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싱긋 미소 지으며 내뱉은 하연의 대답에 모두가 함께 준비를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차 한잔을 하연에게 건넸다.하연은 차를 받아 들고 안형준의 앞에 다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스승님, 절 받으세요.”안형준은 하연이 건넨 차를 받아 들더니 미리 봉투에 넣어 두었던 용돈을 하연에게 건넸다.“그만 일어나거라.”“감사합니다.”입문 의식이 끝나자 안형준은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심지어 당장이라도 자기 제자를 데리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나 하더니 끝내 업계에서 친한 친구들한테 문자로 이 일을 자랑했다.마치 세상에 모두 알리기라도 하듯이....민성 시립대학교에서 나오자마자 하연은 저에게로 걸어오는 웬 훤칠한 남자를 발견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운석이 먼저 하연을 알아보고 성큼성큼 걸어왔다.“여신님! 귀국했네요?”피곤함에 찌든 운석의 모습에 하연은 놀라운 듯 물었다.“운석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운석은 대답 대신 하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본인이 할 말을 내뱉었다.“화재 사고를 당했다던데,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괜찮아요?”“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하연의 대답에 운석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그동안 운석은 사업 때문에 D시에 있느라 B시의 소식을 여쭈어볼 새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연락했을 때, 하연이 화재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때문에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돌아왔고, 지금 하연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린 거예요?”그때, 하연이 멀지 않은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캐리어를 가리키며 물었다.운석은 부정하지 않고 서류를 꺼내더니 칭찬을 기대하는 어린이처럼 하연에게 그 서류를 모두 건네며 말했다.“자, 봐봐요. 제가 그동안 이룬 실적이에요.”“이렇게나 많이요?”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류 뭉치를 확인하더니 속으로 운석의 능력에 탄복했다.그러자 운석은 득의양양
“뭐? 남자 두 명이 여자 한 명을 놓고 싸우기는! 최 사장님과 제일 친한 사람 부 대표님이거든. 설마 잊었어? 최 사장님 현재 애인은 부 대표님이라던데.”“대박. 막장이 따로 없네!”“...”직원들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소파에 앉아 있던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발자국도 안 되는 위치에 서 있던 구동후가 막아 나섰다.“대표님, 저 사람들 함부로 지껄이는 거나 신경 쓰지 마세요.”서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눈 밑은 어느새 어두워졌고,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로부터 얼마 뒤, 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서서 엘리베이터를 올랐다.“하연 씨, D시에 아직 발전 공간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래서 나 앞으로 3년 동안 중점적으로 D시 쪽에 집중할 예정이에요”“괜찮은 생각이네요. D시 시장을 열 수만 있다면 이익이 엄청날 거예요.”“이 일은 나한테 맡겨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오일은 우리가 앞으로 밀고 나갈 발전 방향이에요...”운석과 하연은 대화를 하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최 사장님, 이제야 오셨네요?”익숙한 목소리에 운석은 하려던 말을 이내 멈췄고, 하연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다.곧이어 상대 쪽으로 걸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호 이사님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최 사장이 죽다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돼서 상태도 살필 겸 왔죠. 몸은 괜찮아요?”‘웃겨 정말, 고양이가 쥐 생각하네.’하연은 겉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걱정과 관심 고맙습니다. 저는 무사합니다.”호현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배의 자태를 나타냈다.“괜찮다니 다행이군. 이번 최 사장님이 맡은 패션쇼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회사 실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데, 축하해요. 물론 제1분기 실적이 나온 걸 보니 최 사장님이 약속한 30퍼센트에는 한참 못 미치던데, 힘내요.”하연은 눈을 들어 조금도 밀리지 않는 눈빛을 보냈다.“이제 고작 제1분
