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예상 밖으로 순조로웠다.그녀는 단번에 철창을 딛고 순조롭게 담을 뛰어넘었다. 슈퍼맨처럼 뛰었지만 매우 처참한 몰골로 떨어졌다. 뒤통수가 돌에 부딪친 것 같았는데 손으로 만지니 피가 묻어났다.그녀는 많은 것을 고려할 사이가 없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뛰었고 사나운 개들도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쫓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잡으려는 병사들을 가로막으려는 것이었다.개들의 보호 하에 원경능은 순조롭게 뒷문으로 달아났다. 뒷문을 나선 원경능은 의연히 부리나케 달렸다. 심지어 자신이 이 재난에서 벗어난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그녀는 먼 곳으로 달아난 뒤 작은 모퉁이에 숨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숨을 가쁘게 헐떡였다. 그제야 자신의 심장이 거의 터질 것 같음을 발견하였다.머리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니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얼른 약상자를 꺼내 붕대에 소독약을 묻혀 머리를 싸맸다. 여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일단 초왕부로 돌아가야 했다. 조금 후 혜정후부의 병사들에게 잡힌다면 죽을 것이 분명했다.일어서서야 자신의 다리가 매우 떨리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두 생을 살았지만 이렇게 스릴이 넘치는 일은 처음 경험해보았다.전생의 그녀는 유명한 ‘엄친아’였는데 땡땡이를 친 적도 없었다. 그러니 망명을 한 적은 더욱이 없었다. 그녀는 오늘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나운 개들을......아니, 강아지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었다.주인은 공격했으니 아마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들을 구해줄 능력이 없었다.원경능은 매우 슬펐다. 짧은 꼬리에 귀 끝이 뾰족했던 검은 강아지는 친절하게도 그녀더러 달아나라고 귀띔까지 해주었다.혜정후는 난폭한 사람이었다. '검은 강아지가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리친 사람을 도와주었으니, 어찌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됐다, 먼저 초왕부에 돌아간 뒤에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지.'그녀는 이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야만 양심이 조금 덜 아플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골목을
우문호는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가 나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혜정후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으니 아마 부상을 입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누구의 피 냄새란 말인가? 그 못난이가 이미 불행한 일을 당했단 말인가?이러한 생각이 미치자 우문호는 조급해 났다."본왕은 오늘 경조부의 병사를 거느리고 왕비가 실종된 사건을 조사하러 왔다. 후야, 협력해주기를 바란다."혜정후는 예리한 눈빛을 서서히 거두면서 콧방귀를 뀌었다."왕야의 위엄이 대단하군. 사건을 조사하러 왔으니 협조하지 않을 수 없지. 다만 이 혜정후부에서 초왕비를 찾지 못한다면, 본후는 폐하께 상소문을 올릴 것이다."위협 어린 말투였다. 당연히 상소문을 올리겠다는 위협만이 아니었다. 우문호는 연달아 두 가지 명령을 내렸다."참군, 탕양, 너희들은 병사를 거느리고 혜정후부를 수색하거라. 암실과 비밀 통로가 있는지 명확하게 조사해야 한다. 구석마저 놓치지 말아야 하느니라.""서일, 너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뒷문을 수색하거라. 수색이 끝나기 전에는 누구도 혜정후부에서 나가지 못한다.""네!"병사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미 몇 조로 나뉘어 수색하러 들어갔다.혜정후와 우문호는 의연히 제자리에 앉아있었다. 다만 우문호는 속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올 때와 같은 확신이 없었다.그는 경조부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 혜정후는 협조를 할 것이지만 절대 이렇게 쉽사리 협조하지 않을 것이었다. 설마 원경능을 이미 처단한 것인가?혜정후는 우문호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자 싸늘하게 웃었다. 흉악한 얼굴에 눈빛은 음침했다."왕야, 만일 수색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지 기다려."우문호는 답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매우 어두웠다. 혜정후의 눈빛에서 그는 음모의 냄새를 맡았다. 서일이 함정에 빠졌을 수 있었다. 혜정후는 원경능을 납치하지 않았다. 아니면 혜정후가 원경능을 납치하였는데 저택으로 데리고 오지 않을 수 있었다.어느 가능성이라 하여도 그는 오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감정이 앞서 자세하게
