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말에도 하연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나를 볼 게 아니라 민헤경을 봐야지. 민혜경이 아직 감옥에 있는데, 시간 나면 자주 가서 봐.”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서준은 낯빛이 어두워졌다.“민혜경 얘기는 하지 마!”서준의 그런 반응에 하연은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연인도 이젠 싫어졌나 봐?”서준은 애써 화를 내리눌렀다.“최하연, 나랑 민혜경 그런 사이 아니야. 왜 내 말을 믿지 않아?”“그만! 오늘 같은 날에 과거사 들먹이고 싶지 않아. 재수 없으면 어떡해.”하연은 서준과 혜경이 무슨 사이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든 손톱만큼도 관심 없었다.“난 이만 가봐야 하니 편할 대로 해.”그 말을 끝으로 하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하지만 하연이 무대 뒤편에 도착했을 때,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하연, 왜 이제야 왔어? 큰일 났어.”예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저를 잡아당기자 하연이 놀란 듯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인데?”“옷이 망가졌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연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순간 가위에 갈기갈기 찢긴 메인 의상 몇 벌을 발견했다.원래 모습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의상들을 보면서 하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최 사장님, 저희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의상이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이제 어떡해? 패션쇼가 시작하려면 반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하필 모두 메인 의상들만 문제가 생겼으니, 오늘 패션쇼 망했네.”“...”모델들은 서로서로 귓속말로 소곤거리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예나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대체 어떤 개X식이 이랬어? 나한테 잡히기만 해 봐, 내가 그 자식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그때 무대 담당자가 재촉했다.“최 사장님, 이제 준비해 주세요. 모델분들도 나와 주시고요.”하연은 눈앞에 닥친 상황에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아직 얼마나 남았어?”그 물음에 예나
“어떡해? 이제 5분밖에 안 남았어. 그사이에 끝낼 수 있어?”예나는 무대 뒤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면서 다급한 말투로 물었다.하연의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옷은 여전히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다.“아니면 주최 측에 시간 좀 연기해달라고 부탁할까?”“안돼. 이번 쇼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잖아. 시간을 끌면 파장이 엄청 날 거야.”“그럼 어떡해?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아.”예나의 말에 하연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심지어 바느질을 시작한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멈추지 않더니 문득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모를까.”“그런데 이 시간에 합당한 이유를 어떻게 찾아?”이에 스태프들도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 할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정 안 되면 첫 번째 모델들 한 바퀴 더 워킹하라면 어떨까요? 그러면 적어도 10분 정도는 벌 수 있을 거예요.”“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같은 모델이 한 번 더 워킹하면 문제가 생겼다는 걸 금방 알아챌걸요.”“이번 쇼에 참석한 사람이 많아 일이 커지면 수습하기 힘들 거예요.”“...”사람들은 각자 한마디씩 제 의견을 냈다.그 시각, 하연의 이마에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하지만 하연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옷 수선에 몰두했다.어느덧 시간이 되자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개막사를 시작했다.“시작했나 봐. 이제 곧 HT그룹 대표 연설이 있을 거야. 1조 모델들 준비시켜야 할 것 같아.”예나는 걱정스레 말하면서 얼른 준비하기 시작했다.당장 뾰족한 수가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모델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자 예나는 다급하게 물었다.“하연아, 얼마나 더 필요해?”“15분 정도.”예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델들에게 분부했다.“여러분, 이따 워킹할 때 속도 좀만 늦춰줘요. 결과가 어떻든 우리 함께 노력하여 시간 조금이라도 더 벌어 보자고요.”“알았어요, 예나 언니. 그렇게 할게요
