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는 몸이 너무 안 좋아 창백해진 얼굴로 벽을 붙잡고 쉴 새 없이 밖으로 토해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이현은 이를 보더니 얼른 걱정에 찬 눈빛으로 지유를 부축했다.“왜 그래? 많이 안 좋아?”지유는 이현의 손을 밀어내더니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아까는 이혼하자고 그러더니, 지금은 또 왜 이러는 거예요?”이현은 지유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는 상태가 진짜 안 좋다는 걸 눈치채고 부드럽게 말했다.“먼저 집에 가자.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이현은 지유의 허리를 잡더니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지유는 거절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 이현과 다퉜다가 부모님이 보기라도 하면 걱정할 것이다.결혼이 불행하다 해도 부모님을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차 앞으로 걸어간 이현은 지유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지유야, 내가 너를 어떡하면 좋을까?”지유는 이현의 어깨에 기댔다. 코가 찡했다. 언제부턴가 지유는 건드리면 바로 깨질 만큼 나약했다.아마 이현의 조금 달라진 모습에 지유는 없었던 엄살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원하는 게 많아지면 전처럼 고분고분할 수가 없다.“이현 씨.”지유는 이현의 품에 기대 말을 이어 나갔다.“나를 위해 해준 모든 것에 고마워요.”이현이 지유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내가 뭘 했다고 고맙다는 거야?”지유가 말했다.“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요. 부모님이 나 잘 지내는 거 알면 더는 걱정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전에 20억을 써서 우리 집 구해준 것도 고맙고요.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또, 나를 살려줘서 고마워요.”이현의 이 말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조금 전까지 기분이 안 좋았지만 지유가 이렇게 다독이자 이현의 화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이현은 지유를 잃을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지유를 꼭 끌어안고는 이렇게 말했다.“나 네 남편이야. 다 내가 해야 되는 일이야.”지유가 입꼬리를 당기더니
“너 잘 왔다. 너한테 줄 것도 있어.”여진숙이 도우미에게 말했다.“내가 지유 주려고 끓인 거 좀 올려와요.”지유는 지금 이 상황이 약간 신기했다. 온 정성을 승아에게 쏟아도 모자란 여진숙이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걸까?여진숙의 눈길이 지유의 배로 향했다.“이 약, 내가 자주 다니는 한의사가 지어준 거야. 마시면 바로 애가 들어선다는데 마셔. 애가 들어설지도 모르니.”도우미가 약을 올려왔다. 냄새를 맡은 순간 속이 메슥거렸다. 지유는 온몸으로 거부하며 도우미에게 치우라고 했다.“가져가세요. 못 마셔요.”지유가 거절하자 여진숙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너 어떻게 된 거야? 내가 힘들게 구해온 약인데 왜 안 마셔? 능력이 없으면 약이라도 먹어야지. 얼른 마셔.”도우미가 약을 다시 지유 앞에 대령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 지유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안 되겠어요...”지유는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아니 얘가...”여진숙은 화장실로 달려가는 지유를 보며 성질을 냈다.“쓸모없긴. 뭐가 그렇게 역겹다고. 마시기 싫어서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야?”지유는 위가 너무 더부룩했지만 한참을 토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여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왔다.여진숙은 더는 약을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승아를 만나러 가기 급급했던 여진숙은 가져갈 물건이 많자 지유에게 말했다.“너 오늘 회사 나가지 마. 나 승아 보러 가는 길에 손 좀 보태. 병원에 입원한 거 너도 알고 있지? 아마 이현이는 이미 보러 갔다 왔을 거야.”이 말을 들은 지유가 입을 앙다물며 말했다.“저 출근 지각할 거 같아요.”여진숙이 지유를 보며 입꼬리를 당겼다.“회사로 나가는 것도 현이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병원 가면 현이 마주칠 수도 있어. 그럼 너는 땡큐 아니야?”맞는 말이긴 했다. 지유는 이현의 아내이자 이현의 수행 비서였다. 하여 여진숙과의 동행을 선택했다.여진숙은 크고 작은 보따리를 안고 집을 나섰다. 병문안을 간다기보다는 친척 방문이 더 적합해 보였다.
