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명의 왕비: Chapter 101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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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1화
초왕부를 찾은 현비여기가 공평한 사회가 아니고 원경릉의 능력도 한계가 있음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이때 어떤 하인이 달려와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하더니, 원경릉이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왕비가 어째서 하인 숙소에 있을 수 있지?“무슨 일이야?” 기상궁이 물었다.하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원경릉에게 예를 갖춘 후: “탕대인께서 상궁께 간식을 좀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궁에서 온 전갈에 따르면 현비마마께서 초왕부로 오신다고 합니다.”“현미마마님이 오신다고?” 기상궁은 곧 힘을 내서, “알았네, 자네는 탕대인에게 가서 내가 적당한 것으로 준비하겠다 이르게.”기상궁은 현비가 시집올 때 친정에서 데려와 우문호가 분봉왕으로 초왕부로 나가 살게 되자 현비가 내려준 상궁이다.옛날 주인이 오신다는 말에 기상궁은 자연 흥이 돋지만, 반대로 원경릉의 마음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현비는 황궁을 통틀어 원경릉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으로, 이번 출궁으로 아마 우문호가 상처를 입은 사실이 후궁에 알려지겠지? 사실 현비가 이 일을 알고자만 하면 알 방법은 많지만,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현비가 온다는데 명색이 며느리가 화장도 좀 하고 옷도 차려 입어야 한다.이마의 상처는 희상궁이 분을 두껍게 발라 가렸는데도 약간 흔적이 남았다. 마치 도장처럼 상당히 선명하다.원경릉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절세 미녀는 아니라 주명취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지만, 담백하고 맑은 눈빛과 비굴하지 않지만 굴하지도 않는 정신, 침착함은 원경릉 쪽이 앞선다.희상궁이 원경릉과 구리거울에서 눈이 마주치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원경릉의 눈은 이미 잔잔한 바다와 같다.현비가 왕부에 도착할 때는 이미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무렵이었다.한낮의 태양이 작렬하고, 바람은 시원하지만 원경릉이 초왕부 입구에서 영접할 때 여전히 햇살이 강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현비의 봉황가마가 초왕부 입구에 멈춰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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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2화
후궁을 맞아? 현비와 원경릉의 갈등현비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네가 도대체 누구의 미움을 샀길래, 이렇게 심하게 당했단 말이냐?”“소자는 미움을 산 일이 없습니다.” 우문호는 달래듯이: “됐습니다. 괜찮아요. 범인은 이미 전부 죽었으니 소자도 위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에미가 바보인 줄 아느냐……” 현비는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뭘 멍하니 서 있는 거니? 아랫사람에게 왕야께 드릴 탕을 만들어오라고 분부할 줄도 모르느냐? 넌 이런 식으로 시중을 드는구나?”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 뭐 드시고 싶으세요?”현비는 화를 내며: “뭐든 만들어 오라고 시켜야지, 뭐든 안 좋겠어? 다친 사람한테 뭘 먹어야 하는지 까지 물어봐야 하고, 작은 일 하나도 처리를 못 하는구나, 보아하니 이 왕부의 일은 너 혼자 감당이 안되겠다. 사람을 찾아서 너를 대신해 분담을 시켜야지.”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측실 들이는 건으로 온 거지?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 좀 지른다고 겁 먹을 까봐? 아니다 현비를 너무 높게 평가했네, 현비는 소리도 못 지르지.현비는 꼿꼿하게 앉더니 얼굴색을 단정하게 하고, “에미가 이번에 행차를 한 건 네 상처가 어떤지 보는 것 외에 너랑 상의할 일이 하나 있어서 였다만.”우문호는 현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다음에 하시지요, 소자 지금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으니 당분간 말씀 나누기 어렵습니다.”“꼭 지금 얘기 해야 해.” 현비는 강경하게 말했다: “에미가 이미 아바마마께 이 일을 말씀드렸고 아바마마께서도 반대가 없으셨어. 사람을 시켜 주씨 집안 의견만 물어보면 끝이야. 주씨 집안에서만 동의하면 이 일은 성사되는 거지. 게다가 만약 네 아바마마께서 너 대신 언급만 해주시면 주씨 집안도 동의 안 할 수 없는 일, 넌 그저 안심하고 요양하며 상처가 낫는 데만 치중 하려 무나, 혼사는 알아서 할 테니까.”“됐습니다. 그만 말씀하세요.” 우문호는 마음이 복잡했다. 목숨이 걸린 이런 순간에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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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3화
