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차들이 적어 이제는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아마 차가 평온하게 달려서 윤혜인은 잠이 쏟아졌던 것 같다.임신으로 잠이 많아졌다. 견뎌보려 했지만 결국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청월 아파트에 도착하자 회색 벤츠가 천천히 멈춰 섰다.한구운은 그녀를 깨우지 않고 차 시동만 껐다.그는 에어컨을 적당한 온도에 놓고 여자를 바라보았다.윤혜인은 대학 시절보다 성숙된 모습이었다. 그땐 볼살이 빠지지 않은 귀여움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선명한 턱선으로 한층 고급스러워졌다.순수함이 어지럽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 남자의 이성을 자극했다.한구운의 눈빛이 짙어졌다.기다란 손가락이 코에 걸린 안경테를 살짝 밀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물병을 집어 목을 축였다.그 물맛이 입술과 혀 사이로 흘러 들어갔다.유독 물맛이 꿀맛이었다.차창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웠다.여자는 뒤척이며 깨려 했다.한구운은 갑자기 몸을 기울고 여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그 자세가 너무 친밀해 밖에서 봤을때 키스를 하고 있는 연인 같았다.때마침 윤혜인이 깼다.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남자의 손이 아직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그녀는 멈칫했다.“선배...”막 깬 그녀는 어린양처럼 어리둥절했다. 한구운의 심장이 겉잡을 수없이 뛰기시작했다.그는 손을 거두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머리카락이 상처에 닿을 것 같았어.”“고마워요.”윤혜인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임세희가 가방으로 흠집 낸 상처가 있었다.한구운은 대신 차 문을 열어주었다.바람이 너무 세서 그녀를 위해 바람을 막아주었다.윤혜인은 오늘 너무 많이 도와준 선배가 감사했다.예의상 안으로 들여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일찍 쉬어. 난 아직 할 일이 남아서 돌아갈게.”한구운이 적절한 타이밍에 대신 입을 열었다.“오늘 고마웠어요. 선배.”“그래. 다음에 봐.”“조심히 돌아가세요.”윤혜인은 손을 흔들었다.
에어백이 터졌다.회색 벤츠의 뒷부분이 뭉개졌고 앞으로 세게 밀려나 난간에 부딪힌 후 멈췄다.차량의 안전 시스템이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전복되었을 것이다.반면 검정색 벤틀리는 적절한 그립 덕분에 범퍼가 반쯤 내려앉은 것 외에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제자리에 얼어붙은 윤혜인은 손발이 차가워졌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눌리고 변형된 벤츠의 문이 열렸다.한구운이 천천히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머리를 움켜쥔 그의 손에 피가 흥건했다.정확한 부상 부위는 파악할 수 없었다.경직되어 있던 윤혜인은 재빨리 달려가 한구운의 어깨를 부축했다.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손이 떨렸고 입술도 떨려서 한 마디도 뱉어내지 못했다.오히려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향해 한구운이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괜찮아, 혜인아, 난 괜찮아.”격렬한 충격으로 깨진 유리에 팔이 긁혔고, 다른 부상은 없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다.그때 벤틀리 문도 열렸다.맞잡은 두 사람의 손을 바라보는 이준혁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이리 와!”그녀 얼굴에서 혈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당신 미쳤어요?”이준혁의 분노가 정점을 찍었다. 그는 윤혜인의 손목을 낚아채 품 안으로 그녀를 안았다.그리고 한구운에게 으르렁거렸다.“죽고 싶어서 환장했군.”말 한마디 한마디에 살기가 어려있다.충격으로 한구운의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는 그저 담담하게 물었다.“진짜 혜인이를 아끼나요?”“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당신 가족이 할머니의 지인이라고 내가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이 여자는 내 사람이고 또 선을 넘는다면 오늘처럼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이준혁의 부리부리한 눈은 두 사람의 얽힌 인연을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한구운이 이주혁의 먼 친척임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이 남자 미쳤다고 생각했다.“이준혁!”그녀는 있는 힘껏
