로 내가 여러 차례 언급했던 위석현 씨야. 세인시 수비대 총책임자로서 총사령관도 겸직하고 있어.”구천명과 한진영은 깜짝 놀라더니 동시에 감탄이 섞인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안녕하세요, 위석현 씨처럼 대단한 분을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아버지를 통해 성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뛰어난 인재는 물론 정의감이 넘치고 남 돕기를 좋아하는 본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종종 하셨죠.한진영의 칭찬에 위석현은 저도 모르게 어깨가 점점 올라갔다.네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한수로가 위석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제 딸과 사위가 골치 아픈 일에
“이건 규칙에 어긋나는 거잖아.”고진성이 정색하며 말했다.“갑작스러운 통보는 둘째치고 심지어 구두로 전하다니? 이미 선을 넘었는데 무슨 사건인지도 말해주지 않고 대뜸 협조부터 하라는 게 말이 돼?”부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대장님, 직급이 높은 사람이 곧 왕이죠. 위석현 씨는 세인시의 총사령관도 겸직하고 있으니 대장님이 서해시 총사령관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걸 잊었어요? 굳이 사사로운 규칙 때문에 꼬치꼬치 따질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냥 못 본 척 눈 감아 주셔야 상대방도 그렇고 본인도 편할 거예요.”고진성은 눈살을 찌푸린 채 곰곰이 생각하더니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사무실을 빌려주는 게 뭐 큰일이라고 마련하면 되지. 어차피 무슨 일인지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 행동하니 그냥 모른 척할래. 괜히 마주쳤다가 서로 뻘쭘한 바에는 오히려 잘됐네.”지금은 진급이 걸린 중요한 타이밍인지라 상사와 거리를 두고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게 좋았다.게다가 그는 공로를 세워 승진하는 케이스라 상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단지 연차가 꽉 차서 진급이 필요한 사람만이 권세에 빌붙거나 돈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부하가 즉시 엄지를 치켜세웠다.“잘 생각하셨어요. 세인시 수비대에서 무슨 짓을 하든 어차피 우리 서해시 수비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죠.”...리버타운, 1호 별장.2층 서재.염무현은 책상 위에 미니미 버전의 오행 진법을 선보였다. 금, 목, 수, 화, 토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재료 사이에 무형의 기운으로 이어져 오색찬란한 빛이 반짝였다.“와, 너무 신기해요! 사부님, 정말 대단해요.”연희주는 깜짝 놀란 얼굴로 옆에 서서 탄성을 질렀다.“별것도 아닌데 놀라기는!”염무현이 웃으면서 말했다.물론 겸손한 게 아니었고, 그녀의 앞에서 폼을 잡지도 않았다.왜냐하면 이런 쉬운 진법은 정말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그가 마스터한 기묘한 진
그의 예측에 따르면 둘이서 족히 7번은 흡수할 듯싶었다.두 사제는 곧 무아지경에 빠졌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한편, 검은색 지프차로 이룬 차량 행렬이 기세등등하게 리버타운으로 들어섰다.보닛 앞에 수비대 로고가 떡하니 붙어 있기에 경비들은 막아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끼익!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에 염무현과 연희주는 눈을 번쩍 떴다.수비대?몇십대의 차량이 집 앞에 멈춰 있는 광경을 보자 염무현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고진성은 간덩이가 붓지 않은 이상 올 리가 없었다. 매번 그를 마주할 때마다 세상 공손했을뿐더러 방문 전에 항상 미리 연락해서 허락받은 다음 찾아왔다.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왔단 말이지?차 문이 열리면서 제복 차림의 남자들이 우르르 내려와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정원에 들어섰다.선두에서 걸어오는 남자는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고, 마치 이 세상에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처럼 항상 화가 나 있었다.염무현은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확신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딩동!선두에 있는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고래고래 외쳤다.“얼른 문 열어! 안에 있는 사람은 똑똑히 들어라! 수비대가 사건을 조사하는 현장에서 감히 협조하지 않는 자는 법을 어기는 행동으로 간주하니 무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염무현! 당장 나와! 집에 숨어서 찍소리 안 하면 모를 것 같아? 안에 있는 거 다 알...”철컥.문이 열리면서 염무현이 나타났다.“네가 바로 염무현이야?”상대방이 물었다.염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맞아,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찾아왔지?”“난 세인시 수비대 제1 특공대 대장 마정식이라고 해.”이내 의기양양한 얼굴로 명패를 꺼내 보여주었다.“그쪽이 진귀한 약재를 훔쳤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왔으니까 따라와!”“진귀한 약재를 훔치다니? 내가? 지금 장난해?”염무현이 눈살을 찌푸렸다.마정식은 마치 그의 답변을 예상이라도 한 듯 싸늘하게 웃었다.“현염초 말이야.
