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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걸 왜 묻는 건데요?!”

유효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그 일은 유효진에게 아킬레스건 같은 존재였고 아무도 그녀 앞에서 함부로 언급하지 못했다.

그런데 임찬혁이 뒤따라 나온 이유가 고작 이걸 물어보려고?

“무례했다면 죄송해요.”

임찬혁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실 저와 하정연의 원한은 한 가지 더 있어요. 그때 하정연은 나더러 스스로 자수하게 하려고 저와 결혼을 약속했죠.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저녁 저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술집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여자였어요. 그날은 저도 똑똑히 기억해요. 바로 2018년 5월 12일이에요.”

임찬혁은 사실대로 말했다.

술집?

5월 12일?

순간 유효진의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날이 바로 유효진이 우울한 기분 때문에 술집에서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가 바로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된 날이었다.

“유 대표님?”

임찬혁은 유효진의 안색이 안 좋아진 것을 바로 눈치챘고 혹시 5월 12일 술집에 있었던 사람이 유 대표는 아니었는지 당장 묻고 싶었다.

“전 그날 술 마시러 간 적이 없어요!”

유효진이 갑자기 한 마디 내뱉었다.

타이밍이 아무리 딱 맞아떨어져도 연우의 친부가 임찬혁이라 확신할 수 없다.

왜냐면 ‘밤의 어둠’ 술집은 매일 손님 수만 거의 만 명에 달하고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더더욱 셀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임찬혁이 연우의 친아버지라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게다가 이것은 그녀가 가족들 앞에서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기에 임찬혁이 끼어드는 것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우선 스스로 모든 것을 조사한 후 연우의 친아빠가 누구인지 정확히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괜한 생각을 했네요.”

유효진의 아니라는 말에 임찬혁은 실망한 얼굴로 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직감은 그에게 유효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 갔던 유효진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전과 같이 평온한 얼굴이었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상냥함이 더해진 듯했다.

“아주머니, 방금 재무팀에 전화해 아주머니께 2억 이체해 드리라고 했어요. 이것은 어제 찬혁 씨가 저를 치료해 준 비용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유효진은 양홍선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휴대전화 문자 도착 알림이 울렸고 문자 내용은 카드에 2억 원이 입금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걸 어째!”

양홍선은 연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찬혁이 유 대표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인데 이렇게 많은 돈을 어찌 받을 수 있겠어요!”

양홍선은 절대 이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핸드폰으로 계좌 이체할 줄 모르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은행에 가서 돈을 돌려주려 했다.

“어머니, 유 사장님이 준 돈이니 그냥 받으세요!”

임찬혁의 받으라는 말에 양홍선은 그제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회춘단은 효과가 정말 좋네요. 아주머니, 머리에 있던 새치가 다 사라졌어요.”

유효진은 자리에 앉지 않고 계속 양홍선 옆에 서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여기 새치 한 가닥 보이는데 제가 뽑아 드릴게요.”

순간, 유효진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하얀 손가락을 뻗어 양홍선의 머리에서 흰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다.

이 모습은 마치 딸이 노모의 흰머리를 뽑아주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듯했다.

순간 임찬혁은 약간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유효진같이 상류층에 있는 한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에게 흰머리까지 뽑아 줄 정도로 자세를 낮출 수 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춘단이 아니었다면 제 머리카락의 태반이 흰머리였을 거예요. 한두 가닥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양홍선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유 대표가 그녀의 흰머리를 뽑아주는 것을 그녀는 너무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유효진도 싱긋 웃으며 양홍선을 향해 말했다.

“저에게 북유럽에서 수입한 샴푸 세트가 있는데 나중에 시간 날 때 드릴게요. 지금 드시는 회춘단에 이 샴푸까지 사용하시면 얼마 지나지지 않아 분명 흰머리가 전부 사라질 거예요.”

말을 하는 유효진은 조용히 양홍선의 흰머리를 손에 꼭 움켜쥐었다...

오늘 식사 분위기는 더없이 즐거웠고 날이 어두워지자 임찬혁과 양홍선은 먼저 일어섰다.

유효진은 기사에게 그들을 데려다주라고 얘기했고 연우는 임찬혁이 가는 게 못내 아쉬운 듯 그의 집까지 따라가려고 했다.

유효진이 가까스로 임찬혁에게서 연우를 떼어놓았고 그 바람에 연우는 또 한 번 그녀를 나쁜 엄마라고 불렀다.

이후 호텔 사무실로 돌아온 유효진은 비서를 부르더니 흰 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을 한 개씩 건네며 말했다.

“내일 병원에 가서 이 두 개 머리카락이 가족관계가 성립되는지 유전자 검사를 해 봐주세요.”

이것은 다름 아닌 양홍선과 연우의 머리카락이었다.

양홍선이 연우와 가족관계라면 임찬혁은 연우의 친아버지가 된다.

반대로 그게 아니면 그날 밤 그녀와 관계를 가진 사람은 임찬혁이 아니라는 뜻이다.

임찬혁은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약재 시장으로 향했다.

그는 회춘단을 정제할 약재를 사서 내일 신제품 발표회에서 사용할 회춘단을 밤새 서둘러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멜튼 호텔 앞은 호화로운 차들이 줄지어 늘어선 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경주 근처의 부유한 상인들과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의 엘리트들까지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 멜튼 호텔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정우명과 하정연이 오늘 이곳에서 결혼하고 유효진도 이곳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열기에 오늘은 경주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호텔 3층 곳곳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구석구석 축하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바닥에는 레드카펫까지 깔아 한 층 더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바쁘신 와중에도 저와 하정연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우명이 흰색 슈트 차림에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며 무대 위에서 결혼식 하객들에게 인사하자 많은 이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의 왼손은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하정연의 손을 잡고 있었고 두 사람은 훤칠한 외모와 예쁜 미모를 뽐내며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두 사람, 정말 한 쌍의 원앙 같아요. 너무 잘 어울려요.”

“정 도련님이 하씨 집안을 도와 유신 뷰티 컴퍼니와의 계약을 성사시켰대요. 너무 부러워요. 이 계약 하나만으로도 하씨 집안은 충분히 가문이 번창할 만한 큰돈을 벌 수 있겠네요.”

“정 도련님이 유신 뷰티 컴퍼니의 임원과 아는 사이라니! 어떻게 인맥이 이렇게 넓을 수 있을까요?”

“정 도련님, 이따가 유 대표님 만나시면 제 얘기도 잘 좀 부탁드려요. 저도 유신 뷰티 컴퍼니와 계약하고 싶어요.”

모두가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은 미용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우선 3층에서 정우명과 하정연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4층으로 올라가 유신 뷰티 컴퍼니의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하려 했다.

슥!

바로 이때 하얀 물건이 정우명과 하정연 앞에 떨어졌다.

하객들이 찬찬히 눈여겨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장례식에서나 볼 법한 하얀색 화환이었다.

누구 감히 결혼식에 하얀색 화환을 뿌린단 말인가!

그때 슈트 차림의 임찬혁이 성큼성큼 무대 앞으로 걸어왔고 하객들의 눈길을 한순간에 전부 사로잡았다.

그는 당장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를 뿜어냈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우명, 하정연, 이 짐승보다 못한 두 사람, 세상의 나쁜 짓을 죄다 찾아서 하며 양심 따위는 진작에 개나 줘버린 놈들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거야!”

임찬혁은 천둥 같은 높은 목소리로 외쳤고 그 소리에 하객들은 귀의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임찬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외쳤다.

“오늘 내가 당신들의 가면을 벗기고 당신들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겠어! 자신이 잘못한 걸 알았으면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반성해!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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