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희의 촉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 침실에 확실히 남자가 숨어 있었으니까. 다행히 그녀도 김준희가 다시 물어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상하고 몸을 돌려 김준희에게 길을 비켜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엄마,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요. 내가 무슨 집에 남자를 숨겨요?”“분명히 들었단 말이야.”“뭘 들었는데요? 길을 비켜드렸으니 의심되면 확인해 보세요. 옷장이랑 화장실 다 샅샅이 뒤져보세요. 안 그러면 저 억울해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요.”그녀는 몸을 돌려 눈물을 닦았다. 눈물은 당연히 짜낸 것이었고 보기에는 무척 슬퍼 보였다.김준희는 자신이 쓸데없는 의심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사생활이 어떤지는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늘 딸아이를 감시해 왔기 때문에 남자 친구를 사귀는지도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남자를 숨겼다는 말은 딸한테 하지 말았어야 했다.아까는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엄마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이제 그만 화 풀어.”미안한 마음에 그녀가 유나은의 손을 잡았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저 상관 안 해요. 하지만 엄마가 이러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엄마 잘못이야. 사과할게.”김준희는 유나은의 눈치를 살피며 웃었다.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유나은도 한발 물러서는 척하면서 돌아서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내 김준희의 발밑에 놓아두었다. “속이 좀 안 좋아서 늦게 문을 열었어요.”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녀가 배를 부드럽게 문지르고 있었다.“지금은 어때? 좀 나아졌어?”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그래요. 아플 때도 있고 괜찮을 때도 있고.”“검사 받아봤어? 큰 병 같은 건 아니겠지?”김준희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알아서 해요.”“커피 드실래요? 아니면 차 드실래요?”유나은은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다. “신경 쓸 거 없어. 잠깐 앉아 있다가 갈 거야. 이리 와서 좀 앉아.”김준희는 슬리퍼도 갈아신지 않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넌 의사라는 애가 잘 챙겨 먹을
“복이라는 게 이원우랑 결혼하는 거예요?”정확한 대답이었다. 이내 김준희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새빨간 네일을 한 손으로 그녀가 입술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원우가 얼마나 좋은 남자니? 앞으로 내 인생은 너한테 달렸어.”“엄마, 제가 몇 번을 말해요. 저랑 이원우는 가능성 없어요. 이씨 가문에서 절대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유나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3년 전 그 일은 할아버지께 말씀드린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예요. 기껏해야 제가 배현시에서 쫓겨나게 되겠죠. 그때가 되면...”“그만해. 그렇게 심각하게 말하지 마.”김준희가 무거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제가 심각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런 거예요. 엄마만 아직도 잘 모르고 계시는 거라고요.”“입 닥쳐.”이제 막 가라앉은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왜 자꾸 이렇게 재수 없는 얘기만 골라서 해?”유나은은 갑자기 웃음이 났다. 끝없이 그녀를 몰아세우는 사람은 김준희였고 여태껏 그녀는 단 한 번 누구를 강요해 본 적이 없다. 잠시 후, 김준희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걱정하지 마.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아픈데 다 나으면 할아버지께 사과드리러 왔다 가.”그런 김준희의 모습에 무감각해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벙어리야? 왜 말이 없어?”김준희는 나무토막 같은 그녀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알았어요.”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준희를 문까지 배웅하려 했다. 그 모습에 김준희가 손사래를 치며 배웅하지 말라고 했다.“푹 쉬어. 그리고 평소에 네가 먼저 이원우한테 연락도 좀 하고 그래.”대답을 하려고 하려는 그때, 그녀의 침실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타악. 거실에는 유나은과 김준희 두 사람뿐이었고 말소리 외에는 잡음이 없었기 때문에 김준희가 잘못 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바로 유나은을 향해 따져 물었다.“방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엄마.”유나은이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의 모습에 김준희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이렇게 긴장해?”“저기... 조심하세요. 제 물건 망가뜨리지 마시고요.”“내가 무슨 네 물건을 망가뜨린다고 그래? 근데 이렇게 긴장하는 걸 보니 뭔가 수상한데? 너 혹시 나한테 숨기는 일이라도 있니?”김준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뭔가 말을 하려는 찰나 김준희는 그녀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이 안에 뭐가 있는지 어디 한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핸드백 안의 핸드폰 소리가 다급하게 울렸고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누가 전화를 한 거야?”지금 걸려 온 전화가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그녀의 말투에 짜증이 가득 배어있었다. 근데 발신자 번호를 본 순간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하였고 그녀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을 때 수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준희의 모습을 유나은도 눈치챘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김준희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전화를 마친 그녀가 급히 침실을 나왔다.“급한 일 있어서 먼저 갈게. 푹 쉬어. 어르신께 사과드리는 거 잊지 말고.”몇 마디 당부한 뒤, 김준희는 급히 자리를 떴고 방금 침실에서 들린 소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했다. 유나은은 문 앞까지 쫓아와 물었다.“아저씨 어디 편찮으세요?”“그 사람 아니야.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황급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김준희는 몇 걸음만 더 가면 침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근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전화가 걸려 왔다. 도대체 누구한테서 걸려 온 전화이길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침실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보니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당신이야?”“내가 뭐?”이연준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따져 묻는 말투로 그한테 묻지 말았어야 했다