이곳에서 서준을 만난 것에 현욱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한 대표님, 무슨 바람이 불어 DS 그룹에 다 오셨습니까?”“왜요? DS 그룹이 저를 환영하지 않나 봅니다?”서준의 말에 현욱은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한 대표님도 참, 무슨 그런 말씀을. 그저 최 사장님이 지금 한 대표님 만나는 게 불편한 듯하여 이리 말씀드린 겁니다.”그 말은 아주 의미심장했다.평소 능구렁이처럼 행동하는 호현욱이 이 순간 서준의 마음을 읽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이에 서준은 시선을 돌려 함께 서 있는 하연과 운석을 보더니 스스럼없이 쏘아붙였다.“불편한지 아닌지는 호 이사님이 결정할 일 아니지 않나요?”그 말에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린 현욱은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한 대표님 말씀이 맞네요.”하지만 서준은 더 이상 현욱을 보는 체도 하지 않더니 곧장 하연 쪽으로 걸어갔다.서준을 발견한 순간 하연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무시했다.“최하연...”심지어 서준이 저를 부르는데도 여전히 못 들은 척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때, 옆에 있던 동후가 어색한 듯 코를 쓱 만지더니 곧장 자리를 피했다.“한 대표님,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하지만 동후를 떠나보낸 서준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석훈이 그를 불러 세웠다.한때는 그래도 친구였던 지라 두 사람은 비슷한 분위기를 뿜어냈다.강한 기운이 서로 충돌하는가 싶더니 운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준,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왜? 지금 날 막는 거야?”운석은 곁눈질하더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말했다.“하연 씨 너 만나고 싶지 않아 하니까 이만 돌아가.”그 말에 서준은 눈빛이 일순 어두워졌다. 타고난 오만함에 서준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쳐들며 되물었다.“네가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못 막아도 막을 거야. 오늘 너 여기 못 들어가.”두 사람은 서로 대치하며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하, 나운석. 너와 내가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네.”서준의 말에는 자조적인 의미가
그 사고로 하연이 다쳤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심지어 F국까지 쫓아갔었다.하지만 최씨 가문에서 하연을 너무 꼭꼭 숨긴 탓에 그곳에 있는 열흘 동안 하연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그리하여 귀국한 뒤, 서준은 DS 그룹 로비에서 줄곧 하연을 기다렸다.그때, 하연이 자기의 모든 감정을 숨긴 채 가볍게 말했다.“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건가? 미안하지만 난 그딴 관심 필요 없어.”“그래도 괜찮은 거 이렇게 확인해서 다행이야.”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서준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임성재와 합작하고 있는 나노기술 로봇 프로젝트가 현재 과열 단계야. 다음 달이면 신제품 런칭쇼가 있어. 이건 우리가 합작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니까 시간 나면 같이 보러 가자.”서준이 사업 얘기를 꺼내자 하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건 하연의 프로젝트이기도 했으니까.“그래, 시간 내서 갈게.”방금 전 하연과 현욱의 대화를 엿들었을 때, 서준은 대충 하연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대충 짐작했다.때문이 곧바로 화제를 그쪽으로 전환했다.“우리 HT 그룹에서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 몇 개 준비하고 있으니 관심 있다면 협력할래?”하연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그 대답에 서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숨기며 눈을 내리깔았다.“그렇게 나랑 엮이기 싫어?”“왜 이래? 공과 사는 칼 같이 구분하던 사람이?”“아니면 나랑 협력할 용기도 없나?”“...”서준의 도발에 하연은 화를 내기는커녕 조금도 도용하지 않은 태도로 차분하게 말했다.“한 대표님 자신감은 역시 변함이 없네. 하지만 DS 그룹은 이미 FL그룹과 협력하기로 했어. 그러니 HT 그룹과는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너무나도 선명한 거절 의사에 서준은 코웃음을 쳤다.“FL그룹 이제 막 설립된 회사 아닌가? 아직 제대로 자리도 못 잡았는데 벌써 달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서준의 말속에는 경멸이 가득했다.“정말 예나 지금이나 남을 존중할 줄 모르네.”그 말에 서준의 표
