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기 부모님의 도움으로 차에서 내린 뒤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검사결과 역시나 위장염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뭘 잘못 먹었느냐고 할 때 배인호는 나를 힐끗 쳐다봤다.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그의 시선을 피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 가계에는 배인호가 고집부리며 가겠다고 한 것이었다.“네, 별로 맛없는 음식을 먹었어요.”배인호가 한마디 답했다.그가 치료를 받을 때쯤 나는 몰래 밖에 나왔는데 생각 밖으로 김미애도 내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나는 그녀가 나에게 배인호가 뭘 먹었기에 위장염이 걸렸는지 물어보는 줄 알고 사과할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지영아, 인호랑 같이 저녁 먹었다면서? 넌 괜찮니?”그녀가 걱정스러운 듯 내게 물었다.나는 조금 전까지 했던 심리준비는 소용이 없었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저는 괜찮아요, 아주머니. 저는 별로 안 먹었어요.”몇 초 뒤에야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는 더욱 깊은 자책감을 느꼈고, 왠지 배인호를 골탕 먹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러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괜찮으면 됐어. 조금 전에 네 아빠랑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정신상태는 아주 좋으시더라. 치료만 잘하면 별일 없을 거야.”“네, 고마워요. 이렇게 친히 저희 아빠 보러 와주셔서요. 아주머니, 저녁에 아저씨랑 시간 있으세요? 같이 밥 먹어요.”나는 다시 한번 식사 초대를 했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왠지 속에서 내려갈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원래는 “아니”라고 거절의 한마디를 내뱉으려는 듯 보였지만 곧 말을 다른 말로 바꾼듯했다.“지영아, 나랑 네 아저씨 둘 다 지금은 밖에 음식을 별로 안 먹어. 괜찮다면 우리가 너희 집에 가서 로아와 승현이도 보며 밥 한 끼 먹고 싶은데, 어떠니?”그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나는 배인호 부모님이 내가 지금 사는 집에 가는 게 싫었다. 비록 숨긴다 해도 별 의미는 없지만, 그들이 그렇게 쉽게 알게
“허지영, 너 잘 준비하는 거야?”전화기 너머로 배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네, 자려고요. 왜요?”나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피로를 풀고 있었다.배인호는 잠시 3초간 조용히 있었다. 나는 불안감이 점점 강해지는 듯했다.역시, 내 예상대로 그는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너 나 굶겨 죽일 예정이야?”“내가 인호 씨를 굶겨 죽인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병원에서 밥 안 먹었어요?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병원에 음식은 입에 안 맞아. 밖에 음식도 먹고 싶지 않고. 위장병에는 식이요법이 가장 중요하지. 의사 선생님도 나보고 집밥을 먹는 게 위에도 가장 좋다고 했어.”배인호는 듣기에는 허약해 보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나는 그가 나한테 밥을 해달라고 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뭐가 먹고 싶으면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 간단한 일이다. 다른 사람을 시킨다거나 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왜 곧 잠들 전 와이프에게 부탁을 하는 걸까?나는 냉정하게 그를 거절했다.“나 요리 잘 못 해서 집밥 같은 거 해줄 수 없어요. 아니면 박준 씨에게 부탁해 봐요.”박준도 아직 있을 건데 이럴 때나 그를 부려먹지 대체 언제 부려먹으려고 저럴까?어차피 노성민 쪽은 인젠 걱정할 필요 없으니, 이제는 배인호만 걱정하면 되겠네.“걔는 5성급 호텔 음식밖에 포장할 줄 몰라. 나 이미 질렸어. 나 집에서 끓인 죽 먹고 싶어. 쉽잖아.”배인호는 심지어 나에게 더 구체적으로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말했다.내 음식솜씨가 별로인 건 맞지만, 집에 도우미 아주머니보고 죽을 끓여다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전제하에만 그렇게 할 수 있다.게다가 쌀죽 같은 건 쉽게 구할 수 있는 거라 나는 다시금 거절했다.“박준 씨보고 5성급 호텔로 가서 미쉐린 쉐프님한테 직접 끓여달라고 부탁해요. 난 안돼요.”내가 끝까지 거절하자 배인호는 그의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진짜 안 되는 거야? 내가 빨리