“도련님 예상이 맞았습니다. 둘째 사모님께서 그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바로 뛰쳐나갔네요.”흠칫하던 유나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진 비서님의 목소리가 들리는데?거실을 기웃거리니 정말 진명수였다. 진 비서님은 여길 어떻게 들어오신 거지? 그리고 방금 얘기한 그 사람은... 또 누구인 거야?엄마가 급히 떠난 게 그 사람 때문인 건가?추측할 수 없다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엿듣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진명수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나은 씨.”유나은은 이연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방금 엄마가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급히 가셨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이... 누구예요?”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기에 김준희가 그렇게 당황한 기색으로 부랴부랴 만나러 간 것일까?유나은은 그게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진명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나은 씨, 도련님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도련님께 직접 물어보시죠.”직접 물어보라고?그녀는 현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내 집에 들어오라고 허락한 적 없어요. 당장 나가세요.”“나가요. 똑같은 말 반복하기 싫어요.”유나은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나은 씨, 화 풀어요. 지금 바로 나가겠습니다.”진명수는 자신이 마침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걸 알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쭈뼛쭈뼛 돌아섰다. 방문이 닫히고 의미심장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점점 배짱이 커지는 건가? 이젠 내 사람한테까지 뭐라 하는 거야?”“내가 뭘? 이게 다 삼촌이 눈감아 줘서 그런 거지.”유나은은 테이블을 돌아서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알면 됐어.”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왜 그렇게 멀리 앉아 있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해?”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응. 무서워.”그의 말투에 불쾌함이 가득했다.“내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탓에 유나은은 남자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져 갔다. 만약 사진을 보지 않는다면 가끔 그의 생김새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유종원, 그녀의 생부였다.유나은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삼촌은 왜 갑자기 내 생부에 관해서 묻는 거야?”이연준은 그냥 갑자기 떠오른 것이라며 대답하곤 되물었다.“원망한 적은 없어?”“딱히 원망할 것도 없었어.”유나은은 담담했다.“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잖아.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나를 키우고 싶어 하셨지만, 양육권은 우리 엄마가 가져왔잖아. 그리고 날 데리고 이씨 일가로 와서 나를 낳아주신 아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유나은은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이연준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면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지만 이연준의 심장은 돌로 만든 것처럼 차갑고 냉정하여 그런 그녀를 보고도 동정하지 않았다.“삼촌,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왜 갑자기 내 생부에 관해 물어본 거야?”그녀는 꼭 대답을 듣고 싶었다.“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거야.”이연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그녀에게 말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금요일 시간 비워 놔. 본가에 가야 하니까.”유나은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갑자기 본가는 왜?”“왜, 본가로 가기 싫어?”이연준은 바로 그녀의 마음을 파악했다.“할아버지가 그냥 넘어가 주실 줄 알았냐.”유나은은 입꼬리를 올렸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엄마인 김준희는 그녀가 떠날 때도 몇 번이나 본가로 돌아가 할아버지인 이동건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 생활이 그다지 좋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나도 알아.”그녀는 얌전히 대답했다.그녀의 모습은 얌전해 보이긴 했지만 이연준의 눈에는 그저 꾸며낸 모습이었다. 오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 이연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리고 또. 네가 하고 있던 이상한 생각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유나은은 그의 말을 알