승아의 말에 지유가 멈칫했다.이용해? 이용할 게 뭐가 있다고? 이현처럼 총명한 사람이 이용할 사람이 없을까?승아는 지유가 멈칫하자 궁금해하는 줄 알고 우쭐거리며 말했다.“어떻게 이용하는지 궁금하지 않아요?”이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유는 승아가 온갖 방법으로 이간질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승아가 희망에 찬 눈빛으로 지유가 물어봐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지유는 승아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없었기에 하고 싶은 말을 주저 없이 내뱉었다.“내가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승아 씨가 말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승아의 얼굴이 굳었다. 지유가 자기 뜻대로 나와주지 않자 약이 잔뜩 오른 것 같았다.지유가 그런 승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노승아 씨 목적이라면 내가 그이와 이혼하는 거겠죠. 그러면 여씨 집안으로 시집갈 수 있으니까. 근데 지금은 뭔가 불안한가 보죠?”승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그래도 바락바락 악을 썼다.“언젠간 이혼할 텐데 내가 왜 불안해요? 전혀요.”짜증 섞인 승아의 말투에 지유가 웃었다.“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이혼 얘기나 꺼내고. 우리 그이보다 더 급해하는 것 같아요. 이현 씨가 나랑 이혼하기 싫어하니까 조급해졌나 보죠? 이현 씨는 설득이 안 되니까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온지유 씨, 너무 잘난 척 마요.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승아는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나를 위해서 하는 소리다?”지유는 세상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 비아냥거렸다.“핑계를 찾을 거면 설득력 있는 걸 찾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노승아 씨가 나를 위한다? 무슨 꿍꿍이인지 아는데 틀렸어요. 그렇게 우리가 이혼하길 바란다면 나를 찾을 게 아니라 그이를 찾아요. 이혼하나 안 하나.”고작 몇 마디에 승아는 약이 바짝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시울을 붉혔다.눈 깜짝할 사이에 승아가 사라지자 여진숙이 그녀를 찾으러 왔다. 마침 그 뒤
의사와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와 승아를 들것에 들어갔다.여진숙은 아직 지유에게 따지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승아의 상처가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승아가 들것에 올려지는 순간부터 여진숙은 곁을 떠나지 않았고 응급실 입구까지 따라가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했다.의사는 이현과 승아의 상태에 관해 토론하느라 지유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옆에 서 있는 지유는 그들이 승아를 위해 분주히 돌아치는 걸 보고 자신이 아웃사이더 같다고 생각했다.승아가 응급실에서 나오자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여진숙이 그녀를 병실로 옮겨갔다.이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지유에게 이렇게 말했다.“승아 지금 자극받으면 안 돼. 일단 단둘이 만나는 건 삼가해줘.”지유는 목구멍이 메어왔다. 지금 탓하는 건가?왜 승아를 화나게 했는지 따지면서 앞으로 승아를 괴롭히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이현은 지유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지유가 오해했음을 눈치채고는 지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왜? 기분 상했어?”“현아, 빨리 들어와!”여진숙이 눈물을 훔치며 병실 문을 열고 소리쳤다.“승아가 너 찾아. 네가 없는데 승아가 어떻게 낫겠어.”지유는 급해서 눈물을 흘리는 여진숙을 보며 지유에게 말했다.“일단 밖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갔다 금방 올게.”지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승아와 그녀 사이에서 버려지는 걸 늘 그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밖에 선 지유는 마치 아무 관련 없는 방관자 같았다.그렇게 옆에서 승아가 이현의 품에 안겨 힘없이 우는 모습을 지켜봤고, 이현이 그런 승아를 밀어내지 않고 차분하게 승아의 등을 토닥이는 걸 지켜봤다.지유는 허리가 시큰거렸다. 둘이 꽁냥대는 모습을 보기가 싫어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이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얼마나 지났을까, 온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데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지유야.”여희영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지유가 멀쩡하게 벤치에 앉아 있자
