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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미스터리한 사람

진유진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이제 없어. 너한테 알맞은 자리 하나가 있었는데 하필 오늘 직원을 구했거든. 하지만 보광 그룹 본부가 국내에 들어왔잖아. 우리 회사 근처에 있어. 나 며칠 전 인터넷에서 그 회사가 프랑스어 번역관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어. 너 프랑스어 잘하잖아, 자격증도 있고. 분명 그곳에 취직할 수 있을 거야. 한 번 도전해보지 않을래?”

심지안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몇 년 전 바닥을 쳤다가 기사회생한 보광 그룹을 말하는 거야?”

“맞아. 거기야!”

그녀는 손가락으로 북쪽 고층건물을 가리켰다.

“저기야, 가깝지? 월급도 꽤 높은 걸로 알고 있어. 네가 저기에 출근하면 우리 매일 함께 퇴근하면서 술 한잔해도 되겠네!”

심지안이 진유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가장 높은 건물 꼭대기에 금색으로 새겨진 ‘보광 그룹’ 네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5년 전 보광 그룹은 투자 실패로 인해 파산에 이르기 직전까지 몰락했다. 그 후 돌연 미스터리한 누군가가 보광 그룹을 맡았지만 워낙 명성이 없었던 사람인지라 업계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다. 다들 그 어리석은 애송이 놈이 회사를 완전히 말아먹을 거라고 혀를 찼었다.

하지만 1년 후, 그 사람은 전세를 뒤집어 사업상의 모든 문제를 깔끔히 해결한 뒤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로 인해 금융 천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녀는 그토록 능력 있는 리더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 분명 난진 그룹에서보다 훨씬 더 큰 발전을 이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심지안이 자신 없는 얼굴로 말했다.

“내 전공은 금융 쪽이 아니잖아. 들어갈 수 있을까?”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심지안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카드 잔액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집에 돌아가 이력서를 제출해야겠어.”

심지안은 진유진과 함께 저녁밥을 먹은 뒤 버스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레이색 잠옷을 입은 성연신이 밥상에 앉아 우아한 자세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성연신이 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심지안은 그제야 밥과 반찬 모두 2인분의 양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볼록한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함께 먹고 싶지만 배에 그럴만한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아서요.”

“위도 안 좋으면서 밖에서 불량 음식을 먹다니요. 또 병원에 실려 가고 싶은가 보네요.”

심지안이 입을 삐죽거렸다.

‘말을 좀 예쁘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오늘은 건강식인 달걀 죽을 먹었어요.”

그녀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눈앞의 이 고상한 도련님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보아하니 성연신은 먹는 것에 아주 엄격한 요구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 시켰던 배달 음식이 못마땅했던 탓에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식사를 준비하게 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말이 있다. 남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반드시 남자의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한다.

어찌 됐든 현재의 그녀는 직업도 없는 백수가 되어버렸기에 이 남자를 놓친다면 정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성연신은 더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죽과 위장 치료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말 또한 하지 않았다.

심지안은 방에 돌아간 후 보광 그룹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인 공고를 살폈다. 정말 프랑스어 번역관을 찾고 있었고 복지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가장 중요한 건 사무실부터 별장이 버스 3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려오는 눈까풀을 쥐어뜯으며 밤새 이력서를 작성해 메일로 전송한 다음에야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성연신은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서재에서 몇 시간 동안 재무에 관한 서류를 살폈다. 피곤함에 머리가 지끈거리자 그는 정원을 산책하며 바람을 쐴 생각으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님방을 지나갈 때 성연신의 눈에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는 불빛이 들어왔다.

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가까이 다가가 방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헐렁한 자주색 실크 잠옷을 입은 여자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그녀의 하얗고 곧게 뻗은 목선을 비추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성연신은 깜짝 놀라 큰손을 뻗어 방문을 닫았다.

‘쾅’ 하는 소리에 돌연 잠에서 깬 심지안의 귀에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원까지 걸어 나오고 나니 성연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조금 전 제 방문을 두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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