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비로 환생했다니!의 모든 챕터: 챕터 271 - 챕터 280
317 챕터
271화 만아를 쫓아내다
저수부는 자신이 정말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술을 올리라 명했다. 그는 소요공과 나한 침대에 앉아 가부좌를 한 채 술을 마셨다.“다섯째 그 녀석도 그래, 좀 쩨쩨했지.”소요공이 웃으면서 말했다.“너무 마음에 두지 마.”저부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쩨쩨하다고?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공처가인 거겠지.”소요공이 웃으며 술잔을 들어 그의 것과 부딪쳤다.“그 말에 반박하지 않겠어. 확실히 그랬어. 여인을 위해 정말 필사적이었지, 자네의 미움을 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이야.”저수부가 그를 흘겼다.“그는 황실의 사람이야, 내 미움을 사는 게 어때서? 그럼 안되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는 건 그렇다 쳐도, 자네와 내가 무슨 사이인데 어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자네에게 좋은 술을 대접하면 안됐었어.”말을 마친 그가 손을 뻗어 가로채려 했다.소요공은 그의 손을 찰싹 때리며 입을 쩝쩝댔다.“됐어, 됐어. 인색하긴, 두 마디 말했다고 귀에 거슬려 할건 뭐람. 요 몇 년 동안 저씨 집안에서 좀 제멋대로 굴었어? 자네 정말 아랫사람들을 관리해야겠어. 어디서 온 배짱인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지게 구는 거야? 어린 계집이 감히 친왕에게 행패를 부리며 그가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하질 않나.”그가 자신의 얼굴을 때렸다.“낯은 어쩔 거야? 낯은? 내가 다 자네 대신 부끄럽군.”저수부가 차갑게 말했다.“관리라고? 적게 한 줄 아나? 내가 바쁘단 걸 자네도 알잖아. 부중의 일은 다 맏이한테 맡겼지만 그는 성정이 모질지 못해. 됐네, 됐어. 운이 다 한다면 그건 조상님의 복이 다 했다는 뜻이야. 내가 관 냄새를 맡을 나이에 아직도 그들을 관리해서 뭐하나? 죽을 사람은 죽어야지. 심란하지 않게 말이야.”“”자넨 죽어서도 편치 못할까 봐 걱정되는 군. 언젠가 자네가 들들 볶여 관에서 뛰쳐나올 듯싶어.”소요공이 회향콩을 먹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수부가 손을 내저었다.“이 얘기는 그만하지. 자네가 보기엔 초왕은 어떻던가?”“말했잖아, 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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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화 분명 아주 아플 테죠
만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온몸이 지저분한 소년의 눈빛은 차가웠고 적의가 가득했다. 그녀가 눈물을 훔치고는 말했다.“내가 네 집에 앉은 거야? 미안해, 자리를 좀 옮길게.”“넌 손발이 멀쩡하잖아. 일거리를 찾아.”소년이 냉랭하게 말했다.“왜 구걸을 하냐?”만아가 울음을 터뜨렸다.“난 남강인이야. 어느 집안에서도 남강 출신 여종을 원하지 않아.”“부두에 가서 큰 짐을 날라. 넌 손발이 튼튼하고 힘이 있잖아.”소년이 앉더니 배를 만졌다. 오늘도 역시 헛물만 켰다. 그는 이틀 동안 먹을 것을 얻지 못한 채 뱃속 가득 물만 채웠다.만아가 몸을 일으켜 떠났다.얼마 후 그녀가 돌아왔는데 손에는 찐빵 두 개를 쥐고 있었다. 그녀가 소년에게 찐빵을 건넸다.“내가 사주는 거야.”소년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너….”“훔친 게 아니고 내가 산 거야.”그녀가 자신의 귓불을 매만졌다. “원래 주인 댁에서 은귀걸이를 주셨어. 그걸 팔아서 돈 좀 바꿨지.”“너 거지가 아니었어?”소년은 그것을 건네 받아 조금씩 떼먹으며 오랫동안 씹고 나서야 삼켰다.“아니야.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 같아.”만아가 서글프게 말하며 앉아서 소년을 바라봤다.“부두에 큰 짐을 나르는 곳 말이야, 여인을 받아줄까?”소년이 고개를 저었다.“아마 안 받아 줄걸.”만아가 한숨을 내쉬며 벌겋게 부은 눈을 문질렀다. 어쩌면 좋을 지 몰랐다.소년이 말했다.“너 권법 할 줄 알아?”“조금.”소년이 말했다.“내일 서집(西集)에 한번 가봐. 어떤 집안에서 권법을 하는 시녀를 구한다더라.”“나는 남강인이라니까.”만아는 일반 사람들이 남강인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년은 조금 짜증이 났다.“시도는 해보란 말이야. 안되면 그때 가서 다시 보면 되고.”“응, 알겠어.”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년은 참 괜찮은 사람 같았다.***한편 우문호는 왕부로 돌아가서 어떻게 저명양에게 죄를 물었는지, 어떻게 가법으로 다스려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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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희씨 어멈과 아사는 요 이틀 사이 조금 바빴다. 부중에는 일손이 부족했다. 특히 나중에 어린 세자가 태어나면 각종 일로 더 바쁠 터였다. 때문에 왕부에는 믿을 만한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좋기는 권법을 할 줄 아는 자여야 할 것이다. 이 건의는 아사가 했다. 왕비가 출입할 때 신변에 권법을 할 줄 아는 시녀가 따라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하여 다음날 아침부터 아사는 희씨 어멈을 이끌고 서집에 갔다. 