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는 소영의 입장에 서보지 않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하지만 그녀는 심윤아지 강소영이 아니었다.윤아는 자기 입장에서 이미 발생한 일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아쉽네요. 난 그렇게 위대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이는 지금 내 배 속에 있어요. 그러니 낳든 말든 내 자유죠. 나 말고 그 누구도 아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없어요.”“윤아 씨...”“은혜 갚으랬죠. 좋아요. 내가 도울 데가 있다면 언제든 말해줘요.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요. 하지만 이것만은 안 됩니다.”아이는 윤아의 가족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아이를 윤아도 포기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쉽게 내치겠는가.“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요?”“네.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요.”진 신세는 꼭 갚아야 했다. 하지만 너무 과한 요구라면 어림도 없었다.윤아의 말을 들은 소영은 깊은 사색에 잠겼다.사실 여기에 오기 전, 소영은 윤아가 쉽사리 자신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진수현이 누군가. 진 씨 그룹의 대표였다.집안이며 재력이며 인품이며 외모까지 모두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강소영의 눈엔 이 세상에서 진수현 같은 남자를 또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또 누가 포기할 수 있겠는가!심윤아라면 더 말할 필요 없었다. 집안도 망했고 지금은 그저 수현을 동아줄로 삼고 있다. 만약 진짜 진씨 가문 사모님이라도 되면 윤아는 오리가 백조로 되는 격, 어마어마한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만약 윤아가 정말 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면 절대 임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지금 그녀에게 이 아이는 아마 수현을 협박할 수 있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소영은 이런 도구를 눈 뜨고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만약 계속 이대로 놔둔다면 이혼할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되었다.하지만 윤아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니 소영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도를 생각해 봐야 했다.그리고 지금 윤아를 안심시켜 다른 일
소영의 눈앞엔 또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윤아가 강에 몸을 던져 뛰어드는 장면이었다.분명... 그렇게 위험했는데...강에 뛰어드는 윤아의 표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놀라서 벌벌 떨던 자신과는 달리...매번 이 장면이 꿈에 나타날 때, 시커먼 어둠은 그녀의 신경을 긁어 삼키면서 그때 자신과 윤아의 선명한 비교를 한번 또 한 번 알리고 있었다.그 사건 후, 소영은 만인의 칭찬을 받았다. 목숨으로 수현을 구했으니까.하지만 그녀는 사실 소인배, 하찮은 인간이었다. 고결한 윤아와 비교했을 때 더 그렇게 보였다. 윤아가 서슴없이 수현을 구할수록, 공을 가로챈 자신이 더 비열하고 파렴치하게 느껴졌다.이렇게 못된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품이 고울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도 단정하다고, 그래서 귀한 품격을 지녔다고 말이다.하지만 사실...‘아니야. 더는 생각하지 말자.’‘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지금 모든 사람은 내가 수현 씨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수현 씨도 그렇게 여기고 있고.’그리고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윤아도 크게 앓으면서 기억을 잃어버렸으니 평생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이 합의서, 의의 있는데요.”윤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소영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눈앞의 윤아의 얼굴이 예전 그때와 겹쳤다가 다시 갈라졌다. 과거의 소녀는 얼굴에 젖살이 약간 붙어 있었는지라 예쁜 동시에 깜찍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윤아는 오관도 더 또렷해지면서 청초하고 여리여리했는데, 첫눈에 숨이 딱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소영은 간신히 웃음을 지어내며 물었다.“그게 뭔데요?”윤아는 소영을 힐끗 보더니 다시금 머리를 숙여 합의서를 보았다.사실 이 합의서에 적힌 글자가 조금 많긴 하지만 내용은 결국 그 몇 가지밖에 없었다.첫째, 이혼하자마자 바로 해외로 떠날 것, 그리고 오 년 동안 귀국하지 말 것.둘째, 진수현 앞에서 절대 아이 얘기 꺼내지 말고, 또한 아이 핑계로 동정심 사지 말 것.셋째, 이혼하기 전, 진수현과
윤아는 침묵했다.그녀 맞은쪽에 앉은 소영은 가슴이 쿵쾅거리면서도 겉으론 태연자약한 척했다. 실은 소영도 잘 몰랐다. 아까 한 말들이 윤아를 겁먹게 할지 말이다.그녀는 윤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윤아의 자부심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그래서 소영은 이쪽으로 손을 대어 도박할 수밖에 없었다.계속 침묵하고 있는 윤아를 보는 사이, 탁자 아래에 있는 손은 이미 땀으로 가득했다. 소영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왜요? 설마 거절하겠다는 건 아니죠?”이 말을 듣자, 윤아는 덤덤하게 소영을 한눈 훑어보고는 물었다.“소영 씨 지금 많이 긴장한 것 같아요.”“내가 언제 긴장했다고. 난 그냥...”윤아에게 정곡을 찔린 소영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버럭 성질을 낼 뻔했다. 그녀는 할 수 없어 간신히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말을 끊었다. 잠시 후, 진정된 소영은 침착하게 말했다.“그래요. 천천히 고민해 봐요.”이때가 되어서야 소영은 아까 윤아가 말한 것처럼 빨리 끝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윤아는 아직도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사실 이 합의서를 체결하든 아니면 체결하지 않든 그녀에겐 별 차이가 없었다. 이 합의서를 체결하지 않아도 첫 번째 조항인 출국 및 오 년간 귀국하지 말 것 외, 모두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첫 번째 조항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어디에 정착할지를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현과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는 점이다.“어때요?”비록 소영이 제 입으로 천천히 고민하라고 했지만, 윤아가 너무 오래 생각하는 바람에 소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뜻을 물었다.윤아도 일부로 소영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었는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긴장하지 않는다면서요. 왜 이렇게 서둘러요? 이 합의서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윤아가 사인하기 전까지 소영은 그저 최선을 다해 입꼬리를 올려야 했다.“그럴 리가요. 윤아 씨 그냥 천천히 읽어봐요. 내가 조금 마음이
