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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3화

임유진은 입으로는 혁이라고 내뱉으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는 강지혁이다.’를 계속해서 외쳤다.

“네 앞에서 나는 그저 혁이일 뿐이야.”

강지혁은 이 말과 함께 두 팔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은 그의 향기로 감싸졌다. 임유진의 눈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강지혁은 더 이상 혁이가 될 수 없다. 헤어짐을 입 밖으로 냈을 때 그녀의 혁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까.

...

호텔 방 안.

이경빈은 지금 공수진과 통화를 하고 있다.

“내일 갈 거야. 인터넷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경빈 씨, 대체 무슨 일인데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요? 따지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무슨 일인지는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공수진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줘야 할 것처럼 가녀렸다.

“돌아가면 다 얘기해줄게.”

이경빈은 전화를 끊은 뒤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그는 요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탁유미와의 과거 추억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눈물, 임신했다며 외치던 그녀의 모습과 그에 자신이 어떻게 답했는지 그리고 얼마 전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애를 낳으라고 했을 때 날카로운 유리잔으로 망설임 없이 배를 찌르던 모습까지...

그녀에게는 이미 그의 피가 흐르는 아이가 있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 윤이.

윤이와 처음 만났을 당시를 떠올리자 이경빈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았다.

그때 그는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에 윤이는 그와 닮은 두 눈으로 멀뚱히 바라만 보다가 열심히 손으로 휘적거리며 애써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나오는 건 옹알이와 비슷한 말뿐이었다.

아이가 청각장애인 걸 알아채자마자 밖에서는 냉혈한이라 불리던 그가 어쩐 일인지 동정이라는 걸 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기 아들이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

이경빈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외투를 들고 방을 나섰다.

거실에 있던 부하는 그가 나가려고 하자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대표님, 이 시간에 어디 가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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