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그때 웨이터 한 명이 서영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물었다.서영은 머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지만 시선이 웨이터에게 닿는 순간 몸이 점점 타오르기 시작했다.서영은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무의식적으로 웨이터에게 달라붙었다.“더워...”“옆에 바로 호텔이 있는데, 제가 안내할까요?”서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웨이터를 따라 클럽을 나섰다.그 시각, 2층 룸 안.“심 대표님, 명하신 대로 일 처리 마쳤습니다.”직원의 말에 지훈은 하연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제가 도울 일 더 있나요?”하연은 술이 담긴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입가에는 위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고마워요. 이제 남은 건 저들이 판 함정이 얼마나 깊은지 구경할 일만 남았네요.”지훈은 하연의 말에 몸을 흠칫 떨었다.‘역시 누구를 건드려도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그런데, 여기 술 참 괜찮네요.”그때 하연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지훈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하연 씨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네요. 나중에 새로운 술도 많이 들여올 테니 언제든 마시러 와요.”이윽고 상혁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아무튼 선배가 계산할 테니까, 제일 좋은 술은 항상 하연 씨를 위해 남겨둘게요.”“역시 장사꾼은 다리네요. 어디 가서 손해 안 보겠어요.”하연의 말에 상혁은 부채질하듯 말을 보탰다.“에이, 그래도 두 사람 결혼할 때 술은 제가 다 살게요.”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연은 목구멍이 화끈거려 저도 모르게 기침을 해댔다.옆에 있던 상혁이 지훈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지만 지훈은 대수롭지 않은 듯 속으로 구시렁거렸다.‘이거 진심인데.’“하연 씨, 말 나온 김에 날짜 잡는 건 어때요?”하연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말을 내뱉기도 전에 상혁이 얼른 나서 하연의 손을 잡았다.“하연아, 집에 바래다줄게.”설명할 기회를
적에 대한 인자함은 자신에 대한 잔인함이나 마찬가지다.이건 하민이 하연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나머지 일은 내게 맡겨. 넌 마음 놓고 패션쇼 준비에만 신경 써.”“네.”하연이 집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명문가 아가씨의 음란한 사생활’. ‘3P 현장 사진’ 등과 같은 검색어가 인기 검색어 순위를 차지했다.그 시각, 호텔 8888호실 문 앞에는 B시 유명 매체의 기자들이 모여 굳게 닫힌 문 쪽을 향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대고 있었다.“톱스타가 이 안에서 새로 사귄 남자 친구와 밤을 보냈다는데, 이따가 문 열리면 현장 제대로 찍어.”한 기자의 말에 다른 언론사 기자가 끼어들었다.“톱스타는 무슨, 그저 최근에 인기 좀 얻은 신인 여배우라던데?”“에이, 내가 제보받은 건 유명 여배우 불륜 현장이라던데?”“...”서로 다른 정보에 기자들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왜 모두 다른 제보를 받았는지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방 안 상황에 대한 호기심은 한 층 더 생긴 상태였다.심지어 최근 핫한 채널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들마저 카메라를 켠 채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여러분, 이 방 안에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지 다들 궁금하시죠? 잠시 뒤 밝혀질 예정이니 구독과 좋아요, 알람 설정 잊지 마세요.”그때, 누군가 먼저 건의했다.“뭐가 됐든 문 열어서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지 않겠어요?”그 의견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의했다.곧이어 누군가 호텔 직원을 불러왔고, 직원은 심각한 듯한 상황에 노크를 해보더니 기척이 들리지 않자 아예 카드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그 순간, 기자들은 벌 떼같이 방 안으로 달려들어 침대를 향해 셔터 세례를 날렸다.어수선한 방안 상태만 봐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하지만 생각지 못한 건, 이불 위로 세 개의 머리가 나와 있다는 거였다. 여자 두 명에 남자 한 명이 나란히 누워 있는 광경을 본 순간 사람들은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헉! 이게 무슨 상황이지?”“대박, 세 명이었어?
