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Chapter 1011 - Chapter 1020
1022 Chapters
제1011화
콩이 얼굴에 튀자 도윤은 화가 나서 콩을 바구니에 던졌다.“할머님, 전 못 해요.”“젊은이가 왜 이렇게 성급해. 귀한 도련님이라 이런 일을 처음 해보는 건 알지만 잘 생각해. 눈은 며칠 만에 금방 낫는 게 아니야, 미리 앞 못 보는 생활에 적응을 해야지.”도윤은 당황했다. 조원주는 자신을 단련시키려는 것이었다.지아도 같은 말을 했지만 그때 도윤은 재회의 기쁨에 취해 눈은 뒷전이었다.그러다 할머님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할머님, 이 눈은 언제쯤 나을 수 있을까요?”“장담 못 해. 빠르면 서너 달, 늦으면 1년 반 넘게 걸려. 잔류 독이 다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 병원에 가서 기계로 검사해야지. 눈병은 쉽게 낫지 않아, 빠른 치료가 어렵지.”도윤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전엔 목숨만 건지면 될 줄 알았는데, 이젠 머릿속에 온통 지아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지아를 어떻게 되찾아온단 말인가.도윤의 불안한 표정을 보자 작은 손이 위로라도 하듯 그의 손등을 살며시 두드렸다.그 작은 손에는 도윤의 긴장을 서서히 진정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도윤은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 앉아 완두콩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무무는 지아가 만들어준 피리를 꺼내 다리 위에 앉아 조용히 연주했다.울려 퍼지는 ‘스카이캐슬’ 노래가 미묘하고 감미로웠다.고요한 밤, 조용히 쏟아지는 달빛, 그 거룩한 빛이 모든 것을 정화하며 도윤의 감정을 서서히 진정시켰다.도윤은 완두콩 껍질을 벗기는 데 집중하며 감각으로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다.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이름 모를 곤충들이 울어대고, 멀리서 새들이 날갯짓을 하고, 나뭇가지에서 부엉이가 소리를 낸다.조용하고 황량했던 도윤의 세상이 갑자기 활기차게 변했다.그는 지아에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주위를 소홀히 했었다.완두콩을 한 바구니 끝내자 시계는 9시 30분을 가리켰다.밤 문화가 없는 작은 마을에서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사람들이라 다들 이미 꿈나라에 들어갔을 것이다.도윤도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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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2화
끼익-문이 열렸다.도윤은 그 순간 피가 머리 위로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머릿속으로 지아와 주원이 붙어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몇 년 전 배 위에서 주원은 약기운을 빌려 지아에게 몹쓸 짓을 하려 했었다.이미 이혼한 지 오래인데 주원과 정말로 그런 짓을 한들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이 순간 도윤은 최악의 장면을 보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향신료가 아닌 샴푸나 바디워시 냄새 같은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지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긴 왜 왔어요?”도윤은 순간 다소 당황했다. 왜 왔을까, 바람피우는 현장을 잡으려고?그는 가슴 속 복잡한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애써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아래에서 아프다고 하는 소리를 들리길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싶어서 왔어요.”“전...”지아가 설명하려는데 주원이 피식 웃었다.“이도윤 씨는 모든 여자에게 그렇게 다정하신가 봐요? 여자가 방에서 아프다고 하는 게 정말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는척하는 건가요?”“저 여자는 내 주치의라 내 목숨과도 상관이 있죠. 저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치료해 줄 사람이 없는데 걱정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러는 그쪽은 제가 뭘 했다고 저한테 무례하게 구는 겁니까?”“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겠죠”지아는 주원과 도윤의 마찰로 인해 도윤이 자신에 대한 의심을 품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주원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거즈로 눈을 가린 도윤을 보니 그토록 당당하던 사람이 이젠 지나가던 개한테도 당할 것 같이 나약해 보였다.지아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전 괜찮아요, 동생이 제 머리를 빗겨준 거예요.”당시 항암치료를 받은 후 머리카락이 아주 천천히 자랐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자로서 머리카락이 잘 자라지 않을까 봐 주원은 지아를 위한 샴푸를 만들고 마사지 기술도 배워왔다.아프긴 해도 효과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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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3화