눈살을 찌푸린 한구운은 윤혜인이 혹시라도 괴롭힘을 당할까 봐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주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대표님과 사모님은 사이가 좋으셔서 걱정할 것 없어요. 외부인으로서 관여하지 않은 것을 좋을 것 같네요. 진짜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6촌도 나 몰라라 할 분이에요.”안경 속에 숨겨진 눈에 차가움이 서렸다.잠시 후 그는 자리를 떠났다.차가 떠난 후에야 이준혁은 그녀를 놓아주며 숨을 쉴 공간을 주었다.윤혜인은 온몸이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녀는 이준혁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손목을 움켜쥔 그의 눈은 곧 사람을 집어삼킬 듯 차가웠다.그는 다른 남자 때문에 그에게 맞서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그는 이를 악물었다.결국 험한 말을 뱉어내고 말았다.“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다른 남자를 찾은 거야? 너무 밝히는 거 아니야?”그녀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이었다.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다.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 그는 이내 후회가 밀려왔지만 방금전 그 장면은 칼이 되어 그를 찌르고 있었다.윤혜인은 그의 소유물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더럽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그 누구도!윤혜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억울하고 화가 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래요! 난 원래 이런 년이에요.”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놓지 못하고 있겠는가!조금만 다정해도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윤혜인, 너무 최악이다.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남자를 노려보았다.“우리 더 이상 엮이지 말아요.”이준혁은 그전 냉소를 지었다.“나와 정리하고 선배에게 달려가려는 거겠지.”그는 한발 한발 다가서며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 데 그럴 생각은 접어 두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쓰다 버려도 아무도 건들리 못해.”윤혜인은 분노했다.“왜!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난
차는 경산파크에 들어섰다.이곳은 일출을 보기에 완벽한 장소였고, 전에도 왔던 적 있었다.하지만 특정 관람 일을 제외하고는 밤에는 문을 닫았다.이준혁은 S급 패스를 가지고 있었기에 출입할 수 있었다.그는 차를 언덕에 주차하고 윤혜인을 안은 채 보닛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두 볼을 만지작거리며 이준혁이 물었다.“기억나?”윤혜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결혼 1주년이 되던 날, 그녀는 답례로 그와 세 번이나 사랑을 나눴었다.지금 그가 자신을 여기로 데리고 온 것은 무슨 뜻일까?그녀가 잠깐 혼란에 빠져있을 때 이준혁이 그녀를 보닛 위에 눌렀다. 등이 차갑고 딱딱한 알루미늄 표면에 닿았다.윤혜인은 있는 힘껏 그를 밀쳤지만 그의 힘에 의해 더 강하게 눌려버렸다.그의 입술이 이마에서 코끝, 목까지 이동했다. 그의 흔적이 남는 곳마다 얼룩지고 침범당했다.탐욕스러운 키스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은 차가운 욕망으로 들끓었다.“욕구불만이면 나에게 오면 되잖아? 왜 다른 사람을 찾는 거야?”그는 다시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귓볼을 가볍게 깨물었다.“다른 놈이 나보다 널 더 이해할 수 있을까? 네가 좋아하는 자세는 나만 알아.”윤혜인의 표정이 급변했다.그는 그녀를 모욕하고 있었다.그녀는 분노했다.“난 원하지 않아요! 이렇게 날 강요할 수 없어요!”이준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꼬았다.“넌 나에게 애원하게 될 거야.”말을 마친 그는 그녀를 안아 뒷좌석으로 이동했다. 버튼을 누르자 선루프가 열리고 앞좌석이 앞으로 이동했다. 뒷공간이 훨씬 넓어졌다.하지만 광야에 누워있는 것 같아 더 굴욕적이었다.이준혁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으며 눈을 번뜩였다. 그는 오랫동안 굶주린 늑대 같았다.당황한 그녀는 옷을 움켜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난 몸이 불편하단 말이에요. 난...”하마터면 실토할뻔했다.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바닥에 떨어진 휴대폰 화면에 ‘한 선배’ 란 세글자가 뜨자 이준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준혁은 그녀의 옷을 정리해 준 훈 그녀를 안고 조수석에 앉혔다.윤혜인은 인형처럼 얼굴에 표정이 전혀 없었다.