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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반짝이는 구두가 마루를 밟자 맑고 청아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성준이 백아영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며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니까 나랑 잔 게 너란 말이야?”

백아영도 실은 백 퍼센트 확신한 게 아니라 단지 두 모녀를 떠보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이에 이성준이 되묻자 그녀는 몹시 난감할 따름이었다.

다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고 더는 퇴로가 없으니 그녀도 결국 이를 악물고 이 자리에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려 했다!

“그날 밤에...”

백아영이 말을 꺼내자마자 박라희가 불쑥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백아영! 이게 다 내가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야. 네가 제 몸 하나 아끼지 못하고 정체도 모를 남자와 밤을 지새우더니 이젠 성준이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꿈 깨 제발! 그날 밤은 채영이와 성준이가 연인관계를 확인한 날이라 두 사람은 줄곧 함께 있었어!”

이 말을 들은 백채영이 두 눈을 반짝였다. 백아영은 지금 이성준이 그날 밤 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기에 백채영만 이성준과 함께 있었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곧이어 백채영이 잔뜩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거렸다.

“성준아, 그날 밤 내가 너랑 함께 있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다 아영의 이간질에 휘말리겠어.”

순간 백아영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모든 투지가 식어버리고 난처함과 절망감에 휩싸였다.

‘정말 내가 잘못 안 걸까?’

“내가 너 때문에 창피해서 못 살아. 네가 아무리 비겁한 수단을 써도 채영의 남자는 절대 앗아갈 수 없어!”

박라희가 기세등등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성준이는 곧 채영이를 데리고 드레스 고르러 가는데 넌 아직도 안 꺼지고 뭐 해?”

백아영은 고개 들어 한없이 차가운 이성준의 눈빛을 쳐다봤다. 이보다 더한 야유는 없었다. 그녀는 애초에 그 사람이 이성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백아영이 굴욕을 참고 이를 악문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성준은 짙은 눈빛으로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사색에 잠겼다.

그날 밤 백아영도 경포 호텔에서 강제로 잠자리를 가졌는데 상대가 누군지 조차 몰랐다. 한편 이성준은 백아영과 접촉할 때 의외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는 그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 수 없다.

이성준이 시선을 거두고 다시 날카로운 눈길로 백채영을 쳐다봤다.

“그날 밤에 너 분명 조명을 잡았는데 왜 날 안 쳤어?”

그날 밤 그 여자가 든 것은 조명이 아니라 과도였다.

백채영이 만약 당사자라면 틀리게 대답할 리가 없고 만약 아니라면...

“그건 왜냐하면...”

백채영이 이제 막 대답하려 할 때 박라희가 그녀를 꼬집었다. 고통이 밀려오자 그제야 전에 엄마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박라희는 그날 밤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백채영은 허점이 드러날까 봐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속상한 얼굴로 눈물을 터트렸다.

“성준아, 왜 그렇게 물어?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그날 밤 난 강제로 첫 경험을 하게 됐어. 그냥 확 죽어버리려고 했는데 상대가 너라서... 지금이라도 후회되고 책임지고 싶지 않으면 관둬. 나 절대 너 집착 안 해.”

백채영은 대성통곡하며 큰 억울함이라도 당한 듯 슬픔에 빠져버렸다.

이성준은 미간을 살짝 구기며 짜증이 조금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의심일 뿐이니 이것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뜻 아니야. 드레스 고르러 가자.”

말을 마친 이성준은 먼저 밖으로 걸어 나가며 위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백아영더러 집에서 나 기다리라고 해!”

백채영이 아무것도 언급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 실로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다만 백아영에게 대질하기만 하면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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