우문호에게 측실을 권하는 현비바로 깔깔 웃으며: “이 못난 녀석아, 당초에 네가 왕비와 한사코 혼인하지 않겠다더니, 이젠 왕비 대신 변명을 다 하는구나. 고작 1년 사이에 무슨 감정이라도 생긴 거니? 절대 잊으면 안된다. 왕비와 정후 두사람이 어떻게 너를 함정에 빠뜨렸는지. 게다가 정후 그 사람 정말 못 쓰겠 더구나, 넌 반드시 주씨 집안의 지원을 얻어내야 해, 그래야 다시 도전해 볼 가능성이 생기지.”우문호는 참다 못해 결국, “어마마마, 이 일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시면 안됩니까? 저는 지금 그런 잡다한 일에 신경을 쓸 상태가 아닙니다.”현비는 한숨을 쉬며, “에미는 다 너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냐. 그 자리는 네가 다투지 않아도, 사람들이 널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냐? 그때 만약 주씨 집안이 가로채지 않았으면 네 어미는 황후가 되었고, 너는 적장자인 황자였어. 쟁취할 필요도 없지 않았느냐?”우문호는 아예 눈을 감고, 싸워?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문호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아바마마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태자를 세운다 해도 이 태자의 자리가 또 얼마동안 이나 평온할 수 있을까? 우문호가 처음 전장에 나갈 때부터 마음속으로 북당을 위해 변방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그러나 이런 그의 모습은 세상에 진취적으로 비쳤고 모든 사람들은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를 노린다고 믿었다.현비는 우문호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고, 투지가 하나도 없어 보이니 화를 참지 못하고, “너 지금 네가 어떤 꼴인지 아니? 다시 이렇게 못 쓰게 되면 아바마마께서 조만간 친왕의 봉호까지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데, 너는 네 어미의 한을 풀어 줄 수 없는 것이냐?”우문호는 돌연 눈을 떴는데 눈빛에 분개하는 기색이 느껴지며, “한을 풀어요? 어마마마는 제가 무슨 한을 풀어 주길 바라십니까? 일어서서 태자의 지위를 쟁탈하는 겁니까?”“왜 이렇게 큰 소리를 내고 그래?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현비는 일어서서 차갑게 우문호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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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4화
주명취에 농락당하는 정후기상궁은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과자와 떡에 먼지가 묻어 더럽혀 진 것을 보고 일 순간 당황해 있는데, 서일이 나오며: “기상궁 일어나요, 현비마마께서 기상궁한테 화난 게 아니라, 왕야께 화가 나신 거니까.”기상궁은 감히 묻지 못하고 그저 땅에 떨어진 떡과 과자를 주워 들더니 물러갔다.현비는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화가 나서 심복을 불러, “아버지께 가서 말을 좀 전하고 오너라. 측실을 들이는 일에 걸림돌이 하나 있다고, 아버지께서 정후를 불러다가 몇 마디 좀 하시라고.” “예!” 심복인 상궁이 명을 받고 갔다.정후는 최근 복장이 터진다. 그날 제왕비가 사람을 시켜 정후에게 제왕부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결국 이틀이나 연달아 갔지만 제왕비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정후는 사실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왕부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족히 반 시진을 기다렸을까, 제왕비의 가마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마음속의 울화를 가라앉히며 웃음을 띠고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며, “제왕비를 뵙습니다!”주명취는 가리개를 걷으며 냉랭하게 정후를 흘깃 보더니, “정후 대감이군요?”“예, 예!” 정후는 막상 제왕비를 보자 말이 잘 나오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주명취는 평소처럼: “정후 대감은 돌아가시지요. 제왕부는 미천한 곳이라 대감님의 위신을 상하게 할까 두렵습니다. 황제 폐하 앞에서 저에 대해 험담이라도 한 두 마디 하시면 큰일 아닙니까, 가세요.”말을 마치고 가리개를 내렸다. 가마는 안으로 들어가고 정후만 그 자리에 푸대접을 받은 채 있다.정후도 어쨌든 후작 집안의 사람인지라 삼일 연속으로 와서 기다렸는데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커다란 굴욕이자 수치로 그 자리에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다.제왕부 문간방 수위의 조롱하는 눈빛을 느끼고 서야 비로소 씩씩거리며 가려고 했다.“정후 대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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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5화