우문호는 문을 열자 바로 소름이 쫙 돋았다. 흉터가 가득한 스무 몇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요란하게 그를 향해 짖고 있었다.경계와 분노로 인해 눈들이 시뻘겋게 물들었는데 우문호가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그를 물어뜯을 것 같았다.혜정후가 싸늘하게 말했다."왕야, 들어가기 무서운 건가?""왕야, 아니 됩니다!"탕양이 곧바로 저지했다. 비록 개를 키워보지는 못했으나, 이 개들의 상처를 보아하니 방금 전에 모진 매를 맞은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한창 독이 오를 때였다. 우문호는 정신을 가다듬고는 하늘로 솟아올랐다. 사나운 개들의 위로 지나가려 했으나 심복이 개들에게 손짓을 하자, 개들은 일시에 미친 듯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개들이 뛰어들고 가로 막으니 우문호는 안쪽에 있는 방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그는 몇 번 도약했는데 소매와 옷자락은 이미 뜯겨져 있었다. 만일 반응이 신속하지 못했다면 살점도 함께 뜯겼을 것이다."왕야, 조심하십시오!"감자기 탕양이 그에게 외쳤다.우문호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짧은 꼬리에 귀 끝이 뾰족한 개 한 마리가 공중에서 곡선을 그리며 뛰는 것이었다. 그 개는 마치 번개처럼 우문호의 등으로 돌격하였다.우문호는 재빨리 몸을 비켜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개의 발톱이 그의 뒷목덜미를 스치며 혈흔을 냈다. 탕양과 참군이 들어가려 했지만 혜정후가 막으면서 말했다."게 섰거라. 본후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이 정원에 들어가지 못한다."탕양은 혜정후 곁에 있는 심복이 부단히 손짓을 하고 휘파람을 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입으로 '후후후'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아마 공격을 하라는 명령인 것 같았다. 탕양은 크게 노했다."후야, 이는 악의적으로 사람을 해치는 겁니다.""악의적이라고? 본후가 왕야에게 들어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지 않았느냐? 왕야가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거고."혜정후가 냉담하게 말했다. 탕양은 이를 악물었다. 우문호의 상황은 매우 위험했다. 그의 경공으로 벗어날 수는 있으나 그렇게 한다면 안의 방을 수색할 수
초왕부 병사들이 달려갔다. 참군도 함께 뒤를 따라 원경능을 부축했다.정혜후는 뒤늦게 반응하고 나서 무의식적으로 심복을 바라 보았다. 심복도 대단히 당황한 모습이었다.원경능이 부축을 당하면서 다가오자 우문호는 그녀를 와락 안았다. 그리고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씌워주었다. 원경능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숨을 가쁘게 헐떡였다.그녀의 얼굴을 팅팅 부어 있었고 뒤통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문호의 몸에 지탱한 채 혜정후를 가리키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사람이, 저 사람이 저를 납치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문하면서 폐하께서 왕야를 경조부윤으로 임명하신 원인을 말하게 했습니다."우문호는 몸을 돌려 혜정후를 바라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새하얗게 질렸다."후야."우문호는 입 꼬리를 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말을 이미 준비하셨지? 입궁할 것인가? 아니면 본왕과 함께 경조부로 갈 것인가?"혜정후는 어두운 얼굴로 우문호를 빤히 바라 보다가 한참 뒤에 고개를 돌려 분부하였다."수부대인을 경조부로 청하거라."그의 눈은 원경능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돌아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혜정후 눈 속의 원한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심지어 우문호에 대한 원한보다도 더 깊었다. 그 깊은 독기를 우문호도 느낄 수 있었다.그는 말없이 원경능을 바라 보았다. 자신의 품에 웅크려 몸을 떨고 있었는데 마치 악몽을 꾼 것 같았다.그는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만졌다. 손에 피가 흠뻑 묻자 마음에 왠지 모를 짜증이 솟아났다. 그는 탕양에게 말했다."먼저 왕비를 초왕부로 모셔가거라."원경능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가련한 얼굴로 사나운 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왕야, 혜정후가 개들로 사람을 해쳤으니 개들을 모두 데리고 가야 합니다.""때려죽이거라!"우문호의 눈 속에서 독기가 번뜩였다."안됩니다!"원경능은 다급히 말했다."죽이면 안됩니다."