지아는 머리를 깨끗하게 씻고 창문에 기대어 하늘의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주원에게 거짓말을 했다.3년 반이나 지났으니 이미 오래전에 관계를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도윤이 독살당해 곧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녀는 너무 당황스럽고 무력했다.모든 걸 제쳐놓고 서둘러 돌아온 것도 아이들보다도 마음속 깊이 도윤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이런 감정이 생겨선 안 되는데.괜한 생각하지 않게 가능한 한 빨리 도윤을 치료하고 보내야 할 것 같았다.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렸다. 무무가 도윤의 방 테라스에 앉아 연주하고 있었다. 아이는 도윤을 저렇게 따르는데 도윤이 친아빠가 아니란 사실을 어떻게 털어놓아야 하나.만약 자신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사실을 안다면 도윤이 무무에게 손대지는 않을까?3년이 지난 후 도윤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지아는 알 수 없었다.무무는 몇 곡을 연주한 뒤 연주를 멈추고 도윤의 손을 토닥이더니 일찍 자야 한다는 듯 침대로 이끌었다.도윤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착하지, 너 같은 아이를 둔 아빠는 분명 자랑스러울 거야.”무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도윤은 뺨에 부드러운 무언가 느껴졌다. 무무가 뽀뽀해 줬다는 걸 알아차리곤 무척 기뻤다.“무무야, 내가 좋아?”딸랑-도윤은 이제 아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기뻐하며 말했다.“나도 무무가 좋아.”아빠가 날 좋아한다고?무무는 무척 기뻤다.아이는 목에 걸고 있던 오색 비단실로 만든 구슬 목걸이를 벗어 도윤의 손목에 묶어주었다.“나한테 주는 거야?”딸랑-“고마워.”도윤은 딸이 선물한 특별한 구슬 목걸이를 어루만졌다.“꼭 소중히 간직할게.”무무는 기쁜 마음으로 도윤의 방을 나와 지아에게 돌아갔고, 지아가 자신의 옆을 툭툭 치자 새끼 고양이처럼 그녀의 품에 파고들었다.무무는 지아의 손바닥에 ‘아빠’ 두 글자를 썼다.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한 지아는 처음으로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무무에게 언니 오빠와 너는 아빠가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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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4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니 지아는 누군가를 쫓는 것 같았다.도윤은 난간을 붙잡고 재빨리 계단을 내려와 소리를 따라 쫓아갔다.도중에 몇 번이나 넘어졌지만 도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일어나 계속 달렸다.마치 일부러 그를 유인하는 것처럼 목소리는 계속 일정한 거리에서 들렸다.지아의 안위가 걱정된 도윤은 지아의 이름을 불렀다.“지아야, 어딨어? 무슨 일이야?”꿈에서 깨어난 지아는 도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꿈인가?왠지 모르게 불안했다.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직접 나가 봐야 마음이 놓이겠다 싶어 다시 일어났다.지아는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침대에서 내려와 계단을 내려오는데 도윤의 방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이 늦은 시간에 도윤은 왜 문을 열고 있는 걸까?지아는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갔고, 방에는 촛불의 희미한 불빛만 있을 뿐 이불이 젖혀진 침대에는 도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도윤 씨?”지아가 도윤을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자 불안감이 마음속으로 거세게 퍼져나갔다.앞이 보이지 않는 도윤이 마구 뛰어다닐 리도 없고, 자신이 분명 주위에 독극물이 많다고 경고했는데 대체 어디 간 걸까?지아는 아래층을 돌아다녔지만 도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마을에는 감시 카메라는커녕 휴대폰도 없었다.뒷방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보니 경훈이었다.“이도윤 씨 지키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지아는 순간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물었다.“할머님이 농사일 좀 하라고 하셔서요. 늦은 시간이라 보스는 이미 잠드셨어요.”지아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늘 이렇게 단순했던 남자는 과거 자신이 미연과 이어주려 했지만 매일 붙어있어도 미연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지아는 너무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그러니 평생 총각으로 살죠!”“선생님,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에요?”“그쪽 보스가 실종됐어요.”경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도 안 돼요. 앞이 안 보이는데 어디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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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5화