“조금이라도 먹어. 배곯지 말고.”조현태는 주승아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주승아는 말로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젓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온통 핸드폰에 가 있었다. 핸드폰 화면만 빤히 보면서 유나은의 답장만 기다렸다.조현태는 결국 화제를 돌려 물었다.“유나은 씨는 의사야?”“응.”주승아는 그제야 관심을 보이며 대답했다.“우리 나은이는 정신과 석사를 졸업한 엘리트야. 아주 대단하다고.”“정신과?”의사라는 직업을 들었을 때 조현태는 의아하지 않았다. 그가 의아해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유나은 씨는 왜 정신과를 선택한 거래?”주승아는 조현태의 의아함을 눈치채고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너무 많은 거 알려고 하네.”조현태는 순간 당황해했다.“미안, 미안. 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다른 의미는 없었어.”주승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정신과는 아주 좋은 학과야. 전에 학술회가 있어서 유나은 씨 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학교도 아주 좋은 학교였고 유나은 씨 공부도 아주 잘한다고 들었었어.”손지태는 태연하게 대꾸했다.주승아는 손지태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았다.“난 지금까지 외삼촌이 나은이랑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아파트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을 줄은 몰랐어. 지금은 또 학교에서 나은이 소문도 들었다고 하고...”주승아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손지태에게 손가락질했다.“외삼촌, 말해봐. 나한테 숨기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 거야?”“뭐 많다고 할 수도 있고 적다고 할 수도 있지.”손지태는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내가 모르는 건 아직 많아. 나중에 천천히 다 말해줄게.”주승아는 계속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더니 문자가 왔다.그토록 기다리던 유나은의 답장이었다.[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문자를 보고 나서야 주승아는 마음이 놓였다....시간은 흘러 빠르게 금요일이 되었다. 유나은은 약속했던 대로 본가로 돌아가 이동건에게 잘못을 인정했다.그 일이
유나은은 이상윤이라는 계부에 다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여하간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니 수시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지금처럼 갑자기 문을 닫으며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상윤은 지금 발병 상태라는 것을.“상윤 아저씨였군요.”유나은은 두려움을 억누르며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아저씨, 아침은 드셨어요?”“응, 먹었어.”이상윤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나은아, 이제야 온 거야? 아침 아직 안 먹었지?”유나은은 슬쩍슬쩍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전 당연히 먹었어요. 아저씨, 우리 엄마는 어딨어요?”그녀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상윤은 결국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는 두어 걸음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준희는 아침부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더라고... 나은아, 왜 자꾸만 뒤로 가는 거니. 혹시 내가 무서운 거니?”긴장한 유나은의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아뇨. 제가 왜 아저씨를 무서워하겠어요...”방 안에는 둘 뿐이었다. 유나은은 이상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 피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뭔가 떠오른 듯 유나은은 이상윤의 뒤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엄마, 오셨어요?”속아 넘어간 이상윤은 뒤돌아보았다.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유나은은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 문을 열었다. 이상윤은 유나은이 이런 거짓말을 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뒤늦은 반응을 보였지만 유나은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간 상태였다.방 안은 사실 어둡지 않았다.하지만 빠르게 달려 나온 그 순간 유나은은 방 밖이 이렇게나 환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긴장감에 차가웠던 손발마저 다시 온기를 되찾았다.다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뒤에 있는 이상윤이 그녀를 어떻게 부르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앞만 보고 달렸다.너무도 빠르게 달린 터라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거리가 가까워질 때쯤 누군가 소리를 쳤다.“조심해!”유나은은
“왜 불러. 얼른 삼촌한테 죄송하다고 사과해. 앞으론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고.”김준희는 그녀는 재촉했다.유나은은 손을 들어 김준희가 꼬집었던 팔을 쓸어만졌다. 꽤나 아팠다.억울한 그녀는 속상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고분고분 잘못을 인정했다. 그녀는 이연줄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삼촌, 죄송해요. 앞으로는 뛰어다니지 않을게요.”이연준은 그녀의 팔을 힐끔 보더니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그게...”유나은은 머뭇거렸다.이상윤은 자주 발작을 일으켰고 이동건은 이상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이 죽는 큰 사고가 나지 않으면 전부 없었던 일로 하면서 무시했기에 이씨 일가의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감히 이상윤에 대해 말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씨도 아닌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유나은은 다시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제가 규칙을 잊은 것 뿐이에요.”이연준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다음은 없어야 할 거야.”유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김준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이연준이 그냥 넘어가줄 줄은 몰랐기에 그녀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만약 평소였다면 분명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이동건은 결혼을 세번 했었고 아들도 세명이 있었다. 큰 아들은 마음이 넓고 온화했으며 둘째 아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이연준은 이동건을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었다. 성격이 냉정하며 칼 같았으며 잔인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동건보다 이연준을 더 두려워했다.김준희도 평소엔 염라대왕 같은 이연준을 최대한 피해 다녔다. 오늘도 그 일때문에 피해다니고 있었다...“먼저 돌아가 있어.”김준희는 유나은을 먼저 돌려보내려고 했다.유나은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이연준과 김준희가 떠난 뒤 그녀는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창피하게 다리에 힘은 왜 풀리는데...'하필이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