그가 운전석으로 돌아와 물티슈로 천천히 손을 닦을 때 그녀는 얼굴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있었고 얼굴에 달라붙었다. 이준혁이 손을 들어 올려 머리카락을 정리 하려하자 그녀는 움찔하며 경계했다.“뭐 하는 거예요!”이준혁이 표정이 굳어졌다.“아직도 화 내고 있는 거야? 사과의 의미로 즐겁게 해줬잖아?”그리고 덧붙였다.“나를 배려한 적 있어? 난 아직 환자야. 몸이 안 좋은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참았잖아.”그는 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울고 있는 그녀때문에 즐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탈진할까 봐 걱정되었다.“당신... 너무 해요! 그 선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그런 소리를 듣게 하는 거예요!”그녀의 말에 이준혁은 콧방귀를 뀌었다.“한 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왜 못 받는단 거야? 내가 없다면 더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었나? 네가 누구의 와이프인지는 기억하고 있는 거야? 매번 딴 놈때문에 싸우고 있잖아. 내가 그 놈을 죽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윤혜인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자신이 더 우스꽝스러웠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마음이 안중에도 없었다.임세희가 사모님 자리를 노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앞에서 임세희를 안고, 쓰다듬으며 심지어 임세희를 위해 그녀를 버리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친구의 관심도 받을 수 없었다.이런 이중 잣대에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녀는 대꾸한 힘이 없었다.“청월 아파트로 돌아갈래요.”이준혁은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를 보아 그저 침묵했다.차 문을 연 그는 늘 그랬듯이 그녀를 안으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밀쳤다.“만지지 말아요.”이준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동안 쌓였던 분노는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그 통화 때문에 이런 반응이라면 그들의 관계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비꼬았다.“아까 만졌
윤혜인은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나를 뭐로 보는 거예요! 당신의 눈에 난 그저 인형인가요? 당신의 욕정을 풀어주고 아무때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렇게 생각했던 거야?”“그게 아니면요? 당신의 행동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잖아요? 오늘 임세희를 마주했다면 이렇게 대할 수 있겠어요?”“아니야!”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처음부터 그는 임세희와 그 어떤 관계도 발생하고 싶지 않았다.윤혜인은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어떻게 또 잊을 수 있단 말인가?이준혁에게 그녀는 임세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런 하찮은 존재였다. 그가 임세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녀 말대로 너무 아껴서이다.너무 소중하면 가장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할 때에는 상처 주고 싶지 않는 법이다.그는 임세희에 제 3자란 타이틀을 안겨주고 싶지 않는 것이다.피식 웃음을 터뜨린 윤혜인은 갑자기 모든 것을 깨달았다.“어떻게 하면 저를 놓아줄 건가요?”그녀의 말투가 변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남자의 목을 졸랐다. 마치 야수처럼 달려들어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이런 거면 돼요? 어디서 할래요? 차에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남자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하지만 윤혜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가 그녀에게 했던 것처럼 뜨거운 입김을 불며 정성을 들였다.“하고 나면 놔줘요.”남자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그는 욕망이 없었고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그녀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고 싶었다.2년이다, 그녀도 이준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반항할수록 그를 더 자극할 뿐이다.그를 화나게 하면 떠나기가 더 어려워진다.