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신유리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곡연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려오는 신유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리 언니, 어젯밤에도 잠 못 잤어요?” 신유리는 설거지를 하다가 거울을 보았는데,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그녀는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 안색이 별로 안 좋았다. 그녀는 곡연과 무리들이 모두 정장을 차려입은 걸 보고는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혹시 오늘 무슨 일 있어?""형님 부서의 관계자분과 약속이 있어서요, 또 세미나가 있기도 하고요."신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자신이 지난 며칠 동안 병원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이신이 그녀의 시간을 뺏는 것이 걱정되어 그랬을 것이다.그러자 허경천이 말했다. "그냥 작은 세미나예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요. 형님이 일단 일 보시라고 하셨어요.” 신유리는 이신이 보이지 않자 물었다. “이신은 지금 어디에 있죠?”허경천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마 나갔나 봐요."신유리는 별다른 말 없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떠날 준비를 했다.문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밖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문이 열렸고, 이신은 차분한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나가려고?""응, 일이 좀 있어서."이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유리를 위해 옆으로 비켜주었고, 신유리가 나간 후 그녀를 따라 차고로 갔다."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차고 입구에 도착한 뒤, 신유리는 그제야 멈춰 서서 이신에게 물었다.이신의 잘생긴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와 슬랙스를 입어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신유리 앞에 선 그가 잠시 뒤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에게 와."신유리는 순간 당황했다. 이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그의 눈빛에서 그의 복잡한 심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이신에게 물었다.
하정숙은 성격이 좋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항상 거만한 표정을 지었고, 말투도 심술궂고 불쾌했다.신유리는 이를 보고도 놀랍지 않았다.그녀는 시선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뜻 밖에도 하정숙이 그녀를 발견했다.그녀의 짜증 섞인 표정은 좀 더 싸늘해졌고,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역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아서 일어나는가 보네.”송지음도 신유리를 보았다. 방금 하정숙이 한 말을 신유리가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표정이 굳어졌다유일하게 침착한 사람은 신유리뿐이었다. 그녀는 하정숙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그때, 왕 선생이 그녀를 보았고, 그의 태도는 상당히 온화했다. "지금 환자 상태가 괜찮지만 어쨌든 수술을 하면 몸이 상하기 마련이에요. 관리를 잘 해주셔야 해요. 그리고 환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중환자실에 이주 정도 더 입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괜찮으실까요?"중환자실 비용은 그리 저렴하지 않았기에 이를 위해서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다.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왕 선생은 결제를 위한 청구서 몇 장을 더 주었다.이후 신유리가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나오자 마자 다른 사람에게 가로 막혔다.요즘 송지음은 더 이상 처음 입사했을 때처럼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양복 셋업을 입고 머리에 컬을 넣어 어깨까지 내렸다. 엘리트 도시 미인처럼 보였다.반면 신유리는 요즘 병원을 오가느라 바빠 옷을 입을 시간조차 없어 평범한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였고, 긴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여 있었다.송지음은 신유리를 훑어보고는 입가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리 언니, 정말 언니였네요. 아까 슬쩍 봤을 때는 알아보지도 못했어요"그녀는 조금 놀란 듯 말했다. "화인을 나가시고 이렇게 많이 변하실 줄은 몰랐어요."송지음의 말 속에 담긴 비웃음을 신유리가 왜 못 느끼겠나?그녀는 송지음보다 키가 컸지만 오늘 송지음은 하이힐을 신었고 신유리는 편의상 플랫슈즈를 신었다. 때문에 송지음이 그녀보다 머리 반절 정도
서준혁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깔보는 듯한 말투였다.그 비꼬는 말들이 모두 신유리의 귀에 들어갔고, 그녀는 얼굴이 약간 굳어진 채 허리를 똑바로 피려고 애썼다."이전 일을 제가 잘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이연지가 회사에 돈을 요구하러 왔을 때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신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서준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했다. "합정의 일은…" 지난번 은행에서 강희성에게 연락했을 때 신유리는 사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말을 멈췄다. 그녀는 강희성과는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전화 번호 교환도 단지 이연지의 의료비를 대주기 위함이었다.그리고 강희성이 주국병에 대한 최신 소식을 빠르게 제공했다는 것은 그가 주국병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서준혁 외에 대체 누가 강희성 같은 사람을 부릴 수 있겠는가!그녀는 생각을 잠시 미루고 말했다. "합정 문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제가 해결책을 찾아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서준혁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며 태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떤 해결책을 말하는 거죠?""이신이 정말 당신의 해결책인가요?" 그는 알 수 없는 표정과 차가운 말투로 미소를 지었다. "신유리 씨, 당신은 사람을 보는 능력이 없어요. 이신과 서 씨 가문의 관계는 매우 불안정해요. 당신이 그 사람을 등에 업고 서 씨 가문에 접근하려는 거라면, 꿈 깨세요.""저는 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는데, 서준혁 씨는 왜 매번 이신을 끌어들이시는 거죠?"신유리는 이 말을 몇 번이나 해왔지만, 서준혁은 줄곧 새겨듣지 않았다.고개를 살짝 든 그는 별다른 감정 없이 그저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을 언급하는게 그렇게 겁나나요?""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실 수 없나요?" 신유리는 정말 피곤했다. 매번 이런 일로 서준혁과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무의미했다.하지만 그녀의 말이 자극이 되었는지는, 서준혁은 테이블 뒤에
