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하지석 씨 찾았습니다!”잔뜩 흥분한 만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어디 있는데요?”“매화마을이라고. 작은 마을에서 수학선생님으로 있답니다.”“오늘 밤 바로 도착할 수 있게 티켓 좀 예매해 줘요.”“알겠습니다.”통화를 마치자 분주하게 밥상을 차리던 추연이 물어왔다.“너 어디 가려고?”“네, 저 매화마을에 갔다 오려고요.”조연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매화마을?”영문을 모르는 추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꽤 먼 곳인데 굳이 오늘 가야겠어?”“전에 스타엔터 재무팀 팀장이 거기 계신다네요. 지금 회사엔 그분이 필요해요.”“누나, 그 사람을 다시 회사로 스카우트 하려고?”“그래. 솔직히 지금 회사 상황이 많이 안 좋아. 일단 재무팀부터 다시 꾸리려고. 실적을 내야 주주들 불안도 사라질 거야.”“그래.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야. 우리 집에 네 옷 몇 벌 있으니까 바로 여기서 출발하면 되겠다.”말을 마친 추연이 바로 안방으로 향했다.“이모, 제가 해도 돼요...”“얘는. 지금 이모랑 내외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쉬라고 했지! 얼른 가서 좀 앉아있어. 이제 국만 끓으면 끝이니까 얼른 밥부터 먹자.”...잠시 후, 출장 준비까지 마치고 세 가족이 식탁 주위에 둘러앉았다.“자, 연아야. 이 닭다리 좀 먹어봐. 너 어렸을 때부터 닭고기 좋아했잖아.”추연이 백숙 닭다리부분을 뜯어 조연아의 그릇 위에 올려주었다.“이모, 제 거는요? 저도 챙겨주셔야죠!”이에 바로 밥그릇을 내민 조연준이 수화로 불평을 호소했다.“으이구, 한 사람 하나씩 사이좋게 먹으면 되지. 이모가 설마 우리 연준이 빼놓을까 봐?”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식사는 계속 되고...잠깐 망설이던 추연이 입을 열었다.“연아야.”“네, 이모.”“그게... 이런 거 물어도 될지 이모도 고민 많이 했는데... 그래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추연의 표정이 진지하게 굳었다.“그날 민지훈 대표랑 너 같이 나갔다면서... 두 사람... 지금은 무슨
옆에 앉은 조연준의 표정 역시 무겁게 가라앉았다.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1년 전 조연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그러게요. 하긴, 애초에 임천시에서 민지훈 몰래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긴 하지만요.”조연아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렇기에 송진희, 민지아를 미리 부른 거기도 했고 말이다.“누나 말이 맞아요. 민지훈 대표가 적어도 임천시는 꽉 잡고 있잖아요. 아니. 이 대한민국에서 민지훈 대표를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요.”두 남매의 말에 추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 좀 더 미룰 걸 그랬어. 네가 그 화재에서 살아남은 게 아직도 꿈만 같은데. 또 네가 그 불구덩이에 다시 뛰어들까 봐... 이모 너무 걱정돼.”“아니에요. 어차피 제가 살아있는 한, 언젠가 들켰을 거예요. 차라리 제 의지대로 나타나는 게 맞아요.”조연아의 머릿속에 요즘 어딘가 이상하던 민지훈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그렇게나 차갑던 사람이 왜 갑자기 그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걸까? ‘아니야.’조연아가 고개를 저었다.‘민지훈이 왜 바뀌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이젠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다시 그 지옥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야.’한편,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추연이 조연아의 손을 꼭 잡았다.“연아야. 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걱정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민지훈은 달라. 그 사람과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다치는 건 결국 네가 될 거야.”추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조연아는 더 의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모. 저 바보 아니에요. 다시 그 사람이랑 엮일 일 없어요.”그 화재에서 벗어나 새 삶을 얻게 된 그 순간부터 과거의 나약했던 자신과 영원히 이별하기로 마음 먹은 조연아다.그제야 안심한 듯한 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이렇게 말하니 마음이 좀 놓이네. 자, 이