사랑이 아니어도 그녀를 자신 곁에 묶어 두려하고 있다.이혼 전, 편하게 지내려면 그를 만족시켜야 했다.그녀는 그를 놓아주고 그의 앞에서 단추를 풀었다. 하얀 쇄골이 드러나고 점점 아래로 향했다...이준혁의 눈이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욕구가 가라앉은 그는 몸을 일으켰다.문이 ‘쾅’하고 닫혔다.소파에 누워 있는 윤혜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윤혜인, 또다시 홀로 남겨졌네.”...청월 아파트를 벗어난 검정색 벤틀리는 술집으로 향했다.김성훈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테이블 위에 빈 와인병이 7.8 개나 쌓여있었다.이준혁은 잔뜩 흐트르러 진 모습으로 술잔을 들었고 옆에는 육경한이 있었다.김성훈은 마치 미치광이를 본 눈빛이었다.그는 이준혁의 술잔을 빼앗으며 버럭 화를 냈다. “이준혁, 살고 싶지 않은 거야?”육경한도 얼큰히 취해 있었다.“이 정도는 괜찮아.”김성훈이 뭐라 하려는데 이준혁이 벌떡 일어서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는 바텐더에 술잔을 가득 채우라고 눈치 주었다.직원은 난감해하며 사장의 눈치를 살폈다.김성훈의 눈빛이 살벌해졌다.“나가.”직원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자리에 앉은 김성훈이 육경한을 나무랐다.“어제 막 수술을 받은 상태라 이렇게 술을 마시면 안 돼.”이준혁이 비밀로 하는 바람에 육경한은 정말 몰랐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김성훈이 콧방귀를 꼈다.“잘 난 척이지 뭐겠어. 아름다움을 구해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거지.”육경한은 자연스럽게 임세희가 떠올랐다.“세희가 왜?”“세희와는 상관없는 일이야.”김성훈이 대답했다.육경한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혜인 씨?”“그래.”김성훈은 직원더러 따뜻한 차를 올리라고 했다. 그리고 이준혁 가까이에 밀며 물었다.“왜 이러는 건데? 말해 봐.”오전에 그가 확인하러 갔을 때까지만 해도 깨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불과 몇 시간만에 문제가 생겼다.이준혁은 차를 마시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침묵하는 이준혁에 김성훈은 고의로 자극했다.“혜인 씨가 싫으면 이혼 도장 찍어버려. 너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다른 여자에게도 베풀란 말이야.”
이준혁의 얼굴이 심각해졌다.멈칫하던 김성훈은 다시 말했다.“그때 가서 안달 나 하지 말라고!”이준혁의 미간에 주름 잡혔다.“마음대로 해.”이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듣고 있던 육경한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윤혜인이 널 좋아한다잖아!”“세상에!”김성훈은 충격에 휩싸이며 물었다.“몰랐던 거야?”이준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 이내 굳었다.“잘못 짚었어.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그는 단호하게 말하며 술잣을 움켜쥐었다.한구운때문에 그에게 맞서는 윤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지난 2년 동안 마음속에 다른 남자를 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모든 것이 거대한 돌덩이가 되어 그를 짓누른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다.치욕스러웠다.당장이라도 그 놈의 목을 꺾고 싶다.김성훈은 어이가 없었다.“어제 네가 쓰러졌을 때 혜인 씨 수술실 밖에서 3시간 동안 내내 울었어. 네가 깨어나지 않자 너의 곁을 지키며 한시도 떠나려 하지 않았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그런데도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조금 흔들리던 이준혁은 곧바로 부인했다.“좋아하는 사람이 너인 것에 내 목을 걸 수 있어.”진정한 사랑을 해본 사람으로서 김성훈은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도는 보아낼 수 있었다.이준격은 차갑게 말했다.“네 목은 값 없어.”“이..”김성훈은 화가 치밀었다.“내기 해! 내가 지금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혜인 씨에게 말할 거야. 무조건 한달음에 달려올 거야.”이준혁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김성훈의 자신의 말을 증명하고 싶어 휴대폰을 꺼내 윤혜인에 전화를 걸었다.“그럼 한번 지켜봐. 이기면 네 요트는 내거야.”그는 예전부터 이준혁의 요트에 눈독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단종되어 구할 수 없었다.이준혁은 잠시 눈을 깜빡였지만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좋은 대로.”연결음이 들리고 전화가 연결되었다.김성훈은 돌변하며 연기력을 뽐냈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혜인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