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무기를 꺼내든 경호원들이 파티홀을 질주했다. 의자를 들거나 칼을 휘두르며 몸싸움을 벌일 준비를 마쳤다."꺄악!"홀 안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희주와 어울리던 유치원 친구들, 학부모와 선생님들도 혼비백산하며 온몸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들이 염구준을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염구준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머릿속에 무료 VIP 패키지와 순금 배지가 둥둥 떠다녔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아이들을 꽉 안은 그들은 소름 끼치는 연장을 휘두르며 파티홀을 누비는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손가을 일가족의 낯빛도 창백해졌다. 그들도 조건반사처럼 염구준에게 눈길을 돌렸다."두려워할 것 없습니다."덤덤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킨 염구준이 서재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친 듯이 발악하는 버러지를 바라보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겨우 120여 명을 대동하다니. 서씨 집안도 별 볼 일 없군.'"개 같은 눈빛 집어치워. 어디서 허세야?"무심한 눈빛이 서재원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듯했다. 울컥 화가 치민 서재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그깟 군바리 질 몇 년 했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꼴에 열 명은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지? 과연 백 명은 어떨까?" "일전에 감히 이 몸을 걷어찼겠다? 손중천 그 양반 칠순 잔치 때 내게 지껄인 막말은 어떻고! 오늘 어디 한번 제대로 결판을 내보자고. 네놈이 언제까지 날뛸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염구준이 비웃음을 담아 그를 쳐다보았다.원래 벌레들은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 모르는 법이었다.서재원은 제가 맞닥뜨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전신전 전주라는 칭호가 담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는 그의 상상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아직도 웃음이 나와?"여전히 태연한 염구준을 바라보는 서재원에게 은은한 불길함이 엄습했다. 든든한 아군으로 둘러싸인 주위를 쓱 훑어본 그는 그제야
퍽- 둔탁한 소음이 파티홀에 울려 퍼졌다.염구준의 뒤쪽에 서 있던 손가을 일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이들, 심지어 그에게 이를 갈고 있던 서재원과 진혜린조차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염구준의 행동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그에게 달려들던 서씨 집안 경호원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귓가에 우레와 같은 폭음이 울려 퍼졌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때 반응할 시간도 부족했다.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그들의 고막이 전부 나가버렸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어질어질하더니 귀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그들은 저마다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언제 무기를 들고 있었냐는 듯 전부 귀를 틀어막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은 가히 아비규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들은 겨우 절반 남짓 돌진했을 뿐이었다. 염구준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아직 꽤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손쉽게 제압당해 반항할 여력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경호원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우두머리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염구준의 실력은 모든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말, 말도 안 돼!"서재원과 진혜린은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그들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이럴 리가 없다!대체 저 남자의 정체가 뭐지? 방금 선보인 저 끔찍한 실력은 뭐란 말인가? 5년 사이 어떤 무엇을 겪었기에 이토록 두려운 기술을 연마했지?모두 특별 훈련을 받은 120여 명의 전문 경호원들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일격에 손쉽게 나가떨어지다니. 눈앞에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실력이 하나같이 형편없군."손목을 툭툭 턴 염구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 딸 앞에 무릎 꿇고 빌라던 내 말은 기억하나?"이를 사리문 서재원이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삼키며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손톱이 아프게 손바닥의 살을 파고들었다.자신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어림도 없지!"이게 끝이라고 생각해?"그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염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여기가 어
번쩍거리는 외제차 3대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그랜드 센트럴 호텔로 향했다.알렉스와 통화를 끝낸 서재원은 한껏 거들먹거리며 염구준을 약 올렸다."등신이 발악해 봤자 등신이지. 싸움 좀 한다고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여기 오너가 너를 쫓아내 버리면 네까짓 게 어쩔 건데? 감히 나와 맞서겠다고? 넌 아직 멀었어!"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진혜린은 그제야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염구준의 주먹 한 방에 서씨 집안의 경호원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호텔 오너가 파티홀 대여를 거절하면 염구준도 별다른 수가 없을 테지. 알렉스의 호텔이었으니 그에게도 거절할 권리는 있었다. 기껏해야 위약금이나 대충 던져주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염구준의 기를 꺾어놓기엔 충분했다."구준 씨..."하얗게 질린 손가을이 불안한 목소리로 염구준을 불렀다.이를 어쩌면 좋지? 어렵게 대여했을 텐데... 