“젠장!”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은 민지훈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 차가운 포스에 겁을 먹은 오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조연아 씨가 나타난 뒤로 술과 담배는 많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알아내세요. 지금 어디 있는지.”“알겠습니다.”그리고 잠시 후, 다시 차에 탄 오민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지금 조연아 대표 매화마을에 있답니다.”“매화마을?”“네.”“지금 당장 티켓 예매해 줘요.”“아, 그게...”오민이 난처한 듯 고개를 숙였다.“지금은 시간이 워낙 늦어서 KTX도 기차도 다 끊겼을 텐데요.”“그럼 내가 직접 운전이라도 해서 가는 수밖에요.”“대표님, 지금 당장 출발해도 3, 4시간은 걸릴 겁니다.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떠나시는...”“지금 출발합니다.”민지훈이 망설임없이 그의 말을 잘랐다.“알겠습니다.”대답을 마친 민지훈이 다시 차에 타고 이렇게 또다시 보스에게 버려진 오민이 어색하게 밤거리를 채웠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 밤.빗소리를 BGM 삼아 조연아는 마을의 유일한 모텔에 도착했다.지잉.‘참, 시간 계산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짐을 풀자마자 만두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조연아가 픽 웃었다.“대표님, 도착하셨습니까?”“네.”“제가 미리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하석진은 고아원 출신입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천재적인 두뇌로 장학금 루트만 쭉 걸어왔던 거죠.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졸업하고 나선 바로 대기업에 입사했고요.”“스카우트 제의가 많았을 텐데 굳이 스타엔터로 오게 된 이유가 뭐죠?”“과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추 회장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두 분 다 희귀 혈액형이거든요.”“아, 그리고.”만두가 말을 이어갔다.“지금 매화마을에서 굉장히 인기있는 수학선생님이라고 합니다. 1년 동안 수많은 기업들이 스카우트 제의를 했지만 전부 거절했고요. 삼고초려 작전을 벌이다 떨어져나간 헤드헌터들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제가 파일 보내드릴게요.”만두에게
“대표님. 매화마을, 규모는 작지만 주위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부동산이 많아 온갖 장사치들이 잠깐 들럿다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동인구가 꽤 많으니 주무실 때 조심하세요.”“네, 알겠어요.”“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회사 일은 제가 책임지고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아직 그룹에서 조연아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만두뿐이라 함께 따라가지 못한 것이 꽤 걱정되는 모양이었다.통화를 마친 조연아는 대충 씻고 잠을 청했다.“안돼... 안돼!”한참을 낑낑대던 조연아가 눈을 번쩍 떴다.“또 그 꿈이네...”비록 행운스럽게 살아남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씩 1년 전 그 화재가 악몽으로 그녀의 밤을 피곤하게 만들곤 했다.저택에 갇혀 죽음의 공포속에서 절망을 느끼던 그 느낌, 타오르는 불길의 열기까지 너무나 생생한 꿈.한참을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꿈이라는 걸 인지한 조연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미 다 지난 일이야.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쿠르릉!바로 그때.창밖에서 굉음이 들려왔다.그녀가 올 때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어느새 거센 폭우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게다가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얇은 창문을 무섭게 때려댔다.탁.그리고 다음 순간, 침대 옆에 켜두었던 스탠드 불이 갑자기 꺼짐과 동시에 복도가 웅성대기 시작했다.“뭐야? 아까 그 소리는?”“왜 정전이지?”“정말 정전인 거야?”...그리고 잠시 후, 직원의 목소리가 복도를 채웠다.“숙객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주세요. 곧 비상전원이 돌아갈 겁니다.”어둠속에서 겨우 휴대폰을 찾아낸 조연아의 눈이 흔들렸다.‘태풍?’텅 빈 도로를 채운 광고판들이 날아가는 굉음에 화들짝 놀란 조연아는 그제ㅔ야 이것이 현실임을 인지했다.“만두 씨, 매화마을에 태풍이 상륙했다네요. 며칠 동안 여기 갇혀있을지도 모르니까 회사 잘 부탁해요.”어둠속에서 약 2-30분 동안 기다렸을까?객실 조명이 다시 불을 밝혔다.하지만 비상전원은 어디까지나 비상용일 뿐, 언제 끝날
