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나는 곁눈질로 강윤아의 혼비백산한 표정을 언뜻 보고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번에 온 목적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닌가?강윤아는 송해나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다는 것을 느끼고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상한 점을 눈치챌까 봐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저기…… 또 다른 일 있으신가요?”그녀의 이런 표정은 이미 송해나를 만족시켰고 더 이상 그녀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우리 시간 잡아서 일 이야기를 하러 갑시다. 내일 어떠신가요?”“내일…… 내일은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요.”강윤아는 눈빛을 살짝 피하며 무의식적으로 사양을 했다.이를 본 송해나는 입술을 가볍게 오므리며 말했다.“괜찮아요. 모레도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시간이 많아요. 그쪽도 지금 일이 없으시니 바쁘진 않겠네요. 나중에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때 시간 되시는지 다시 말씀 주세요.”“그래요, 고마워요.” 강윤아는 얼굴의 웃음이 사라질 것만 같았고 송해나가 일찍 떠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송해나도 그녀의 뜻에 따랐고 강윤아를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눈에는 득의양양함이 스쳐 지나갔다.“일이 다 끝났으니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요. 그쪽도 가서 쉬세요.”“그럼 해나 씨, 저는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그쪽이 오셨는데 대접할 것도 없어서 너무 죄송해요.”강윤아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송해나는 개의치 않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괜찮아요. 이해해요.”송해나가 떠난 뒤 강윤아는 순간 잠이 없어져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머릿속은 텅 비었다.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송해나가 오늘 그녀를 찾아온 것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송해나의 그 말은 분명히 주권을 선언하는 것이었으며, 그녀는 전에 한 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원래 강윤아는 자신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라 생각했고 지난번 송해나가 자신을 찾아 이야기를 나눈 후 권재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된
고승현과 권재민은 동시에 몸이 굳었다.재민은 방금 병실 안에서의 일어난 일 때문에 화가 났지만 강윤아가 그의 팔을 꽉 잡자 마음속에 쌓이던 분노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심지어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그는 윤아가 자신을 붙잡도록 내버려 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를 자신에게 더 가까이 끌어당겨 두 사람의 거리를 훨씬 더 좁혔다.승현은 멍하니 서 있었다. ‘분명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혼을 한 거야?’그는 문득 윤아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열며 윤아에게 다가갔다.그러나 재민은 윤아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고승현 씨,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은데 정신 차리게 해줄까요?”재민의 매서운 눈을 본 승현은 그에게 얻어맞았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승현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재민에게 친근한 듯 말했다.“재민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전 단지 아주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그의 말을 들은 윤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승현의 가식적인 모습이 보기 싫었고 승현이 한 모든 일을 잊지 않았기에 승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런거라면, 당신은 할 자격이 없어요.”재민은 헛웃음을 치며 냉랭하게 말했다.승현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더니 곧이어 입을 열었다.“권재민 씨, 말씀하신 대로 윤아와 전 친구 사이인데 어떻게 남 일처럼 대하겠어요? 윤아랑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재민은 그가 윤아를 다정하게 부르는 것이 거슬려 무의식적으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런 자신이 너무 속 좁아 보였다. 그리고…… 이건 윤아의 의견을 존중해야 할 일이었다.재민은 고개를 숙인 뒤 윤아를 쳐다보았지만 윤아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승현이 또 말도 안 되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아니라도 그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윤아가 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엔 승현을 향한 혐오감이 가득했다.승현은
그 시각, 강윤아가 살던 동네에는 검은색 아오디 차 안에서 몇 사람이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었다.“잘 들으세요, 강윤아는 E동 405호에 살고 있어요. 이미 알려드릴 건 다 알려드렸으니 신속하게 행동하세요. 30분 안에 완료해야 합니다.”강수아는 뒷좌석에 앉은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두 청년에게 말했다.그 중 한 명은 아무 말도 없이 가슴을 치며 약속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런 일은 한두 번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일은 30분도 안 걸려요. 만족하실 겁니다.”수아는 가볍게 입술을 문지르며 반응하지 않고 말했다.“그러길 바랄게요. 알겠습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빨리 끝내고 빨리 집에 갑시다.”그때 다른 한 명이 손을 비비며 조심스레 물었다.“그…… 아가씨, 돈은 어떻게…….”그들을 힐끗 쳐다본 수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은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신분에 어떻게 그들을 의지할 수 있겠는가?수아는 인상을 지으며 말했다.“당신들이 잘만 한다면 적게 줄 이유가 없죠, 일만 성공적으로 끝나면 550만원을 입금해 드릴게요. 그럼 만족해요?”“어휴, 당연히 만족하죠.”두 사람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550만원을 받으면 어디에 쓸지, 돈 쓸 궁리만 했다.“하지만 당신들은 반드시 비밀리에 이 일을 해결해야 됩니다. 만약 들통나 버리면 그에 대한 대가는 당신들이 치러야 할 겁니다.” 수아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두 사람은 거듭 대답했다.“아가씨는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깔끔하게 해결하겠습니다.”이어 그들은 재빨리 장비를 챙겨 차에 내린 뒤, 윤아가 있는 집 현관으로 향했다.수아는 차에 앉아 복도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두 사람을 찾아가 윤아의 집에 잠입시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윤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했다.수아는 가볍게 비웃었다. ‘그 두 사람이 성공하기만 하면 앞으로 강윤아의 모든 사생활이 내 손안에 있는 게 아닌