이것은 인삼의 문제가 아니라, 배인호가 나에게 큰 도움을 요청한 일이다.나는 얼른 대화 주제를 돌려 곧 병원을 옮기는 일에 대해 아빠한테 말해주었다. 아빠는 국내든 해외든 별다른 의견이 없으셨다. 처음에는 심지어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도 한 적 있으니 말이다.“나 배인호 씨한테 갔다 올게요.”나는 말을 마친 뒤 몸을 일으켜 배인호에게로 갈 준비를 했다. 그 모습에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어쨌든 어제 배인호 부모님이 한번 왔다 가셨기에, 아빠도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나는 그렇게 별 탈 없이 배인호의 병실로 갔다. 병실에 도착해보니 예상외로 박준도 있었고, 한가득 풍성한 음식이 매혹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배인호는 한 입도 먹지 않았고, 내가 온 걸 본 뒤에야 박준은 뭔가를 깨달은 듯 내 손의 보온 도시락을 가리켰다. “어쩐지 내가 사 온 아침을 안 먹는다 했어. 인제 보니 아침 가져다줄 사람이 있어서네.”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나는 그 미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보온 도시락통만 내려놓았다.“먹어요.”“다행히 오셨네요. 계속 안 왔으면 인호 아마 혼자서 굶어 죽었을 거예요.”박준은 내가 가져간 도시락통을 열며, 안에 죽을 떠서 배인호에게 건네주었다.“냄새 좋네. 직접 했어?”배인호는 약간의 희망 섞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질문에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그럴 리가요. 집에 도우미 아주머니가 한 거예요.”내 말에 그의 반짝이던 눈빛은 삽시간에 빛을 잃었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숙여 배고픈 듯 죽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내가 가져간 죽을 순식간에 다 먹어버리고, 박준이 사간 아침도 조금 곁들여 같이 먹었다.나는 임무완수를 했다고 생각해 보온 도시락을 들고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박준이 단번에 나를 잡았다.“가긴 어딜 가요? 나 오늘 서울로 가봐야 해요. 지영 씨 아버지도 이 병원에 입원했다면서요? 병원에 올 때마다 겸사겸사 이 친구도 좀 돌봐주세요...”박준은 배인호를 한번 힐끗 보며 명확한
새 병원에 도착한 뒤 나는 바로 입원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새로 다시 검사를 받아야 했다.나는 2, 3일 동안 모든 것을 정리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주일 뒤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걱정이 되어 마음속에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다행히도 아빠의 상황이 나쁘지 않았고 암세포도 억제되어 진행이 늦어졌다.수술 날짜를 기다리던 중 해외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상대방은 유창한 영어로 아빠의 입원을 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검사와 수술 스케줄도 앞당겨줄 수 있다는 말에 해외 병원에서의 치료는 이미 포기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죄송하지만 무슨 이유로 우리 아버지의 순서를 앞당길 수 있다는 거죠?”나는 혼란스러워 물었다.“저희 쪽에 한 환자분의 수술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의 입원과 수술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영 씨 언제쯤 오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 쪽에서 의료진과 병실을 준비해 두겠습니다.”해외 병원의 태도는 아주 친절했다.나는 순간 멈칫했다. 금방 새 병원에서 안정되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꿔야 할까?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가족들과 상의한 뒤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자 아빠가 내게 물었다.“무슨 일이야? 외국에서 온 전화니?”“아빠, 전에 그 해외 병원에서 아빠 입원을 시켜주겠다고 하네요. 수술도 미리 잡아주고요.”나는 시간을 아끼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그쪽에 가서 수술받는 거 어때요? 전에 알아봤는데 그쪽 병원의 의료 수준이 훨씬 더 높더라고요. 아빠 상황에는 더 좋을 것 같은데.”아빠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바로 거절하셨다.“나 안 가. 네가 전에 예약해도 반년 뒤에나 받을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수술할 수 있다는 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아. 난 안 갈 거야.”고집을 부리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나는 다급해졌다.“아빠 그쪽 병원에 한 환자분이 수술을 취소하셨대요. 그래서 앞당길 수 있는 거예요. 저희는 돈만 내면 되는 거고요.”나는 거짓말을 했