여희영은 깜짝 놀랐다. 놀라움 뒤에 남은 건 분노와 실망뿐이었다.이때 이현이 병실에서 나왔다. 고개를 든 이현이 지유와 함께 있는 여희영을 보며 공손하게 불렀다.“고모.”“그렇게 부르지 마.”화가 치밀어오른 여희영은 이현을 나무라기 시작했다.“내가 고모긴 하니? 지유와 이혼한다며? 이렇게 큰일을 왜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할아버지 당부 잊었어? 지유 잘 보살펴주라고 했는데 이따위로 보살피는 거야? 여이현. 너 자라는 거 옆에서 쭉 지켜봤지만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 이혼? 침대에 누워서 별의별 생쇼는 다하는 세컨드 년 때문에 부부간의 연을 끊겠다고?”“어머,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해야죠. 세컨드 년이 뭐예요? 그리고 책임감 소리는 왜 하시는 거예요? 이게 책임감이랑 무슨 상관있다고?”여진숙은 거북하게 들리는 여희영의 말에 처음으로 앞에 나서서 반박했다.“현이가 이혼하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지 아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어른이랍시고 우리 아들 자꾸 혼내시는데 보기 안 좋아요.”지유는 자신이 한 말로 여희영과 여진숙이 다투게 될 줄은 몰랐다. 하여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얼른 여희영을 뜯어말렸다.이 일이 아니어도 여진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희영이 하찮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했다.“내가 내 조카랑 얘기하고 있는데 왜 끼어들죠? 올케, 지금 나랑 말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아가씨, 이렇게 나온다 이거죠?”여진숙이 이렇게 말했다.여희영은 늘 여진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여진숙도 마찬가지였다. 하여 둘은 마주칠 때마다 대화가 별로 없었고 모르는 사람보다 못한 사이었다.여희영은 늘 여진숙을 무시했기에 말을 가려 하는 법이 없었다. 여희영은 여진숙을 향해 다가가더니 오만하게 여진숙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이렇게 말했다.“내가 할 소리예요. 엄마가 돼서 현이한테 잘해준 게 뭐에요? 내가 일일이 다 말할 필요 없죠? 여기서 제일 말할 자격 없는 사람이 올케예요. 내가 조카를 어떻게 혼내든 올케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지유도 자책하고 있었다. 오래 참았는데 왜 갑자기 충동적으로 행동한 걸까? 그러지만 않았다면 여희영이 아는 일도 없었을 텐데.“미안해요.”지유는 이현에게 폐를 끼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거둘 수 없었다.이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지유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끝내 입을 열었다.“그렇게 이혼하고 싶어?”지유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이현과 이혼하고 싶은 걸까?사실 지유가 원하는 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게 더 컸다. 더는 막연하고 희망이 없는 것에 갇혀 있기 싫었다.지유가 아무 대답이 없자 이현이 다시 물었다.“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힘들어?”이 말에 지유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곧 흘러넘칠 것 같았다. 이현이 오히려 온화하게 말하자 지유는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힘들다기보다는 그가 승아와 꽁냥거리는 걸 더는 보기 싫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다.“조금?”지유는 감정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숙였다.이현은 생각했다. 비록 결혼한 지 3년이 되긴 했지만 그녀가 그의 곁에 계속 남아있는 건 그 계약서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우석이라는 남자다.우석이라는 남자를 위해 3년간 아무 요구도 꺼낸 적 없었고 그 남자를 위해 한결같이 몸을 지켰다.이렇게 생각한 이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이 돌에 짓눌린 듯 너무 불편했다.그녀를 놓아줘야 할까?이현이 움켜쥐었던 주먹을 풀더니 덤덤하게 말했다.“계약 기간 3년이 차면 그때 이혼하자.”지유는 하마터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먹일 뻔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고 지유는 그렇게 서러움을 겨우 눌렀다.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지금 이 순간 체면을 잃기는 싫어 고개를 들고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그래요.”지유의 어여쁜 얼굴을 본 순간 이현은 그제야 그녀가 진심으로 웃는다고 생각했다.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녀는 조금도