경훈은 등골이 오싹했다. 평소 조원주와 얘기를 나눌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곳에는 총 마흔여덟 종의 뱀이 있는데 그중 서른 이상이 독사고, 한번 물면 어떤 약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다.도윤이 앞이 안 보이는데 넘어지기라도 한다면?지아와 경훈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앞쪽으로 달려갔다.“보스, 멈춰요!”경훈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조용한 산에서 도윤이 분명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도윤의 슬리퍼가 발견되었고 이따금 뜨끈한 피 몇 방울이 보였다.지아는 도윤이 그렇게 많이 넘어졌는데도 왜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지 궁금했다.위험하단 걸 모르나?아니, 도윤은 분명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에 계속 달리는 것이다.“빨리 가요!”...자고 있는 무무의 곁으로 무언가 팔을 건드렸다.졸린 눈을 비비고 보니 평소 함께 놀던 새끼 사슴이 방에 들어와 있었다.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침대에 내려앉아 구구 울어댔고 고개를 돌리자 지아는 보이지 않았다.뭔가 잘못되었다.무무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사슴을 따라 뛰어갔다.도윤의 발걸음이 서서히 멈췄고 탁 트인 산 너머로 경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지아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고 위험에 처했는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살려줘요, 살려줘요...”“지아야!”도윤이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뱀이 신호를 보내는 소리가 들렸고, 소리가 들쑥날쑥한 걸 보아 한두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다름 아닌 주원이었다.그는 몇 번이나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도윤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고 눈에서 독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도윤은 진작에 죽었어야 했다.지금보다 도윤을 죽일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주원은 조용히 들고 있던 지아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기를 아래로 던졌다.그 아래에는 뱀 동굴이 있었고, 수천 마리의 뱀이 무리 지어 얽히고설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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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6화
지아는 속도를 다그쳤다. 뱀굴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안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들도 빠져나오기 힘든 곳이었다.뱀굴에 빠지면 분명 뱀에게 잡아먹혀 죽을 것이 분명했다.그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비릿한 뱀 냄새와 함께 찬바람이 불자 지아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지아는 마치 사냥하는 맹수처럼 최대한 열심히 달릴 뿐이었다.지나가는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지아는 겁에 질렸다.쿵 소리와 함께 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바닥에 쓰러졌고, 경훈은 서둘러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괜찮아요?”그런데 지아의 온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빨리 가요! 바로 앞에 뱀굴이 있어요!”지아는 까진 무릎도 개의치 않고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뛰어갔다.이 순간 지아에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직 도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절대 그가 죽어서는 안 된다.온 힘을 다해 달려갔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뱀굴로 뛰어드는 도윤의 모습만 보였다.수천 마리의 독사들 속에서 지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살려줘요, 살려줘요...”도윤이 목숨도 뒤로한 채 죽기 살기로 달리며 뱀굴에 뛰어든 이유였다.이제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안 돼!”지아의 처절한 목소리도 상황을 막을 수는 없었고 도윤의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단지 앞을 보지 못할 뿐 바보가 아닌데, 분명 눈앞에 뭐가 있는지 알 텐데도 도윤은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들었다.지아도 이성을 잃고 도윤을 쫓아가려 했지만 주원이 그녀를 붙잡아 품에 꽉 가둔 채 귓가에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늦었어, 이제 다 끝났어.”지아는 그제야 소름 끼치는 소년이 절대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배에서 일부러 약을 먹고도 순진한 척, 좋은 사람인 척 자신의 곁에 있었고, 나중에는 그녀의 아이까지 없애려고 했다.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주원이었기에 잊으려 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진 게 없었다.오직 자기밖에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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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7화
