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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다 벗겨

다정은 머릿속의 생각들을 다 말로 하지 않았다. 굳이 얘기해도 별 소용없으니,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진맥하던 손을 거두고 다정은 고개를 돌려 소영에게 물었다.

“소영 씨, 혹시 침 있어요? 침술용 그런 침이요.”

소영은 눈이 맑아지며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

“네. 있어요! 그 말인즉 치료 가능하다는 얘기인가요?”

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답했다.

“네.”

그녀의 의술이 미덥지 않았던 구남준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고다정 씨, 정말 가능한 거죠?”

다정은 별말 없이 구 비서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 사람 벌써 몇 번 확인하는 거야? 쓸데없는 말이 참 많군.’

다정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제가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대체 제가 치료하는 겁니까? 아니면 그쪽이 치료하는 겁니까?”

구남준은 순순히 입을 다물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위층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소영은 침이 들어있는 작은 케이스를 하나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사이즈의 다양한 침이 촘촘히 꽂혀 있었다.

“저 혼자 힘으로는 안 돼요.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말만 하세요.”

구남준도 캐묻지 않았다.

“그래요, 소영 씨, 수고스럽지만 이 침들 전부 소독해 줘요.”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구남준에게 말했다.

“비서님, 이분의 옷을 다 벗겨 주세요. 아…… 속옷은 빼고요…….”

“네?”

소독하러 가려던 소영이 놀라서 다정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소독하러 갔다.

구남준은 꼼짝하지 않고 놀란 눈빛으로 다정을 바라보았다.

‘어찌 이 여자 앞에서 도련님의 옷을 반쯤 다 벗긴단 말인가? 모양 빠지게…….’

‘그리고 침술 하는데 바지를 벗기는 게 어딨어? 기껏해야 상의 정도지…….’

구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다정의 초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바지 안 벗겨도 돼요, 대신 바짓가랑이는 걷어줘요, 말 안 따랐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쪽 책임인 겁니다…….”

다정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쳐다보았다. 구남준은 이를 악물고 그대로 했다.

‘지금 상황이 시급하니 이 여자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도련님이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목숨으로 사죄하는 길밖에 없다.’

옷을 벗기자, 잘생긴 남자의 건장한 몸이 보였다. 구남준은 여준재를 침대에 엎드려 눕혔다.

넓은 어깨와 좁은 치골, 차가운 피부에는 젊음의 광택이 묻어났다.

소영의 바늘을 건네받은 다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침을 놓기 시작했다. 혈자리를 찾은 후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시침하는 것이 나름 노련했다.

다정은 어깨에 한 침, 종아리에 한 침 놓았다.

‘이렇게 놓는 침술도 있나?’

의술을 모르는 구남준은 침을 놓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소영은 프런트 데스크의 여직원일 뿐만 아니라 신수 노인의 보조로서, 의술에 대해 좀 알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신체 각 부위의 혈자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시침한 혈자리는 자신이 전혀 모르던 곳이었다.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시침 방식이네……. 설마 막 찌르는 건 아니겠지?’

‘설마…… 도련님한테 무슨 문제 생기지는 않겠지?’

여러 가지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한 소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정 씨, 방금 시침한 이 혈자리…… 보통 의사샘들은 잘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치료 방법이 좀 다르네요?”

“인체에는 혈자리가 아주 많아요. 독학했어요. 아마 소영 씨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를 거예요.”

다정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모호하게 설명했다. 분명히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다정이 시침하는 혈자리는 고대의학 세가의 후계자였던 스승님께서 가르쳐준 것이었다. 일반적인 한의학이 아닌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대의학은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소영은 반신반의하며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시침하는데 방해될까 봐 말도 못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보기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침이 끝났다. 다정은 이마에 묻은 땀을 닦으며 한숨을 돌렸다.

“됐어요.”

앞으로 다가간 구남준은 여준재의 온몸이 바늘로 뒤덮여 있는 걸 보았다.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어때요?”

“몸에 있는 침을 건드려서는 안 돼요. 10분 후에 뽑을 거예요. 침을 뽑고 나면 깨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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