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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의 개인 주치의가 되다

화제가 자신한테로 돌려지자, 준재는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세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구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요, 보수는 편하게 얘기하세요. 그러고 보면 우린 다정 씨랑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죠…….”

신수 노인은 의아하다는 듯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왜? 아는 사이냐?”

구남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셈이죠?”

남준은 콧등에 걸쳐진 안경을 올려 세우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며칠 전에 저와 도련님이 차를 타고 가다 다정 씨와 도로에서 약간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접촉 사고로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다정 씨가 이런 대단한 분인 줄 몰랐습니다.”

이 말을 꺼낸 뒤 분위기는 다소 어색해졌다.

구남준은 다정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다정 씨, 그 교통사고에 관해서는, 다정 씨에게 어떠한 배상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다정 씨를 우리 도련님의 개인 주치의로 모시고 싶습니다. 비용은 다정씨가 원하시는 데로 드리겠습니다.”

준재는 침묵했다. 그렇게 진행하라는 의미였다.

다정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여러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결정해야 한다.

다정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의술이 대단하다니요, 과찬입니다. 제가 무슨……. 만약 고수라면 지금 이렇게 가난하고 초라하게 살고 있지는 않겠죠……?”

다정의 이 말은 겸손이자, 자조였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초라한데, 무슨 고담준론을 펼치겠는가?

다만…… ‘가난하고 초라하게 산다’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완곡한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다정 씨, 혹시 돈 문제 때문입니까? 고민할 필요 없이 비용을 제시해 보세요.”

준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정은 처음으로 준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듣기 좋았다. 톤은 낮고 분위기 있으며, 마치 파도의 속삭임처럼 사람을 매료시켰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그의 비주얼과도 너무 찰떡궁합이었다.

다정은 마음속으로 그의 신분을 생각해 보았다.

‘재벌 2세? 아니면 귀한 집 도련님……? 억만장자, 맞겠지?’

‘만약 차량 수리비 천만 원을 위해 승낙했다가 치료에 차도가 없으면, 틀림없이 나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받은 돈보다 더 크게 토해 내야 할지도 모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수리비를 지급하고, 더 이상 그들과 엮이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처럼 평화로운 삶을 사는 지름길이야.’

여기까지 생각한 다정은 완곡하게 거절을 표시했다.

“저는 제 능력을 알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제 분수에 맞게 살고 싶어요…….”

두 번이나 완곡하게 거절하자, 신수 어른도 치료 거부에 대한 이유가 궁금했다.

“다정 씨, 왜 준재의 치료를 거부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신수 노인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준재를 위해 다정에게 치료를 부탁하였다. 고대의학은 일반적인 의술이 아니다. 만약 다정이 손을 내밀면 틀림없이 준재의 몸 상태는 크게 호전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 의술이 아직 부족한데…… 어찌 감히 함부로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앞에서 그 이유를 밝힐 수 없어 모호하게 거절했다.

신수 어른이 또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준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고다정 씨가 원하지 않으신다면 무리하게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할아버지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재는 다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사람을 얼음으로 얼릴 수 있는 것처럼 차가웠다.

“아마도 이번에는 고다정 씨 말 대로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인가 봅니다. 만약 다정 씨의 의술이 정말 뛰어났다면, 이렇게 거절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는 말속에는 불신과 풍자의 뜻이 다분히 들어있었다. 거기에다 자극요법까지 가미해서 말이다.

다정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고자 할 때 신수 노인은 급히 앞으로 걸어가서 여준재의 어깨를 툭 쳤다.

“이 녀석아, 너 무슨 소리냐? 겨우 네 목숨을 구할 사람을 찾았는데…… 이렇게 헛되이 포기하고 죽을 셈이냐?”

준재는 말없이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몸을 돌려세운 신수 노인이 다소 부드러워진 말투로 다정에게 말을 건넸다.

“다정아, 옛말에 사람을 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귀한 일이라 했어. 다정이가 우리 약방과 2년 동안 거래하면서 쌓인 정을 생각해서라도 이 녀석을 좀 도와주면 안 되겠나?”

순간 다정의 마음이 약해졌다. 자신이 신수 노인과 알게 된 요 몇 년 동안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었다.

한 번도 돈을 인색하게 주거나, 연체하지 않았고, 항상 제때 꼬박꼬박 잘 주었다.

이 또한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인 자신에 대한 일종의 보살핌과 베풂 아니겠는가?

‘만약 승낙하지 않는다면, 신수 어른이 난처해질 것이다. 앞으로 자신이 또 이곳과의 거래도 많이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정은 승낙할까 말까 망설였다.

준재를 한번 슬쩍 보았다. 그의 차가운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준재는 무심코 침대에 앉아 검은 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넥라인을 살짝 열었다.

그 사이로 근육질의 가슴이 보였다. 하얀 피부가 햇빛 아래에서 윤기를 띠고 있었다.

칼라 문신이 가슴에 박혀 다정의 눈에 선명하게 비쳤다. 얼핏 보기에는 예리한 매의 눈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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