정후부의 속사정, 원경릉 친정에 가기로 하다주명취가 방금 출궁하기 전에 궁중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목여태감을 보내 황제가 경고했다. 고모도 한 바탕 호되게 주명취를 꾸짖었는데, 할아버지를 들먹이지 않았으면 고모도 주명취를 쉽게 용서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원경릉은 도대체 무슨 수로 전부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거지? 실지로 주명취의 예상을 빗나간 일이 일어났다.이 사람은 대비하지 앉을 수 없다, 원경릉을 단속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정후부로, 정후부가 아직도 관직이 필요하다면 원경릉의 꼬리를 집어 올릴 수 있다. 원경릉이 초왕부에서 총애를 받지 못하고, 문호 오빠도 원경릉을 거들떠도 안 보니, 그녀는 친정의 지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후의 말을 주명취는 들어줘야 하고, 협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단지 주명취의 마음 저 밑에 어둡게 드리운 의혹은, 원경릉이 의술을 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예상밖의 일인데다, 그렇게 명철한 생각을 하다니 이전의 단순하고 포악한 행동은 전부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는 계책이었던 걸까? 만약 정후가 단속하지 못하면, 원경릉을 살려 둘 수 없다.정후 쪽 사람이 초왕부에 와서 서신을 전했는데 내용은 노마님의 몸이 좋지 않으시니 원경릉에게 짬을 내서 찾아 뵈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머리속으로 정후부의 상황을 열심히 생각해 냈다.정후부의 노마님 노씨(魯氏)는, 현주(황족의 딸에게 주는 봉호)출신으로 젊었을 땐 예리하고 기세가 등등한 인물로 노마님이 집안을 맡았던 시절엔 정후부가 순풍에 돛을 달아, 정후가 병부 시랑 자리에 오른 것도 뇌물을 쓴 덕이었다. 하지만 8년전 노마님이 병으로 자리를 보전하시고, 의원이 몇 번이나 노마님이 버티지 못하실 거라고 했지만 과연 노마님은 강인한 분이라 꿋꿋하게 버티며 한 고비 한 고비 이를 악물고 넘겼다. 지금은 노마님이 집안을 관장하지 않으시고, 몸의 원래 주인인 원경릉의 어머니인 황씨(黄氏)는 주관이 없는 사람이어서, 정후부의 일체 일은 전부 둘째 노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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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6화
탕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황제와 태상황은 모두 매우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분노도 잠시, 왕비를 내쫓고 나니 궁 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정후부의 성화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득될 것이 많았다.“주씨 집안의 아가씨 일 말입니다. 왕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탕양이 물었다. 우문호는 이런 말을 나누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났지만 부황과 모비가 계속 몰아세우니 언제까지 피할 수 만은 없는 문제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탕양에게 되물었다.“현재 국면으로는 왕야께 확실히 유리한 일입니다. 비록 주씨 집안에 장녀가 제왕과 혼인을 했지만 주수보(褚首辅)는 제왕쪽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태후의 사정으로 인해서 주수보는 항상 걱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태상황께서 줄곧 왕야를 총애하고 있기에 주수보에서도 선뜻 손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일단 왕야께서 주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와 혼인을 한다면 주씨 집안에서 어느 정도 왕야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만약 어느날 제왕의 세력이 약해진다면 주수보에서는 왕야께 전념할 것 입니다.” “보아하니 자네도 모비의 말에 동의하는군.” 탕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국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소인은 왕야께서 권력을 쫓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주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가 후궁도 개의치 않는다면, 왕야께서 주씨 집안과 혼인을 하셨으면 합니다.”“어찌 말의 앞뒤가 안맞는구나.”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게 아니라 현비마마께서는 조정에 세력을 되찾으라는 의미로 혼인을 하라고 하는거지만, 소인은 그저 주씨 가문이 왕야를 보호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본왕이 보호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왕야. 간혹 어떤 일들은 왕야께서 할 수 없어도, 주씨 가문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번처럼 기왕에게 당했을 때, 주씨 가문이 왕야의 편이라면 그들이 기왕에게 압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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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7화
