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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끼익!

임찬혁이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롤스로이스 팬텀이 호텔 입구에 멈춰 섰다.

이내 차 문이 열리더니 곧은 체격에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왔다.

우월한 기럭지에 화려한 패션은 그로 하여금 귀티가 좔좔 흐르게 했고 마치 한 나라의 귀족 왕자 같았다.

순간 하정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 사람은 경주 4대 명문가 중 하나인 송씨 가문의 큰아들 송시후였다.

그는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재력도 어마어마해 수많은 여자 마음속의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정우명은 그를 보고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나 알 것 같아! 시후 도련님이야말로 진정한 VVIP였어!”

“맞아요! 시후 도련님이 항상 유 대표님 좋아한다고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잖아요. 시후 도련님만이 유 대표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하정연도 정우명의 말에 바로 동의했다.

송시후야말로 그 귀한 손님이고 임찬혁은 그저 들러리보다 못한 쓸모없는 인간일 것이다.

하정연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한숨을 내 쉬었다.

누가 VVIP 대접을 받던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유독 임찬혁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깜짝 놀랐잖아. 나는 임찬혁이 또 어디 명문가 집안 사람과 친해진 줄 알았어.”

정우명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안도했다.

“임찬혁이 나를 만날 때마다 저에게 이런 짓을 하니 나중에 꼭 기회를 봐서 혼내주세요.”

하정연은 턱을 치켜들며 이를 갈았다.

“내일 어떻게 할지 경호원들에게 다 얘기해 놨어. 만약 우리 결혼식에 와서 또 소란을 피우면 내가 반드시 당신 대신 톡톡히 복수해 줄게!”

정우명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얼굴에는 순간 잔인함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두 사람은 송시후가 성큼성큼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곳을 떠났다.

임찬혁은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호텔 직원에 의해 VVIP 킹스 룸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는 유효진, 유설진, 연우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유효진은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 그녀는 옅은 화장에 화려한 검은색 롱드레스를 입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며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옆에 있는 유설진은 그와 반대로 흰색 드레스를 입어 청순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두 자매 모두 지적이고 활달한 보기 드문 미인이다.

“아빠, 오늘 너무 멋져요!”

연우는 임찬혁이 들어 오는 것을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연우야, 양아버지라고 해야지...”

유효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린아이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임찬혁을 흘끗 한 번 더 쳐다보더니 속으로 역시 옷이 날개라는 옛날 성구 속담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임찬혁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이 양복이 그리 싸지 않을 것 같은데 방금 출소한 임찬혁에게 어떻게 이 정도의 돈이 있을 수 있지?

아마 분명 아주머니께 달라고 한 게 틀림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유효진은 기분이 살짝 언짢아졌다. 임찬혁은 건방질 뿐만 아니라 진취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부모님 등까지 처먹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사람이 그녀의 생명을 구하고 연우의 호감을 샀으니... 사실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연우의 친아빠를 찾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우가 부성애를 느끼게 되면 임찬혁에게 이렇게 달라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시켜 ‘밤의 어둠’ 술집의 CCTV를 확인하려 했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은 일이 좀 번거로워져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 지나야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연우야, 이건 너의 선물이야.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

임찬혁은 오는 길에 샀던 평안부를 연우의 목에 걸어줬다.

“와! 정말 고마워요. 아빠! 연우, 너무 행복해요!”

연우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반달 모양의 눈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연우가 찬혁의 품에 안겨 즐거워하고 있을 때 유효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양씨 아주머니를 픽업했어요?”

이제 임찬혁은 연우의 양아버지이기에 양홍선도 연우의 양할머니가 된다. 그래서 양홍선을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로 했고 기사를 보내 데리러 오라고 했다.

임찬혁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이런 그녀의 배려에 살짝 감동도 했다.

“유 대표님, 이건 제가 특별히 만든 단약입니다. 아침저녁마다 한 알씩 이 유리병에 있는 것을 다 드시면 몸이 완전히 좋아지실 겁니다. ”

임찬혁이 회춘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유효진이 손을 내밀어 유리병을 받자마자 그녀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고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송시후였다. 그녀는 화면에 뜬 ‘송시후’라는 이름을 보고 받지도 않은 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언니, 시후 도련님이 언니에게 그렇게 푹 빠져 있는데 언니 너무 매정하지 않아?”