“피...!”얼굴에서 느껴지는 끈적이는 촉감에 마정식은 손가락을 내려다보더니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그의 볼에 족히 3cm 가 넘는 상처가 생겼는데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누구야?! 감히 날 기습해?”마정식은 조금 전에 봤던 흰색 그림자가 떠올랐지만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정확히 뭔지 알 수가 없었다.이내 대원들에게 물었지만 다들 어리둥절했고, 아예 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너희 둘이 한 짓이지?”마정식은 볼을 부여잡고 염무현과 연희주를 향해 버럭 외쳤다.“수비대 대원을 공격하면 무슨 죄를 짓는지 정녕 몰라? 이점만으로도 평생 감옥에 가둬둘 수 있거든? 어디 한번 해 봐?”연희주는 그들의 가슴 앞에 달린 뺏지를 가리키며 되받아쳤다.“공직자로서 함부로 남을 비방하면 더 엄중한 처벌을 받을 텐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가 그랬다는 거지? 증거 있어?”마정식의 화가 한풀 꺾였다. 얼굴에 흉터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뛰었다.“얼른 수갑 채워!”마정식이 큰 소리로 외쳤다.연희주가 반항하려는 순간 염무현이 그녀를 제지했다.대체 어떤 간덩이가 부은 놈이 감히 염라대왕을 건드리는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흰둥이, 넌 집 지켜.”백희연이 공격하기 전에 염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니면 이 사람들은 죽고도 남을 것이다.마정식을 포함하여 다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염무현과 연희주는 차에 실려 빠르게 떠나갔다.이내 별장 후문에 날카롭게 번뜩이는 새빨간 눈동자가 나타났다.“왜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고작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들을 봐주는 이유는 대체 뭐람?”백희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인간은 정말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뇌 구조를 가졌군. 나라면 바로 죽였을 텐데, 시간도 아끼고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도 줄이고, 성가심도 모면하고 얼마나 깔끔해!”서해시 수비대.2층 회의실과 옆에 있는 취조실은 세인시에서 온 사람들이 차지했다.고진성은 관계
“신의님,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여자 때문에 포기할 자리가 아닙니다. 신의님만 원하시면 모델이고 배우고, 설사 한 나라의 공주라고 해도 다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서해 교도소,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거물만 가두기로 유명한 특별한 교도소이다.철창 앞에서 한 노인은 한참 젊은이에게 연신 굽신대면서 애원하고 있었다. 노인은 상업계의 선두 주자인 전태웅이었다. 그는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단호하고 매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글쎄 염무현을 위해 아무 죄명이나 쓰고 복역하러 왔다.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상황이다.전태웅의 뒤로 교도소 내의 모든 교도관과 죄수들이 줄을 지어 한 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염무현을 붙잡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죄수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제패했다.염라대왕. 생사부와 같은 의술을 가졌다고 하여 붙여진 염무현의 별명이다. 그의 손에는 두 개의 검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목숨을 살리는 메스이고, 다른 하나는 목숨을 앗아가는 비수이다. 어쩌면 생사검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평화로운 세상에서 그는 생의 신이 될 것이고, 전란의 불꽃이 튀는 세상에서 그는 사의 신이 될 것이다.“하아, 당신은 몰라요...”철창 앞에서 염무현은 우뚝 서 있었다.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그의 아내 양희지의 모습 말이다.4년 전의 결혼식장에서 양희지는 흑심을 품고 신부 대기실에 쳐들어간 변태 때문에 험한 일을 당할 뻔했다. 다행히 처남이 술병으로 변태의 머리를 내리친 덕분에 그녀는 무사할 수 있었다.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염무현은 처남 대신 교도소에 들어갔다. 지난 4년 동안 비웃음으로 가득한 세상을 혼자 버텨내야 했을 양희지를 떠올리면, 아무리 신으로 숭배받는 그라고 해도 가슴이 답답한 것이 숨이 잘 올라오지 않았다.“희지는 특별한 사람이에요. 그만큼 우리가 나누는 감정도 소중하죠. 명예와 권력같이 세속적인 것은 우리
“좀 늦네...”염무현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텅 빈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4년 동안 그려오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양희지도 약속처럼 그가 출소하자마자 달려와서 안아주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양희지가 괜히 급하게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기다렸다.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하늘에서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야 차 한 대가 그의 앞으로 와서 멈춰 섰다.염무현은 빠른 걸음으로 마중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사람은 그가 기다리던 양희지가 아닌, 그녀의 친구 조윤미였다.“윤미 씨가 어떻게 왔어요? 희지는요?”조윤미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차갑게 말했다.“양 대표님은 오지 않으셨어요. 저는 이제 대표님의 비서이니, 조 비서님이라고 불러줘요. 그리고 이건 대표님이 전해달라고 하신 물건이에요.”조윤미는 염무현에게 서류를 건네줬다. 이혼 합의서라는 커다란 다섯 글자는 눈이 아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염무현도 놀란 듯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금방 미소를 되찾으면서 말했다.“장난인 거 다 알아요. 희지한테 얼른 나오라고 해줘요.”조윤미의 얼굴에는 언짢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장난 아니거든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듯이, 4년도 마찬가지예요. 염무현 씨 당신은 이제 우리 대표님과 어울리지 않아요.”“그게... 무슨 말이죠?”염무현은 조윤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결같이 냉정했다.“지금의 당신은 우리 대표님과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요. 양 대표님은 서해 최고 미녀 대표이사로 불리고 있어요. 당신의 존재는 대표님의 명성에 누가 될 뿐이에요. 대표님의 회사를 위해서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떠나줘요. 괜히 근처를 맴돌면서 걸림돌이 되지 말고요.”“내 존재가 뭐 어떻다고요?”“염무현 씨는 전과자인 반면, 양 대표님은 대기업의 대표이사예요. 차도, 집도, 쓰는 물건도 전부 최고급이죠. 대표