순간 충격에 뒤로 나뒹군 조연아는 벽에 등을 쾅 하고 부딪혔다.게다가 깨진 창문 유리가 팔과 다리에 박혀 어느새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극심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든 조연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어떻게든 테이블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려던 그때, 또 굉음이 이어졌다.위이잉!그와 동시에 호텔에 경보음이 울리고 스피커를 통해 직원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투숙객 여러분, 지금 속히 비상통로를 따라 6층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귀중품 챙기지 마시고 일단 몸부터 피하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여러 번 반복되던 직원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이젠 정말 완전히 정전인 건가?’고통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선 조연아는 애써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보았다.“쾅!”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겨우 연 방문이 세게 닫혀버리는 동시에 쨍그랑 소리와 함께 복도 창문까지 깨져버렸다.돌풍이 복도를 휘몰아치고 온갖 물건들이 나뒹구는 사이로 사람들의 절망적인 비명소리가 언뜻언뜻 들려왔다.한편, 어둠속에서 조연아는 휴대폰 플래시 불빛을 빌어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윽!”그러다 어딘가 부딪힌 조연아가 그대로 넘어지려던 순간,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덥섞 잡았다.“괜찮아요?”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겨우 중심을 잡은 조연아가 고개를 들어보니 선글라스를 쓴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뭐야?’조연아는 순간 자기 눈을 의심했다.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선글라스라니. 미친 사람인 건가 싶을 정도였다.“많이 다친 것 같은데.”말과 동시에 남자가 허리를 숙였다.“자, 업혀요.”널찍한 등짝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연아의 머릿속에 순간 매화마을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니 조심하라는 만두의 말이 스쳐지났다.“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갈 수 있어요.”하지만 말과 달리 벽을 겨우 짚고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그 꼴로 어떻게 계단을 오른다고 그래요. 아, 설마 내가 나쁜 사람일까 봐 그래요?”말
“그런데 선글라스는 왜 쓴 거예요? 앞이 보이긴 해요?”그의 등에 업힌 조연아가 의아함을 표했다.“지금 빨리 대피해야 하는데 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들이 몰릴 수도 있잖아요.”“선글라스 쓴 게 더 튀는 것 같은데...”이에 조연아가 낮은 목소리로 구시렁댔다.생각지 못한 팩폭에 흠칫하던 하태윤이 괜히 목소리를 다듬었다.“큼, 그럼 좀 벗겨줄래요? 앞이 잘 안 보이긴 하네요.”“네.”선글라스를 벗겨주며 조연아의 손가락이 자연스레 하태윤의 콧등에 닿았다.쿵쾅쿵쾅.그 찰나의 스킨십에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하자 하태윤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연기를 하며 이보다 더 진한 스킨십도 몇 번은 해본 그가 겨우 이 정도 터치에?‘성인 여자를 업고 계단을 오르려니까 힘들었나 보다.’하태윤은 이렇게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6층에 도착하니 타박상을 입은 사람들이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고 직원들이 그 사이를 오가며 비상식량과 생수를 지급하고 있었다.테이프로 창문을 막은 이곳이 모텔의 마지막 안전구역, 어떻게든 끝날 때까진 어떻게든 여기서 버터야 했다.“그런데 대표님께선 여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여기서 연습생이라도 뽑으시려고요?”여기저기 부딪히고 넘어져 꽤 처참한 모습임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조연아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태윤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아니요.”“그럼 뭔데요?”“비밀이에요.”이에 하태윤이 피식 웃었다.“제가 왜 여기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세요?”그의 질문에 조연아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뭐 볼일이 있으니 왔겠죠. 연예인 개인적인 사생활엔 관심 없어요.”“재밌네요...”“뭐라고요?”혼잣말이나 다름없는 목소리에 조연아가 되물었다.“아, 가족 만나러 왔다고요.”“아, 네.”“자, 다 됐어요.”“풉.”조연아는 붕대를 어찌나 여러 겹 감았는지 공처럼 되어버린 손을 발견하고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큼, 처, 처음 해보는 거라서 그래요.”멋쩍은 듯 돌아서던 하태윤이 머리를 헝클였다.“고마워요.