하연도 그제야 안도했다.“아, 다행이다.”곧이어 하연은 눈을 들어 무대 우의 서준을 바라봤다. 이 시각 서준은 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리고 서준의 멘트를 듣는 순간 하연은 서준의 의도를 파악했다.무려 15분이나 지속된 서준의 연설은 계획한 시간을 훨씬 초과했지만 객석에 앉은 기자들은 지루하거나 따분해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서준이 얘기한 HT그룹의 비전은 B시에 거주한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니까.모든 사람은 귀를 쫑긋 세우고 서준의 연설에 집중했다.“이사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한 대표님 연설이 왜 이렇게 길죠?”그때 진호가 호현욱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호현욱은 서준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고작 십몇 분 동안 결과가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혹시 따로 준비한 거 또 있어?”호현욱의 물음에 진호가 이내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쇼를 망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뒀으니까.”아니나 다를까, 서준의 연설이 끝나고 1조 모델들이 무대에 오르기 바쁘게 현장 스태프가 헐레벌떡 하연에게 달려왔다.“최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청자 한복을 입기로 했던 모델분이 갑자기 발을 다쳤어요.”하연은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섰다.“무슨 일이죠? 모델분은 지금 어디 있어요?”하연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 뒤에 있는 라커룸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청자 한복을 입기로 한 모델이 통증 때문에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게다가 모델의 발등 위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얼른 구급상자 가져와요.”하연의 부탁에 현장 스태프가 구급상자를 들고 나타났다.“대체 무슨 일이에요? 어쩌다 다쳤어요?”“저도 모르겠어요. 하이힐을 신었는데 안에 칼날이 있었어요. 이제 곧 제 차례인데 발이 이렇게 돼서 어떡해요?”하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모든 상황을 비추어 보면 분명 누군가 일부러 이런 일을 벌인 게 틀림없었다. 하연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혹시 알아요? 세계 무대로 나갈지.”“...”주위 사람들이 수군대며 이번 패션쇼에 대한 호평을 늘어놓을수록 호현욱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옆에 앉아 있던 진호 역시 연신 식은땀을 닦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사님, 메인 의상이 망가졌으니 이번 쇼는 망치게 되어 있어요.”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인 의상을 입은 모델이 무대 위에 올랐다.메인 모델의 등장에 현장은 일순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눈길은 일제히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하연이 현장에서 수선한 메인 의상은 과감한 컬러와 세련된 스타일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독특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이건 얼른 찍어야 해! 어쩜 이렇게 입체적인 다자인이 나올 수 있지? 오늘 본 디자인 중에 단연 최고야.”“디자이너가 정말 대단한데!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거잖아.”“끝나면 무조건 인터뷰 따야겠네.”“이렇게 독특한 의상을 만들어 우리나라 문화를 세상에 알리다니, 분명 남다른 애국심을 품고 있는 디자이너가 틀림없어.”“이런 디자이너는 우리가 나서서 홍보해 줘야지.”“...”사람들이 말하면 말할수록 호현욱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심지어 앉든 서든 어딘가 불편하기만 했다.무대 위의 의상을 보는 호현욱의 눈에는 이미 거센 파도가 휘몰아쳤다.‘최하연, 내가 널 얕잡아 봤네.’솔직히 하연이 그토록 엉망이 되어버린 옷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수선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호현욱은 화를 못 이겨 연신 기침했다. 그걸 본 진호가 얼른 그를 부축하며 걱정스레 물었다.“이사님, 괜찮으십니까?”하지만 호현욱은 콧방귀를 뀌며 진호를 밀어버렸다.“이게 네가 말한 좋은 일이야?”“이건... 저도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끝난 건 아니니.”그 말에 호현욱의 마음은 또다시 흔들렸다.하지만 다음 순간.고풍스러운 한복을 입은 하연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무대 위에 나타났다.가냘프고 여리여리한