“보스, 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요.”“물러서, 명령이야! 가만히 서 있어!”경훈은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많은 형제들이 전장에서 죽는 걸 보면서 생사에 무뎌진 지 오래였다.당시 미연의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어,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미 망가진 다리를 최선을 다해 재활하면서 도윤의 곁을 지키려 했다.하지만 결국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비 내리던 밤 미연이 누군가의 총에 맞아 무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때처럼.지아는 주원이 방심한 틈을 타 그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경훈을 가로질러 뱀굴을 향해 달려갔다.이성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지금 지아의 눈앞에는 자신을 바다에서 안아 올리던 젊은 소령이, 교통사고 당시 유리 파편을 막기 위해 앞을 가로막던 전남편이, 겨우 녹음된 목소리에 망설임 없이 뱀굴에 뛰어든 멍청이만 보였다.개자식, 나한테 빚진 게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죽어, 네가 어떻게!지아가 두말없이 뱀굴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주원은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깨달았다.오랜 세월이 지나도 도윤을 향한 지아의 마음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주원은 바닥에 누워 망설임 없이 도윤을 향해 달려가는 지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10년을 더 기다려도 지아는 고개를 돌리지 않을 것 같았다.지아 누나,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날 쳐다보지 않는 거야?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매화나무에서 뛰어내려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던 어린 소녀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때만 해도 소녀의 눈은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지아에는 뱀을 쫓는 가루를 뿌리지 않아 그곳에 내려가면 죽는 거나 다름없었다.이 또한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갑자기 귓가에 피리 소리가 울리고, 소리와 함께 붉은 뱀이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로 뱀굴을 덮쳐들자 순식간에 도윤의 몸과 주변에 있던 뱀들이 파도에 휩쓸리듯 사라져 버렸다.붉은 뱀은 지아를 위해 길을 터주며 어떤 뱀도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뱀 동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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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8화
도윤은 괜히 지아를 놀라게 해 꿈처럼 사라질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아는 손을 뻗어 주먹으로 도윤의 가슴을 때렸다.“나쁜 놈, 여기가 어딘지나 알아?”도윤은 겨우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지아의 손을 잡았다.“지아야, 여긴 뱀이 많으니까 빨리 나가. 얼른 여길 떠나.”경훈은 도윤이 왜 낯선 이를 껴안고 지아의 이름을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보스, 뱀들은 다 쫓겨났으니 이제 안전해요.”달빛 아래 무무는 사슴의 등에 올라타 피리를 손에 들고 숲속을 달리는 요정처럼 멋진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지아와 도윤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마음도 온기가 느껴졌다.엄마는 아빠를 포기하지 않았다.힐끗 주원을 돌아보자 그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대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도윤은 지아에게 뺨을 맞았지만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지아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던 도윤은 아이처럼 행복해했다.“지아야, 정말 널 찾았어. 넌 계속 내 곁에 있었어.”도윤은 손을 뻗어 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마,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감정을 가라앉힌 지아도 도윤을 밀어내며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안 죽었으면 얼른 돌아가 잠이나 자.”지아의 심장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늘 밤에도 몇 번이나 바닥을 쳤다가 다시 올라왔다가 오르락내리락했다.상황이 마무리되자 감정을 추스르고 집 나갔던 이성도 다시 돌아왔다.지아가 앞장서 걸어가자 경훈이 그녀를 알아보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사모님, 오랜만이네요.”지아는 경훈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여전히 바보 같네요.”경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모님은 온화한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때다 싶게 인신공격을 하며 평생 혼자 살라는 저주까지 퍼부었다.“아.”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는 경훈을 보며 지아는 어이가 없었다.“저 사람 다시 데려가요.”더 이상 죽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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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9화