이 말을 듣자, 윤아는 오히려 웃었다.“그래요? 그런데 지금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건데요.”“두려워한다니요!”소영은 윤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수현 씨 생명의 은인이라면서요. 그런데 수현 씨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없으면 나더러 이런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하겠어요.”순간, 소영의 얼굴엔 독기가 스쳤다. 윤아가 생명의 은인이고 뭐고를 직접 입에 담을 때면 소영은 피가 말라 드는 것 같았다. 윤아가 그 말을 하면서 잃어버린 기억이라도 되찾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화를 억누르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에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윤아 씨가 기어코 이 아이를 낳겠다 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왜 이걸 준비했겠어요.”이 말을 마친 소영은 또 다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윤아에게 말했다.“아무튼 나 믿어봐요. 절대 윤아 씨 엿 먹이는 일을 없을 거니까.”윤아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오늘 얼굴이 바뀌는 ‘공연’을 보게 될 줄은 말이다.전에는 몰랐으니 망정이지 오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나니 정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소영의 얼굴이 바뀌는 속도가 가히 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그럼 소영 씨도 나 믿어봐요. 합의서에 사인하지 않더라도 소영 씨가 말한 일들, 내가 다 해낼 테니까.”“윤아 씨!”소영은 윤아가 정말 단호하게 사인하지 않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만약 윤아 씨가 사인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조항들을 지킬지 말지를 누가 알겠어요?”“사인해도 꼭 지킬 거란 보장은 없어요. 내가 정말 뭘 하려고 한다면 합의서에 적힌 위약금쯤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소영은 윤아를 쏘아보며 물었다.“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예요?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도 난 허락했어요. 그러니까 윤아 씨도 사인이라도 해서 날 안심시켜 주면 안 돼요?”윤아는 이 말을 듣자, 눈썹을 찡그렸다.“강소영 씨, 알아둬야 할 게 있어요. 아이 일은 소영 씨가 허락해서가
이 말을 마친 윤아는 더는 소영과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 물건을 챙기곤 빠르게 카페를 떠났다.윤아가 떠난 후, 주원이라는 남자는 소영의 맞은 쪽에 앉은 채, 윤아에 관한 것을 시시콜콜 캐어묻기 시작했다. 윤아는 당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윤아는 카페에서 나온 뒤, 집에 돌아가는 대신 길옆에 서서 오고 가는 차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돌멩이가 드디어 사라진 느낌이었다.윤아는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시라도 빨리 소영에게 진 신세를 갚았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시간을 한눈 본 후, 아버지가 아마 일 하느라 바쁘실 거라고 짐작하고는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남은 시간 동안, 윤아는 요양원에 있는 김선월을 보러 갔다. 소영과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지체된 바람에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요양원에 도착하게 되었다.윤아가 도착한 것을 보자, 간병인은 말을 걸어왔다.“사모님, 오늘은 평소보다 반 시간 늦으셨네요. 어르신께서 오래 기다리셨어요.”이 말을 들은 윤아는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약속이 있어서 조금 늦었어요.”“빨리 들어가 보세요.”“네.”윤아는 빠른 걸음으로 병실에 도착했다.간병인들은 마침 다 밖에 나갔고 병실엔 선월과 윤아만 남았다. 윤아가 병실에 들어가려던 순간, 그녀는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선월이 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는 넋을 잃은 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비록 거리를 두고 있어 선월의 옆모습만 간간이 보였지만 윤아는 선월에게서 전해져오는 무거운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할머님...”윤아는 나지막하게 부르며 들어갔다. 이 소리를 듣고 문득 정신을 차린 선월은 윤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는데, 얼굴에 담겨있던 슬픔은 이미 사라져있었다.“어머, 윤아 왔구나.”윤아는 선월 앞에 걸어가서 죄책감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할머님. 오늘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이제야 뵈러 왔어요. 오래 기다리셨죠
답장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수현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점심에 들를게.」이걸 본 윤아는 살짝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안 바빠?」수현: 「바빠. 지금도 회의 중이고. 시간 내서 갈게.」수현의 답장을 보고 윤아는 더는 묻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수현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선월을 보러 오겠다는데, 윤아가 더 할 말이 없었다.-회의가 드디어 끝났다.회의실에서 거의 몇 시간 동안 수현의 무시무시한 아우라와 날카로운 말투에 시달린 회사 고위층 직원들은 사색이 되어 밖으로 걸어나가 서로를 바라보며 동정의 눈길을 건넸다. 그러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멋쩍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를 떴다.