그 순간, 너무 흥분한 나머지 서영을 덮고 있던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대박, 명문가 아가씨들은 모두 이렇게 화끈하게 노나?”“뭘 멍때리고 있어? 얼른 찍어. 이 사지만 건지면 앞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HT그룹도 이젠 끝났네.”“...”사람들의 대화에 서영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이렇게 된 거야?’어수선한 광경에 화가 치민 서영은 그대로 쓰러졌다.그 사이 완선은 도망치려 했지만 도저히 옷을 찾을 수 없는 데다 현재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라 도망치지 못한 채 번쩍거리는 카메라 불빛을 견뎌야만 했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완선은 망했다는 걸 직감했다.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카메라를 들이밀며 생방송을 하는 인플루언서 때문에 방 안 광경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퍼져 두 사람은 순간 사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헐, 저 사람 정말 한씨 가문 아가씨 맞아? 몸매 진짜 끝내주네.][여자 둘에 남자 하나? 너무 화끈한 거 아니야? 이런 걸 생방송으로 볼 수 있다니 웬만한 야동 못지않네.][한씨 가문 아가씨와 하룻밤 보내는 건 대체 얼마지? 나도 한번 체험해 보고 싶네.][윗댓님, 잘못 말한 거 아니에요? 한씨 가문 아가씨랑 자면 얼마 받느냐가 맞겠죠. 저 가운데 남자 그쪽 업계 사람이거든요. 어찌 보면 본업 한 거나 다름없죠.][와! 한씨 가문 아가씨도 성매매를 하다니.]...인터넷에는 여러 가지 말이 떠돌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 듣기 거북할 정도의 희롱 섞인 말과 악플들뿐이라는 거였다.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던 서준은 동후의 연락을 받은 순간 얼굴이 잿빛이 되어 버럭 화를 냈다.“뭐라고? 대체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전화 건너편에 있는 동후도 무척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사진이 너무 빨리 퍼져 회사 홍보팀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그 말에 서준은 끝내 폭발했다.“5분 줄 테니까 모든 기사 당장 내려. 당장!”동
“하연, 하연! 너 기사 봤어?”전화를 받기 바쁘게 서여은의 흥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봤어. 정말 대단하던데!”하연은 서영과 완선이 찍힌 사진을 보며 기자의 촬영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어쩜 어느 것 하나 버릴 컷이 없이 이렇게 잘 나왔는지. 사진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다.하연의 대답에 여은은 싱긋 웃었다.“내가 이미 손써 뒀으니까 앞으로 사흘 동안 기사가 내려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다니 이 기회에 제대로 유명세를 누리게 해줘야지.”‘여은의 일 처리 능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매번 화끈하고 질질 끄는 법이 없어.’이렇게 좋은 친구를 뒀다는 것이 하연은 내심 든든했다.“고마워. B시에는 언제 돌아올 거야?”“여기 업무 끝나는 대로. 아마 이번 달 말쯤에는 들어갈 것 같아. 도착하는대로 너랑 예나한테 연락할게.”“그래. 우리가 널 위한 환영 파티 제대로 준비하게.”그 뒤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서영의 성 추문으로 HT그룹 주가는 여전히 하락하여 불과 반나절 만에 몇천억이라는 금액이 사라져 버렸다.HT그룹 맨 위층 사무실 안에서 동후는 최신 소식을 보고하고 있었다.“대표님, B시 모든 언론사에 연락하여 기사 철회할 거라는 확답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파급력이 너무 커서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게시물은 말끔히 지우지 못했어요. 게다가 누군가 손을 썼는지 인기 검색어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현재 적지 않은 기자들이 대표님을 인터뷰하겠다며 회사 건물 아래에 모여 있어요.”동후는 말하면 말할수록 목소리를 점점 줄였다.서준의 머리에는 여전히 거즈가 감겨 있었지만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이건 HT그룹을 겨냥하는 게 틀림없다.이제껏 비즈니스 업계에서 구른 짬이 있기에 서준은 단번에 상대의 수법을 눈치채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봤어?”동후는 그 말에 서준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 어물