더구나 생일 파티도 곧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이런 때에 호텔 오너가 직접 그들을 쫓아내면 어찌한단 말인가?손가을이 입술을 깨물며 간절하게 말했다."우리도 양보하는 게 어때? 사과하라는 말... 취소하자.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떠나라고 하면 저 사람들도 따를 거야. 우리 희주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잖아. 저 사람들 때문에 아이의 소중한 추억이 더럽혀지는 건 용납할 수 없어!"옅은 미소를 지으며 염구준이 입을 열려는 찰나, 진혜린이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염구준, 우리가 파티를 망칠까 봐 이제야 좀 두려운가 보지? 근데 늦었어. 저 망할 계집애의 생일 파티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건 물론이고 네 놈 주제 파악도 제대로 시켜주고야 말겠어."염구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사실 그는 방금 주먹을 내질렀던 때까지만 해도 크게 화가 나지 않았다. 버러지가 발악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분노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진혜린의 '망할 계집애'라는 발언이 그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렸다. 진혜린은 잘못 놀린 혀에 대한 대가를
잠시 망설이던 알렉스가 낯빛을 굳히며 염구준에게 다가갔다. 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이 염구준이야? 오늘 파티도 당신이 준비했다지?"염구준이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그렇다면? 쫓아낼 텐가?"알렉스가 두 손을 허리에 얹으며 그를 노려봤다."물론이지. 내 호텔에서 사람이 다쳤다는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 내 말 한마디면 보안 요원들이 전부 움직일 거야. 그뿐인가, 직원들, 매니저, 룸메이드까지... 8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당신이 다 감당할 수나 있겠어? 당신 같은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야 안 봐도 뻔하지."눈썹을 치켜올린 염구준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세가 아주 볼만했다."웃어?"여유로운 그 모습에 진혜린은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짓씹듯이 내뱉었다."알렉스, 당장 쫓아내지 않고 뭐해! 가만, 쫓아낼 게 아니라 잔뜩 두들겨 패서 기어나가게 만들어. 특히 염구준 저 새끼는 그냥 때려죽여 버리라고!"서재원도 거들었다."염구준, 너 싸움 잘하잖아. 어디 다시 한번 보여줘 봐! 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벌써 기대되는걸."그러나 염구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반문했다."알렉스, 정말 이 호텔 사람들이 당신 명령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나?"흠칫한 알렉스가 잔뜩 허세를 부렸다."내 호텔이니 당연히 내 말에 따라야지! 한 번만 더 말대꾸하면, 당장 맞아 죽고 싶은 걸로 간주하겠어."염구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손을 들어 올린 그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작은 박수 소리는 이내 넓은 홀에 집어삼켜졌다. 그러나 이때, 탁탁탁, 느리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발소리가 염구준의 박수 소리에 맞춰 점점 가까워졌다. 건장한 경호원을 대동한 이가 웃음 띤 얼굴로 홀의 2층 계단에서 내려왔다.그자를 발견한 알렉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진혜린과 서재원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도시의 갑부이자 용씨
분주하게 눈치를 살피던 서재원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얼른 용성우의 비위를 맞추려 들었다."가주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서재원이라고 합니다. 저희 고모님 성함이 서 정자 숙자 이십니다. 제가...."그의 소개를 들은 용성우가 코웃음 쳤다. 확실히 서정숙은 용씨 집안에서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그러나 이번에 서재원이 건드린 사람은 전신전 전주였다. 나라님도 예를 갖춰 대우하는 이 나라 최고 전쟁의 신이었다. "자네가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네."서재원을 흘깃 쳐다본 용성우가 알렉스에게 눈길을 돌리며 코웃음 쳤다."중요한 건 알렉스 김, 자네가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야. 감히 내 호텔에서 소란을 피워? 당장 꺼지지 못해?"온몸이 땀범벅이 된 알렉스는 혼비백산하며 얼른 제 수하들을 데리고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가주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비로소 염구준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감사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용성우는 마음이 잔뜩 들떴으나 손가을을 흘깃 쳐다보고는 얼른 표정을 갈무리했다. 허리를 숙이며 용성우가 인사를 올렸다."과찬이십니다, 주... 아니, 염 선생님. 저희 호텔 전체를 대여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하면 편히 즐기다 가십시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용성우도 자신의 경호원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그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린 서재원이 분한 듯 씩씩거리며 염구준을 노려봤다."젠장, 저 양반이 호텔을 매입했을 줄이야! 내가 잘못 계산했어. 너 운 좋은 줄 알아.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어."아직 화가 덜 풀린 서재원은 연신 욕설을 중얼거리며 진혜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이 떠나려는 찰나, 염구준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순순히 보내준다고 했던가?" 서재원이 우뚝 멈춰 서며 눈을 희번덕거렸다."뭐? 네가 감히 내 앞을 막겠다고?"염구준은 몹시 어이가 없었다.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서재원은 아직도 상황 파악