[뭐? 한복 한 벌에 40억?][이건 완전히 내 인식을 뒤집네. 그런데 이렇게 보니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네티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하연은 무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마지막 의상을 선보였다. 스텝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에 기품이 담겨 있어 아래에서 보는 기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훔쳤다.특히 멀지 않은 곳에서 패션쇼를 보고 있던 서준은 이 순간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검은 눈동자에 오직 하연만 있을 뿐.워킹을 마친 하연은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마침 하성이 나타나 하연을 제 품에 끌어안았다.갑자기 저를 품에 안은 상대를 확인한순간 하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오빠? 여긴 어떻게 왔어요?하성은 하연을 풀어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선물 줄 거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계속 선물 확인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오는 수밖에.”하연은 그제야 하성이 말한 선물이 본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와! 고마워요. 저 잠깐만 옷 갈아입고 올게요. 이따 패션쇼가 끝나면 제가 제대로 대접할게요.”“그래.”하성은 하연이 예뻐 죽겠다는 듯 바라보며 대답했다.그 대답에 하연은 얼른 라커룸으로 달려갔고, 하연이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던 하성은 뒤돌아서자마자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하지만 하성은 콧방귀를 뀌며 이내 서준에게서 시선을 뗐다.이번 패션쇼는 매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심지어 끝나자마자 온갖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를 차지하였고, 심지어 해외에서마저 이번 패션쇼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한순간, 패션쇼의 열기는 극에 치솟으면서 하연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 순간 수많은 기자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하연 씨, 오늘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은 모두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것입니까?”“혹시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요?”“이렇게 큰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미 조사했어.”그때 상혁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하연의 앞에 멈춰 섰다.“행사장에 있는 모든 CCTV를 확인한 결과 흔적을 찾아내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뒷모습만 나와 아직 소재 파악이 어려워.”“네? 그렇다면 정말 누군가 일부러 망가뜨렸다는 뜻이잖아요!”예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뒷모습만으로 조사할 수 있어요?”상혁은 하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그놈은 절대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하연은 그제야 안심했다.“그동안 다들 고생했어요. 제가 룸 하나 예약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다들 함께 즐깁시다.”상혁의 말에 스태프들과 모델들 모두 환호했다.“좋아요. 최 사장님 고마워요.”“부 대표님 고마워요!”“...”하연은 그 틈에 뒤돌아 하성을 잡아끌었다.“가요, 오늘 같이 축하 파티해요.”“그래.”하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동의했다.하지만 하성을 이렇게 가만둘 리 없는 하연은 얼른 가흔한테 전화했다.아니나 다를까 하성도 온다는 말에 가흔은 곧바로 주소를 물었다.그로부터 한 시간 뒤, 모든 사람들은 노래방 VIP룸에 도착했다.그때, 하성을 본 가흔이 먼저 다가와 인사했다.“하성 오빠, 오랜만이에요.”“오랜만이네.”하성은 싱긋 웃으며 인사치레로 대답했다.반짝이던 가흔의 눈은 일순 어두워졌다. 그때 하연이 마침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이윽고 말하면서 가흔을 끌어 하성의 옆에 앉혔다.“이봐요, 웨이터! 여기 술 좀 줘요.”예나가 웨이터에게 주문하는 사이, 여은은 옆에 앉아 노래를 골랐다.“하연, 무슨 노래하고 싶어? 내가 예약해 줄게.”“난 아무거나 다 돼.”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맨 앞에서 술을 나르던 직원이 술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고객님, 주문하신 술 나왔습니다.”