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 방은 현재 아수라장이다. 비명과 고함, 그리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 방 밖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가고 있다.나는 콩닥대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드레스 끝을 잡고 사람들 틈에 섞여 방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 보니 현장은 엉망이었고 발가벗은 두 개의 몸뚱어리는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는 남자 몸 뒤에 숨어 머리를 웅크리고는 계속 소리만 질러댔다. 남자는 한 손으로 뒤에 있는 여자의 몸을 가리면서 한 손으로는 쉴 틈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했다."야 너희 다 안 꺼져?!"침대 옆에는 꼴 좋다는 표정의 도혜선이 서 있었고 그녀의 발아래에는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이불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녀 옆으로는 이름 모를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들 발아래에는 저 발가벗은 몸뚱어리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있었다.나는 침대 위의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발가벗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결혼기념일의 또 다른 주인공, 신호연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멋있는 정장을 입고 연회장을 거닐던 그는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사람들 앞에서 이와 같은 추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여자는 바로 신호연의 동생 신연아였다. 오늘 단정하게 입고 온 보람도 없이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역겨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도혜선은 팔짱을 끼며 지시했다."빨리 더 찍어! 각도 제대로 해! 그리고 저 둘 빨리 떼어놔. 더러운 낯짝 구경 좀 하게."그 말에 풍채 좋은 여자 한 명이 그대로 신연아의 팔을 끌어당겨 둘을 떼어놨다. 신연아는 의미 없는 반항을 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그 순간, 풍채 좋은 여성이 있는 힘껏 신연아의 뺨을 몇 대 때렸고 거기에 더해 머리채를 잡고 신연아의 얼굴 정면을 카메라 렌즈 앞으로 끌고 왔다."도혜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신호연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도혜선을 보며 소리쳤다."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르겠어?
배현우가 내 반응에 놀란 듯 우뚝 멈춰서서 더 다가오지 못했다.이미연이 급히 달려와 울고 있는 콩이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배현우를 힐끗 보고는 내 손목을 잡아채 밖으로 나갔다. 가까스로 미연이 집으로 왔지만 나는 여전히 방금 있었던 상황이 생생해 손발이 덜덜 떨렸다.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답답해 연신 가슴을 두드렸지만, 가빠오는 호흡은 종시 가라앉지 않았고 가슴은 돌덩이를 매단 듯 괴로워 났다.위에 든 것도 없이 쉼 없이 토했더니 담액까지 뱉어내게 되었다. 종이에 녹색이 섞여나왔지만, 놀랄 겨를도 없이 나는 쓴맛을 삼키며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콩이가 울먹이며 나를 붙잡고 말했다.“엄마, 우리 아빠 찾으러 가자!”나는 콩이를 품에 끌어안고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말했다.“콩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 엄마 계속 여기 있을 거야.”나는 어린 콩이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오늘 이후로, 영원히 아빠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차마...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그걸 할 뿐이었다. 나는 구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이혼 관련 사항을 문의하고 이미연을 시켜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다.내가 지금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미연뿐이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가방도 여태 미연이가 들어주고 있었다. 다행히도 중요한 물건들을 미연이가 다 챙겨줘서 잃은 것도, 잊은 것도 없었다.“집에 가야겠어.”미연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집에 간다고?”“여기 집 말이야.”내가 강조하듯 언성을 높여 대답했다. 미연이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미연이네 집 문을 나서니, 배현우가 차 옆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선 채로 한참을 있다가, 콩이를 미연에게 넘겨주었다.“나 몇 마디만 하고 따라갈게.”미연이 콩이를 안고 별장으로 향했다.나는 배현우를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반쯤 찢긴 그 초라한 드레스를 입고서
별장은 지금 바로 들어와 살아도 모자랄 것 없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그리며 야심 차게 신경 써서 인테리어를 마쳤던, 이미 모든 가구와 생필품을 갖춘 완벽한 별장이었으니까. 이렇게 쫓기듯이 딸만 데리고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오늘부터 이 별장은, 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곳이다. 경건하게 마음을 굳혔다가, 나는 또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냥 빌어먹을 신호연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기념일이 아닌 이혼선물일 테지만.호기심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꾸 묻는 콩이에게 이곳이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이라고 알려주었더니 신이 나서 온 집안을 사방팔방 콩콩 뛰어다녔다.내 속도 모르고 좋아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심하게 아렸다. 차라리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아, 내 고통을 헤아려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나 같은 버림받는 인생 말고, 본인만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할텐데...콩이가 막 잠들었을 때, 신호연이 찾아왔다.연회장에서의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얼굴 군데군데가 멍이 들고 부은 걸로 보아 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신호연은 이미연을 상관 하지 않고 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대역죄인의 얼굴을 하고 내 앞에 오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사실 대역죄인이 맞긴 하지.