"아주 갑작스러운 건 아니야. 성북 집이 준비되면 다시 이사하겠다고 전에 얘기하지 않았나?"신유리는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그녀는 이전에도 임아중과 곡연이 자신과 이신 사이를 놀리는 것을 듣고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하지만 서준혁이 이신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자 그녀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자신의 일에 이신을 연루시킬 필요는 없었다.이신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진지함과 의심의 눈초리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이내 그는 시선을 거두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와 줄게.”신유리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이신은 이미 떠나버렸다.이사하기로 결정을 내린 뒤, 신유리는 이른 시간에 별장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곡연은 그녀가 성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유리 언니, 저희가 혹시 방해했나요? 갑자기 왜 돌아가려고 그러세요?"신유리는 여행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성북 집도 수리가 끝났고, 너네를 귀찮게 하기 미안해서 그래. 게다가 전에 이신이랑도 미리 얘기해 두었어. 그쪽 집에 문제없으면 바로 이사 가는 걸로 하자.”곡연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그럼 좀 있다가 이사 가면 안 될까요? 이렇게 같이 지내면 얼마나 좋아요,일하기에도 편하고.""나중에 자주 이곳에 올게. 다 같은 시내라 금방 와."그녀의 의견은 확고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설득하기는 어려웠다.이신은 무표정으로 신유리의 여행가방을 받아 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 손 다쳤잖아. 내가 들게"그가 얘기한 것은 신유리가 운전 중 실수로 울타리에 부딪혀 당한 염좌를 뜻 했다. 실제로는 거의 나았지만 여전히 가끔씩 아파왔다.신유리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이신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몰랐다.이신은 아무 말도 없이 신유리의 짐을 차에 실었다.짐은 많지 않았다. 차 2대 정도에 다 들어갈 정도였다.성북의 단지에 도
우서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최근 박씨 집안이 잘나가고 있으니 인맥을 넓히면 좋긴 하겠지."비록 우서진이 무능한 재벌 2세였지만, 여전히 무리에서 많은 친구들을 갖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우씨 집안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씨 집안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때문에 우서진은 인맥이 넓었고 주변에는 진실 되거나 그러지 못한 친구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서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 내에서의 교류는 복잡했다. 박씨 집안은 요식업에 종사했지만 친구로 두기에는 득이 되지 않았다.그의 말을 들은 우서진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음 씨의 생일을 이렇게 챙겨주고 준비할 줄은 몰랐네."송지음의 생일파티는 며칠 전부터 그녀가 단톡방에서 흘리듯이 말했었다. 대 놓고 말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모양이었다.서준혁은 그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화인이 최근 증권거래소와 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영사 쪽 사람들이 자꾸 상식에 어긋나는 행행동 하는 것 같애."“샤이닝 그룹을 말 하는 거야?” 우서진은 눈을 크게 떴다. "최근에 태씨 가문이 큰 문제를 마주했다고 들었어. 아마도 자기들끼리 다투어서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최근에 보여주기 식으로 나온 둘째 아들은 정말 쓸모없는 놈인 것 같아. 쓸모없는 짐 짝 같은 존재이지. 아마도 나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서준혁은 그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구나."우서진도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러니 너도 그 둘째 놈이랑 대화할 기회를 좀... 야."우서진은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말을 멈췄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연우진을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오랜만이네.”연우진과 우서진은 사이가 좋았다. 연우진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이네."하지만 이 말은 분명 우서진에게만 한 말이었다. 서준혁을 바라보는 연우진의 눈빛에는 미묘한 싸늘함이 담겨 있었다.연우진과 신유리의 사이가 좋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
