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은 흥분한 듯 말했다.이것 역시 상혁이 이곳에 온 목적이기도 하다.“이 한복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오늘 저녁 자선 경매 활동에 경매품으로 나올 거래.”그 말에 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뭘 멍하니 있어? 얼마가 됐든 무조건 사야지.”여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그럼, 이 한복이 패션쇼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무조건 손에 넣어야지.”한복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던 하연은 결심이 선 듯 천천히 눈을 들어 상혁을 바라봤다.“상혁 오빠, 이렇게 해요.”“그래, 오늘 저녁 내가 같이 가줄게.”예나와 여은은 그 말에 다급히 끼어들었다.“그럼 우리도 갈래요.”...저녁 7시가 되자, 이번 자선 경매가 열리는 B시의 제일 경매장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번 자선 경매 활동에 참석하는 사람은 모두 B시에서 알아주는 유명 인사들이다.같은 계열 색상의 커플룩을 입고 나타난 예나와 여은은 경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저 사람 B시 디자이너 브랜드숍의 장 사장아니야? 장 사장이 이런 곳에 다 오다니.”“그 옆에 사람도 낯이 익은데. 아! 생각났어. 보그 패션 잡지 편집장이잖아.”“두 사람 친구 사이였구나. 진짜 부럽다.”“우리도 가서 인사나 할까?”“...”적지 않은 사람은 명성이 자자한 두 사람과 친해지려는 목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고, 말재주가 뛰어난 데다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 덕에 예나와 여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명함을 받게 되었다.한편, 하연이 상혁의 팔짱을 낀 채 경매장에 나타난 순간,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었다.그도 그럴 게, 오늘의 하연은 너무 아름다웠다.하늘거리는 드레스는 하연의 단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냈고, 역시 명문가 아가씨가 아니랄까 봐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우라를 내뿜었다.게다가 하연 옆에 선 상혁마저 워낙 뛰어나니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 모두 하연과 서준이 결혼했던 사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순
이미 많은 상황을 겪어 본 터라 제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는 상혁의 말에도 설아는 화내지 않았다.“이해해요. 사무가 다망한 분이니 잊을 수 있죠. 저는 한설아라고 해요. 전에 FL그룹 창립 파티에서 뵌 적이 있는데.”상대의 설명에도 상혁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아, 죄송해요. 기억나지 않네요.”거절 의사가 다분한 직설적인 말에 설아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어색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옆에서 지켜보던 하연이 오히려 참지 못할 지경이었다. 솔직히 상혁이 이런 미녀의 대시에도 꿈쩍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때, 검은색 수제 양복 차림의 서준이 경매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서준은 그동안 HT그룹 평판이 바닥에 떨어진 터라 다시 명성을 되찾을 목적으로 이번 자선 경매 활동에 참석한 거다.이번 기회에 기부도 하고 HT그룹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시키려고.“한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주최자는 서준에게도 공손하고 깍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은 HT그룹 명예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서준은 여전히 B시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고, 한씨 가문 역시 B시에서는 손꼽히는 가문이기에 일개 주최자가 감히 무례를 범할 수 없었다.때문에 주최자는 서준을 맨 앞줄로 안내했다. 그것도 마침 하연과 상혁의 옆자리에.하연은 본 순간 서준의 시선은 한 시도 하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상혁의 옆에 꼭 붙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안색과 눈빛이 이내 어두워지더니 곧장 제 자리에 앉았다.“우선 오늘 저희 경매장을 찾아 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 밤 벌어들인 수입은 전액 적십자사에 기부되어 독거노인과 고아를 돕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경매사의 말이 끝나자 현장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이어서 바로 오늘 밤의 첫 번째 경매품을 소개하겠습니다. JY그룹에서 기부해 준 팔찌, 2000만 원부터 호가 진행하겠습니다.”“2200만.”“2600만.”“3000만.”“...”잇따른 호가에 팔찌의 가격은