이 남자는 자존심도 없나 보다. 이게 벌써 몇 번째 꿇는 무릎인가. 몇 번을 꿇어도 결코 불륜이라는 더러운 버릇을 떼지는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다.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또 전과 같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면 그냥 가.”“여보... 내가 당신을 두고 어딜 가... 당신이 내 집이나 마찬가진데.”신호연은 지은 죄를 모두 승인하는 모습이었다. 고분고분했고 더 이상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겨웠다.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꼴사나웠고 듣기도 보기도 싫었다.“하하. 혹시 그런 말이 나를 돌려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나는 실소를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였다. 신호연이 저지른 추악한 불륜 소식은 유난히 빠르게 인터넷 세상을 뒤덮었다. 서울의 각 신문사의 헤드라인이 신호연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제목과 모자이크 사진으로 장식되었다.정말이지 기자들의 글짓기 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각종 모호하고도 자극적인 워딩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페이지를 눌러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람들 모두가 남매간의 불륜 사실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었으니, 인터넷과 담을 쌓은 사람들까지 모두 아는 해괴망측한 사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 불륜 이야기에서의 가련한 결혼기념일 여주인공인 나도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비록 피해자의 설정이었으나, 화가 나 푸르뎅뎅해진 내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헤드라인에 걸려있는 것을 보니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사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게 된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없이 창피했다.그중에 겉과 속이 다른 신호연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웃음거리로 삼는 게시물이 있었는데, 왼쪽에는 단정한 수트 옷차림으로 웃으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신호연의 모습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알몸으로 사람들이 방에 들이닥친 모습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급히 가랑이를 가린 모습이 있었다. 정말 온 집안 망신이 아닐 수가 없었다. 댓글에는 비웃음과 조롱이 가득했고,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댓글이 단연 '좋아요' 수 1위를 차지했다.다행히도 이때 나는 이미 골드 빌리지에 들어온 상태였다. 장담하건대, 이 기자들은 미친 듯이 이 사건의 피해자인 나를 목표로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을 것이다.신호연은 또 무언가 얘기하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텅 빈 넓은 별장에 이미연만이 남아 긴긴밤을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도혜선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한번 얼굴이 팔렸던 그녀는 이제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여론을 쥐고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신호연의 바람 상대가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자극적이고도 생동하게
도혜선을 불러내기 전부터 나는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했다. 그래서 그녀가 내 전화를 받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만남을 수락했을 때는 정말 뜻밖이었다.그녀는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도혜선이 의외로 매우 적극적이어서 불안했던 마음은 싹 가시고 편해졌다.오늘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도혜선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봤다.그녀는 똑똑하지만 시원시원했고 나아가 호쾌하기까지 했다.“먼저 만나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무슨 의도로 부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사과는 해야 할 것 같네요. 죄송했어요.”그녀가 먼저 사과를 시작으로 어색하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나는 담담하게 미소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혜선 씨를 탓하기엔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서요, 하하.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그녀도 내 말을 듣고 담담히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듯이 입을 오므렸다가 놨다.“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해요.”그녀가 어색하게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저는 핑계 대고 싶지 않아요. 사실 줄곧 신호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맞아요. 신호연이 매력이 있어 여자들에게 호감을 산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저는 신호연이 그렇게 찌질할 줄은 몰랐어요. 일이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책임하게 가버리더라고요.”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다른 여자한테서 들은 신호연에 대한 평가였다. 물론 나에겐 남편의 불륜 상대니 연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신호연이 글쎄 저를 호구로 보고 동생을 두둔하지 뭐예요. 제가 신연아에게 폭행당하는 걸 뻔히 지켜보면서 말리질 않더라고요. 이후엔 병원에 버려놓고는 모른 척하더군요.”도혜선이 말하면서도 치가 떨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분노를 품고 있는 그녀의 눈이 이글이글했다.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현재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나는 신연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조금의 창피함도 모르는 그녀의 단단한 멘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뻔뻔스러워 제삼자가 보면 내가 가해자인 줄 알 것 같았다. 얼굴에 미안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고, 저렇게 저급하고 예의는 말아먹은 태도로 좋은 소식을 알려주겠단다.“말해봐, 그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은 이제 너무 들어서 지겹거든. 