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티브이에선 막장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고 부모님 연령대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드라마였다.마침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찾아가 따져 묻는 장면이 나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좋은 며느리가 아니라며, 며느리라면 응당 자기 아들을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는 둥 말하고 있었다.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대사였다.그 탓에 송유나는 머릿속에 생각해둔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그녀가 이번에 돌아온 것은 최숙이 해준 말로 인해 제대로 천천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였다.최숙의 말이 진짜든 거짓이
입술을 짓이기던 그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죄송해요.”살짝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평소 그녀의 목소리와 달랐다.“엄마, 전 이 집에 머물고 싶지 않은 게 아녜요. 저도 아빠랑 엄마랑 같은 집에서 오손도손 화목하게 지내고 싶어요. 여기로 오는 길 내내 어릴 때를 떠올렸었어요. 초등학교 시절 아빠랑 엄마는 매일 퇴근하고 간식을 사 들고 오셨죠. 중학교 시절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절 데리러 오셨고요. 고등학교 시절 때 매주 토요일 점심에 가져다주시던 도시락도 기억하고 있어요.”“비록 이번에 연락하지 않고 찾아온 건 맞지만
이중문이었지만 송유나는 쉽게 집에서 빠져나왔다.먼저 닫아버린 건 나무문이었다. 그다음 마음과 함께 닫아버린 건 철문이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문이 닫히는 소리에 복도의 센서등이 다시 켜졌다.송유나는 철문 앞에서 한참 서 있었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숨을 크게 들이쉬곤 복도로 내리비치는 달빛을 보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갔다.낡은 센서등의 불빛이 꺼졌지만, 그녀의 발걸음 소리에도 다시 빛나지 않았다.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4층까지 내려갔을 때 6층의 철문이 열렸다는 것을.하지만
송유나는 한참 동안 단오혁 품에서 울고 나서야 눈물을 그칠 수 있었다.그간 마음속에 맺혀 있던 것이 전부 눈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그의 가슴팍에 있는 눈물과 콧물 자국을 보니 송유나는 순간 민망함이 밀려왔다.초등학교 때 이후로 이렇게 목 놓아 울어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운다고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무리 목 놓아 울어봤자 빼앗긴 간식은 다시 그녀의 손으로 돌아올 리가 없었고, 숨넘어갈 듯이 울어도 저녁밥은 결국 그녀 혼자 알아서 차려 눈물 닦으며 먹어야 했다.그녀의 부모님은 늘 바빴다. 그녀가
너무 열심히 말해준 탓에 단오혁이 강변만 여러 바퀴 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강변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길가에 있는 심플한 가로등 불빛은 멀리서 보면 마치 별이 내려와 길을 밝게 빛내주는 것 같았다.단오혁은 진지하게 그녀가 해주는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중간에 끼어든 적도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전부 얘기하고 난 송유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기 자신을 의심했다.“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전부 다 했지만, 매번 사이좋게 지내려고 얘기를 나눠보려고 할 때마다 부모님들은
송유나는 조금 힘이 빠졌다.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한 것도 사실은 최숙의 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온 것이다.물론 집으로 오기까지 이미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강하랑과 함께 강변을 걷던 사진이 찍히고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려 허위 사실을 유포했을 때 그녀는 덤덤히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송유나는 다음번에 또 언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몰랐다.그리고 적당한 시기가 언제인지도 몰랐다.“적당한 때는 유나 씨가 팀원을 이끌고 우승했을 때여도 좋고, 다음 명절 때여도 좋아요. 아니면 또...”단
본가에서 일하는 도우미가 많았기에 두 사람의 등하교도 전부 기사님이 해주었고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할 땐 외숙모 정희월이 사랑을 주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따끔한 훈계가 필요할 때도 외삼촌 단지헌과 큰형 단원혁이 해주었다. 만약 두 사람이 큰 사고를 치기라도 한다면 둘째 외삼촌과 외숙모 부부가 본가로 찾아오기도 했었다.비록 단지희와 도성민을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족의 사랑을 전부 받아본 단오혁과 단유혁이었다. 물론 친부모가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그럼에도 단오혁과 단유혁은 확신했다.젊었던 두 사람의 부모님은 그저 둘만의
송유나는 아직 그 답을 몰랐다.아직 답을 내릴 수도 없다.지금은 이미 시간도 늦었으니 호텔로 돌아가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머리 아픈 일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길가에 멈춰서서 얘기를 나누고 강변만 몇 바퀴 드라이브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도로엔 지나가는 차가 별로 없었다. 단오혁은 묵묵히 속도를 내어 호텔로 돌아왔다.주최 측에서 호텔 한 층을 전부 빌렸기에 단오혁은 마침 송유나를 방으로 데려다줄 수 있었다.그는 송유나 방문 앞에 멈춰 섰다.“들어가서 푹 쉬어요. 다른 생각 하지 말고요. 내일부터 휴가니까 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