“기껏해야 1억짜리 시계가 4억까지 불리다니, 정말 놀랍네.”“호가한 사람이 누군지 봐봐. 최하연이잖아. 돈이 넘쳐날 정도로 많은 최씨 집안 아가씨잖아.”“하긴, 4억이 뭐 돈으로 보이겠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설아는 콧방귀를 뀌며 다시 번호판을 들었다.“6억!”경매사는 흥분한 듯 분위기를 고조로 이끌었다.“자, 6억 나왔습니다!”그때 하연이 다시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10억!”“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시계 하나에 10억? 이게 말이 돼?”“아무리 돈이 넘쳐 흘러도 그렇지.”“너희가 뭘 알아? 이건 어디까지나 자선 경매이니 기부하고 싶은 만큼 가격 부르는 거겠지.”“...”그때 상혁이 이해되지 않는 듯 하연에게 속삭였다.“이제 그만해.”하연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격은 손목시계의 원래 가격을 훨씬 초월하는 가격이었다.하지만 하연은 상혁을 위로하듯 말했다.“괜찮아요.”하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설아가 다시 가격을 불렀다.“12억!”심지어 가격을 부르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마치 12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16억!”하연이 곧바로 따라 가격을 덧붙이자 설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발을 굴렀다.“20억!”이 가격은 단연 최고가라고 말할 수 있었다.심지어 앞서 나온 경매품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최고가이기도 하기에 현장 분위기는 단번에 끓어올랐다.“한설아 마친 거 아니야? 20억을 주고 시계 하나를 산다고?”“뭐 돈이 넘쳐흘러 쓸 곳이 없나 보지.”“설마 눈치 못 챘어? 한설아와 최하연 경쟁하는 거 같지 않아?”“부자들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우린 그냥 구경이나 하자고.”“...”하지만 이번에 설아는 가격을 부르자마자 하연이 뒤따르기를 기다렸다.20억은 이미 설아의 예산을 초과한 금액이라 하연이 가격을 더 부르면 포기할 생각이었다.“네, 20억 나왔습니다!”경매사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자, 다음으로 소개할 경매품은 청자를 주제로 한 조선시대 한복입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1억부터 호가 시작하겠습니다.”“1억 1천만!”“1억 2천만!”“1억 4천만!”“...”얼마 지나지 않아 한복의 가격은 단번에 2억으로 치솟았다.그때 하연이 때마침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3억!”주위 사람들은 하연이 경매에 참가하자 하나 둘 번호판을 내려놓으며 자진 포기했다.하지만 그때, 서준이 갑자기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3억 6천만!”이건 오늘 밤 서준이 처음으로 호가한 가격이었지만,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한복 한 벌을 두고 하연과 경쟁해야 했다.“헐, 이건 또 무슨 명장면이래? 한 대표님과 최하연이 붙었는데?”“전처와 전남편의 싸움이라, 과연 누가 이길까?”“갑자기 기대되는데?”“...”서준이 갑자기 경매에 뛰어들 줄 몰랐던 하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로 뒤따랐다.“4억 4천만!”그러자 서준 역시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6억!”가격을 외치는 서준의 모습은 마치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오늘 서준이 경매에 참석한 목적은 사실 이 한복 때문이다.그도 그럴 게, 이 한복은 한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것이니까.심지어 강영숙이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왔던 가보인데, HT그룹 창립 초기 회사 상황이 어려워 경매에 내놓았었다.나중에 HT그룹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서준은 줄곧 이 한복을 다시 사들이려고 했으니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면서 비매품으로 전해진 터라 어찌할 수 없었다.그런데 오늘 그 한복이 경매로 나왔으니 서준은 반드시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8억!”물론 하연 역시 이 한복이 필요했다.이번 패션쇼에 이 한복을 선보일 수 있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거니까.“12억!”엎치락뒤치락 가격을 부르는 두 사람은 그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몇억, 몇십억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16억!”“20억!”“28억!”“...”그러다 가격이 40억까지 치솟았을 때, 서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하연을