이를 본 윤정이 술을 받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온 비서님은 술 안 마십니다. 제가 대신 마실게요.”하지만 그 대표는 별로 탐탁지 않은 듯한 눈빛이었다.“이러면 재미없는데.”윤정은 난감해졌다. 사회 초년생이라 일 처리가 그렇게 매끄럽지 못했고 혹시나 실수해 일을 그르칠까 봐 무서워했다.“온 비서님, 본인이 마셔야 할 술을 부하한테 미루는 건 아니지 않나요?”지유와 윤정은 다 여자였기에 이 대표는 점점 더 눈에 보이는 게 없었고 말투도 매우 거칠었다.“여 대표님을 대신해서 왔다면서요. 여 대표님도 이 자리에 나오면 술을 마다하지 않는데 온 비서님은 더더욱 안되죠. 왔으면 하나가 돼야지. 그래야 재밌지.”“자, 내가 한 잔 쭈욱 따를 테니 마음 놓고 마셔봐요.”다른 대표들도 맞장구를 쳤다.“온 비서님, 좋은 말로 할 때 마셔요. 이 대표님이 마시라면 마셔야지, 핑계 찾지 말고.”“흐름 깨지 마요. 여 대표님이 이러는 거 알면 엄청 혼낼걸?”지유는 이런 장소가 싫었다. 이현이 술을 마신다고 해도 핍박에 의해서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리를 굽신거려도 모자랄 판에 이현이 싫어할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결국엔 지유가 여자라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이다.지유는 업무를 하면서 불공평한 상황을 많이 참아왔지만 이런 모욕을 참기는 싫었다.이 대표는 와인잔을 지유의 입가에 갖다 대며 이렇게 말했다.“온 비서님, 마셔요.”윤정은 그들이 지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온 비서님.”지유는 고개를 돌리며 이 대표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제가 말했을 텐데요. 술 안 마신다고.”이 대표는 표정이 변하더니 와인잔을 테이블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힘을 너무 세게 줘서 그런지 와인잔이 깨졌고 빨간 와인이 테이블을 적시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에 윤정이 화들짝 놀랐다.“온 비서님, 왜 이렇게 주제를 모르실까? 우리 앞에서 도도한 척이라도 하는 거예요?”알코올의 작용하에 이 대표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발악했다.“여 대표님이 얼마나
그의 손놀림에 지유는 너무 역겨워 더는 견딜 수가 없어 그를 밀쳐냈다.“대표님, 예의 갖추시죠.”“예의는 무슨. 당신은 그냥 여 대표 노리개일 뿐이야. 침대에 얼마나 기어올랐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술 마실 기회를 주는 것도 당신 체면 살려준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마셔.”이 대표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유가 여러 번 거절하자 실성한 듯 다가가 지유를 끌어안았다.“여 대표가 주는 거 나도 줄 수 있어. 내가 별장 하나 줄까? 앞으로 아무 걱정 없이 내 애인 하는 거야. 여 대표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더 좋은 조건 아닌가…”“이거 놔요!”인내심이 바닥난 지유는 힘껏 이 대표의 귀싸대기를 갈겼다.“내 몸에 손대지 마요.”귀뺨을 맞은 이 대표는 두 눈이 빨개서는 지유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빌어먹을 년. 감히 나를 때려? 내가 오늘 너 죽이고 만다.”윤정은 너무 무서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유도 그런 윤정이 다칠까봐 걱정이었다.마침 윤정은 문과 가까운 위치에 서 있었기에 지유는 일단 윤정을 밀어내며 이렇게 말했다.“여기는 위험해요. 얼른 가요.”윤정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그럼 온 비서님은 어쩌고요?”지유도 무서워서 손이 떨렸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나가야 했다.“나가서 누구든 불러와요. 내 말 들어요. 얼른!”무서움이 많은 윤정이었지만 지유 말은 참 잘 들었다.“가? 가긴 어디를 가? 빌어먹을 년.”이 대표가 미친 듯이 달려오더니 지유의 머리채를 잡았다. 곱게 얹은 지유의 머리가 순간 헝클어졌다. 두피가 지끈거리는데 반응할 새도 없이 싸대기가 날라왔다.싸대기를 정면으로 맞은 지유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고 방향을 잘 분간할 수 없었다.그렇게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이 대표가 남산만 한 배로 지유의 허리를 누르고 있었다. 초밀착 상태라 이 대표의 입에서 나는 더러운 술 냄새까지 풍겨왔다.너무 역겨워 토하고 싶었지만 이 대표가 두려웠다. 지유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는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내 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