그들은 초왕부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몇몇 실력이 좋은 시녀를 구해 부인을 시중들게 한다고 했을 뿐이다. 내세운 가격이 퍽 훌륭한지라 매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적합한 이를 찾지는 못했다. 아사의 요구는 매우 높았는데 그녀와 십 수를 겨룰 수 있어야만 받아들이려 했다.안타깝게도 삼 수를 버티는 이도 적었다.오늘도 좌판을 벌렸더니 노예상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사가 손을 내저었다.“됐네, 우리가 알아서 구하겠어.”그녀는 노예상을 믿지 않았다. 말하는 법, 성격까지 모든 항목을 가르쳤으니 진심을 보아낼 수 없었다.노예상이 웃었다.“이미 이, 삼 일이나 나오셨지만 한 사람도 못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소인 수중의 이들을 한번 보시지요. 각양각색의 미녀들이 다 있답니다.”아사가 언짢은 듯 말했다.“누가 언제 미인들을 요구했어? 우리가 원하는 건 마음가짐이 순수하며 올곧고 권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저리가, 길 막지 말고. 이제 곧 사람이 올 테니.”노예상이 재미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이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튼튼해 보이는 소녀였다. 아사는 먼저 권법에 대해 물어봤다. 소녀는 자신의 힘이 세다며 단번에 쇠솥을 들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그러나 겨뤄보니 아사는 발을 한 번 걷어차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쇠솥을 들어올리는 것은 쓸모가 없어 보이네요.”아사가 탄식했다.희씨 어멈이 웃었다.“그만 하시지요, 몇몇 튼튼한 이를 찾으면 될 겁니다. 요즘 무예를 배운 소녀들은 아주 적으니까요.”희씨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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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화 기왕비의 불만
서일이 아사를 쳐다보며 물었다.“뜬금없네요. 그냥 본 것 같다고만 왜 뻔뻔스럽다고 그래요?”“분명 그녀가 예쁘니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한 거겠죠. 전 당신과 같은 호색가들을 많이 봤어요.”서일은 얼이 빠져있다가 그녀를 덥석 끌어당기며 벽으로 밀쳤다.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아사를 자신의 커다란 그림자 속에 가뒀다. 그가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며 근엄하게 말했다.“똑바로 말해봐요, 누가 호색가라는 겁니까?”아사는 깜짝 놀라서 얼른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며 밀쳐냈다. “무슨 짓이에요?”그녀가 밀치면서 손가락이 서일의 눈을 찔렀다. 서일이 급히 손을 올려 찰싹 때렸다. 아사도 손을 뻗어 때렸다. 하여 두 사람은 결국 겨루기 시작했다.서일이 크게 화를 냈다.“왜 자꾸 생트집을 잡아요? 당신 성이 원씨라서 내가 두려워한다고 생각해요? 계속 나한테 멍청하다 하는 것도 당신에게 따지지 않았어요. 지금은 아예 저더러 호색한이라면서 제 눈알을 파버리려고 하고 있네요.”아사가 화를 냈다.“난 그저 당신과 농담한 것 뿐이에요. 돼지 머리라서 모르는 거예요?”“당신이야말로 돼지 머리에요.”“댱신이 돼지 머리가 아니면 누가 돼지 머린데요?”아사가 불쑥 앞으로 몸을 날리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서일은 그녀가 또 손을 대려고 하자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쳤다.“꺼져요…”아사는 머릿속이 ‘펑’하고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이 머문 위치를 보노라니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녀가 하늘을 뒤흔들 듯 소리를 질렀다.“서일, 이 망할 호색한 같으니라고. 감히 나를 희롱해?”그녀가 펄쩍 뛰며 서일의 뺨을 갈겼다. 서일은 한 손으로 뺨을 감싸며 다른 한 손을 거뒀다. 그가 경악에 차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가슴을 쳐다보았는데 그의 얼굴빛이 공포로 물들었다.“세상에, 당신이 여인이라니.”“빌어먹을. 내가 여자인걸 몰랐어요?”아사가 노성을 질렀다. 서일이 목을 움츠러뜨리며 억울한 듯 말했다.“당신 항상 왁자지껄했잖아요. 누가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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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화 무슨 까닭으로
