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웨이터를 불러 우유 한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속으로 지난번 단이혁의 선택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감탄하고 있었다.옆에 있던 강하랑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줄을 맞춰 세워둔 칵테일을 보고도 더는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그녀는 진지해진 얼굴로 지승우를 보며 말했다.“사랑이 안 마실 테니까 오빠 화내지 마. 응?”지승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방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영상을 찍어 연유성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그의 색시는 아주 정말로 귀여웠다.하지만 조금 전 강하랑이 술에 취해 한 말들을 떠올린 지승우는 눈빛이
연유성의 목소리에선 꾹꾹 짓누른 분노가 느껴졌고 표정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그리고 이어진 강하랑의 행동에 연유성의 표정이 걷잡을 수 없이 일그러지게 되었다.그녀는 손을 뻗어 지승우의 옷자락을 꼬옥 잡으면서 취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저 사람 보지 마.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애교 잔뜩 섞인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이 마음이 사르르 녹게 했다. 더군다나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필 그런 모습과 행동은 전부 지승우에게 한 것이었고, 그녀의 모습을 본 연유성은 분노치가 극에 달했다.그는
지승우도 납치를 당한 적이 있었기에 다소 그녀를 이해하고 있었다.하지만 강하랑은 달랐다.지승우의 납치는 돈이 목적이었기에 납치범은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주기도 했었다.그러나 강하랑은... 납치범의 목적이 그녀의 죽음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사람은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특정 누군가를 원망하기 마련이었다.아무리 연유성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알아도 머리는 이미 그와 연관이 있다고 확정 짓고 있었다.무의식적으로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인식한 것이다.지승우
예상치 못한 감각에 연유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간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강하랑! 움직이지 마!”연유성은 어두운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한 손은 강하랑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았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이마를 밀며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를 밀어낸다고 해서 거리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강하랑의 손은 위험하게 움직이면서 연유성의 정장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벌어진 셔츠 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연유성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제발 움직이지 마, 응?”이성이 진작 가
연유성은 뚜껑 딴 물병을 강하랑의 앞으로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연유성의 손까지 잡은 채로 한참이나 물을 마셨다. 마치 사막에 있던 사람처럼 숨 한 번 쉬지 않고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물을 반이나 비우고 나서야 다시 연유성의 품에 기댔다.“피곤해...”연유성은 물병 뚜껑을 닫으면서 피식 웃었다.“우리 아가씨 물 마시느라 피곤하셨어요? 아니면 잠자느라 피곤하셨어요? 응?”“아가씨 아니야!”강하랑은 고개를 들면서 연유성을 힐끗 노려봤다. 아직 완전히 정신 차리지 못한 듯 깜빡이는 눈은 시선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차는 청진 별장 앞에 서서히 멈춰 섰다. 그리고 심우민은 아직도 연유성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유성은 한참 뒤에야 고민이 끝났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이혼 서류는 나한테 줘요. 하랑이 일어난 다음 직접 제출하러 갈게요.”심우민은 머리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회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이 차를 몰고 가요.”연유성은 당연히 심우민을 택시 타고 돌아가게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별장의 차고에는 다른 차가 아주 많았기에 영향받을 리도 없었다. 그에게 차를 내어주면 출근할 때 다시 데리러 오기도
연유성과 강세미는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쇼윈도 부부 같았고, 연유성과 강하랑이야말로 사랑으로 이어진 진짜 부부 같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남 일이었기에 심우민은 묵묵히 운전석이 올라타 빠르게 멀어져 갔다.연유성은 제자리에 멈춰서 한참이나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청진 별장을 향해 걸어갈 때 강하랑이 눈을 뜨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연유성, 나 이제 내려줘.”강하랑의 눈동자는 아주 맑았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또박또박 뱉은 말은 그녀가 아직도 취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똑바로 서지도 못할
게스트룸에서 나온 연유성은 2층 난간을 잡고 서 있었다. 표정과 분위기는 원치 않게 잠이 깬 탓에 아주 어두웠다. 하긴 이 시간에 억지로 눈을 뜨게 되었다면 강하랑이었다고 해도 심술을 잔뜩 부렸을 것이다.“미안, 너희 집 전등 스위치를 찾지 못해서 발을 헛디뎠어. 나 때문에 깼지?”강하랑은 어젯밤 술 취한 다음에 일어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왜 청진 별장에 있는지도 당연히 몰랐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남의 집에서 민폐가 된 것은 사실이었기에 순순히 사과했다.연유성은 거만한 자세로 강하랑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