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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등 어멈은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이고, 둘째 아씨 손이!”

그러면서 등 어멈은 얼른 낙월영을 부축하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군요. 둘째 아씨의 혼사를 빼앗은 것으로도 모자라 둘째 아씨가 약을 먹여주는데 밀어서 넘어뜨리다니요!”

바로 다음 순간, 한 인영이 빠른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낙월영의 옆에 섰다.

“월영아!”

낙월영은 미간을 좁히더니 피로 얼룩진 손바닥을 들어 보았는데 그 모습은 못내 애처로워 보였다.

부진환은 낙월영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더니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낙청연을 쏘아보았고 낙청연은 곧바로 입을 열려고 했다.

“전…”

그러나 해명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부진환이 억센 힘으로 그녀를 침상 위에서 끌어 내렸다. 바닥에 쓰러져서 몸의 중심을 잡기도 전에 부진환이 매섭게 따귀를 때렸다.

그 순간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뺨이 덴 것처럼 뜨거웠고 아렸다.

낙청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낙월영은 부진환의 옷소매를 잡으면서 간청했다.

“왕야, 제가 부주의해서 넘어진 것입니다. 언니 잘못이 아닙니다.”

등 어멈이 섭정왕에게 고자질했다.

“왕야, 제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둘째 아씨께서 좋은 마음으로 약을 먹이는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둘째 아씨를 밀쳤습니다. 둘째 아씨께서 선량하셔서 그냥 넘어가 주려고 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둘째 아씨를 데리고 가서 약을 발라주거라.”

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예.”

등 어멈은 낙월영을 부축하면서 떠났다.

방 안에는 낙청연과 부진환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서늘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힘주어 잡았다. 만약 그가 잡은 것이 낙청연의 목이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진짜 네가 왕비라도 된 것 같으냐? 월영이가 부탁하지만 않았다면 난 널 죽였을 것이다. 또 한 번 이딴 짓을 한다면 월영이를 다치게 한 네 손을 잘라버릴 것이다.”

부진환의 목소리에는 노여움이 가득했고 말투는 포악하기 그지없었기에 듣고 있으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였다.

맞아서 얼얼한 뺨을 부여잡고 있던 낙청연은 그를 쏘아보면서 냉소를 흘렸다.

“제가 다치게 한 장면을 보셨습니까?”

“등 어멈이 증언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감히 변명을 한단 말이냐?”

부진환은 낙청연이 변명까지 하려 하자 놀라우면서도 화가 났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낙청연은 본디 악랄한 인간이며 단지 오늘에야 그 본모습이 전부 드러난 것뿐이니 말이다.

낙청연은 무척 분했다. 분명 자신은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맞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진환의 관상을 살폈다. 이목구비는 선명하고 눈은 길고 가늘며 청초하고 준수했다. 콧대는 높으면서 쭉 뻗어 있는 것이 크게 될 상이었고 미간에는 양기가 가득한 것이 군주가 될 상이었지만 오래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니 마음의 눈이 먼 것이지요. 왕야는 눈이 붉게 충혈되었고 양미간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걸 보니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시군요. 눈빛이 깨끗하지 못하고 탁한 것을 보니 최근에 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여자 때문에 눈이 멀어 여자의 손에 죽을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그녀는 당당한 여국의 대제사장으로서 관상을 보고 점을 치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부진환이 낙월영을 감싸고 도는 것을 보니 부진환이 낙월영 때문에 해를 입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낙월영은 그와 혼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낙청연을 꼬드겨서 그녀 대신에 혼인을 치르게 했을 리도 없었다.

낙월영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낙청연 혼자 어떻게 경비가 삼엄한 섭정왕부에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낙청연이 공공연히 신방에 있는 낙월영을 기절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부진환은 낙월영을 가리키는 것 같은 낙청연의 말에 순간 표정을 굳히더니 그녀의 목을 조르면서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네 혀를 잘라줬으면 좋겠나 보구나.”

그 음산한 말투에 낙청연은 등골이 오싹했다.

바로 그때 낙청연은 순간 가슴이 칼로 후비듯이 아팠고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감돌더니 돌연 선혈을 뿜었다.

새빨간 피가 부진환의 옷에 흩뿌려졌다.

갑자기 피를 뿜는 낙청연의 모습에 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자신은 아직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부진환은 얼어붙을 듯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그녀는 이미 자결하려는 척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불쌍한 척해 보이면서 그의 동정을 사려는 걸지도 몰랐고 또 어떤 짓을 꾸미려는 걸지도 몰랐다. 그는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여인을 가장 싫어했다.

그의 질타하는 듯한 어조에 낙청연은 자조적인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수작이라니요? 그건 낙월영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에게 무엇을 먹였는지 물어보면 알 수 있으실 텐데요.”

낙청연의 가시 돋은 말투에는 화가 가득했고 부진환은 그녀의 말에서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가 어두워졌고 그는 바닥에 남아있는 깨진 약 그릇을 무감하게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낙청연은 그가 낙월영이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애가 너에게 뭘 먹였던 그건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 한마디에 낙청연은 또다시 나락으로 빠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먼저 그 애를 해하려 했으니 월영이가 너에게 화를 푼다고 하더라도 그냥 참고 있어.”

부진환은 두 손을 등 뒤로 가져가며 말했다.

큰 키를 가진 그는 마치 신이 강림한 것처럼 조용히 그곳에 서 있었는데 낙청연의 눈에는 그가 마치 그녀의 피와 살을 먹으러 온 식인귀 나찰(羅剎) 같아 보였다.

“그럼 월영이가 제 목숨을 빼앗으려 한다면요?”

낙청연은 여전히 체념하지 못한 듯 물었고 부진환의 대답은 역시나 그녀의 예상을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그럼 난 그 애에게 칼을 넘겨줄 것이다.”

순간 낙청연은 가슴이 쥐어짜듯 아팠다. 몸의 원래 주인의 원한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씁쓸하고 내키지 않는 듯한 기분이 그녀를 아프게 했다. 그녀의 몸은 아주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려보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죽을힘을 다해 눈물을 참으려 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 가치 없는 일은 없었다.

부진환은 그녀의 소리 없이 눈물을 꾹 참는 표정을 무심결에 보았다. 눈물을 참고 있었으나 여전히 빨간 눈가와 굴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러운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면서 차갑게 말 한마디를 남겼다.

“낙청연, 기억하거라. 그 애를 대신해서 시집온 것이니 네 목숨은 더 이상 네 것이 아니다.”

낙청연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지만 남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개소리!

진짜 낙청연은 이미 죽었다. 그녀가 설사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해도 이미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렀고 낙요(洛嬈), 자신의 목숨은 그녀 자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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