어디 그 뻔뻔한 낯짝이 말하는 좋은 소식이 뭔지나 들어볼까?”나도 지지 않으며 담담하게 맞받아쳤다.“피해자인 척 트집 잡지 마.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건 한지아 너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야. 둘 중 그 누구도 억울해하지 마.”이 말이 시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어이가 없어 멍하니 신건우를 바라보았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도대체 어떻게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문이 막힌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신호연이 마침 밖에서 돌아와, 내가 콩이를 안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신호연은 집안 모두의 안색을 살피더니 나에게 한마디 했다.“우리 집에 가자!”“오빠, 뭘 그리 바삐 집에 가. 나 아직 형수님한테 좋은 소식도 못 알려줬는데!”신연아는 어딘가 비꼬는 듯한 어투로 신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빤 아직도 한지아랑 집 갈 생각이나 하고 있어? 내 배 속의 아이는 아빠를 애타게 찾고 있는데!”머리가 ‘쿵’하고 울렸다. 마치 천둥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느낌. 순간 두통이 심하게 몰려왔다. 갑자기 몸을 지탱할 수 없어 비틀거리자, 신호연이 재빨리 와서 나를 부축했다.“여보...”신호연의 울먹거리는 역겨운 목소리에 나는 그를 분노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아이?”신호연은 고개를 떨구고 감히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신연아의 말이 터무니없는 망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너랑 신연아의 아이?”나는 기가 차 되물었다.“연아와 호연은 친남매가 아니야. 애초부터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아이 몇 명을 낳든 문제 될 건 없어.”신건우가 파렴치하게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어서
뺨따귀를 맞은 얼굴은 후끈후끈 달아오르면서 아파졌다. 입가에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콩이는 목이 쉴 정도로 내 다리를 끌어안고 울어댔다.난 맞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신호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이제야 네가 진짜 본성을 드러내네!”신호연은 당황한 듯 얼굴빛이 변하면서 동공이 흔들렸다. 이때 신연아가 태연하게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더니 말했다.“한지아, 좋은 말로 할 때 네가 뺏어갔던 것들 다 도로 뱉어내, 안 그러면 진짜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신연아, 꿈도 꾸지 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난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집안을 위해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신호연, 네가 오늘 때린 이 따귀 내가 꼭 기억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천배 만배 너에게서 다 돌려받아 낼 거야.”나는 할 말을 다 하고는 무서워서 울고 있는 콩이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신연아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 장면을 본 콩이는 꼭 끌어안고 있던 내 다리를 놓고는 작은 두 손으로 신연아를 밀기 시작했다.“고모 나빠, 저리로 가!”나와 신연아는 서로 머리를 끄집어 당기기 시작했다.신호연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둘 다 손 놓지 못해!”신호연은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나를 막았다. 내가 신호연에게 잡혀 움직임이 제한받자 신연아는 더 흥분하면서 그 틈을 타 내 얼굴 뺨을 두 번이나 연속 후려갈겼다.여러 번이나 억울하게 뺨을 맞은 나의 분노 지수는 최고치에 달했다. 나는 신호연이 끌어당기던 팔을 뿌리치고는 신연아의 얼굴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신연아가 맞자 신건우도 참지 못하고 끼어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울면서 작은 손으로 신연아를 밀고 치는 콩이가 눈에 거슬린 모양이었다.신건우는 손을 뻗어 콩이를 끌어당기더니 뒤로 뿌리쳤다. 나는 콩이를 신건우 손에서 빼앗아 오려고 했지만 콩이는 그저 힘없는 종이 인형처럼 뒤로 던져지고 말았다. ‘둥!’하는 소리와 함께 콩이의 울
나는 숨을 죽이고 의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미연은 내가 아플 정도로 나를 꽉 잡고 있었지만 난 아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의사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다행히 아이 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뇌진탕, 두개내출혈, 안면 근육 손상 등 증상이 존재하고 지금 깨어나지는 않은 상황이라 24시간 동안 계속 관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 깨어날 가능성도 있고 제일 안 좋은 상황까지 예상한다면 아마...”나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쓰러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병실에는 이미연뿐만 아니라 이미 떠난 줄 알았던 신호연과 시어머니도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서강훈도 있었다.나는 애써 몸을 일으키면서 이미연한테 물었다.“콩이는? 우리 콩이는 어디 있어?”“지아야, 콩이는 아직 중환자실에서 관찰 중이니까 너무 다급해 않아도 돼.”나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일으키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이미연이 이런 나를 막아 세우자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날 막지마, 콩이는 아직 어려서 내가 없으면 무서워한단 말이야! 의사를 제일 무서워한다고!”“여보...”“꺼져... 꺼지라고...!”나는 목이 찢어지라 신호연을 향해 외쳤다.“다 저리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눈앞에 서 있는 신씨 집안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나와 10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온 신호연도 그 순간에는 사람의 탈을 쓴 악랄한 짐승으로 느껴졌다. 두 눈을 뜨고 자기 친딸이 쓸모없는 걸레처럼 뿌리쳐 나가는 걸 보기만 하는 신호연은 털끝만큼의 양심도 없는 쓰레기였다.이번 일로 신씨 집안 사람들에 대한 모든 인상이 뒤엎어졌다.나는 이번 생을 돌이켜보면서 신호연 같은 쓰레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신씨 집안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짐승 같은 놈이었다.나는 이미연의 동반하에 힘겹게 중환자실 앞까지 걸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힘없이 누워있는 콩이를 보자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