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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그녀를 건드릴 수 없어

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천만에요. 손만 거들었을 뿐이에요.”

이는 겸손의 표현이 아니었다.

준재에게 이런 작은 일을 해내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곧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어졌고, 고다정은 마음이 복잡해 얼굴빛이 고요했다.

준재는 이제서야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리가 안된 물건들이 집 안을 꽉 채웠지만, 아늑한 인테리어는 보기 좋았다.

이를 본 다정은 말했다.

“여 대표님, 제가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집이 좀 어지러워요. 저녁은 다음에 대접할게요.”

그녀는 지금의 기분으로는 손님을 대접할 수 없었다.

돌아가라는 말을 둘러 말한 걸 알아차린 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때 고하윤이 달려와 그의 팔을 흔들었다.

“멋쟁이 아저씨!”

하윤은 힘차게 한마디를 뱉었지만 피곤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준재는 얼굴빛이 희미하게 변했고 눈빛은 약간 어두워졌다.

갑작스러운 이사로 인해 다정과 강말숙이 고통받은 만큼 틀림없이 아이들도 고생했을 것이 뻔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하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겁내지 마, 다 지나갈 거야.”

준재는 무뚝뚝한 성격이 익숙했기 때문에 아이를 위로하고 싶을 때면 늘 이런 말을 했다. 어느새 고하준도 합세해 자신만만하게 작은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전 두렵지 않아요! 제가 다치는 한이 있어도 엄마랑 여동생을 지켜줄 거예요!”

그는 그가 말한 대로 행동했다.

‘사내대장부는 가족을 보호해야지.’

이 말을 들은 다정은 뿌듯함과 동시에 감동을 받았다.

준재의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따뜻함이 가득했다.

그는 손을 뻗어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하준이는 참 착하구나.”

갑자기 칭찬을 받은 하준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준재는 떠났다.

그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하준과 하윤은 모처럼 그를 만나 매우 기뻤기에 멋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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