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속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우문호가 이미 싸늘하게 말했다."그대가 말하지 않으면 모를 줄 아는가? 혜정후 곁의 하인들이 이미 말했어. 그대가 며칠 동안 고의적으로 혜정후 주위에서 어슬렁거렸다고 말이야. 혜정후가 남자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남장을 하고 유혹하려 하다니, 그대의 머리에 지푸라기라도 들어찬 거야? 아니면 귀신에게 홀린 거야? 혜정후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를 건드리다니? 살기 귀찮다면 무덤을 파고 절로 드러누우면 돼, 본왕을 귀찮게 하지 말고 말이야. 본왕은 그대를 죽이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원경능은 그의 노기등등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혜정후부에 있을 때 당신이 혜정후에게 한 말을 들었어요. 만일 제가 혜정후의 수중에서 죽는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해주겠다고. 왕야, 당신이 이렇게 절 사랑할 줄 몰랐어요."이는 아마 그가 입을 다물 수 있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역시나 우문호의 노기등등했던 얼굴은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입 꼬리에서 경련이 일어났는데 마치 중풍이 걸린 후의 후유증이 도진 것 같았다."제기랄, 무슨 사랑 같은 허튼 소리를 하는 거야?"당사자보다 제삼자가 더 잘 판단한다고 이에 대해 자세히 논쟁을 하려 하는데 곁에 있던 탕양이 담담하게 말했다."왕야, 부상을 입은 일을."우문호는 순간 깨닫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원경능의 말을 끄집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끌어 앉히고는 손을 높게 들었다. 그가 당장이라도 뺨을 갈기려 하자 원경능은 주저 없이 말했다."말할게요. 다 말할게요."우문호는 바로 그녀를 놓아주었다."오늘 그대와 소란을 피우지 않겠어. 만일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곤장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현재 원경능은 사악한 세력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앉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침상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더니 목청을 가다듬었다. 꾸물거리는 모습에 우문호는 그녀의 귀를 잡고 크게 외쳤다."말하라고!"원경능은 억울한 듯이 목을 움츠리고는
우문호는 퉁명스럽게 태의의 뒷모습에 소리를 질렀다."왕비는 언제 깨어나는 거야?""왕비께서는 피로하신데다 피를 많이 흘리셔서, 한동안 조용히 휴식을 취한 뒤 곧 깨어나실 겁니다."태의는 말을 마치고 재빨리 물러났다."역시 여인은 귀찮아!"우문호는 혼절해있는 원경능을 흘겨보았다."이정도 부상을 입고도 쓰러지다니, 부끄럽군."서일은 왕야가 조급 각박하다고 생각했다. 서일은 왕비의 정신상태가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혜정후부에서 맞은 뒤에 도주하였고, 다시 개구멍으로 돌아와서 그들을 난처한 국면에서 구해주었었다.보통여자들이라면 어찌 이런 패기와 용기가 있을까? 아마 혜정후부에 잡혀 들어갔을 때부터 울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어멈더러 시중을 들게 할까요? 왕야께서는 먼저 관아로 돌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서일이 물었다. 왕야가 계속 여기에 남아 왕비를 자극시킬 것 같아서였다."그럴 필요가 없다. 본왕이 여기를 지키고 있을 테니 네가 명을 전하거라. 죽이나 국 같은 것을 끓여 왕비가 깨어나면 마실 수 있게 하도록."우문호가 말했다."네!"서일은 답하면서 나갔다."탕양."우문호는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너는 관아로 돌아가 혜정후의 상처와 치료를 주시하거라. 그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부황께서 객관적으로 이 일을 아시기 전에는 혜정후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꼭 우리가 지정한 의원이어야 한다. 저수부가 찾은 의원은 안돼. 태의라 하여도 먼저 본왕께 묻고 들이거라.""왕야, 그렇다면 언제 입궁하셔서 폐하께 아뢸 생각이십니까?"탕양은 시기를 놓칠까 봐 두려웠다. 우문호가 말했다."급해할 필요가 없다.""그렇지만, 저수부가 먼저 입궁하여 사죄를 할까 두렵습니다. 그의 입에서 먼저 이 일이 토로된다면, 왜곡될 수 있습니다."우문호는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다. 부황께서는 일찍부터 저씨 가문의 행동이 선을 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다만 꼬투리가 없어 처단하지 못하니 골머리를 썩이셨