옆에는 원주(原主)의 큰형인 원륜문의 아내 최씨가 노란 꽃무늬 비단 치마를 입고 손목에는 청옥 팔찌를 차고 머리에는 진주와 청옥으로 만든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시건방졌는데, 지금 원경릉을 보는 표정에도 불만족스러움과 사람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물씬났다.그녀의 옆에는 원주(原主)의 여동생인 원경병(元卿屏)이 있었다. 올해 열다섯살이 된 그녀는 얄쌍한 얼굴에 동그란 두 눈은 생기가 가득했고 입술은 길게 좌우로 늘어뜨려 있었는데 누가봐도 예쁘다고 느껴지는 외모였다. 그 외에 두 명의 첩의 딸이 있었는데 첩의 소생이라 그런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있고 옷매무새도 화려하지 않았다. 원경릉이 둘째 노마님을 보았는데 그녀는 풍만한 체구에 동그란 얼굴에는 나이에 비해 주름도 별로 없었다. 머리도 염색을 한건지 흰 머리 하나 없었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비단으로 둘러쌓인 사람 같았다. 머리는 높게 땋아올렸고 그 위에는 화려한 비녀가 꽂혀있었다. 모르는 누가 보면 이 집안의 안방마님으로 오해하기 쉽상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는데, 그 웃음에는 다소 조롱감이 있었다. 이로써 정후부에서 황실의 총애를 잃은 왕비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듣자하니 조모의 병세가 심해졌다고 하시던데, 지금은 어떠신지요?” 원경릉이 물었다. 둘째 노마님이 바깥을 한번 슬쩍 보았다. 그녀는 원경릉이 황실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조모께서는 그냥저냥 하신다. 이번에는 네 아버지가 너를 이리로 부르신거니까 서재로 가보거라.”원경릉은 그녀의 말투에서 그녀가 자신을 반기지 않고, 접대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서재로 향했다. 원경릉을 만나려면 그냥 자신이 황실로 오면 되지 굳이 조모가 아프다는 거짓말까지 하며 나를 이 곳으로 부른건가? 조모가 아프시다길래 아침 밥도 먹지 않고 왔는데 말이다. 이른 아침에 공복이라 그녀는 손발이 후들거리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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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8화
아침상이 준비되었다. 원경릉은 아침에 달고 느끼한 음식을 먹지 않기에 계화떡은 먹지 않고 죽만 먹었다. 계화떡을 차려놓고 손도 대지 않은 원경릉은 일어서서 둘째 노마님에게 말했다. “둘째 노마님. 결례를 범했습니다.” 둘째 노마님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빨리 가보게. 부친이 기다리시네.” 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서재로 걸어갔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난씨가 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허세부리는거 보셨습니까? 왕가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우리 정후부의 도움없이는 죽 한사발 얻어먹지도 못하면서! 듣자하니 왕야께서 욕은 기본이고 때리기까지 하신다던데. 다들 원경릉 이마에 난 상처를 보셨지 않습니까? 분명 초왕에게 맞은겁니다! 시집간지 1년이나 됐는데 아직 합방 소식도 없고, 쯧쯧. 비웃음 당해도 쌉니다!”이 말을 듣고 원륜문의 아내 최씨가 입을 열었다. “합방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태후께서 초왕에게 약을 먹여서 겨우 합방을 했다고 합니다. 보아하니 초왕이 원경릉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다들 그만하게. 바깥사람이야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지만 내부 사람인 우리가 덩달아 소란을 피울 이유가 있느냐? 다들 각자 방으로 돌아가거라.” 이를 듣고 있던 둘째 노마님이 정의로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약간 통쾌한 표정이었다. 약을 먹고 합방을 하다니, 초왕이 얼마나 그녀를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초왕과 합방을 했다고 초왕이 자기를 달리 보고 있다고 친정으로와서 왕비 행세를 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원경릉은 이런 말을 들으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원경릉은 비녀를 꽂았다. 그녀는 규방에 있었던 일을 어느정도 알고 있던 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즉시 그녀를 따라갔다. 원경병이 원경릉의 소매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쓸모 없는 짓 하지마세요. 왕비가 됐는데도 왕야께 총애를 받지 못하니까 다들 비웃는겁니다.”원경릉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말했다. “비웃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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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9화