강윤아는 권재민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그럼 같이 놀아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눈살을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윤아 씨의 즐거워하는 모습만 보면 그만이었는데, 놀이공원에 같이 오다니……, 어쩜 생각해도…….’모든 장면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전 됐어요. 혼자 놀다 와요. 여기서 기다릴게요.”재민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싫어요. 혼자 무슨 재미로 놀아요?”처음으로 재민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 윤아는 그의 팔을 끌고 놀이공원으로 이끌었다.윤아는 외국에 있을 때도 은찬이와 놀이공원에 자주 놀러 갔었고, 어린 시절에도 놀이공원에 자주 놀러 갔기 때문에 놀이공원이 익숙한 편이었다.하지만 재민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재민 씨, 놀 줄 모르죠?”재민의 어색한 모습을 본 윤아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재민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고 뻣뻣한 자세로 말했다.“그럴 리가요. 전 그냥…… 별로 놀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이렇게 유치한 건 나랑 어울리지 않아요.”윤아는 재민의 연기가 눈에 보였지만 그의 체면을 생각하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한발 물러섰다.“와 그런데 전 정말 같이 놀고 싶어요. 제가 좀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데려온 거 아니에요? 같이 놀아주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아요.”말이 끝나자 윤아는 자신이 한 말에 깜짝 놀랐고, 재민의 눈도 번쩍 뜨였다.윤아는 재민이 오바한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 얼른 고개를 돌려 설명했다.“아…… 이런 뜻이 아니었어요. 아무튼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그녀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있던 재민은 그런 윤아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왜 그렇게 쳐다봐요…….”윤아는 얼굴이 뜨거워 몸을 돌려 가버렸다.“저 먼저 갈게요. 안 기다릴 거예요!”윤아의 뒷모습은 마치 도망가는 것 같았다. 재민은 그 자리에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 그녀를 따라갔다.윤아는 아무리 놀다 지쳐도 놀이공원에 있는 동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그녀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송해나를 따라 회사에 도착한 강윤아는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눈치였다.‘내가 이런 기회를 얻게 된 건 다 해나 씨 덕분이야. 애당초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이번 면접에 합격할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만약에 실패한다면, 해나 씨의 호의를 저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거야.’그녀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해나가 미리 이야기해 두어서 인지는 몰라도 면접관은 그녀에게 매우 친절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면접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윤아를 합격시켰다. “시간이 될 때, 정식으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강윤아 씨의 개인 사정은 해나에게 대충 들었습니다. 강윤아 씨의 어머니가 아직 입원 중이시니, 출근 시점이 미뤄져도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근무할 수 있을 때 오셔서 인사팀에 가서 사원증을 받으면 됩니다.”윤아는 면접이 너무 쉽게 끝나 어리둥절했다.“네……. 정말 감사드립니다.”“현재 월급은 대략 250만원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한 후에는 300만으로 올라갑니다. 괜찮으신가요?”“네, 좋아요!” 250만원이라는 돈은 윤아에게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혹시, 해나 씨 때문에 제가 뽑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윤아의 말에 면접관은 웃으며 대답했다.“강윤아 씨는 자신감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설령, 해나가 추천했다 하더라도 저희는 실력이 없는 사람을 뽑진 않습니다. 저희 회사가 자선단체는 아니지 않습니까?”그의 말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윤아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해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면접결과를 알 수 있었지만, 확인 차 물었다.“잘 끝났어요?”“네.”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봤다“고마워요, 해나 씨……. 제가 해나 씨에게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 싶은데 뭘 좋아하세요?”“아니에요. 오히려 밥은 제가 사야죠. 지금 윤아 씨는 상황이 좋지 않잖아요. 그