하연은 설아를 가볍게 무시한 채 제 은행 카드를 꺼내 들었다.하지만 그 카드를 직원에게 건네주려 할 때, 뒤에 있던 상혁이 가로막았다.“이거로 계산해 줘요.”“아니에요. 제 거로 계산하면 돼요.”하연이 다급히 거절하자 상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사양할 거 없어.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앞으로 사업이 번창하고 이번 패션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 단번에 유명해져.”“네?”하연은 놀란 듯 상혁을 보며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상혁은 하연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얼른 제 카드를 건넸다.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40억이라는 가격으로 하연은 한복을 손에 넣었다.‘상혁 오빠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야?’하연이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직원은 어느새 한복을 포장하여 하연에게 건넸다.방금 무대에 있는 걸 볼 때보다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니 더욱 놀라웠다.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간 바느질과 고풍스러운 디자인만 봐도 예술품이 따로 없었다.이토록 예쁜 한복을 하연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상혁 오빠, 고마워요.”상혁은 손을 내밀어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꿀이 뚝뚝 떨어지는 상혁의 눈빛에 서준은 화가 치밀었다.“최하연!”곧이어 서준은 성큼성큼 걸어와 두 사람 앞에 막아서더니 하연의 손에 들린 한복을 빤히 바라봤다.서준을 본 순간, 미소를 띠고 있던 하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무슨 일이야?”이렇듯 소원한 태도는 상혁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그 순간 서준은 저도 모르게 질투심이 불타올랐다.“40억짜리 선물을 그렇게 덜컥 받는다고? 조심성 너무 없는 거 아니야?하연은 어이없어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게 한 대표님이랑 무슨 상관이지?”“남자가 여자를 위해 돈 쓰는 건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뜻이야. 속지 않도록 조심해.”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상혁이 하연의 앞을 막아서며 바로 맞받아쳤다.“그게 무슨 뜻이죠?”“내가 무슨 뜻인지는 부상혁 대표님도 잘 아실
서준은 애써 감정을 억제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화제를 돌렸다.“이 한복 좋은 거야.”하연은 서준이 한복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눈치채고 되물었다.“이 한복에 관심 있어?”하지만 서준은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은 채 가볍게 대답했다.“좋은 건 모두가 좋아하는 거 아니겠어?”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하연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포기해줘서 고마워.”이윽고 말을 마친 뒤 경매장을 떠나려 했다.서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멀어지는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런데, 다음 순간.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설아가 뻔뻔스럽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한 대표님, 혹시 6억만 빌려줄 수 있나요?”서준은 고개를 돌려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보는 설아를 바라보더니 비아냥거리듯 말했다.“내가 누구한테 돈 빌려주는 습관이 없는지라.”명백한 거절에 설아는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결국 20이라는 거금을 내지 못한 설아는 경비원에게 쫓겨났다.한편, 경매장을 나선 서준은 기분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 운전석에 앉아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그렇게 담배꽁초가 쌓여감에 따라 차 안도 점점 담배 연기와 냄새로 가득 찼다.바닥에 널린 담배꽁초를 한참 바라보던 서준은 끝내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동후에게 전화했다.“최하연이 DS그룹에서 책임진 프로젝트 뭐가 있는지 모두 알아 와. 최근에 뭘 하고 있는지까지.”“네, 대표님.”동후는 서준의 명에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그때 서준이 말을 보탰다.“한 시간 내로 알아 와.”그 말을 마친 서준은 전화를 끊고 시동을 걸더니 곧장 경매장 주위를 벗어났다.역시나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동후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하연이 최근 책임진 모든 프로젝트를 알아내서 서준의 핸드폰으로 전송했다.최근의 프로젝트와 일부 F국의 프로젝트를 확인하던 서준은 문뜩 나운석이라는 세 글자에 시선을 멈추었다. 서준은 솔직히 운석이 DS그룹에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중요한 프로젝트