원경능은 처음에 정신을 딴 데 팔며 대충 듣고 있었지만 그녀의 비분에 가득 찬 말투를 듣고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여인으로서, 기왕비도 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다.선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쓸쓸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한 사람이 독한 마음을 먹고 악랄한 수단을 사용했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그녀가 처참한 일을 당해도 공감이 가지 않았다.원경능이 말했다.“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생각할 줄 안다는 거예요. 어떤 일은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죠. 모든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선(線)이라는 게 있어요. 모든 사람이 그래요. 당신은 많은 악행들을 저질렀어요. 그건 모두 당신이 기꺼이 원해서 한 일이죠. 누구도 당신에게 강요한 적 없어요. 기왕이 당신보다 백배는 악하다고 해서 당신이 무고한 게 아니에요.”“난 무고하지 않아요. 난 내가 무고하다고 말한 적 없어요.”기왕비는 약간 흥분한 듯 보였다.“당신이 내 죄상들을 셀 필요는 없어요. 난 내가 병에 걸린 게 인과응보란 걸 알아요.”“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원경능이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기왕비는 낙담한 듯 보였다.“당신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우린 말이 통하지 않을 겁니다. 전 당신이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호소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기왕의 무정함을 털어놓거나 공감할 사람을 찾아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해 변명하려 하죠.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될 수 없어요. 사람 잘못 찾았어요.”기왕비가 냉랭하게 말했다.“뭘 그렇게 기고만장해있어요? 당신은 지금 다섯째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자신의 처지를 잊을 만하죠. 만약 당신이 시집 오자마자 다른 여인들과 총애를 다퉈야 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부군의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면 당신도 저처럼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을 거예요.”원경능이 고개를 저으며 엄숙하게 말했다.“저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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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화 희씨 어멈에게 부탁하다
삼 일 동안 단식하며 배를 곯았다. 그녀는 실로 물을 제외한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평생 이렇게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쟁취해 본 적 없었다. 심지어 이 순간, 우문호가 그녀를 대들보에 매달아 조여와 숨을 쉴 수 없을 때 조차, 심지어 가법에 의해 서른 대를 맞게 했을 때조차 그녀는 그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을 뿐 그 사랑이 줄어들지 않았다.그가 격노했던 순간이 그녀에게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치 채찍을 들고 휘두르며 시녀들을 때리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같은 부류였던 것이다.그녀의 침대 옆을 지키던 저 대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계집애가 어쩜 이리 고집이 센 것이냐? 대체 우문호가 뭐가 좋다고? 꼭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네 조부의 화를 돋워야겠느냐, 기왕에게 시집가면 좋지 않은 것이냐? 기왕비는 보기에도 오래 살 것 같지 못하니 네가 시집간다면 얼마 되지 않아 정비가 될 것이다. 무엇이 아쉬워서 초왕에게 모욕을 받겠다는 게야? 원경능은 현재 임신 중이다, 만약 아들을 낳는다면 그 지위가 산처럼 굳건할 테지, 네가 흔들 수 없단 말이다.”삼 일 동안 타일러보고 혼도 내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으니 저 대부인은 가슴이 아프면서도 화가 났다. 특히 몸에 난 상처를 보면 화를 내다가도 그래도 가슴이 아팠다.저명양은 맥없이 엎드린 채 한사코 꼼짝하지 않았다.저 대부인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큰 딸 저명취를 바라보았다.“네 동생 좀 타일러 보거라.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지 말고.”저명취는 더는 오고 싶지 않았다. 모친이 세 차례나 사람을 보내 통보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저명양의 규방에 한 발작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모친의 말을 듣고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어찌 타이를 수 있겠어요? 모친도 말씀 하셨잖아요. 그녀가 들어야지 쓸모가 있다고요. 그녀가 듣지 않는데 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그럼 가세요.”저명양이 나른하게 말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투는 매우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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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화 모든 것은 부득이했다