아빠와 내가 모두 자기를 무시하자 민설아도 더 질척거리지 않았고 가는 동안 조용했다.목적지가 같은지 민설아는 또 아빠가 입원하시게 될 병원에 나타났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비행기에서 왜 그렇게 조용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결국 목적지가 같았기에 그녀는 서두르지 않은 것이었다.“정말 우연이네요. 우리 같은 비행기에 목적지까지 같았네요.”병원에서 민설아는 내게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난 친구 만나러 왔어요.”나는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고 그냥 아빠의 입원 절차를 와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국내에서 이미 검사를 받았지만 더 신중해야 했기에 검사들을 다시 받았다. 나는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민설아의 쓸데없는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그녀는 급해하지도 않고 옆에서 내가 끝나기를 지켜보더니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말투에 질투가 가득했다.“인호 씨가 대신 예약 문제를 해결해 준 거죠?”다행히 아빠가 옆에 안 계셨다. 나는 바로 그녀를 째려보았다.“민설아 씨, 당신 친구 만나러 온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나한테 시간 낭비할 필요 있어요?”“왜요? 내 예상이 맞았어요?”민설아의 미소는 싸늘했다.“항상 인호 씨와 더 엮이고 싶지 않다는 지 뒤돌아보지 않을 거라는 건 사실 다 핑계였죠? 단지 고귀한 척하고 싶었을 뿐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한 인호 씨를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이혼을 아주 잘 활용한 건 인정해요.”“민설아 씨는 머릿속에 온통 사랑밖에 없나 봐요?”이곳이 해외 병원이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민망했을 것이다.민설아는 미련이 가득해 보였다.“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요? 하지만 내 인생은 허지영 씨 때문에 망가졌어요. 난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 허지영 씨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글쎄, 당신이 죽지 않았다고 예상하지 못한 내 탓을 해야 하는 걸까? 나도 민설아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다면 배인호와의 결혼을 거절했을 것이다.
“저와 지영 씨는 친구예요. 친구 가족이면 제 가족이기도 하죠.”이우범의 대답에 나의 눈빛이 반짝였다.친구? 좋다. 이 관계는 내가 꿈꿔왔던 바로 그런 관계였다.이우범이 직접 한 말이라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심리적 부담감이 많이 줄어든 나와는 반대로 아빠는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눈앞에서 자기 마음속 최고의 사윗감이 딸의 친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시며 많이 속상해하셨다.“아빠, 먼저 쉬세요. 저 우범 씨하고 나가서 밥 좀 먹고 올게요.”나는 이우범과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 아빠에게 말했다.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빠의 눈동자에서 빛나던 불꽃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그래, 가 봐.”나는 이우범을 데리고 병실을 나왔다. 그는 수술받는 아빠를 보러 멀리에서 와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에 나는 감동했다.나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그는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잘해주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 이우범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먼저 밥 먹지 말고 병원에 남아서 아저씨를 돌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근처에 레스토랑 있어요. 지난번 한국에서 못 샀던 밥 이번에 살게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여기 병원 간호사들이 와서 아빠 돌봐줄 거고.”이우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더니 병실 문 쪽으로 데려갔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나는 그가 왜 이러는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우범 씨, 왜 이러는 거예요? 설명 좀 해줄래요?”예전 같았으면 밥을 사겠다는 내 말에 이우범은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한 끼도 먹고 싶지 않다는 그가 많이 이상했다.하지만 민설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떠오르니 나는 은연중에 뭔가가 떠올랐다. 이우범이 바로 나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그를 쳐다보았다.이우범이 입술을 움찔거리며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는데 갑자기 민설아의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왔다.