“엄마, 나 이제 어떡해? 나 앞으로 어떡해?”서영은 울먹이며 이 한마디만 반복했다.이수애는 이런 딸이 가여웠는지 연신 위로를 건넸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틀 뒤에 바로 출국해. 해외에서 몇 년 있다가 소문이 잠잠해져 사람들이 잊을 때쯤 다시 돌아와.”“흑흑흑, 엄마, 나 해외 가기 싫어. 안 갈래.”“현재 상황으로 출국 말고 답이 없어. 그래도 대학은 이미 자퇴했으니 오빠더러 해외 학교 알아보라고 할게.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돌아와.”이수애는 한숨을 내쉬며 눈시울을 붉혔다.이미 너무 울어 두 눈이 퉁퉁 부었지만 서영은 여전히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멈칫하더니 이내 울음을 멈추며 말했다.“엄마, 이거 최하연 짓이야! 틀림없어! 최하연이 나 이렇게 만들었어!”“뭐? 최하연이?”이수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그동안 너무 속상해 우는 데만 정신이 팔려 서영은 일이 왜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호텔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최하연에서 저와 구완선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렸다.‘이게 최하연 짓이 아니면 누구 짓인데?’“엄마, 이거 최하연 짓이야. 날 디자인 업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하고 학교도 자퇴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내 명예까지 더럽히려 한 거라고.”서영은 생각할수록 속상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하지만 이수애는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최하연? 최하연이 왜 이런 짓을 하는데? 아하, 널 망치면 우리 한씨 가문도 HT그룹도 망가지니까 그런 거네. 안 되겠어, 내 당장 그년을 찢어 죽일 거야!”이수애는 당장이라도 하연을 죽일 듯 벌떡 일어났다.하지만 침묵을 유지하던 강영숙이 버럭 소리쳤다.“그만해! 아직도 창피하지 않아?”그 말에 이수애는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어머님, 어머님도 방금 들었잖아요. 최하연이 우리 서영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어쩜 아직도 최하연 편을 드세요? 최하연은 이제 어머
“할머니, 저도 알아요. 이 일은 제가 철저하게 조사할 거예요.”강영숙은 이 일을 서준에게 맡긴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그 제야 서준은 서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눈물범벅이 된 서영의 모습에도 서준은 마음 약해지지 않았다.“말해. 대체 어떻게 된 거야?”그 말에 서영은 단번에 울음을 멈추고 숨소리를 죽였다.서영은 서준한테 사실대로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연을 건드리지 말라는 서준의 경고도 무시한 채 일을 벌이고 오히려 이런 꼴을 당했으니 말이다.이 순간 서영은 서준을 마주할 면목도, 한씨 집안 식구를 마주할 면목도 없었다.심지어 사실대로 말하면 집에서조차 발붙이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엄마...”서영은 결국 이수애를 불렀다.하지만 이수애도 서준의 눈치를 보는 신세인지라 서영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한서영, 사실대로 말해.”서준은 이미 인내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그걸 알기에 서영은 몸을 흠칫 떨었다.“오빠, 무서워. 그러지 마. 나도 피해자야. 어떻게 친오빠라는 사람이 동생 편도 들어주지 않아?”“한서영, 그만해.”서준은 여전히 분노를 꾹 눌러 참았다. 하지만 주먹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손등에 핏줄이 튀어 올랐고, 안색 역시 어두웠다.“네가 최하연 건드렸어? 내 경고 잊은 거야?”이토록 무서운 서준의 모습은 처음 보는지라 서영은 몸을 흠칫 떨며 끝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아니야, 오빠.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그 약은 구완선이 구해온 거야. 최하연 망가뜨리자고 계획한 것도 구완선이고. 나도 일이 이렇게 됐는지 정말 모른다고.”서영은 말할수록 서럽고 억울했다.이 일에 크게 관여하지도 않았는데 가장 비참한 꼴을 당했다는 게 분했다.“한마디만 해. 너도 끼어들었어?”서영은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려 했지만 서준의 카리스마에 눌려 겁에 질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걸 본 서준은 콧방귀를 뀌었다.“들었죠? 얘가 먼저 최하연 건드렸다잖아요. 최하연을 망가뜨리려고 하다가 결국 본인이 당한 거고.”서준은 또박또박