그 말은 하연을 단번에 정신 차리게 했다.“네?”하연과 서준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낀 운석은 서운한 듯 입을 열었다.“만약 다시 그 자식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하연 씨 선택 존중해 줄게요.”잔뜩 풀이 죽어 중얼거리는 운석을 보자 하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그렇게 자신 없어요?”“경쟁 상대가 서준 그 자식이면 져도 쪽팔릴 건 없어요. 그런데 생각 잘해요, 두 사람 사이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는 거. 같이 있으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해요.”하연은 다급히 운석의 말을 잘랐다.“누가 한서준이랑 다시 시작한다 그래요?”그 말에 운석은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봤다.“하연 씨가 그 자식이랑...”하연은 고개를 저었다.“적어도 아직은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어요.”“그렇다면 저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뜻이겠죠?”하연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잔뜩 흥분한 듯한 운석과 눈을 마주했다.그러면서 오늘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운석 씨, 정말 제가 운석 씨의 남은 평생을 맡길만한 상대가 확실해요?”“100퍼센트 확실해요.”운석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저 하연 씨를 원해요. 예전에는 눈이 삐어 한번 놓쳤지만, 저와 약혼한 상대가 하연 씨인 줄 알았다면 절대 거절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요.”하연은 눈을 내리깔았다.솔직히 운석이 저에 대한 마음은 그저 일시적인 것일 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단호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에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철저히 단념시킬 수밖에 없었다.“운석 씨, DS 그룹에서 나가요. 운석 씨처럼 능력 있는 사람은 더 큰 무대에 있어야 해요. NW그룹으로 돌아가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예요.”“지금 저 내쫓는 거예요?운석은 뭔가 알아차린 듯 되물었다.“그런 뜻이 아니라 운석 씨가 여기 있는 거 너무 아까워서요.”“저는 상관없어요. 하연 씨 곁에만 남이 있을 수 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요.”하연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저는 운석 씨가 본인의 행복을 찾을 거라고 믿어요.”그 말에 운석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운석의 눈은 이미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그 뒤로 며칠 동안, 하연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패션쇼 준비 때문에 미루었던 일을 하느라 매일 야근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다가 주말이 되자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다.토요일 이른 아침, 하연은 강영숙의 연락을 받았다.“하연아, 너 오늘 고택에 올 수 있어?”솔직히 하연도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강영숙의 말투에 섞인 기대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끝내 승낙했다.“당연하죠, 오늘 할머님 생신인데, 시간 맞춰 갈게요.”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강영숙을 얼굴에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그래. 그럼 기다리고 있으마.”전화를 끊은 하연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른 아침 창문으로 흘러든 햇살은 따뜻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임이 틀림없었다.하연은 금고에서 지난번 경매에서 낙찰받은 에메랄드 보석을 꺼내자마자 가정부 장순영을 불러왔다.“이모님, 이 선물 포장해 주세요.”“네, 아가씨.”장순영은 숙련된 동작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선물을 예쁘게 포장하였다.리본이 묶여 있는 선물 상자를 보며 하연은 싱긋 웃었다.“이모님 손재주가 참 좋으시네요.”“저를 너무 띄워주시네요. 그런데 오늘 어디 가세요?”하연은 오늘 운전할 차를 하나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한씨 고택에요.”그 대답에 장순영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한편 차고에서 흰색 마세라티를 고른 하연은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홀연히 사라졌다.오늘 한씨 저택에는 알록달록한 등불과 장식들이 달려 있어 유난히 흥겨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강영숙의 생일은 한씨 가문의 중요한 생사인지라 커다란 저택 밖에 이른 아침부터 가종 외제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선물을 들고 방문한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거실 안.사람들은 모두 강영숙 주변에 모여