“우범 선배, 왜 여기 있어요?”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내일이에요. 왜요?”내가 물었다.“너 혼자서 아저씨 모시고 간 거야?”배인호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서는 계속 물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네, 나 혼자에요.”이우범은 오늘 막 왔고 순간 나는 그가 떠오르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나 혼자서 아빠를 챙겼기 때문이다.“허허, 그래?”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배인호는 비웃음을 날렸다. 나를 믿지 않는 듯 해 오늘 이우범이 왔다는 말을 바로 하려고 했지만 배인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이우범 지금 거기 있지 않아?”“인호 씨가 어떻게 알았어요?”나는 이 일을 아직 정아와 애들에게도 하지 않았기에 조금 놀랐다.하지만 다음 순간 방금 다녀간 민설아가 떠올랐다. 분명 그녀가 배인호에게 알려줬을 것이다.이런 식으로 나와 이우범이 얽히는 것을 배인호는 가장 걱정했다. 그가 나와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이런 일에서는 양보하지 않고 내게 화를 냈다.“맞아요. 오늘 왔어요.”나는 배인호 말투에서 불쾌함과 질투를 느꼈지만 더 해명하지 않았다.“그럼, 너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배인호의 목소리를 들으니 점점 더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가 어떻게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까?그가 며칠 전 퇴원한 뒤 서울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병원에 남아 빈이를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는 말없이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조금 불안했지만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내가 나오니 이우범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이우범이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하셨다.“지영아, 아빠가 네 일에 간섭하려는 게 아니라 우범이는 정말 어디 흠잡을 데 없다는...”아빠는 편찮으시고 난 뒤에 더 잔소리가 많아지셨다.“아빠, 전에 이우범이 어떻게 했는지 아시잖아요?”나는 아빠의 말을 끊었다.“전 마음을 터놓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지 않아요.”아빠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이우범이 어떤 짓을 했는지 나는 부모님께 모
나는 정아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배인호가 현재 나를 대하는 방식은 확실히 이전과 많이 다르지만 너무 늦었고 모든 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누구 전화에요?”이우범은 어느 순간 내 뒤에 서서 물었다.나는 고개를 돌리며 핸드폰을 집어넣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정아에요. 아빠 수술 어떻게 됐는지 묻더라고요.”“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이우범은 갑자기 말을 바꾸며 이 일을 물었다. 그는 꼭 내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아빠는 수술을 받으신 뒤 몸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상황 봐서요. 왜요? 우범 씨 바쁘면 먼저 돌아가도 돼요. 나 혼자서도 괜찮아요.”나는 이 상황을 틈타 이우범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여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빠는 더 마음이 흔들려 내가 다시 이우범과 잘 되길 바랄 테니 말이다.이우범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그 반응에 나는 불안해졌다. 만약 이우범이 독심술을 할 수 있다면 그는 내 마음속에 떠오른 ‘어서 돌아가’라는 한 마디를 알아챘을 것이다.실제로 이우범과 배인호를 비교하면 이우범이 더 상대하기에 어려웠다. 배인호가 지금 여기 나타난다면 아빠는 망설임 없이 그를 쫓아낸 뒤 나에게 배인호와 죽을 때까지 다시 엮이지 말라고 경고할 것 같았다.이우범은 그와 달랐다. 그는 우리 부모님 마음속의 원픽이었다. 전에 부모님이 내게 다시는 감정사에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더라도 이우범이 조금만 더 존재감을 어필하면 부모님은 또 흔들렸다.“지영 씨하고 아저씨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나도 함께 있을게요.”뜻밖에도 이우범은 이런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나는 그를 또 어떤 이유로 쫓아낼 수 있을까?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이건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