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시영은 밖에서 더욱 다재다능한 모습을 선보였다. 누구나 시영을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지혜롭고 유머러스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시영의 마음속 공허함이 점점 커져갔다. 그 고통을 어디에도 발산할 수 없었다.그래서 시영은 매일 밤 케빈을 괴롭히려고 했다. 시영은 케빈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케빈을 괴롭혀도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영이가 그를 좋아하던 시절처럼, 시영이가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영의 화려한 외모에서 피비린 내가 나기 시작할 즈음, 그녀는 도준의 가족이 폭동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모든 사람들은 도준 일가가 죽었다고 말했다.시영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강했던 도준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었는지.민씨 가문은 어두운 구름에 휩싸였고 민용재가 마지막 승자가 되었다.그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시영은 유학을 선택했다. 낯선 집에서 시영은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창문을 보자 시영은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손에 든 술병을 창문에 내리쳤다.창문은 질이 좋아서 깨지지 않았다. 시영은 만족하지 않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집어던졌다. 결국 “팡”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졌다. 밖의 비와 눈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신선한 공기와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커튼이 휘날렸다.시영은 앞뒤로 몸을 흔들며 크게 웃었다. 그녀는 바닥의 유리 조각을 무시하고 다가가 손을 들어 밖의 빗물을 받았다.그 순간 누군가 시영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거 놔!”케빈은 처음으로 시영의 명령을 어기고 그녀를 침대에 놓고 약을 찾아 그녀의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치료해 주었다.케빈은 눈썹을 찌푸린 채로 시영의 상처를 소독해 주었다. 시영의 발바닥은 이미 피투성이였다.케빈이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시영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는데, 시영은 그가 조심스럽게 붕대를 감는 모
시영은 자극을 받은 듯 케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더러워서 구역질이라도 나는 거야?”“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니까 넌 나를 더럽다고 생각할 자격 없어!”“지금 이대로 가면 오늘 당장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빈은 시영의 목덜미를 잡고 세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추기 직전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시영은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배신에 대해 사과하는 것인지 물을 틈도 없었다. 케빈의 뜨거운 몸과 시영의 뜨거운 몸이 맞닿자 시영은 드디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몸을 얽혔다. 시영은 그날 처음으로 케빈의 통제 불능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케빈은 그녀를 꼭 껴안고 마침내 그 선을 넘었다.육체적 쾌락이 시영을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같았다. 시영은 케빈의 어깨를 깨물었지만 케빈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안았다.그 후, 케빈은 시영을 씻기고 깨끗한 방으로 데려갔다. 그가 일어설 때 시영은 그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어디 가?”케빈은 어둠 속에서 시영을 바라보았다. “저는 보디가드일 뿐이니 아가씨와 함께 잘 수 없습니다.”“허.”시영은 비웃 듯이 말했다. “꺼져!”시영은 바깥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케빈이 침대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속죄였음을 의미했다.케빈은 시영을 원하지 않았고 시영을 사랑하지 않았다.문밖.케빈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시영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그날 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시영이가 도망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왜 그 생일 선물을 주지 못했는지. 케빈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기에 변명하지 않았다. ‘아가씨, 제발 저를 미워해 주세요. 아가씨가 저를 미워하고 괴롭혀 주셔야 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저를 썩어가는 진흙으로 보고 마음껏 짓밟아도 좋으니
그 후 5년 동안 케빈은 시영을 따라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종종 도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그가 어떻게 경성 지하 세계를 장악했는지, 얼마나 잔인하게 권력을 탈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5년 만에 그는 민씨 가문의 후계자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민도준으로 변했다. 민씨 저택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가 되었고 도준은 혼자서 민씨 가문을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민상철도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민용재는 이런 강적을 만난 덕분에, 시영의 집안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시영은 더 이상 도망칠 필요 없이 이 시기에 귀국했다.5년이 지나자, 시영에게는 더 이상 소녀의 풋풋함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행동에서 여성의 매력을 발산했다. 시영은 쾌활하고 당당하며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시영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다.그중 잘생긴 혼혈 남자 한 명은 시영을 자주 웃게 했고 시영은 그와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케빈은 묵묵히 그가 하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당신의 눈이 정말 매력적입니다.”시영은 가볍게 웃었다. “정말요? 설마 제 눈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시는 말이에요?”남자는 더욱 열정적으로 대시를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남자는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며 아쉬운 듯 말했다. “꼭 전화해 주세요.”민씨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케빈은 시영이가 차 안에 두고 내린 명함을 보더니 그녀가 내린 후 신속히 그것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그리고 시영을 대신해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이번에 민씨 저택으로 돌아오자 집안에는 못 보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민승현의 약혼녀였다. 시영은 그녀에게 매우 관심을 보였다.시영의 예상대로 여자는 제수씨의 부인으로 도준과 함께했고, 심지어 그 거만한 도준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시영은 그녀와 친구가 되었고 마침내 백제 그룹의 핵심에 들어갔다.시영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고 도준이가 민씨 저택과 백제 그룹을 장악하면서 케빈은 점점 쓸