수현은 넥타이를 정리하고는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한눈 보았다. 지금쯤 떠나면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적당할 거라 생각했다.수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회의실에서 걸어 나가는데,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여자가 그를 불렀다.“수현 씨.”여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부드럽고 맑은지, 지나가던 직원들마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소영이었다.수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소영이 도시락을 손에 든 채 그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그러자 원래 한없이 차가웠던 수현의 눈동자엔 부드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소영에게로 다가갔다.“무슨 일로 여기에 왔어?”기타 고위층 직원들도 아직 있었는지라 소영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수현 씨 요즘 되게 바쁘잖아. 그래서 잘 챙겨 먹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오늘 특별히 수현 씨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왔어.”주위에서 작은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소영의 하얀 두 볼엔 핑크빛이 물들었다. 그녀는 수줍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주위의 사람들도 참지 못하고 멈춰서서 이 장면을 구경했다.“어휴, 대표님. 오늘 점심 맛있는 거 드시겠네요.”“그러게요. 역시 우리 대표님, 인기 되게 많아요.”수현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지만 그런데 웬걸, 그들
”어, 어?”소영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이건, 그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소영은 수현을 위해 점심을 만들려다가 다친 손가락을 그에게 보여주면서 그가 감동하고 자신을 안쓰러워하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둘은 사무실에서 자연스레 더 친밀한 관계로 되는 것이었다.지금처럼 이런 상황이 아니라...소영은 이대로 포기하기 싫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수현 씨, 무슨 약속인 거야? 만약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나 사무실에서 수현 씨 기다리고 있을게.”“소영아, 미안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러니까 먼저 돌아가.”“나...”소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조수는 그녀의 앞에 다가가 말했다.“소영 아가씨, 갑시다.”“...”소영은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는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돌려 수현을 바라보았다.‘이러면 어때? 설마 모른 척하겠어?’하지만 소영의 예상과는 반대로 수현은 아예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지 못한 듯했다. 조수가 다가왔을 때, 그는 이미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소영은 제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지다가 사라지는 수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러던 중, 조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아가씨, 가실까요?”소영은 수현의 조수를 힐끔 보았는데, 그는 지금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나 말투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녀의 느낌은 정확했다. 수현의 이 조수는 확실히 소영을 좋아하지 않았다.필경 모든 회사 사람이 수현과 윤아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영이 하필 이때 도시락을 들고 회의실 앞에 와서 수현을 기다렸다.정말이지 무슨 속셈인지 뻔히 알렸다.조수는 오랜 시간 동안 윤아와 지내면서 윤아에 대한 호감이 대단했다. 그는 윤아가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소영이 이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하지
”아무 이유 없는 대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아악! 화 나서 죽겠어!’결국 조수는 소영을 집까지 데려다줬다.-요양원.수현이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다.여기까지 올 때 답답했던 심정은 요양원에 들어서서부터 윤아가 선월의 다리에 엎드린 모습을 본 후, 신기하리만치 싹 풀리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선월은 수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수현과 허공에서 눈을 맞췄다.선월은 수현에게 조용하라는 손짓을 했다. 이걸 본 수현은 그제야 윤아가 선월의 다리에 기대어 잠든 것을 발견했다.선월의 다리가 불편할까 봐 수현은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부드럽게 윤아를 들어서 안고는 옆의 작은 침대에 눕혔다.깊은 잠에 빠져서 그런지 윤아는 이렇게 안기고도 전혀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비비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품속의 이불을 끌어안고는 다시 꿈나라로 향했다.수현은 이런 윤아를 보며 결국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살짝 꼬집었다.‘자는 모습도 진짜 귀여워.’탱탱한 촉감에 홀린 수현은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저쪽 손을 내밀어 계속 꼬집으려고 할 때 선월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만 해. 꼬집어서 깨울 작정이냐.”이 말을 듣자, 수현은 동작을 멈추면서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할머니, 그럴 리가요.”선월은 수현더러 자신의 휠체어를 밀고 나가라고 했고, 수현도 그대로 따랐다.방을 나가서야 선월은 평소 목소리로 수현에게 말했다.“윤아가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더니 절반도 못 듣고 잠들었지 뭐니. 내가 너무 지루하게 들려줘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잘 자지 못해서 그런지 아주 피곤해 보이더구나.”“요즘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랬을 거예요.”수현은 말했다.“다크서클이 심하더군요.”아까 윤아의 볼을 꼬집을 때 발견했다. 윤아의 다크서클이 평소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피부가 원래 하얗기 때문에 다크서클이 조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