문밖으로 나오자 지아는 뒤에 서 있던 무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아가, 잘했어. 엄마가 잘 치료해 줄 거야.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자.”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지아는 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만약 도윤이 무무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무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스러웠다.과거 도윤의 차가운 얼굴과 함께 배신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자신과 강욱을 용서했다고 해도 그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는 것까지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무무의 존재는 항상 마음속 가시처럼 도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것이다.지아가 도착했을 때 도윤은 이미 옷을 다 벗고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지아라는 것을 안 경훈은 눈치껏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나며 두 사람만 남겨두었다.도윤은 지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입술만 축였다.전에는 지아를 알아보고도 말할 수 없어 참느라 괴로웠는데 드디어 다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지아야, 난...”지아의 손가락이 도윤의 입술에 더 닿았다.“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이름을 감춘 건 당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당신도 알겠지. 지금의 이 균형을 깨뜨리지 마.”마지막 한 마디가 도윤의 모든 말을 삼키게 했고 도윤은 다소 씁쓸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균형?”지아는 차갑게 말했다.“난 의사고 당신은 환자일 뿐이야, 그게 다야.”지아는 그렇게 두 사람의 모든 과거를 일축해 버렸다.“오늘 밤 일은 내가 동생 대신 사과할게. 당신도 무사하니까 내가 구해준 걸로 퉁 쳐.”“그러니까 너한텐 나보다 주원이 더 중요한 거야?”불쑥 튀어나온 도윤의 말에 지아는 무언가 눈치챈 듯 그를 돌아보았다.“주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건가?어쩌면 주원이 일부러 덫을 놓은 것도 이미 눈치챈 걸지도 몰랐다.도윤은 그런 지아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얼른 부인했다.“아니,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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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0화
도윤의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약탕에서 몸을 담그자 모든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고 지아는 약을 발라 소독을 했다.옥 같은 피부는 온전한 곳 없이 곳곳에 다양한 크기의 상처가 있었다.도윤은 지아를 화나게 할까 봐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만약 처음부터 작정하고 꾸민 자신의 계략에 빠졌단 걸 알면 지아는 너무 화가 나서 밤중이라도 도망쳤을 거다.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아냈다. 지아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달려온 순간 도윤은 자신이 이겼다는 것을 확신했다.지아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과거가 여전히 걸림돌이 되었지만 아무리 큰 구멍이라도 지아 앞에 다시 서기 위해서는 꾹꾹 채워야만 했다.긴 과정이 필요하니 서두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지아도 상처를 치료할 때 조금 겁이 났다. 녹음된 소리를 따라 달려갔는데 만약 무무의 목걸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백골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지아는 도윤과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마을 북쪽은 절벽이고 남쪽은 뱀굴이야. 세균뿐만 아니라 독극물도 득실거려. 안전한 곳은 마을뿐이야.”“네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안 그럴게.”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도윤의 태도에 지아는 전에 진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과 닮은 여자에게 손을 댈 수 없어서 다쳤다고 했다.그런 저급한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는 게 놀라웠다.“도윤 씨.”지아가 갑자기 도윤의 이름을 불렀다.“나 여기 있어, 지아야.”“난 그동안 공부도 많이 했고 날 지킬 능력도 생겼어. 이름도 감추고 있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건 아무도 몰라. 앞으로 내 걱정은 하지 마. 매번 당신을 구해줄 수는 없어.”다른 사람들이 도윤의 약점을 알면 분명 같은 수법을 반복할 것이다.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 해도 결국엔 서로가 잘되기를 바랄 뿐이었다.“알겠어.”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지아는 도윤에게 약을 발라주었다.둘 다 각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지아는 무무에 대해 물을까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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