서영의 찌라시가 온라인상에서 일파만파 퍼지는 바람에 그 소문을 잠재우느라 서준은 다음 분기에 출시하려던 신제품을 미리 선보였고, 그와 동시에 나노 로봇에 관한 연구 성과도 함께 공유했다.그 효과는 아주 대단했다.서준의 빠른 대처 덕에 HT그룹 신제품에 관한 기사가 서영의 찌라시를 바로 덮어 버렸고, 바닥을 치고 있던 HT그룹 주식 역시 점점 상승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쯧, 역시 한서준은 한서준이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니까. 어쩜 이런 방법을 생각할 수가 있지?”예나가 감탄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은이 이내 대답했다.“자본가들이 흔히 하는 수법이지 뭐. 그런데 한서영이 해외로 쫓겨났대. 아마 당분간은 이런 일 벌이지 못할걸.”“하, 정말 어쩜 그렇게 비겁한 생각을 한대? 솔직히 한서영이 지금껏 한 짓만 생각하면 한서준이 너무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해.”“그래도 친동생이니 너무 모질게 굴지는 못하겠지.”두 사람은 한마디씩 주고받다가 동시에 하연을 바라봤다.이윽고 여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한서영은 이미 완전히 매장당했고. 구완선 쪽도 내가 미리 손써 뒀어. 아마 B시에서 일자리는 영원히 구하지 못할걸.”하연은 앞에 놓인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사람이라면 누구나 본인이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 그러니 두 글자로 요약하자면 그냥 쌤통인 거야.”그 말에 예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주 명언이네 명언!”그때 여은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참, 패션쇼 준비는 어떻게 돼 가?”“디자인은 초보적으로 끝났어. 이제 생산 시작하면 아마 월말쯤에 완성될 거야.”이렇게 큰 패션쇼는 하연도 처음 맡아보는지라 세부 사항은 모두 태훈이 도와주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껏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다.“와, 우리 하연이 대단하네. 자, 이리 와, 이 언니가 뽀뽀해 줄게.”당장이라도 하연을 덮칠 듯 얼굴을 갖다 대던 예나는 시선 속에 나타난 실루엣을 본 순간 싱긋 눈웃음을 쳤다.“저기 봐, 누가 왔나.”이윽고 그
하연은 흥분한 듯 말했다.이것 역시 상혁이 이곳에 온 목적이기도 하다.“이 한복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오늘 저녁 자선 경매 활동에 경매품으로 나올 거래.”그 말에 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뭘 멍하니 있어? 얼마가 됐든 무조건 사야지.”여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그럼, 이 한복이 패션쇼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무조건 손에 넣어야지.”한복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던 하연은 결심이 선 듯 천천히 눈을 들어 상혁을 바라봤다.“상혁 오빠, 이렇게 해요.”“그래, 오늘 저녁 내가 같이 가줄게.”예나와 여은은 그 말에 다급히 끼어들었다.“그럼 우리도 갈래요.”...저녁 7시가 되자, 이번 자선 경매가 열리는 B시의 제일 경매장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번 자선 경매 활동에 참석하는 사람은 모두 B시에서 알아주는 유명 인사들이다.같은 계열 색상의 커플룩을 입고 나타난 예나와 여은은 경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저 사람 B시 디자이너 브랜드숍의 장 사장아니야? 장 사장이 이런 곳에 다 오다니.”“그 옆에 사람도 낯이 익은데. 아! 생각났어. 보그 패션 잡지 편집장이잖아.”“두 사람 친구 사이였구나. 진짜 부럽다.”“우리도 가서 인사나 할까?”“...”적지 않은 사람은 명성이 자자한 두 사람과 친해지려는 목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고, 말재주가 뛰어난 데다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 덕에 예나와 여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명함을 받게 되었다.한편, 하연이 상혁의 팔짱을 낀 채 경매장에 나타난 순간,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었다.그도 그럴 게, 오늘의 하연은 너무 아름다웠다.하늘거리는 드레스는 하연의 단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냈고, 역시 명문가 아가씨가 아니랄까 봐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우라를 내뿜었다.게다가 하연 옆에 선 상혁마저 워낙 뛰어나니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 모두 하연과 서준이 결혼했던 사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