그것도 능력 있고 훌륭한 아들.그에 반해, 고민정은 평생 딸 하나뿐이니 당연히 이수애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마저 두 사람 사이에는 스파크가 튀었다.“내가 우리 유진이 짝 찾아주는 게 뭐 어쨌다고 그래? 동성한테 피해라도 줬어? 그러고 보니, 서준이가 서영이 A국으로 쫓아냈다며? 그 일에나 신경 쓸 것이지.”고민정이 그 말을 꺼낸 순간 이수애의 얼굴은 잿빛이 되었다.그도 그럴 게, 이 일만 생각하면 이수애는 가슴이 바늘에 찔리는 듯 아팠다.“그저 당분간만 그곳에 있는 거거든요? 조만간 돌아올 거예요.”자존심을 굽히지 못하고 되받아치던 이수애는 말하면 말할수록 자신감이 사라져 결국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그렇게 싸움에서 이긴 고민정은 기세등등해서 다시 강영숙의 팔짱을 꼈다.“어머님, 그러지 말고 이것 좀 봐주세요. FL그룹 대표 부상혁이 그렇게 인물도 훤칠하고 능력도 뛰어나대요. 고작 몇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쓰러져가는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울만큼 대단하다네요...”“됐다.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결국 참다 못한 강영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고민정은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네, 그래요.”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시선을 제 딸 유진에게로 돌렸다.“유진아, 이 총각 좀 봐봐. 부상혁이라고, 네 이상형에 딱 맞는 스타일이야.”정작 당사자인 유진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그러다 한참 뒤, 서준을 본 순간 어두웠던 유진의 눈은 반짝 빛났다.“엄마, 저 잠깐 갔다 올게요.”이윽고 유진은 빠른 걸음으로 서준에게 다가갔다.“서준아.”서준은 저에게 다가온 상대를 확인하자 얼른 인사했다.“유진 누나, 왔어?”유진은 서준의 사촌 누나이지만 나이는 고작 2달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때문에 유진은 서준을 항상 동갑내기라고 여겨왔다.그런데 그런 상대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듣자 유진은 입을 삐죽거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몇 번을 말해? 누나라고 부르지 말라
서준의 반응에 태현은 참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전에 하연 씨한테 온갖 트집을 잡고, 하연 씨를 두고 바람피울 때는 그런생각 한 번도 안 했으면서, 고작 몇 마디 했다고 이런다고? 한서준, 너 너무 뒷북치는 거 아니야?”“너 오늘 말 많다?”대놓고 동문서답을 하는 서준의 모습에 태현은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해 얼른 서준의 어깨를 감쌌다.“이봐, 친구. 너 설마 누구 기다리는 거야?”태현이 말한 사람은 당연히 하연이다.하지만 이번에도 서준은 직접적인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아주 한가하지?”“에이, 한가하다니.”태현은 다급히 부정했다.“그냥 조금 궁금해서 그러지. 그런데 충고 한마디만 할게. 지금이라도 네 마음 알았으면 하연 씨한테 진심을 보여줘. 전에 잘못한 건 인정하고, 때리면 맞고 잘못하면 고쳐야지.”태현은 웃음기 가득 머금은 눈으로 서준을 바라봤다.“아무튼, 하연 씨한테 잘해.”그 말에 서준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그런 것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거든.”그렇게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흰색 마세라티가 눈에 띄자 태현은 휘파람을 불며 서준을 툭툭 건드렸다.“야, 왔어.”곧이어 주차를 마친 하연이 선물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오늘 한씨 고택에 방문한 손님들은 대부분 한씨 집안 친척들이기에 하연과 서준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특히 두 사람의 이혼은 B시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기에, 하연이 나타난 순간 사람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채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최하연이 여긴 어떻게 왔대?”“두 사람 이혼한 거 아니었어? 설마 재결합했나?”“최하연이 최씨 가문 아가씨인 게 밝혀졌잖아. 최씨 가문이 어떤 가문이야, 한씨 가문도 최씨 가문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한서주은 대체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길래 최하연과 결혼했지?”“...”사람들의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지만 하연은 개의치 않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긴 드레스는 하연의 늘씬한 몸매를 더욱 잘 부각했고, 높은 하이힐을 신은 덕에 분위기마저 모든 사람을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