은찬은 송해나의 험상궂은 얼굴에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나쁜 아줌마!”그때, 강윤아가 돌아왔고 송해나는 다시 이전의 친절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은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은찬이 얼른 피했다.“윤아 씨, 아들이 참 귀여워요.” 해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은찬을 바라봤다.윤아도 그녀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은찬은 윤아에게 달려와 아무 말없이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은찬아, 왜 그래?” 윤아는 그런 아들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은찬은 억울한 얼굴로 작게 말했다 이 아이는 해나가 자기 엄마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해나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윤아는 은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지금 집으로 가자.”그녀는 고개를 들어 해나를 바라보았다.“해나 씨,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아이를 만났으니 빨리 집으로 가야겠어요.”“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같이 식사하는 건 어때요?”해나는 두 사람과 더 있고 싶은 눈치였다.윤아는 오늘 그녀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회사 일도 그렇고, 비싼 옷과 아들의 선물까지 받았다. 그런데 또 저녁까지 얻어 먹자니 염치가 없었다.“정말 괜찮아요, 해나 씨.”“저를 남처럼 대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막 귀국해서 친구도 별로 없는데, 오늘 윤아 씨가 저와 함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게다가, 윤아 씨 아들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요.” 그녀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말했다.잠시 망설이던 윤아가 고개를 끄덕이려 하자, 은찬이 얼른 나섰다.“나는 안 갈래요.”“은찬아, 왜 그래? 평소에는 엄마 말 잘 듣잖아.” 윤아는 아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은찬은 입을 삐죽 내밀고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몰라요. 어쨌든 난 안 갈 거예요.”윤아는 미안한 얼굴로 해나를 바라보았다.“해나 씨, 정말 죄송합니다. 은찬이
강윤아는 아파트 단지를 나서면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보이지 않았고 그제야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갈수록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 같아 속상했다.휴대전화는 물론 지갑도 챙기지 않고 나온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엘리베이터는 곧 그녀의 집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윤아는 자신의 집 앞에 이상한 남자 몇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윤아가 얼른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듯 여전히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양아치가 틀림없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누구인지 물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그녀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여기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건 분명해. 하지만, 저들은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란 걸 모르는 것 같아. 설마…… 우리 은찬이를 노리는 거야?’윤아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남자들도 그녀를 쏘아보았다.그녀는 얼른 맞은편 집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에서 기척이 없자, 이번에는 주먹을 쥐고 힘껏 두드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야? 뭐하는 짓이야? 조용히 하지 못해!”문이 열리면서, 그 집의 가족들이 모두 현관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얼굴을 찌푸린 채 윤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그녀는 몸을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윤아의 집 앞에 서성이고 있던 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남자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 중 제일 앞에 있던 남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만 가자.”윤아는 남자들이 황급히 떠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맞은편 집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 제가
권재민의 고집에 강윤아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집은 제가 직접 찾아도 되니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만약 권재민이 나서서 찾아준다면 아마 강윤아가 부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집을 구할 지도 모른다. 물론 권재민이 비용 부담을 할 테지만 그래도 그 호의를 아무렇지 않게 받는 건 어쩐지 미안했다.그 생각을 읽었는지 권재민은 강윤아를 힐끗 흘겨봤다.“제가 이미 결정한 일에 대한 반박은 거절하죠.”이윽고 거절할 새도 없이 강윤아의 어깨를 밀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됐어요. 얼른 가서 짐 싸요. 지금 이 상황에서 여기서 더 지낼 수도 없잖아요?”그 말은 확실히 강윤아더러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집안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생각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때, 은찬이 인기척을 들었는지 방안에서 쪼르르 달려 나왔다.“아빠, 오셨어요? 그런데 여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요?”“은찬아.”자기한테로 달려온 은찬의 머리를 권재민은 톡톡 두드렸다.“너와 엄마가 이사하는 것 좀 도와주려고 왔어.”물론 그 연유를 몰랐지만 은찬은 권재민의 말이라면 믿고 보기에 무의식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럼 은찬이도 얼른 짐 싸. 엄마 혼자 고생하게 하지 말고.”“네!”권재민의 말에 은찬은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제 물건은 제가 직접 정리할 수 있어요.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도 돼요.”으쓱해하며 방으로 달려가는 은찬을 보더니 권재민은 다시 시선을 강윤아에게로 돌렸다.“봐요, 은찬이도 얌전히 짐 싸러 갔는데 윤아 씨는 계속 그렇게 서 있기만 할 거예요?”끝내 강윤아는 짐 한 상자를 들고 은찬과 함께 권재민의 차에 올라탔다.차에 앉은 순간부터 강윤아는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권재민이 저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가늠이 가지 않는 데다, 이것으로 또 권재민에게 빚을 지게 된 셈이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차가 웬 별장 앞에 천천히 멈춰서더니 권재민이 강윤아를 도와 차 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