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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양희지는 드디어 원하던 이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상했던 것처럼 기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꿋꿋이 말했다.

“내 앞에서 자존심 챙길 필요 없어. 체면 따위가 뭐라고 위자료를 거절해. 지금 거절하면 무조건 후회할 거야. 그러니 조 비서한테 남겨두라고 얘기할게. 필요할 때 조 비서한테 연락해서 받아 가면 돼.”

양희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염무현은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양희지는 가슴이 비수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팠다.

“조 비서, 내가 과연 맞는 선택을 한 걸까?”

“그럼요. 걸림돌을 차내야 대표님의 꿈을 이룰 수 있죠. 대표님은 업계 최고의 사업가가 될 분이세요. 반대로 염무현은 그냥 한낱 전과자일 뿐이고요. 대표님과는 말 섞을 자격도 없어요. 그런 사람은 대표님께 방해만 될 거예요.”

조윤미의 말을 들은 다음에도 양희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쩐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조윤미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대표님, SJ그룹의 아가씨를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죠? 이건 아주 중요한 기회예요. ZW그룹과 SJ그룹은 오래전부터 협력 관계였으니까, 남도훈 씨만 붙잡을 수 있다면... 참, 대표님 이제 출발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데이트에 지각하면 안 되죠.”

양희지가 짧은 시간 동안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SJ그룹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SJ그룹이 자신에게 왜 이토록 잘해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YH그룹보다 잘난 회사는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어떤 프로젝트는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돈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양희지는 조윤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가족들에게 이혼 사실을 알렸다.

...

서해시, 히스턴 호텔의 스위트룸.

염무현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침묵에 잠겼다.

‘이혼이라니...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

염무현은 서해에 따로 친구나 친척이 없었다. 그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부모가 갑자기 실종된 뒤로부터는 줄곧 삼촌 손에 키워졌다.

삼촌 일가는 염무현을 친자식처럼 아껴줬다. 양희지와의 결혼도 그들이 손수 준비해 줬다. 그래서 더욱 이혼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염무현은 일단 전태웅이 준 카드를 가지고 히스턴 호텔에 왔다. 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떴다.

“여보세요? 저... 혹시 염무현 님 맞으신가요?”

전화 건너편에서는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안감도 섞여 있었다.

“전화 잘못 걸었어요.”

염무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전화번호를 아는 낯선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생사부와 같은 의술을 가졌다고 하여 염라대왕으로 불리는 염무현 님 아니세요?”

여자는 행여나 그가 전화를 끊어버릴까 봐 부리나케 말했다.

“저는 공혜리라고 해요. 전태웅 할아버지가 전화번호를 보내줘서 이렇게 연락드려요. 제 아버지 성함은 공규석이라고 하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3년 전에 신의님과 만난 적 있거든요. 물론 아버지한테서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니고요, 금고의 일기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렇게 신의님의 존재를 알게 되어서 할아버지께 부탁한 거고요.”

염무현은 당연히 공규석을 기억했다. 공규석은 그의 첫 환자이기 때문이다.

공규석은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그를 찾아왔었다. 다행히 치료 끝에 그는 무사히 완치되었다.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염무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래서요?”

“제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계세요. 그래서 염치를 불문하고 도움을 받고자 전화 드려요.”

공혜리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염무현의 태도는 한결같이 차가웠다.

“전태웅 씨한테서 내 번호를 받았으면 이것도 알겠네요. 나는 한 번 치료한 적 있는 환자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아요. 처음에 치료하지 못했다는 건 두 번째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니까요.”

아무리 염라대왕으로 불리는 염무현이라고 해도 피하는 환자가 있었다. 하나는 자연적인 노화로 인한 병에 걸린 환자고, 둘은 스스로 죽음을 산 환자고, 셋은 한 번 치료한 적 있는 환자다.

“3년 전의 병은 다행히 신의님 덕분에 완치했어요. 이번에는 재발이 아닌 다른 것 때문에 쓰러지셨어요. 병원에서는 중독 증세 같다고 하는데, 아무리 검사해 봐도 무엇에 중독됐는지 찾을 수 없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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