케빈은 경성을 떠나던 날 자신에게 육신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황야로 추방된 기분이었다.케빈은 시윤을 아가씨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아가씨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다행히도 시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도준이었다. 시윤은 케빈보다 더 대담했다. 그녀는 도준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남자는 다가가기만 해도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데 더구나 그와 얽히려 하다니.하지만 이런 일은 케빈과 상관이 없었다. 시윤을 따르던 중 케빈은 자신을 대신한 남자가 송민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송민우는 시영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이다. 시영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또한, 시영이가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입장권이기도 했다.케빈은 자신의 후반생이 이대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재혁이 그를 찾아왔다.비록 케빈이 시영에게 손댄 사람들을 죽였지만 민용재 일가는 여전히 그때의 동영상을 빌미로 케빈을 위협했다. 그래서 케빈은 이번에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완전히 끝내기로 했다.사실 케빈은 감옥에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용서받을 기회를 너무나 필요로 했기에 스스로 자수했다. 케빈은 시영의 마지막 칼이 되어 자신의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인생을 끝내려 했다.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것은 시영이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시영은 생각했던 것처럼 평온하게 지내지 않았다. 시영은 화를 내며 케빈의 생각을 지적했고 죽으려는 케빈을 막아 나섰다.왜...자신은 이렇게 썩어빠진 존재인데 시영은 왜 여전히 자신을 살리려는 걸까. 혹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쿵-천둥소리가 울리며 시영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눈을 뜨자 케빈이 보였다.케빈이 돌아왔다.시영은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케빈은 떼어내려 했지만 끈질기게 시영에게 붙어있는 독종 같은 존재였다.케빈이가 떠난
몇 분 후, 케빈이 돌아왔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손을 내리고 있었다.시영은 말없이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가슴속의 공허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감을 느꼈다. 시영은 케빈의 검은색 정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의 벗어.”케빈은 외투를 벗었다. 속에 입은 하얀 셔츠에는 이미 피가 배어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채찍에 맞은 상처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물에 젖었고 치료하지 않아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시영의 허락이 없었기에 케빈은 스스로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셔츠를 벗을 때 피부가 당겨지면서 케빈의 이마가 잠시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에 외투를 벗어던졌다.“이리 와.”시영은 발끝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케빈은 순종적으로 다가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시영은 의약 상자를 열고 알코올과 과산화수소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알코올을 집으려다 잠시 멈추고 과산화수소를 집어 들었다.차가운 액체가 상처에 닿는 순간 케빈은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고 고통을 기다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영이가 사용한 것은 알코올이 아니라 과산화수소였다. 상처에서 거품이 이는 것을 보며 케빈은 놀란 표정으로 시영을 한 번 쳐다보았다. 케빈은 그녀가 실수한 줄 알았다.“아가씨...”“닥쳐!”시영은 거칠게 상처를 소독한 후 가정의를 불러왔다. 그사이 시영은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가정의는 케빈의 몸에 종종 나타나는 상처에 익숙해졌지만 그의 조수인 청순한 소녀가 숨을 내쉬었다.“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다니,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가정의는 그녀를 꾸짖었다. “헛소리하지 마.”소녀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치료를 마친 후 방에서 나온 가정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에서 의사로 일하려면 벙어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해. 알겠어?”“삼촌,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의사로서 환자를 걱정하는 게 뭐가 잘못이에요?”가정의는 소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넌 책만 봐서 바보가 된 거야. 어쨌든, 기억해. 말은 적게 하고 참견도 적