유설진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조롱하듯 한마디 했다.

“네가 좋으면 너에게 양보할게.”

유효진은 동생에게 한 번 눈짓하더니 말했다.

이 계집애는 본인이 분명 자신이 송시후를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사람을 놀리고 있었다.

“송시후가 얼마나 바람둥이인데! 저는 됐네요.”

유설진이 입을 삐죽거리며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도련님! 유 대표가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객실 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쾅!’ 하는 문소리와 함께 밖에서 누군가가 객실 문을 걷어찼다.

문이 열리자 거만한 얼굴을 한 남자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채 룸으로 들어왔다.

“송시후? 이게 무슨 짓이야!”

유효진은 순간 안색이 확 변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호통을 쳤다.

기세등등이 룸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유효진에게 끈질기게 매달리고 있는 송시후였다!

깜짝 놀란 연우는 다급히 임찬혁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옆에 있던 유설진도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송시후가 문을 부수는 거친 행동까지 해가며 룸에 들어올 줄 몰랐다.

“이 자식 누구야?!”

송시후는 임찬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추궁하듯 물었다.

“내가 그렇게 만나자고 할 때는 전화도 안 받더니 여기에 앉아서 다른 남자와 밥 먹고 있었어?”

송시후는 유효진을 이미 자신의 여자로 생각하고 있었고 눈 앞에 펼쳐진 지금과 같은 상황에 마치 유효진이 다른 사람과 바람이라도 핀 듯 화를 내고 있었다.

“찬혁 씨는 연우의 양아버지야. 같이 밥 먹는 게 어때서? 게다가 누구와 밥을 먹든 그건 내 자유야.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양아버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의 돈을 보고 달라붙은 애송이겠지.”

송시후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경주 상류층에서 임찬혁과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상대방은 분명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일 것이다.

“언니에게 좀 깍듯이 대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장 경비 부를 거예요!”

옆에 있던 유설진은 더 이상 듣기 거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유효진 대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왜? 나를 쫓아내기라도 하게? 아이고, 무서워라. 네가 아니라 너의 아빠가 와도 나를 쫓아내지 못해!”

송시후는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길길이 날뛰었다.

순간 유설진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다. 실력이나 그 어떤 면에서나 송씨 가문은 경주 4대 가문 중 하나로 유씨 가문보다 훨씬 위에 있었기에 이렇게 얼굴을 붉히는 것은 유씨 집안에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 어쩌자는 건데?”

유효진도 이런 송시후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녀가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바로 거절하면 되는데 그게 하필이면 송시후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 자식 내쫓아! 내가 같이 생일 축하해 줄 테니!”

송시후는 임찬혁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안돼!”

유효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

“찬혁 씨는 연우의 양아버지야, 절대 쫓아낼 수 없어. 너도 연우의 생일을 같이 축하하려면 그냥 앉아 밥이나 먹어.”

유효진은 송씨 가문의 세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발 양보했다.

송시후가 안 그래도 임찬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 괜히 일을 크게 키우면 골칫거리만 늘 뿐이기 때문이다.

“저까짓 애송이가 나와 밥 먹을 자격이 있어?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저 자식이야? 나야?”

송시후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찬혁 씨는 연우의 양아버지야. 절대 쫓아낼 수 없어.”

유효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겠다고 하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네가 알아서 해!”

그 말에 송시후는 버럭 화를 냈다.

유명한 송씨 집안의 도련님이 이 애송이보다 못하다니!

“그렇게 감싸주는 걸 보니 이 자식이 너를 엄청나게 만족시켜주고 있나 봐?”

말을 하던 송시후는 의자를 집어 들더니 임찬혁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그렇다면 이 인간이 내 앞에서 얼마나 찌질해지는지 한 번 보여줄게.”

임찬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품에 연우를 안고 있어 일단 몸을 돌려 의자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와르르!

의자가 땅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졌다.

만약 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분명 연우가 다쳤을 것이다. 진짜로 그렇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경비!”

유효진은 송시후 때문에 하마터면 연우가 다칠 뻔하자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이 사람 쫓아내세요!”

“함부로 건드리기만 해봐?!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감히!”

경비원이 손을 대기도 전에 송시후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4대 명문가인 송씨 가문을 함부로 건드리면 그 결과가 어떨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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