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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양희지가 남도훈과 만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때 벤츠 한 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뒷좌석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걸친 아름다운 여자가 내렸다. 그녀의 쭉 뻗은 다리는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인간계를 벗어난 우아한 아우라는 여신을 연상케 했다.

4년의 세월은 마치 양희지만 피해 간 것 같았다. 아니, 커리어우먼 특유의 강한 기운만 남기고 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희지야...”

염무현은 환한 표정으로 양희지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무의식으로 뒤로 피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 조 비서, 일은 어떻게 됐지?”

양희지의 차가운 모습은 마치 낯선 이를 대하는 것 같았다. 조윤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부랴부랴 그녀를 향해 우산을 기울이며 말했다.

“염무현 씨랑 얘기하는 중이었어요. 대표님은 남도훈 씨랑 만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기까지 와도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아. 이쪽 일 먼저 해결할 정도의 여유는 있어.”

양희지는 이제야 염무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옷이 비에 흠뻑 젖은 것을 보고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금방 다시 차가워졌다.

“오랜만이야, 무현아. 너도 알다시피 난 성격 급한 사람이니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네가 우리 집안을 위해 한 일은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함께 한 시간도 소중히 간직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가 부부로서 같이 지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양희지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 마치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남편이 아닌 협력 상대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우리 이혼하자.”

이는 상의도 통보도 아닌, 그냥 명령이었다.

“연애할 때도, 결혼할 때도, 너희 집안사람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처남 대신 교도소에 가달라고 할 때도, 넌 가만히 있더니...”

염무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결을 파고들고 있었지만, 그는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지금 와서 좀 아닌 것 같다고?”

양희지는 약간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방 이성이 주도권을 되찾았다.

“지난 일을 다시 꺼낼 필요는 없지 않나?”

염무현은 양희지의 차가운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물었다.

“돈, 명예, 권력이 그렇게 중요해? 과거는 전부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응. 넌 아마 이해 못 하겠지. 하지만 확실히 말할게. 넌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 나도 이젠 너로 만족하지 않아.”

양희지의 얼굴에도 슬픈 표정이 드리워졌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계급적 차이가 존재하는 이상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도 독하게 마음먹고 이혼할 생각을 굳혔다.

염무현은 자신을 비웃는 듯 피식 웃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서 남도훈을 선택했어?”

양희지는 원래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어차피 우리 사이가 끝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차, 집, 돈 빼고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내가 뭐든 들어줄게.”

염무현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늦가을의 싸늘한 빗방울도 양희지의 말보다는 차갑지 못했다.

고민 끝에 그는 사인펜을 받아서 들더니 합의서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었다. 그리고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이제 됐지?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냥 오늘부로 다시는 만날 일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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