민지가 떠난 후 케빈은 문을 닫고 침실 앞으로 가서 두 번 두드렸다.“아가씨.”침실 안에서는 오랫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케빈은 다시 두드리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기분이 안 좋으니까 꺼져.”케빈은 팔의 상처를 내려다보며 방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시영은 이 보름 동안 채찍질을 제외하고는 케빈에게 모질게 대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무릎을 꿇는 케빈에게 뺨을 몇 대 때리는 정도였고 예전처럼 고문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케빈은 시영의 태도가 예전과 다름을 느꼈다. 그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한 번 버림받은 적이 있는 케빈은 이번이 두 번째 예고일까 봐 두려웠다.지난번 시영이가 그를 버리며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개처럼 말을 잘 듣네. 정말 재미없어.”시영이가 또다시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너무 두려웠던 것이다.그래서 오늘 케빈은 시영의 명령을 일부러 조금 늦게 수행했고 그 결과 처벌을 받았다.고통이 밀려오는 순간 케빈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케빈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시영이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영은 더 이상 상처로 그를 괴롭히는 데 흥미가 없었고 그더러 스스로 의사를 찾아가 치료하도록 했다.시영이가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이튿날.시영이가 회사에 가보기로 했기에 케빈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려 했으나 시영이가 입을 열었다. “기사를 불렀으니 이만 돌아가.”케빈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전 아가씨의 안전을 지켜드려야 합니다.”시영은 비웃으며 말했다. “지금 누가 나를 해치겠어?”케빈은 말문이 막혔다. 시영의 현재 지위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해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케빈 역시 쓸모가 없어졌다.케빈은 그 자리에 서서 시영의 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오랜 시간 동안 케빈은 매일 시영과 함께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자처럼 시
시영이가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자 케빈은 방 문을 열었다. 이때 문 앞에 앉아 있던 민지가 벌떡 일어섰다. “하하! 저한테 딱 잡혔죠!”가벼운 목소리가 케빈의 기억을 자극했다. 케빈의 눈앞에는 소녀가 그의 앞에 뛰어와 치마를 휘날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케빈 오빠, 어디 갔었어? 드디어 찾았네.”케빈이가 잠시 정신을 잃은 동안 민지는 이미 그를 지나쳐 그의 방을 보았다. 민지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이런 곳에서 지내셨던 거예요?”어두운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심지어 전등조차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 방안에는 곰팡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민지는 직접 보지 않았다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민씨 저택에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을 것이다.민지가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케빈은 문을 닫고 그녀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민지가 따라오며 물었다. “케빈 씨는 시영 아가씨의 보디가디 아닌가요? 그렇다면 케빈 씨의 지위가 가장 높을 것인데 왜 이런 곳에서 지내는 거죠? 그리고 몸의 상처는...”민지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시영 아가씨를 화나게 하신 거예요?”민지는 케빈의 냉랭한 눈빛을 발견하지 못한 채 계속 말했다. “시영 아가씨처럼 친절하시고 젊은 나이게 백제 그룹의 부대표이신 분이 사람을 이렇게 때릴 리가 없잖아요. 그럼 직장 내에서 따돌림당하신 거예요?”케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민지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케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민지를 쳐다보았다. 그가 무언가를 하려던 순간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쪽이 구민지 씨인 거죠?”시영이었다.그녀는 방금 회사에서 돌아온 듯 옅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회색 바지 아래에는 구두를 신은 모습이었다. 시영은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민지는 말로만 듣던 민씨 가문의 아가씨가 자신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야기를 하자 격동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네, 제가 바로 구민지입니다. 제 삼촌이 민씨 저택의 가정의
이 말을 듣자 시영이가 와인 잔을 잡던 손이 잠시 멈췄다. 시영은 태연하게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제가 어떻게 도와주길 바라는 거죠?”민지는 완전히 시영의 매력에 빠져있었기에 케빈의 상처가 그녀와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본 것을 모두 말해 주었다. “케빈 씨는 아가씨의 개인 경호원인데 살고 있는 방은 너무 초라해요. 게다가 온몸에 새로운 상처와 오래된 상처가 겹쳐 있어요. 분명 누군가 계속 그를 괴롭히고 있어요. 케빈 씨는 너무 불쌍해요. 아가씨께서 좀 도와줄 수 없을까요?”방 안은 몇 초간 고요했다.시영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마치 한 겹의 안개가 낀 것처럼 속을 알 수 없었다. 시영은 케빈을 쳐다보며 말했다. “케빈, 민지 씨가 그렇게 걱정하니 방을 옮겨서 지내도록 해. 그리고 앞으로는 민지 씨가 너의 상처를 책임지게 될 거야.”케빈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버림받을 것 같은 공포가 다시 그를 휩쓸었다. 케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고마워요, 아가씨!” 민지는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케빈을 대신해 시영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케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시영은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케빈, 이제 필요 없으니 이만 가서 쉬어.”케빈은 감히 시영의 명령에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 민지는 케빈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자 시영은 미소를 지으며 농담하듯이 물었다.“민지 씨는 케빈에게 관심이 있나 봐요?”민지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케빈 씨는 정말 신비로운 분인 것 같아요.”신비로운 남자는 천진난만한 소녀에게 가장 매력적이다. 시영은 민지를 보자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민지는 말문이 터져 흥미진진하게 물었다.“케빈 씨는 원래 이렇게 말이 없나요?”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지금과는 다른 미소를 띠었다. “네, 케빈이 처음 제 경호원이 되었을 때 제가 일부러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