“태상황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태상황?” 원경릉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후가 벌떡 일어났다.예상하지 못한 인물이라 정후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왜 너를 궁으로 부른 것이냐?”“병수발 때문입니다.”정후의 낯빛이 약간 부드러워졌다. “태상황께서 너에게 병수발을 들라고 하셨다는 말이냐? 그럼 이번 기회를 통해서 태상황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원경릉은 그의 음흉한 속내가 눈에 훤히 보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로잡기는 커녕 제가 태상황님께 미움을 샀으니 궁에서 쫓아낸 것 아닙니까.”“너는 잘하는게 무엇이냐? 모처럼 온 좋은 기회를 다 망쳐버리고! 무엇이 태상황을 분노하게 만든것이냐? 혹시 네가 태상황과 황제 앞에서 제왕비를 폄하한 것 아니냐?” 정후가 분에 못이겨 탁자를 내리쳤다.“예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원경릉은 사건에 대해 해명하는 것도 진절머리가 났다. 그녀에게는 정후부가 왕가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네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제왕비와 잘지내지는 못할 망정! 당시에 너를 믿은 내가 바보 천치였어! 당초에 초왕이 너를 총애하게끔 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너를 초왕부로 시집을 보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게야! 왕가에 미움을 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주씨 집안의 미움까지 사다니!”“밖에 녹주가 서 있습니다. 녹주는 왕야의 사람인건 아시지요? 제가 정후부에서 나눴던 대화와 행동 하나하나 왕야 귀로 들어갈테니 부친께서는 말을 조심하시는게 좋을겁니다.”“어찌…….” 정후는 지금 맘 같아서는 원경릉에게 욕을 한바가지 하고 싶었다. 그는 당초 원경릉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다. 지금 그녀는 궁에서 제왕비의 미움을 샀고, 주씨 집안에서도 그녀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지 않는가? 현재 정세를 보니 그의 병부상서 지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일 당장 제왕부에 가서 제왕비에게 사죄하거라.” 정후가 밖에 있는 녹주를 의식한 듯 조용히 말했다.“사죄할 이유가 없습니다.”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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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0화
노마님이 워낙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방 안에는 손씨 아주머니만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원경릉이 돌아온 것을 보고 손씨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왕비 오셨습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원경릉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가식적인 웃음이 난무하던 정후부에서 진정어린 미소를 보니 괜히 마음이 놓였다. “조모님의 건강은 어떠십니까?” 원경릉이 들어가려고 하자 손씨 아주머니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괜찮으십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도 못드셨는데 오늘은 죽도 절반 이상 드셨습니다.”원경릉은 손씨가 왜 앞을 가로막은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조모를 뵈어야 겠습니다.”손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왕비님 돌아가시는게 좋겠습니다. 노마님께서 아직 화가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왕비님 이름을 들으면 치를 떠셨습니다.”원경릉은 노마님이 예전부터 원경릉이 왕궁으로 시집가는 것을 반대했고 심지어 혼인을 하기로 한 시점에도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허영심만 가득차 있다며 심하게 질책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전에도 원주(原主)가 친정집에 찾아와도 조모는 문을 닫고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았다. ‘정후부에도 이렇게 사리에 밝은 사람이 있다는게 참 다행이군’원주가 황실에 들어가려고 우문호와 혼인을 택한 것은 참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원경릉은 손씨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제가 조모께 중요하게 여쭈어야 할게 있어서 어제 막 궁에서 나온겁니다.” 라고 말했다.손씨는 어제 궁에서 막 나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노마님께서 지금 몸이 안좋으시니 주의하세요.”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원경릉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창문을 모두 닫아놓아 빛 한줄기 들지 않았다. 가을의 찬바람이 문과 창틈 사이로 스며들어 몸이 금방 으스스해졌다. 원경릉은 침상에 누워있는 노마님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살이 하나도 없었고, 몸은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이 앙상했다. 노마님은 기력이 없는 가운데에도 원경릉을 알아보고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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