희씨 어멈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티 나지 않게 자신의 손을 거두었다. 그녀가 재차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대부인, 어서 앉으시지요.”저 대부인은 희씨 어멈을 이끌고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든 그녀는 아사가 여기에 서있는 것을 보고 따라온 시녀라고 생각하며 명령했다.“너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일이 있으면 부를 터이니.”아사가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요, 전 여기에서 희씨 어멈과 함께 하겠어요.”저 대부인은 잠시 멍해졌다.“너….”희씨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원씨 집안의 이 아이는 원래 무지막지합니다.”저 대부인은 그녀가 원씨 집안의 계집이라는 말을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 원씨 집안의 다른 한 계집은 제왕부의 측비였다. 명취와 한바탕 난리를 피웠던 바로 그 거추장스러운 물건 말이다.아사는 검은 안은 채 서있었다. 턱을 조금 치켜든 모습이 냉랭해 보였다. 결코 저씨 집안의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아사가 이 곳에 있으니 저 대부인은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차는 이미 두 잔을 마신 상태였지만 저 대부인은 여전히 인사치레로 몇 마디 겉발림 말을 했을 뿐이었다.따분해진 아사는 몸을 돌려 문 어구에 서있었다. 어쨌든 방안에는 저 대부인과 희씨 어멈 두 사람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 밖에 있었다. 방금 나가지 않은 것은 그저 저 대부인의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저 대부인은 그녀가 나가는 것을 보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희씨 어멈을 보며 말했다.“사실대로 말하겠네. 오늘 어멈을 부른 것은, 어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네.”“소인이 어찌 ‘부탁’이라는 말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시지요, 대부인.”희씨 어멈이 말했다.저 대부인이 희씨 어멈의 손을 잡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슬프고 가여운 눈빛으로 말했다.“어멈, 오늘 비웃음을 당하는 것도 무릅쓰고 나왔네. 내 차녀 저명양이 단식한지 삼 일이 지났네. 초왕에게 꼭 시집가겠다면서 말이네. 허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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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화 서둘러 폭로하지 않다
희씨 어멈은 화가 나서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성을 내며 비난했다.“저씨 집안에는 어찌 당신 같은 사람만 난단 말입니까? 이게 어딜 봐서 부득이한 겁니까? 저는 이렇게 오래 살았지만 당신 같은 사람들은 아직 본 적 없습니다. 뻔뻔스럽게 한 남자를 쫓기나 하고. 처음엔 환술로 우롱하더니 이어서 압력을 가하고, 지금은 더욱 저에게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고 있군요. 왜요, 초왕부에 시집오면 승천이라도 할거라 여기는 겁니까? 마음대로 소문 내십시오. 전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나이도 많고 이젠 관 냄새도 맡아집니다. 더 이상 훼손될 청렴한 명성 따윈 없단 말입니다.”말을 마친 희씨 어멈이 몸을 돌려 밖으로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던 아사는 희씨 어멈이 씩씩거리며 나오자 그녀가 모욕을 당한 것을 알고 급히 부축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누굴 팰까요?”희씨 어멈이 화를 내며 말했다.“갑시다.”아사는 고개를 돌려 매섭게 저 대부인을 한번 노려보았다. 저 대부인은 손가락으로 찻잔을 움켜쥐었는데 화가 나서 손가락 마디가 다 하얗게 질려 있었다. 희씨 어멈이 궁에서 보낸 세월이 있으니 그녀는 어멈이 정세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고집이 세고 냉담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녀가 일어서며 외쳤다“기다리게!”아사가 고개를 돌리며 화를 냈다.“또 무슨 일인데요?”저 대부인이 희씨 어멈을 보며 말했다.“본부인이 다시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 할 텐가, 말 텐가.”희씨 어멈은 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로 아사를 끌고 자리를 떴다.저 대부인은 힘껏 찻잔을 내던졌다. 오늘 일이 반드시 성사될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희씨 어멈이 이런 태도로 자신을 대할 줄은 전혀 몰랐다. 명양이의 밀이 맞았다. 노비주제에 어찌 이렇게 오만하단 말인가?보아하니,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저씨 집안의 무서움을 모를 것 같았다.***희씨 어멈은 왕부로 돌아가 원경능에게 보고했다. 원경능은 어멈의 말을 듣더니 놀라서 멍해있었다. “뭐라고? 감히 자네를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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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화 갈등