원경능은 움직이기 귀찮았다. 우문호를 깨우게 된다면 또 질책할 것이 뻔한지라 해석하기도 싫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꿈 안의 모든 것들을 회상해보았다. 꿈속은 작은 장식품마저도 자신을 애틋하게 만들었었다.왜 깨어나야만 하는 걸까?그녀는 손오공의 데이터를 전에도 몇 번이나 봤었다. 약물에는 확실히 얼마간 작용이 있었다. 뇌파도를 보지 않고 일상 속의 행동을 보더라도 총명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라면 몰래 달아나 차에 치어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문득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손오공이 차에 치여 죽은 뒤에도 혹시 타임슬립 하여 마침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참, 기상천외한 생각이었다.어떤 이의 머리는 매우 무거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우문호를 자세히 바라 보았다. 그가 잘 때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관찰할 수가 있었다. 그녀가 낯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문호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사람이었다. 몇 번 흘깃대도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여겼다.엄격히 말한다면 우문호는 확실히 잘생겼다.오관은 거의 완벽했는데 굳이 트집을 잡는다면 얼굴의 선이 너무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었다. 이러한 사람은 웃고 있어도 상대방에게 싸늘한 느낌을 주었다.특별히 눈을 뜨고 있을 때 굳이 싸늘한 눈빛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마치 지금처럼 번개와 같은 눈빛으로 훑으면서...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언제... 언제 깨어났어요?"우문호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대가 거리낌없이 본왕을 쳐다볼 때부터.""일어나세요. 당신이 제 팔뚝을 눌러서 저릿해요."원경능은 소심하게 그의 머리를 톡톡 쳤다. 우문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가 팔을 빼내게 하였다. 침상에 베개 하나밖에 없었는데 원경능이 베고 있었는지라 그는 그녀의 팔뚝을 베고 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팔뚝을 베고 잤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쪼잔하게 굴 필요가 있을까?"무엇을 보고 있었어?"우문호가 물었다."당신의 상처가 잘 아무는지 보았어요. 오해하지 마세요."원경능은 냉큼 해명했다. 우문호는 오해하지 않았다.
원경병은 경후부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에 그녀는 원경능을 안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감사해요, 큰 언니."이 부름에 원경능은 마음이 말랑해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고려를 거쳤지만 그래도 원경능이 말한 것처럼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왕야께서는 저택에 계시느냐?"원경능이 기씨 어멈에게 물었다."계십니다. 서재에 계십니다.""왕야를 찾으러 가겠어."원경능은 의복을 정돈하고 곧 문을 나섰다.저녁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정원에 저녁 노을이 물들자 뜻밖에도 부드럽고도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주방에서는 하얀 연기가 천천히 위로 피어 올랐다. 인간세상의 일상적인 숨결이 저택 곳곳에서 꽉 차있었다.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인지 환각인지 가늠할 수 없게 하였다.오늘 일로 하여 원경능은 자신의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살맛이 느껴졌다. 그저 단순하게 명을 이어가기 위함이 아니라.서재에 도착한 원경능은 시녀가 음식을 문어구로 가지고 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내가 하마!"시녀는 인사를 올렸다."네!"원경능은 음식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재 안에 촛불 두 개가 켜있었다. 촛불은 하느작거렸지만 빛이 매우 어두웠다.우문호는 책상 앞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땅에는 많은 폐지들이 버려져 있었다. 원경능은 그것들을 밟으며 다가갔다. 매 한 장의 종이 뒷면에도 모두 먹이 배여 들었는데 참을 ‘인(忍)’이 적혀있었다.발자국 소리를 들은 우문호는 고개를 들었다. 흔들리는 불빛에 그의 얼굴은 밝았다가도 어두워졌다. 눈꼬리와 눈썹은 모두 치켜 올려져 있었는데 엄숙하고도 암울해 보였다. 눈꼬리부터 귀 끝까지에 이르는 흉터가 싸늘한 기운을 더 불어넣었다."그대는 무엇 하러 왔는가?"우문호는 붓을 내려놓고 싸늘하게 말했다. 원경능은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다가가며 말했다."식사를 하셔요.""먹지 않을 거다. 가져가!"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인’이 적혀진 종이 위에 서서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했다. 그녀는 두 손을 앞에 포개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