신유리는 가까스로 몸을 바로 가누었다.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은 서준혁을 바라보며 신유리도 화가 났다. 팔이 아플뿐더러 이런 억울함까지 당하게 되었으니.비아냥거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변함없이 부드럽고 낮은 그의 목소리.“유리야, 무슨 일인데 그래?”소리에 따라 신유리는 고개를 돌렸다.“기다리고 있지 왜 왔어?”“네가 하도 오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건데.”이신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나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준혁과 우서진을 힐끗 보았다.이윽고 그는 눈에 가시라도 박힌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우진이가 오자고 하긴 했는데, 여기 별로야. 앞으로 다시는 오지 말자.”이신이 옴으로 하여 신유리는 더 이상 서준혁 일행과 말하고 싶지 않아 돌아가려고 했다.“그만 돌아가자.”이에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나란히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우서진의 음침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신유리, 너 딱 기억하고 있는 게 좋을 거다.”그 소리에 신유리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우서진을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개 키워 본 적 없어요?”“주인 말대로 하지 않는 개는 맞아도 싸거든요.”그 말에 우서진은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신유리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끌고 와서 죽일 모습이었다.그의 시선을 느낀 이신은 무심코 옆으로 살짝 몸을 돌려 시선을 차단해 버렸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신유리에게 부드럽게 말했다.“가자.”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소리였기에 옆에 있던 사람들도 똑똑히 들었다.깊게 가라앉아 있던 서준혁의 눈동자는 약간 흔들렸고 그는 신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고개를 살짝 숙인 신유리는 예쁘고 매끈한 목 라인을 무심결에 살짝 드러냈다.서준혁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그녀도 알아차리긴 했다. 그저 상대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이신과 함께 연우진을 찾으러 갔는데, 연우진은 두 사람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신유리와 이신은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둘 다 입을 열지 않았다.윤도훈은 신유리가 건네준 자료를 들고 갈팡질팡했다.표정이 일그러질 정도로 한참을 생각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여 대리는 화인 출신입니다. 화인의 작은 상사들과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아마 그쪽 힘을 빌려 드리머과 접촉한 것 같습니다.”“이건 시작부터 불공평한 게임입니다.”신유리 또한 이 부분에 대해 미처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만약 윤도훈의 말대로 여정원과 화인이 묶여 있다면 일이 어찌 될 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화인은 성남에서 새로 일떠선 금융계 에이스이다. 신유리는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다.게다가 원 플러스 원인 격이니 드리머든 빌리언즈이든 어리석지 않은 이상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답은 나와 있을 것이다.하지만 윤도훈은 완전히 가망 없다며 견해를 밝힌 건 아니다. 여전히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다는 걸 신유리는 눈치챘다.결코 드러내지 않고 윤도훈과 몇 마디 더 나누고 나서 이신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힘들 것 같아.”신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화인과 엮게 되면 왠지 모르게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이신의 얼굴만 봐서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서두를 거 없어. 일단 다른 것부터 보자.”하긴 빌리언즈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신유리도 뭐라고 더 하지 않았다.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리사가 주동적으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지난번 리사가 신유리한테서 말을 캐 내려고 애쓴 뒤로 두 사람은 서로 연락이 뚝 끊겼다.신유리는 처음에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지금 여정원과 함께 일하고 있기에.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신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 세우며 한쪽으로 걸어가서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리사 쪽은 살짝 시끄러웠지만 소리는 덤덤했다.“여 대리가 너 좀 보자고 하시네. 시간 돼?”“여정원 씨가? 나를 왜?”리사는 다소 억지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몰라. 일로 할 말이 있
신유리처럼 도도한 사람이 절대 체면이 구겨지는 일을 하지 않으리라 여정원은 단언했다.하여 저도 모르게 의기양양한 말투로 밀어 붙였다.“조작인지 아닌지 밝혀내고 싶다면 제가 사진 몇 장 더 드릴게요. 하는 김에 같이 하시죠.”이는 적나랄한 협박이다. 신유리는 가식적인 그의 얼굴을 보고 속이 울렁거렸다.무릎 위에 놓인 손이 절로 그러쥐어지는 순간이었다.하지만 결코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착시 현상으로 몰래 찍은 겁니까?”이에 여정원은 눈썹을 들썩이며 여유롭게 술잔에 술을 따라 신유리에게 건네주었다.“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실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까?”“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여정원은 안경을 벗어 한쪽에 놓고 느끼하게 웃으며 신유리를 바라보았다.다시금 신유리의 손을 잡으려고 시도 했고 귀에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좀 편하게 갑시다. 화인에서부터 유리 씨를 눈여겨 봐 온 것 유리 씨도 잘 알고 있잖아요. 서준혁한테 버림받고 이 무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나한테까지 미움 사게 되면 유리 씨는 앞으로 길이 뚝 끊기게 될 겁니다. 듣자 하니 서준혁하고 좋지 않게 끝냈다고 하던데.”“이쯤에서 내 손 잡죠? 빌리언즈로 내가 꽂아 줄게요.”여정원의 손이 거의 살에 닿으려고 하자 신유리는 바로 손을 거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여정원을 내려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틀린 말은 아니네요. 사람들은 사실 여부에 관심이 없는 거 맞아요.”그러자 여정원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칭찬했다.“역시.”그때 신유리는 덧붙여 말했는데, 여정원은 칭찬했던 자기가 우스웠다.“그렇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어리석은 건 아닙니다.”신유리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흔들며 여정원을 내려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증언 잘 쓰겠습니다.”여정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얼굴이 굳어졌다.“설마 녹음?”신유리는 핸드폰을 보며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참, 예나 지금이나 시종일관 어리석군요.”험상궂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