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0화

임세희의 손길이 이준혁의 허리에 닿은 순간 이준혁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임세희의 손은 그렇게 허공에 멈춘 채 멍한 표정으로 이준혁을 쳐다보았다.

병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손을 거둔 임세희는 몰래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준혁 오빠, 내가 싫어?”

“아니, 괜한 생각하지 마.”

이준혁이 임세희에게 휴지를 건네며 위로했다.

“내가 지금 오빠에게 짐이 됐다는 걸 알아… 아무래도 내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

임세희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고 이준혁이 얼른 가까이 다가가 임세희의 어개를 꼭 잡더니 그녀를 위로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난 끝까지 너를 지켜줄 거야.”

“준혁 오빠, 난 오빠가 날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

임세희는 이준혁의 손을 꼭 잡은 채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 뒤, 임세희가 깊은 잠에 빠지고 나서야 이준혁이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병실 문이 닫히던 순간, 곤히 잠든 줄 알았던 임세희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조금 전, 임세희는 이준혁에게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아주 은은한 향이기는 했지만 임세희는 여자의 향수라는 걸 바로 확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준혁 오빠 곁에는 염치없이 끼어든 윤혜인 말고는 다른 여자가 없다.

임세희는 이를 꽉 깨물었고 화가 잔뜩 난 탓에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녀는 반드시 이 복수를 할 것이다. 언젠가 윤혜인 그 여자 눈에 피눈물이 나게 만들 것이다.

한편, 병원에서 나온 이준혁이 차에 타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

“청월 아파트로 가.”

이준혁은 넥타이를 풀어 던진 채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피곤한 듯 대답했다.

한참 뒤, 청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이준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눌렀다.

안방 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윤혜인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 끈은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조금 야릇한 모습이었다.

이준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전보다 열이 많이 내린 듯했다.

그가 이불을 살짝 올리던 그때, 윤혜인이 갑자기 돌아눕더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을 달라고 중얼거렸다.

이준혁은 이내 따뜻한 물을 한 잔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윤혜인의 이름을 불렀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눈썹을 들썩이던 이준혁은 커다란 손으로 윤혜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더니 그녀를 품에 안아 물을 먹였다.

목이 많이 말랐던 윤혜인은 손으로 컵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은은한 불빛 아래 물을 마셨던 윤혜인의 입술은 촉촉하고 발그레했다. 이준혁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쓱 닦아주었다.

인기척에 정신이 흐릿한 윤혜인은 낮게 신음 소리를 냈고 이준혁은 그제야 그녀의 입술에서 손을 뗐다. 그의 손가락에는 아직 윤혜인 입술의 온기가 남았고 이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윤혜인이 잠에서 완전히 깼을 때는 이미 점심이었다. 오늘은 주말이었고 별다른 잔업 지시가 없었기에 회사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비서실에 그녀와 주훈 말고도 네 명의 비서가 더 있었다. 그들은 언제든 대표님이 지시한 업무를 완수할 수 있게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켰다.

침대에서 일어난 윤혜인은 머리맡에 놓인 컵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잠들기 전에 물을 마셨었나?

하지만 이내 별다른 의심없이 체온계를 꺼내 체온을 확인했고 열은 완벽하게 내린 듯했다.

몸이 뻐근한 윤혜인은 움직이기 싫어서 간단하게 점심을 챙겨 먹은 뒤 다시 낮잠을 청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졌을 때 갑자기 울린 핸드폰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발신자는 윤혜인의 절친 소원이었다. 이제 막 해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윤혜인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전화를 했던 것이다.

고깃집에 도착한 소원은 먼저 와있던 윤혜인을 발견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품에 와락 안은 채 중얼거렸다.

“혜인아, 진짜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윤혜인과 소원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때 당시 귀족 학교인 청하 국제고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으며 학비를 전부 면제한다고 했고, 마침 윤혜인이 막 서울로 상경했던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성적이 우수한 윤혜인은 전교 1등이라는 성적으로 순조롭게 청하 국제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급 관념이 강했던 청하 국제고 일부 학생들은 가정 배경이 보잘것없는 윤혜인이 꼴 보기 싫어서 학교에서 그녀를 따돌리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소원이 윤혜인을 도와주게 되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점차 모든 걸 함께 하는 절친이 되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윤혜인은 소씨 가문이 서울에서 알아주는 명문 가문이고 소원은 그 가문의 둘도 없는 아가씨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는 그런 것들로 추호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윤혜인과 소원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거의 매일 붙어있었고 서로에게 숨기는 게 일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신나서 수다를 떨던 소원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곁에 있던 키가 크고 건들거리는 남자를 윤혜인에게 소개했다.

“혜인아, 이 사람은 내 남자친구 김재성이야.”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