희씨 어멈이 석연치 않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왜 까발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설마 그녀를 여기에 두시려고요?”원경능이 말했다.“자네들이 말하길 그녀가 지원했을 때 이미 신분을 밝혔다고 했네. 저부에서 왔다고 말이야. 우리를 속이지는 않았지. 그러나 그녀에게 다른 의도가 없다는 뜻은 아니네. 하지만 이렇게 신분을 밝히고 초왕부로 들어와서 뭘 하려는 걸까? 외모를 바꾸지도, 신분을 바꾸지도 않았으니 내가 그녀를 중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 텐데. 그녀도 나를 가까이 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럼 대체 여기에 와서 뭘 한단 말인가?”희씨 어멈이 불현듯 무언가 떠올라서 말했다.“그녀는 여기가 초왕부인 것을 몰랐습니다.”“몰랐다고?”원경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어찌 모른단 말인가? 계약서를 쓰지 않았나?”“예, 하지만 그녀는 글을 모릅니다. 본인은 남강인이라며 글을 모른다고 했습니다.”희씨 어멈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그날 제가 여기가 초왕부라고 하니, 그녀는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얼굴색도 변했고요. 그때 조금 주의하긴 했으나 그녀가 왕부에서 시중든 적이 없어서 규율을 모를까 걱정된다고 한 말을 믿었지요.”“초왕부인 걸 몰랐다고?”원경능은 의심스러운 시선을 들어올렸다.“혹시 모른 척 한 게 아닌가?”“그럴 수도 있습니다.”희씨 어멈이 말했다.“어쨌든 이 사람은 매우 위험합니다. 제가 보기엔 당장 쫓아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아사도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너무 위험해요. 그녀는 환술을 할 줄 알아요.”“최면술이지 환술이 아니야.”원경능이 바로잡았다.“하지만 그녀는 무고도 할 줄 안다고요. 남강인 대부분은 무고를 할 줄 알아요.”아사는 그녀가 저명양을 도왔다는 걸 떠올리자 구역질이 났다.희씨 어멈이 말했다.“맞습니다. 그는 왕비를 가까이하지 않고도 무고를 할 수 있습니다.”원경능은 무고의 술에 대해 조금 연구했었다. 그녀가 말했다.“아니, 무고도 독충을 놓아야 가능한 일이네. 독충을 놓으려면 음식이나 혈액에 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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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화 만아를 심문하다
그녀는 만아를 감싸주려는 게 아니었다. 혹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그녀는 그저 만아가 이렇게 왕부에 들어온 것에 꼭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문제를 똑바로 해결한 다음 내보내면 더 좋지 않은가? 이렇게 애매하고 어정쩡한 일을 아직도 몇 번이나 더 당해야 한단 말인가?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후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싫어하고 그녀의 아이를 없애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이런 초목이 다 군사로 보이고 사람이 다 귀신으로 보이는 생활이 싫증났다. 모두들 이렇게 긴장해 하는데 그녀가 긴장해 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이 죄를 짓는 것 같았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생활이 좀 여유롭기를. 더는 이렇게 팽팽하게 죄이지 않기를 바랐다.그녀는 자신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진 나머지 끊어질 것만 같았다.그녀는 일어났다. ‘됐어, 그래도 나가서 들어나 보자.’밖으로 나오자 우문호는 그녀가 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는 체도 안 했다. 그저 정좌에 앉은 채 낯빛을 냉랭하게 굳히고 있었다.원경능은 객석의 의자에 앉았다. 그와 말을 섞지 않고 그저 아사한테 물었다. “그녀는?”“서일이 데리러 갔어요.”아사가 조용히 말했다.만아는 서일이 오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발각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도 달아나지 않았다. 운명에 순응하듯 앞으로 걸어나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서 대인.”서일이 냉랭하게 말했다. “왕야께서 너를 보자 하신다. 충고하는데 육체적인 고통을 적게 받으려면 순순히 다 자백하는 게 좋을 거야.”만아가 말했다. “서대인, 길을 안내하시지요.”“네가 앞에서 걷거라. 뒤에서 무슨 속임수를 쓸지 누가 알겠어?”서일이 말했다.그리하여 만아가 앞에서 걷게 되었다.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원경능은 만아가 걸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깔고 있었는데 표정은 고요했다. 비록 조금 불안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저 운명에 맡긴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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