왠지 귀에 익은 목소리에 하연은 눈을 들어 확인했고, 상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는 일순 조용해졌다.그대로 굳어버린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완선은 이런 곳에서, 그것도 이런 방식으로 하연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아니에요.”“뭘 멍때리고 있어? 얼른 잔 채워!”그때 예나가 술잔을 들고 다가와 분위기를 띄웠다.“우리 이렇게 술만 먹으면 너무 재미없잖아요. 게임 하는 거 어때요?”옆에 있던 여은은 맞장구치듯 게임을 제안하면서 가흔과 하성을 번갈아 봤다.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여은은 온통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이윽고 여은과 예나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하연과 상혁도 게임에 끌어들였다.“무슨 게임 놀 건데?”하연의 물음에 여은이 싱긋 미소 지었다.“뭐긴 뭐야. 당연히 진실 게임이지.”“와! 좋아!”예나가 먼저 호응하자 사람들은 모두 한곳에 둘러앉았다.“우선 룰부터 설명할게요. 아주 간단해요. 이 술병을 돌려 입구가 누굴 향하면 반드시 질문에 답할지 아니면 벌칙을 고를 지 선택해야 해요. 절대 억지 부리면 안 돼요. 물론 실패 시 벌주를 마셔야 해요.”예나의 말이 끝나자 여은이 얼른 맞장구쳤다.“오케이! 이제 시작합니다.”그러면서 먼저 유리병을 돌렸다.“5, 4, 3, 2, 1!”하지만 결국 병 입구가 예나 본인을 향했다.“아! 뭐야? 처음부터 나라고?”“잔말 말고 선택해 질문에 답할래? 아니면 벌칙 고를래?”“당연히 질문이지.”예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여은과 하연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결국 하연이 질문했다.“3초 내로 좋아하는 사람 이름 대.”“뭐?”갑작스러운 질문에 예나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그딴 거 없어. 난 솔로가 좋거든, 술 마실게!”말을 마친 예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술잔을 비웠다.예나의 행동에 여은은 실망한 듯 혀를 끌끌 찼다.“화끈하긴 하네. 그런데 진실을 말해야 해. 진실이 아니면 몇 배의 벌칙이 따를 거야!”“걱정하지 마. 내 말 진심이니까.”2라운드는 예나가 술병을 돌렸다. 그 결과 유리병 입구가 마침 상혁을 가리켰다.그 순간, 예나와 여은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환호를 질렀다.“와! 상
“주문하신 과일 세트 나왔습니다.”웨이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 앞에 다가가 과일 접시를 놓고 재빠르게 룸을 빠져나갔다.하지만 그 웨이터가 나가면서 문을 잠그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문을 닫고 열쇠를 뽑은 완선은 음흉한 눈빛을 드러냈다.‘최하연, 네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니 다들 살 생각하지 마.’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휘발유를 문에 들이붓고 노래방 복도에 흩뿌리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라이터를 휘발유 쪽으로 던졌다.불길이 치솟아 오르면서 온 복도를 덮치는 순간, 완선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크게 웃었다.‘최하연, 너 오늘 죽었어’“아! 불이야! 불이야!”잠시 뒤, 복도를 지나가던 웨이터 한 명이 불길을 발견하고 곧바로 화재 경보 시스템을 작동했다.복도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사람 살려! 불이야! 다들 도망쳐요!”그리고 그 시각, 룸 안에 있던 상혁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큰일 났어. 불 난 것 같아!”상혁은 무의식적으로 하연을 낚아채 함께 문 쪽으로 도망치려 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사람들도 황급히 일어나 문 쪽으로 달려갔다.“무슨 일이지? 문이 안 열리는데?”상혁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성도 시도했지만 역시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무슨 일이지?”그 사이 룸 안에 어느새 연기가 흘러들기 시작했다.“다들 얼른 수건으로 코와 입 막아.”다들 이 상황이 당황했다.그도 그럴 게, 이 룸에는 문이 하나뿐인데, 만약 문이 잠겼다면 꼼짝 없이 이곳에 갇힐 수밖에 없었으니까.“얼른 전화해.”예나가 먼저 전화를 꺼내 들고 119에 신고했고 하연 역시 태훈에게 전화했다.“우리 여기 화재가 발생했으니 얼른 구조 지원 보내줘.”그 말에 태훈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속히 지원 인력을 물색했다.한편, 하성과 상혁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문을 힘껏 걷어찼지만 문은 미동도 없었다.오히려 방 안으로 스며드는 연기 때문에 일행은 모두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어떡해? 우리 못 나가는 거야?”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