그러다 패션쇼 전날 리허설하는 와중에 하연은 예나의 입에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하연, 너 이번 행사장 HT에서 협찬해 준 거 알고 있어? 한서준도 내일 패션쇼에 참석할 거래, 심지어 오프닝 연설까지 한다더라.”하연은 그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HT에서 언제부터 공익 활동을 시작했대?”예나가 그 물음에 곧바로 정곡을 찔렀다.“딱 봐도 답 나오잖아. 한서영 때문에 바닥 친 기업 이미지 되돌리려고 용쓰는 거지 뭐.”“아.”하연은 대충 대답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도 그럴 게, 하연은 메인 디자이너로서 내일의 패션쇼를 순조롭게 끝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있잖아. 혹시 한서준이 네가 이번 패션쇼 메인 디자이너인 걸 알고 일부러 행사장 협찬해 준 건 아니겠지?”그때 예나가 무의식중에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너무 간 것 같은데?”하지만 하연은 곧바로 부인했다. 한서준이 어떤 사람인지는 하연이 가장 잘 안다.이제껏 하연의 편 한 번 들어준 적 없는 사람이 이제 와서 하연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더군다나...“한서준의 일은 이젠 나와는 상관없어. 우린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접점이 없을 거야.”“문제는 상대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지.”“한서준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한서준 일이야.”‘난 내 일만 상관하면 그만이야.’...그 시각, DS그룹.하연과의 내기 때문에 호현욱은 최근 하연의 동향을 살피느라 바삐 보내고 있다.“이사님, 최근 회사의 큰 프로젝트는 모두 나운석이 도맡아 하고 있고 작은 프로젝트는 정태훈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 사장님은 패션쇼 때문에 좀처럼 회사 밖을 나서는 일이 없고요. 하지만 이번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몇억이라는 실적을 올렸더라고요.”“듣기로는 패션쇼에서 선보일 모든 의상을 회사의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답니다. 내일 패션쇼가 끝나면 아마 더 많은 주문을 받을 거고요. 그렇다면 적어도 패션 업계 쪽만 해도 5배가량의 실적을 내게 될 겁니다.”성진호의 보고에
B시의 패션쇼는 매우 성대하게 열렸다.현장에는 수많은 국제 패션업계 디자이너들이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업계의 유명 인사, 심지어는 국내외 유명 언론사 기자들까지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모든 사람이 이번 패션쇼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듯했다.하연은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하여 무대 뒤에서 패션쇼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예나도 하연을 도와 메이크업 상태를 확인하는가 하면 모든 모델의 의상을 체크했다.매우 중요한 패션쇼인 만큼 모든 세부 사항에 주의해야 하고, 조그마한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하연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옆에서 바빠 움직이는 하연을 본 예나가 다급히 물 한 컵을 건넸다.“물 좀 마시면서 해.”하연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얼른 컵을 받아 들었다.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초대 손님들도 어느 정도 다 모인 것 같아. 패션쇼까지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조금이라도 쉬어.”“응.”예나의 말에 하연이 가볍게 대답했다.그때, 호주머니에 있던 하연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발신번호를 확인하니 한동안 연락하지 못한 셋째 오빠 최하성이었다.‘오늘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하지?’하연은 조금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하연, 왜 이렇게 늦게 받아?”하연은 스크린에 나타난 하성의 얼굴을 보며 농담 섞인 말투로 물었다.“그러는 오빠야말로 오늘 웬일로 저한테 전화할 생각을 다 했대요?”“에이, 나야 우리 동생 항상 생각하지. 네가 요즘 바쁜 것 같아 방해하지 않은 것뿐이야.”“아.”하연은 그 대답이 못마땅한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때 하성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오늘 패션쇼 연다면서? 축하해.”하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우리 사이에 뭘. 내가 선물 준비했는데, 이제 곧 도착할 거야. 받으면 잊지 말고 말해줘.”하연은 그 말에 바로 호기심이 발동했다.“뭔데요?”하지만 하성은 뜸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