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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외로우면 연락해

“애초에 보상해야 할 범위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선우 다리에 흉도 질텐데 이만큼 받아야지. 얘기 나눠. 나는 일 있어서 그만 일어날게.”

나는 말을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

두 사람이 아무 걱정 없이 달콤한 시간을 보낼 날도 고작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보름 뒤면 배인호의 강렬한 등장으로 서란은 그의 사냥감이 될 것이고 기선우는 서란과 행복하게 웃으며 대화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배인호가 정말 짐승 같았다.

병원을 떠나며 나는 이 기사님에게 청담동에 위치한 배인호와 나의 별장으로 가달라고 했다. 얼마 전에 지은 한약을 거기에 두고 왔다. 한약을 가지고 친정에서 달여 먹으면서 거기에 엄마의 음식솜씨까지 더해지면 금방 살이 오를 것이다.

한약은 거실에 그대로 있었다. 어젯밤 배인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이청하와 어떻게 끝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왜 차에서 안 내렸어?”

한약을 가지고 떠나려는데 계단에서 내려오는 배인호와 마주쳤다. 그는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가 왜 집에 있는 거지? 평소라면 3개월에 한 번 들어오는데.

배인호는 올 블랙의 홈웨어를 입고 있었고 매우 심플해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몸매가 더해지니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전에도 당신의 스캔들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도 다를 거 없고요.”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걔네들이 하나 같이 캐스팅이 무산되고 안 좋은 스캔들이 터진 건 다 우연이겠네?”

그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한 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막지 않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자들은 그저 잠시 데리고 놀뿐 진심이 아니었다. 서란을 만난 후로 내가 그녀를 만나 대화라도 해보려고 하면 배인호는 성난 사자처럼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나는 부인하지 않았다.

“매번 당신이 그녀들한테 적지 않은 돈과 캐스팅 기회를 주는데 그것도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에요. 내가 내 방식대로 돌려받겠다는데 뭐가 문제죠?”

배인호가 계단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190이 다 되는 키가 꽤 위압적이었다. 그가 뭘 잘못 먹은 걸까?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나하고 이런 불필요한 대화를 하는 거지?

1년쯤 지나면 그는 나와 이혼하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평생을 써도 남을 줄텐데 고작 집 한 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나도 이제 편하게 생각하려고요. 그 여자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텐데 내가 하나하나 다 상대할 순 없잖아요.”

나는 대충 몇 마디 던지고는 집에서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기사 더러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걸 그랬다. 집에서 나와서야 배인호의 차가운 시선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약을 뒷좌석에 두고 이 기사에게 빨리 출발해 달라고 했다.

친정에 도착해 들고 있던 한약을 아줌마에게 전달했다. 엄마는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취미였다.

아빠 차가 도착했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있는 나를 발견고는 곧장 핸드폰을 건넸다.

“봐봐.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인기스타 이청하, 배씨 그룹 사장과 호텔, 연애설은 부인」

두 사람이 진짜 무슨 사이라 해도 그건 열애가 아니라 불륜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아빠에게 돌려주며 아빠를 안심시켰다.

“아빠 이거 가짜뉴스예요. 인호 씨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잖아요. 이런 일 있을 수도 있죠.”

“너 아직도 편을 드는 거니?”

아빠는 분노했다.

내가 인호 씨 편을 들었나? 나는 아빠가 화를 내실까 봐 그런 건데.

“그럼 지금 가서 그 사람 혼내주세요!”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을 이었다.

“저도 도울게요. 아빠랑 같이 아주 먼지 나게 혼내 줄 거예요!”

아빠는 화를 더 내시려다가 내가 이렇게 말하니 웃음을 터트리셨다.

“이런 실없는 소리 밖에 할 줄 몰라? 아재 개그니?”

나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대신 설명했다.

“아바마마, 노여움을 푸시죠. 그래도 인호 씨가 서울시 경제 발전을 이끌고 있잖아요? 기분 푸 세요.”

“그래 네 말도 맞아. 얼마 전에 인호가 몇몇 학교에 기부해 운동장을 깔아줬다더구나. 시민들을 위해 사회에 공헌했어.”

“그러니까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가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식사하라고 우리를 불렀다. 모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역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

따뜻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치고 아빠는 또 회사에 나가 보셔야 한다고 하셨다. 오후에는 엄마랑 둘이 시간을 보내야겠다.

엄마의 친구분들이 오셔서 애프터 티타임을 즐기셨다. 네 분이서 디저트와 티를 즐기시면서 얘기를 나누셨다. 나는 소파에서 배인호와 이청하의 기사를 찾아보았다.

이청하는 배인호와 그저 친구 사이로 배인호가 투자하는 영화의 출연을 맡아 자주 만나며 영화 얘기를 나누었다고 해명했다.

이걸 보니 배인호도 꽤 출혈이 있을 테지만 통 크게 제일 간단한 방법으로 처리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잠이 들었나 보다. 정아에게서 오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안봐도 또 저녁에 바에서 술 한잔하자고 할 것이다.

“지영아 나와서 술 마시자. 여기 잘생긴 오빠도 있어!”

정아는 즐거운지 목소리가 아주 컸다.

“얼마나 잘생겼는데?”

“아무튼 도깨비에 공유 오빠 뺨치게 잘생겼어. 빨리 나와. 세희는 오고 있고 민정이는 지방 공연 있어서 못 온대.”

정아는 과장되게 묘사했다.

내가 배인호와 이혼하겠다고 선포한 후 그녀들은 돌아가며 나와 약속을 잡았고 밥도 먹고 노래방에도 가고 쇼핑도 했다. 나는 알고 있다. 그녀들은 내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상처들을 마음속으로 삼키고 있다는걸. 그래서 더욱 나의 기분 전환을 시켜 주려고 하는 것일 거다.

나도 그녀들이 그런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전생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옷만 갈아 입고 금방 갈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정아는 주소를 보내 주었다.

반 시간 후 나는 기분 좋게 출발했다. 오늘 밤도 달려 보자.

정아는 거의 서울의 모든 바와 클럽들을 다 가본 듯했다. 어디 술이 맛있고 어디 물이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 정아가 데려오는 훈남들의 수준은 거의 연예인에 가까웠다.

“욱!”

조금 많이 마셨더니 참지 못하고 토했다.

망했다. 이렇게 많은 훈남들을 앞에 두고 나는 속으로 그들과 배인호를 비교하고 있었다.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그래도 배인호가 좀 더 멋있었다. 외모든 분위기든 모두 월등했다.

“죄송해요.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나는 일어서서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옆에 있는 훈남도 같이 일어서서 따라 오더니 손을 뻗어 나를 부축했다.

화장실에 도착해서 나는 마저 토하고 입을 헹구고 세수하고 나왔더니 아까 훈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카톡 추가할래요?”

“카톡 추가해서 뭐하게요?”

나는 일부러 물었다.

그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자주 연락하려고요. 그쪽 외로울 때 언제든 연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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