“왜요?”하태윤이 고개를 돌렸다.“조심... 해요.”“걱정마요. 나 하태윤이에요.”말을 마친 하태윤이 늘 그렇 듯 환하게 웃어보였다.“선글라스는 대신 보관해 주세요. 다시 돌아오면 받으러 갈게요. 푹 쉬고 있어요.”“네.”이 말을 마지막으로 하태윤은 모텔을 나섰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바람은 점차 잦아들었으나 이미 불어난 물은 거침없이 흐르며 마을의 이곳저곳을 파괴하고 있었다.빗방울로 얼룩진 창문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니 빗물은 어느새 건물 1층 높이를 훌쩍 넘은 상태였다.‘하태윤 씨, 괜찮아야 할 텐데...’극도의 피곤함 때문인지 조연아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또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역시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저기! 저기 좀 봐요. 아이가, 아이가 물에 떠내려가고 있어요.”“어머! 어떡해...”“난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거센 물살을 따라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었다.‘저러다간 죽을지도 몰라...’멀쩡한 생명이 눈앞에서 사그라드는 걸 지켜볼 수만 없었던 조연아가 벌떡 일어섰다.“저기요, 어디 가시는 겁니까?”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향해 직원이 물었다.“아이 구하러요.”그녀의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둘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나도 가야겠어요. 아이가 죽는 걸 지켜볼 순 없잖아요.”“저도 갈래요.”“다들 같이 가죠. 최선을 다해 보는 거예요.”그렇게 6층에 모였던 투숙객에 직원들까지 조연아의 뒤를 따랐다.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이던 조연아는 일단 팔에 두른 붕대부터 풀었다.3층 창가로 다가가 보니 아이는 난간 하나를 잡고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하지만 이미 바람에 볼품없어진 난간은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시간이 없어...’조연아가 깨진 창문을 뛰어내렸다.나름 수영에는 자신이 있는 그녀였지만 다친 팔과 다리로 거센 물살을 헤치는 건 생각보다
1번, 2번, 3번...몇 번이나 손을 뻗은 뒤에야 조연아는 밧줄을 잡을 수 있었다.“자, 언니 손 따라서 천천히 다가와. 언니가 몸에 밧줄을 묶어줄게.”“언니, 어, 어떡해요. 저... 팔에 힘이 빠질 것 같아요...”“정신차려! 언니 믿어. 여기서 포기하면 안돼!”조연아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미소 지으며 여자아이를 응원해 주었다.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아이는 조연아의 팔을 잡고 조금씩 움직였다.“자, 다 묶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밧줄 놓지 마. 알겠지? 무사히 살아서 언니랑 다시 만나는 거야. 응?”“네.”아이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조연아가 다친 팔을 힘겹게 들어 오케이 제스처를 해보이고 모두가 힘을 합쳐 밧줄을 당긴 덕에 여자아이는 무사히 모텔 2층에 도착했다.“고객님, 조금 더 버텨주세요!”사람들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려왔다.조연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피가 새어나오는 팔과 저려오는 다리는 이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저번엔 불이더니... 이번에는 물이야? 하... 너도 참 기구한 인생이다.’조연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팔의 힘은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뚜둑...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잡고 있던 나뭇가지도 어느새 끊어지려고 하고 있었다.‘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다른 나뭇가지로 옮겨가고 싶었지만 손은 그대로 미끄러지고 말았다.거센 물살이 그녀의 볼을 아프게 때리고...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싶어 눈을 질끈 감았던 그때.탄탄한 손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누구지? 누구지...?’“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을게.”익숙한 목소리에 조연아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역시나, 다시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민지훈의 얼굴이 들어왔다.‘뭐지? 꿈인가? 이 사람이 왜 내 곁에 있는 거지?’“조심해!”저 멀리... 거센 물살에 흘러내려오는 광고판을 발견한 민지훈이 다시 그녀를 꼭 끌어아았다.퍽!“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