신호음이 3번 울리는가 싶더니 어딘가 언짢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재원 군? 이 시간에 웬일인가?"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던 서재원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삼촌, 별일은 아닙니다만, 그랜드 센트럴 호텔에 일이 좀 있었습니다. 제 수하들이 많이 다쳤고요. 네, 듣기로는 군인이었는데 지금은 퇴역하고 배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고요. 집안도 별 볼 일 없어요. 주먹질은 좀 하는데 그것만 믿고 설쳐대는 꼴이 어찌나 우습던지. 이곳 청해는 삼촌 관할이잖아요. 그래서 삼촌이 나서 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청해 군사작전부 수장 곽승환은 현재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있는 상태였다.일주일 전, 전신전 전주 염구준이 아내의 병을 고치려 했을 때 빌어먹을 손태진이 글쎄 자신더러 훼방을 놓으라고 하지 않겠는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유분수지! 손태진은 여태 작전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일주일 동안 단 두 끼의 식사만 주어졌으며 그것도 쉰내 나는 주먹밥이 전부였다.하마터면 이 일로 주군의 미움을 살 뻔한 그는 일주일 동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잘 됐군, 나도 화풀이할 데가 필요했거든."핸드폰을 꽉 움켜쥔 곽승환이 이를 사리물며 말했다."재원 군, 조금만 기다리게. 곧 출발하지. 아마 십 분 정도 걸릴 거야."통화를 마친 서재원이 악랄하게 웃어 보였다. 곽승환이 왜 짜증이 났는지는 몰랐으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화가 잔뜩 난 곽승환을 상대해야 할 염구준이 벌써 가여워졌다. 이번에는 결코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곽승환의 실력과 세력, 그 무엇도 염구준이 감당하지 못할 테니. 곽승환을 등에 업은 서재원의 콧대는 하늘을 찔러댔다."염구준! 넌 끝났어, 이 새끼야."그는 염구준을 손가락질하며 잔뜩 비웃음을 흘렸다."홀로 내 부하들을 상대한 실력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거기까지야. 우리 서씨 집안의 위대함은 너 같은 등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네놈이 뒈지는 데 십 분도 안 걸릴 거니까 두고 봐."발악하는 서재원을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아이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12시에 파티가 시작되면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절을 올리는 거로 하지. 하나라도 빼먹었다간 네놈들 머리통을 부숴 버리겠어."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배지를 바라보고 이 호텔에 모여든 인파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심지어 호텔 근처의 거리에도 차가 꽉 막혀있을 정도였다. 저마다 화려한 연회복을 걸치고 호텔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얼핏 훑어보아도 수만 명은 될 법했다.모든 사람에게 절을 올리라고? 서재원이 미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네놈도 제정신이 아니군."시계를 확인한 그가 사납게 웃어 보였다."10분 지났네. 넌 뒈졌어."불현듯 요란한 헬기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군용 헬기 한 대가 바람을 가르며 그랜드 센트럴 호텔 정문에 착륙했다. 곽승환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모두 물러서!"묵직한 군화 소리가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눌러 댔다. 그 걸음에서 범접할 수 없는 지배자의 위엄이 느껴졌다. 인파가 붐비는 호텔 밖 상황은 이미 고공에서 지겹도록 지켜봤다. 그러나 호텔 앞에 떡하니 걸려 있는 금색 간판의 글씨는 미처 보지 못한 곽승환이었다. 사실 거기에는 공주님의 이름 석 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곽승환의 등장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파도처럼 갈라지며 3미터 남짓한 통로가 만들어졌다. 곽승환은 전신 무장한 정예 전사 4명을 거느리고 성큼성큼 파티홀에 들어섰다."삼촌!"서재원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진혜린과 함께 그를 맞이했다.그는 현재 한껏 들떠 있었다.곽승환은 그의 고모 서정숙의 동문이었다. 대학 시절 잠깐 연애도 한 사이였지만, 인연이 끝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나 곽승환은 서씨 집안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서씨 집안이 청해에서 명문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곽승환 덕분이었다.그런 사람이 친히 걸음 했으니 염구준도 더는 날뛸 수 없으리라. 오늘 싸움은 서재원의 승리로
"방금 염 선생님이라고 하신 거예요? 설마... 아는 사입니까? 저 사람은..."짝-곽승환은 가차 없이 서재원에게 따귀를 날렸다.눈앞에 불이 번쩍거렸다. 서재원은 비틀거리며 3바퀴를 돌다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곽승환이 공손하게 염구준에게 사죄했다."염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괜찮습니다."염구준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재력가들과 어울리는 건 별말 않겠습니다. 하지만 책무를 게을리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만 물러가세요."곽승환은 죄를 사면받은 사람처럼 좋아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서재원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진혜린은 알 바가 아니었다. 네 명의 전사들을 거느린 그가 재앙으로부터 도망치듯이 파티홀을 빠져나갔다.쿵-호텔 정문을 꼼꼼하게 닫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서재원과 진혜린은 벙찐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얼음 창고에 갇힌 사람처럼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부들부들 떨려왔다.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있던 서재원은 마침내 반항할 의지를 잃어버렸다. 그제야 염구준을 잘못 건드렸다는 게 실감이 났다."이... 이게 대체..."유치원 교사와 어린이 학부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손태석과 진숙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두렵고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염구준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일전에 병원에서 곽승환이 손태진을 개 패듯이 패던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손가을이 유일했다. 남은 사람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청해 군부의 수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고작 퇴역 군인을 이토록 두려워한다고?염구준은 정말 '평범한' 군인이 맞는 걸까? 대체 이 사람 정체가 뭐지?"염구준, 대체 무슨 속셈이야!"서재원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운 진혜린이 비참하게 울부짖었다.곽승환에게 얻어맞은 서재원은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으며 이도 몇 개 나갔다. 피투성이가 된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킨 그가 원한을 담아 짐승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