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Author: 류한나

제1화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

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

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

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

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

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

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

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

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

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

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

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

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

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

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

이현은 지유를 승아의 대용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유도 그런 이현을 잘 알았다. 이현은 지유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지유만 진지하게 대했던 이 결혼도 곧 끝나갈 때가 된 것 같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둘이 함께한 3년이라는 시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헤드라인을 장식한 뉴스 하나가 보였다.

[신인 가수 노승아, 약혼자와 함께 귀국.]

핸드폰을 잡은 지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씁쓸한 감정이 코가 찡해질 정도로 거세게 밀려왔다.

지유는 그제야 이현이 왜 어젯밤 그렇게 술에 취해 그녀의 품에 안겨 울었는지 알게 되었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지유는 씁쓸하게 웃더니 핸드폰을 도로 넣고는 가방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지유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잡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지유의 어여쁜 얼굴이 흐릿해졌다.

이때 윤정이 잰걸음으로 달려오더니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온 비서님, 대표님 슈트 도착했어요. 지금 바로 가지고 들어갈게요.”

덕분에 지유는 사색에서 빠져나왔고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슈트를 힐끗 훑어보던 지유가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요.”

윤정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혹시 다른 지시 사항 있나요?”

“대표님 파란색 별로 안 좋아하시니까 까만색으로 바꿔요. 넥타이는 체스 무늬로 하고요. 그리고 구김이 없게 한 번 더 다리는 게 좋겠어요. 대표님은 비닐 주머니 소리를 싫어하시니 절대 투명한 주머니에 담으면 안 돼요. 옷걸이에 걸어서 가져다주면 돼요.”

지유는 마치 이현의 집사처럼 그의 작은 습관도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일하면서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

윤정은 화들짝 놀랐다. 여기로 온 지 3달이 지났는데도 이현의 저승사자와도 같은 얼굴을 보면 살이 떨렸다.

오늘도 하마터면 사고를 칠 뻔했다.

윤정이 얼른 바꾸러 가며 이렇게 말했다.

“온 비서님, 고마워요.”

그러다 순간 스위트룸에서 갑자기 낮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꺼져!”

그리고 많이 놀란 듯한 여자의 비명도 잇따라 전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렸다.

윤정이 눈시울을 붉힌 채 머리를 푹 숙이고 걸어 나왔다.

아마도 한 소리 들은 듯했다.

그리고 이번엔 이현도 매우 언짢아 보였다.

윤정은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온 비서님, 대표님이 찾으세요.”

지유는 활짝 열린 문을 보며 윤정이 처리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일단 먼저 내려가서 일 보세요.”

지유는 담배를 눌러서 끄더니 곧장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참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이현의 주위에 있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다.

던져서 깨진 랜턴과 액정이 깨진 채로 계속 진동하는 핸드폰도 보였다.

지유가 불러온 여자는 놀라서 아무것도 못 했다. 그녀는 벌거벗은 채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몰라 했고 뭔가 켕기는 듯한 눈치였다.

이현은 어두운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원래도 비율이 좋았지만 장기간 꾸준히 운동을 했기에 근육이 선명하고 어깨가 떡 벌어져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치골은 지금 이불 뒤에 숨어 있다.

몸은 너무 매혹적이었지만 얼굴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눈동자는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화를 내기 일보 직전인 것 같았다.

지유는 앞으로 다가가 쓰러진 랜턴을 일으켜 세우고 물 한 잔을 따라 침대장에 놓아주며 말했다.

“대표님, 9시 반에 회의가 하나 잡혀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시면 됩니다.”

이현은 차가운 눈동자로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지유는 그런 이현의 속내를 눈치채고 옆에 서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먼저 가봐요.”

여자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옷을 들고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이현은 시선을 지유에게로 돌렸다.

지유는 습관적으로 컵을 그의 손에 들려주고는 셔츠를 침대맡에 놓아줬다.

“대표님, 이제 옷 갈아입으세요.”

이현은 얼굴을 굳히고 언짢은 표정으로 차갑게 쏘아붙였다.

“어젯밤 어디 갔었어?”

지유가 살짝 멈칫했다. 지금 지유가 자기를 잘 지켜내지 못해 다른 여자가 기회를 엿보고 그의 침대에 기어오르게 해 승아에게 잘못할 짓을 했다고 지유를 탓하기라도 하는 건가?

지유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대표님은 술김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게 된 거예요. 다들 성인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덤덤한 지유의 표정은 마치 다른 여자가 와서 귀찮게 하지 못하게 다 처리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이현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너 어젯밤 어디 있었어?”

지유는 켕기는 게 있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말했다.

“요즘 프로젝트 처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무실에서 보다가 잠들었어요.”

이 말에 이현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입을 앙다문 채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 타올로 몸을 감쌌다.

지유는 그런 이현의 뒷모습을 보며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이현은 지유 앞에서 항상 꽁꽁 가리고 다녔다. 마치 지유가 그의 몸을 보는 게 역겹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제 지유를 승아라고 생각했을 때는 전혀 이러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현은 이미 샤워하고 나와 전신거울 앞에 서 있었다.

지유가 그쪽으로 다가가 늘 그래왔듯 셔츠 단추를 채워줬다.

이현은 188의 큰 키를 자랑했다. 지유도 168은 되는 키였지만 넥타이를 매주기엔 부족한 키였다.

이현은 자신의 몸이 더러워진 게 승아에게 미안한지 오만한 자세로 몸을 숙이려 하지 않았다.

지유는 하는 수 없이 까치발을 하고 넥타이를 이현의 목에 둘렀다.

그렇게 열심히 이현의 넥타이를 묶어주고 있는데 이현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에 전해졌다. 이현은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유야, 어젯밤에 너 맞지?”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