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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다행히 임세희는 미리 변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휠체어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 나중에 윤혜인이 이준혁에게 자신이 모함을 당했다고 고자질해도 이준혁은 악독한 윤혜인이 임세희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임세희는 기분이 언짢았다. 예전의 이준혁이라면 절대 다른 여자 때문에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저런 천박한 여자 때문에 그녀를 의심하다니.

조금 전에 임세희는 단지 윤혜인을 떠본 것이다. 그녀는 절대 이런 멍청한 방법으로 윤혜인을 모함하지는 않을 것이며 정말 윤혜인을 없애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절대 본인의 손을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준혁이 그런 여자와 2년 넘게 잠자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임세희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얼굴이 일그러졌고 주먹까지 꽉 쥐었다.

감히 그녀의 남자를 건드리다니. 목숨이 아홉 개라도 되는 건가!

한편, 공기중에는 역한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고 이준혁이 윤혜인을 빤히 쳐다보면서 취조하듯 물었다.

“너 임신했어?”

한참 뒤, 남자의 냉정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당장 지워!”

“안 돼요!”

소리를 지르던 윤혜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곳은 병원이고 조금 전 상황은 그저 윤혜인이 꾼 악몽이었다.

윤혜인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고 바로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길쭉한 몸매에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남자는 금테 안경을 쓴 채 윤혜인을 쳐다보고 있었고 윤혜인은 이런 곳에서 한구운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구운 선배, 선배가 어떻게 여기 있어요?”

윤혜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한구운이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조금 전에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소원이를 만났는데 다른 사람과 차를 부딪쳐서 싸우고 있더라고. 차를 빼기 힘들다면서 나한테 대신 널 찾아달라고 했어.”

윤혜인은 아랫배를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뱃속의 아이가 너무 걱정되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저기… 제…”

“걱정하지 마. 조금 전에 의사 선생님이 정밀 검사를 진행했는데 아이는 무사하대.”

한구운이 그녀보다 먼저 말을 꺼냈고 그제야 안심이 된 윤혜인이 얼른 감사 인사를 올렸다.

“고마워요, 선배.”

“네가 벌써 결혼했을 줄은 몰랐어. 내가 네 남편에게 전화해줄까?”

한구운의 눈빛이 조금은 씁쓸해 보였고 윤혜인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왜?”

한구운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지만 윤혜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살짝 난감했다.

“그게…”

지금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구운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 윤혜인을 보며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지금은 좀 어때?”

윤혜인은 왠지 모르게 조금 힘들고 슬퍼 보였기에 한구운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저 이제 진짜 괜찮아요. 선배 연락처 추가할 수 있을까요?”

씁쓸한 표정을 짓던 윤혜인이 고개를 들고 한구운에게 물었고 한구운은 순간 흠칫했다.

윤혜인은 그가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얼른 설명을 보탰다.

“제가 검사 비용을 선배한테 돌려주고 싶어서 그래요. 혹시 불편하면…”

“난 네 번호가 있어.”

한구운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

“네가 내 번호를 삭제한 거야.”

한구운이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열더니 윤혜인에게 보여주면서 말했고 잠시 멈칫하던 윤혜인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예전에 이 전화번호로 새해 축하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상대방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상대방은 자신이 한구운이라고 했다.

그때 당시 보이스 피싱이 한창 심각했고 더군다나 한구운은 외국으로 간지 꽤 오래됐기에 윤혜인은 상대방이 절대 한구운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상대방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서 블랙 리스트에 넣어버렸던 것이였다.

그런데 그때 문자를 보냈던 사람이 정말 한구운이라니… 윤혜인은 너무 미안했다.

“선배, 죄송해요. 전 정말 선배인 줄 몰랐어요. 사기꾼인 줄 알고… 지금 당장 블랙 리스트에서 꺼내 드릴게요.”

하지만 잠시 뒤, 핸드폰의 전원이 갑자기 꺼지고 말았다.

상황이 더욱 난감해졌지만 한구운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중에 돌아가서 내 번호 저장해줘. 일단 푹 쉬고 있어. 소원이 곧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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