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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준혁이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의 셔츠를 꽉 잡고 있는 윤혜인의 손가락을 보며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게… 저.. 무서워요.”

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자신의 허접한 말에 윤혜인은 감히 이준혁을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가 과연 믿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걱정된 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조금 전에 약 먹었으니깐, 가서 한 숨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

이준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에 움츠린 채 안겨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이 각도로 보는 그녀는 더욱 예뻤다.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더군다나 열이 난 탓에 하얀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유난히 가녀린 모습이었다.

이준혁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돌아서서 익숙한 듯 집 문을 열고 윤혜인을 안방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윤혜인은 조금 전에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으며 머리카락도 젖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얼른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한 숨 푹 자고 싶었다.

“저 이제 괜찮아요.”

이준혁을 보내려는 뜻이었다. 별장 생활에 익숙한 이준혁은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

간단하게 대답한 이준혁은 떠나지 않았고 되레 손으로 넥타이를 풀더니 셔츠 단추까지 하나씩 풀고 있었다.

“옷은 왜 벗는 거예요?”

순간 흠칫 놀란 윤혜인은 숨을 참으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지금 그녀는 몸도 안 좋은데 설마 이 남자는 욕구를 풀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 건가? 저게 인간인가?

이준혁이 말없이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윤혜인은 그 적나라한 눈빛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를 훑어보는 이준혁의 시선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준혁의 눈빛은 다른 남자와 달랐다. 마치 윤혜인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녀는 이준혁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었다.

“저 지금 몸이 불편해요.”

윤혜인을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오늘 잠자리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이런 일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이준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윤혜인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손으로 침대를 지탱한 채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혜인아, 나 그렇게까지 짐승은 아니야.”

혜인이라고 부르는 이준혁의 입술은 유난히 섹시했고 분위기는 또다시 야릇해졌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보자 이준혁은 만족한 듯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갔다.

윤혜인은 괜히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한 이준혁 때문에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내, 화장실에서 나온 이준혁은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쳐다보며 욕조에 물을 받아 놨다고 했고 윤혜인은 평소보다 다정한 그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

평소에 결벽증이 조금 있는 윤혜인은 끈적거리는 몸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윤혜인은 너무 급하게 일어난 탓에 눈앞이 까매져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준혁이 제때에 그녀의 허리를 잡아준 덕분에 그녀는 무사할 수 있었다.

윤혜인을 힐끗 쳐다보던 이준혁이 그녀를 안아 올린 채 욕조로 향했고 익숙한 향기가 가까워지자 윤혜인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터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말까지 더듬거리며 말했다.

“내, 내려줘요...”

이준혁은 윤혜인의 말에 그녀를 욕조 곁에 앉힌 채 손을 뻗어 그녀의 원피스 단추를 풀어주었다. 익숙한 듯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는 이준혁의 표정은 서류를 확인하는 것보다 더 평온한 표정이었으며 그 동작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차가운 이준혁의 손끝이 윤혜인의 살결에 닿을 때마다 윤혜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다못한 윤혜인은 옷을 꽉 잡더니 살짝 언성을 높이며 입을 열었다.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제발 얼른 나가요!”

“널 씻기는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왜 그래?”

긴장한 듯한 윤혜인의 표정을 보며 이준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윤혜인은 너무 부끄러워서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예전에 잠자리를 가진 뒤, 이준혁은 힘들어서 축 처진 윤혜인을 몇 번이나 씻겨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씻겨줬다고 하기보다는 욕실에서 한 번 더…

윤혜인은 이제 남자와 욕조만 보아도 부끄러웠다. 그녀는 가까스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야릇한 장면을 뿌리친 채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그를 밀쳐냈다.

“이준혁 씨, 얼른 나가주세요.”

이준혁은 장난을 멈추고 욕실을 나섰고 이내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깨끗하게 씻은 윤혜인은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샤워 가운을 걸치고 나와보니 이준혁이 여전히 방안에 있었고 윤혜인은 그를 무시한 채 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준혁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그녀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머리도 안 말리고 잘 생각이야?”

말을 하던 이준혁은 수건으로 묶인 윤혜인의 머리를 풀더니 드라이기로 꼼꼼히 말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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