양희지가 남도훈과 만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이때 벤츠 한 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뒷좌석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걸친 아름다운 여자가 내렸다. 그녀의 쭉 뻗은 다리는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인간계를 벗어난 우아한 아우라는 여신을 연상케 했다.4년의 세월은 마치 양희지만 피해 간 것 같았다. 아니, 커리어우먼 특유의 강한 기운만 남기고 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희지야...”염무현은 환한 표정으로 양희지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무의식으로 뒤로 피하면서 시선을 돌렸다.“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 조 비서, 일은 어떻게 됐지?”양희지의 차가운 모습은 마치 낯선 이를 대하는 것 같았다. 조윤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부랴부랴 그녀를 향해 우산을 기울이며 말했다.“염무현 씨랑 얘기하는 중이었어요. 대표님은 남도훈 씨랑 만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기까지 와도 괜찮으신 거예요?”“괜찮아. 이쪽 일 먼저 해결할 정도의 여유는 있어.”양희지는 이제야 염무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옷이 비에 흠뻑 젖은 것을 보고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금방 다시 차가워졌다.“오랜만이야, 무현아. 너도 알다시피 난 성격 급한 사람이니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네가 우리 집안을 위해 한 일은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함께 한 시간도 소중히 간직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가 부부로서 같이 지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양희지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 마치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남편이 아닌 협력 상대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우리 이혼하자.”이는 상의도 통보도 아닌, 그냥 명령이었다.“연애할 때도, 결혼할 때도, 너희 집안사람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처남 대신 교도소에 가달라고 할 때도, 넌 가만히 있더니...”염무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결을 파고들고 있었지만, 그는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지금 와서 좀 아닌 것 같다고?”양희지는 약간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
양희지는 드디어 원하던 이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상했던 것처럼 기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꿋꿋이 말했다.“내 앞에서 자존심 챙길 필요 없어. 체면 따위가 뭐라고 위자료를 거절해. 지금 거절하면 무조건 후회할 거야. 그러니 조 비서한테 남겨두라고 얘기할게. 필요할 때 조 비서한테 연락해서 받아 가면 돼.”양희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염무현은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양희지는 가슴이 비수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팠다.“조 비서, 내가 과연 맞는 선택을 한 걸까?”“그럼요. 걸림돌을 차내야 대표님의 꿈을 이룰 수 있죠. 대표님은 업계 최고의 사업가가 될 분이세요. 반대로 염무현은 그냥 한낱 전과자일 뿐이고요. 대표님과는 말 섞을 자격도 없어요. 그런 사람은 대표님께 방해만 될 거예요.”조윤미의 말을 들은 다음에도 양희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쩐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눈치 빠른 조윤미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대표님, SJ그룹의 아가씨를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죠? 이건 아주 중요한 기회예요. ZW그룹과 SJ그룹은 오래전부터 협력 관계였으니까, 남도훈 씨만 붙잡을 수 있다면... 참, 대표님 이제 출발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데이트에 지각하면 안 되죠.”양희지가 짧은 시간 동안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SJ그룹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SJ그룹이 자신에게 왜 이토록 잘해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YH그룹보다 잘난 회사는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어떤 프로젝트는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돈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양희지는 조윤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가족들에게 이혼 사실을 알렸다....서해시, 히스턴 호텔의 스위트룸.염무현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침묵에 잠겼다.‘이혼이라니...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염무현은 서해에 따로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