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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5 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연유성은 바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존재조차 모르는 고아였고 3년간 해외에서만 살았다. 그랬기에 그녀가 아는 친구라고는 길가의 양아치들뿐이었고 절대 고가의 스포츠카를 탈 수 없었다.

강씨 가문에서 쫓겨난 그녀가 그의 별장이 아닌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별장 안은 켜진 전등 하나 없이 아주 어두컴컴했다.

2층의 방도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새로 갈아놓은 침대 시트를 제외하고는 방 안 구석구석 그녀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낡아빠진 캐리어도 없었다.

연유성은 청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지만, 그녀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두 눈에 어둠이 드리워지고 핸드폰을 꺼내 바로 비서 심우민에게 연락했다.

“지금 하랑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 오세요. 그리고 3년간 해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정리해서 저한테 자료로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비록 심우민은 대답을 하긴 했지만 이해가 되진 않았다.

“대표님께서는 강하랑 씨와 이혼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강하랑 씨를 왜 조사하려고 하는 겁니까?”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한참 지나서야 핸드폰 너머로 차가워진 연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혼 합의서를 이미 접수한 겁니까?”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직 접수하지 못했습니다.”

심우민은 머쓱한 듯 말했다.

“스튜디오 숨 측에서는 저희랑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이틀 동안 계약을 조정해보려고 했지만, 줄곧 디자이너 실비아 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과 강하랑 씨 이혼 접수는 이렇게 미뤄두게 되었습니다.”

연유성은 살짝 인상을 썼다.

“계약금을 세 배로 해준다고 해도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네. 그쪽에서 말하길 10배로 올려준다고 해도 안 할 거랍니다.”

심우민은 다소 조급한 어투로 말했다.

“3년간 스튜디오 숨과는 계약이 아주 순조롭게 이루어졌었습니다. 저희 측에서도 그쪽 디자이너한테 밉보이는 짓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계약 조건도 그쪽에서 솔깃할 만한 조건으로 바꿨는데, 스튜디오 숨에서는 여전히 저희와 계약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조정해보려고 시도 중입니다.”

3년 전 연성철이 세상을 뜨게 된 후 거대한 회사는 20대 초반을 넘긴 젊은 남자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고 심지어 그 젊은 남자는 자신의 결혼 마저 원하는 상대와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회사의 임원진들은 그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튜디오 숨과의 협력으로 HN 그룹은 주얼리 부분에서만 1분기 순이익이 300% 증가하게 되었고 그 후로도 안정된 수치를 유지해왔다.

올라가는 수익에 의욕이 생긴 그는 다른 프로젝트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숨이 연유성을 HN 그룹에 빠르게 자리 잡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3년 계약 기간이 끝이 나고 그는 상대측에서 왜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알지 못했다.

침묵을 지키던 연유성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저랑 하랑이 이혼 접수는 먼저 제쳐두세요. 그리고 디자이너 실비아의 최근 활동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조사하고, 직접 계약을 논의해 볼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

일주일 뒤.

XR 엔터 본사 아래에 검은색 스파이커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잔뜩 어두워진 안색의 연유성이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다고요? 심 비서, 최근 대표 비서직에서 아주 숨통이 많이 트였나 봐요. 그새 능력이 다 떨어진 거예요?”

핸드폰 너머에 있던 심우민은 덜덜 떨고 있었다. 연유성이 처음으로 그를 이렇게 혼내고 있는 것이었다.

심우민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주시의 모든 CCTV를 뒤져보았지만, 어디에서나 강하랑의 종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청진 별장 근처에 있던 CCTV마저도 깨끗하게 지워진 상태였고 강하랑이 귀국했던 그 날 영상도 지워져 마치 어딘가로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심우민은 전전긍긍하며 말을 이었다.

“이미 이혼 서류에 적힌 주소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강하랑 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년간 강하랑 씨는 해외에서 평범한 유학생처럼 지내셨습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별다른 특이점 없이 지내셨습니다.”

차 안에 있던 연유성은 이마를 꾹꾹 눌렀다.

“정황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세요.”

심우민은 핸드폰 너머로 느껴지는 연우성의 분노에 다른 말을 꺼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연유성은 오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다소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스튜디오 숨에서 XR 엔터랑 계약한다는 소식 사실이에요? 디자이너 실비아가 직접 XR 엔터 대표를 만나러 온다고요?”

그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XR 엔터 앞을 지키고 있었지만 단이혁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고 베일에 싸인 스튜디오 숨의 디자이너 실비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심우민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창밖만 주시하고 있던 연유성의 표정이 순간 잔뜩 어두워지게 되었다.

...

강하랑은 강씨 가문과 연을 끊은 후 줄곧 단이혁의 오피스텔에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약속대로 그녀의 둘째 오빠인 단이혁과 계약해야 했기에 하는 수 없이 외출하였다.

회사 건물 아래서 그녀는 단이혁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10분 뒤, 한 남자가 장미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핏이 딱 맞는 슈트를 입은 남자는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그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고 안에 입은 검은 셔츠는 단추가 두 개나 풀려 있어 아주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였다.

“오늘은 우리 막내 창피하지 않지?”

강하랑 앞에 멈춰선 단이혁은 꽃다발을 건넸다.

“우리 사랑하는 실비아 님, 오늘은 연노란색 장미를 준비했지. 맘에 들기를 바라.”

“고마워, 오빠.”

강하랑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색이든 장미꽃이라면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고 장미꽃다발을 받으려던 찰나에 익숙한 형체가 그녀의 시야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싸늘한 시선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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