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준 네가 감히 겁도 없이 여기 나타나? 보아하니 손항준도 네놈이 죽였구나.”손성호가 말하기도 전에 손성운이 물었다.“죽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손항준은 내 손에 죽지 않았지.” 거짓말이 아니었다.손항준의 진짜 죽음은 진실을 말하려다 몸의 금기를 건드린 탓이었기에 자살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럼 내 아들은 어딨어?”조씨 가문과 엄씨 가문도 이 틈을 타 물었다.최서준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차갑게 바라보기만 했다.“최서준, 오늘은 내 생일 잔치야. 할 말 있으면 오늘이 지나고 해.”최서준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손성운은 돌아서서 말했다.최서준은 무심하게 웃었다.“말했잖아, 목숨 가지러 왔다고.”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는 상대에 손성호가 대꾸했다.“말해, 너희 쪽 사람들 다 어디 있어. 당장 부르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내가 널 한 방에 죽여버릴 테니까.”손성호가 굳은 표정으로 주위 기운을 감지했지만 누구도 없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남양의 도강 전투 이후 유재충과 여경훈까지 남양에서 죽자 손성호는 곧바로 최서준 배후의 사람들이 한 짓이라고 단정 지었다.그렇지 않고서야 갓 승급한 무술 종사 혼자서 무슨 수로 그들을 상대한단 말인가.“하하하, 고작 무술 7단계 수련자가 한방에 날 죽인다고?”최서준은 웃음을 터뜨리다가 말했다.“맹목적인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지, 우물가에 앉아 하늘만 보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손성호, 오늘은 당신뿐만 아니라 손씨 가문 전체가 한성 보육원의 목숨값을 치러야 할 거야!”“우리 무술 협회 장로들은 어디 있느냐!” 이 말을 들은 손성호 역시 격분하여 폭발적인 소리를 내뱉었다.그 순간 조씨 가문의 가주, 엄씨 가문의 가주, 손성운과 한씨 가문 미인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자식 잡아!” 손성호는 명령을 내렸고 이 기회를 이용해 최서준의 배후에 있는 종파를 끌어내려는 수작이었다.조씨와 엄씨 가문 가주들은 앞으로 나섰지만 한씨 가문 미녀는 제외였
최서준은 날아오는 조씨 가문 가주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죽음을 자초하는군!”이윽고 그는 똑같이 주먹으로 맞받아쳤다.쾅-공기의 흐름이 안쪽 홀의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뒤집으며 사람들을 뒤흔들었다.그들이 제대로 서 있기도 전에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들렸다.퍽, 퍽, 퍽...“다 끝났어, 조씨 가문 가주의 위압적인 힘에 지는 건 시간 문제야.”“그래, 남양의 최 대가가 감히 조씨 가문 가주와 주먹을 맞대다니. 이건 죽어도 이름을 날릴 테니.”“맞아, 영광스러운 죽음이지. 4대 무림 가문의 다른 가주였어도 조씨 가문의 저 힘에 압도당하면 마찬가지로 질 거야. 그런데 최 대가의 힘이 4대 가주들과 대등하다니 무서운 일이야!”경기장 밖에서 수군거리는 것과 달리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던 조씨 가주의 표정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주먹이 맞붙고 그는 의아함이 들었다.대체 천강패의권을 수련한 자가 누구란 말인가.주먹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에 조씨 가주는 빨리 이곳 전장을 벗어나고 싶었다.상대인 최서준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자신을 들러붙어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수십 차례의 대치로 이미 손가락 마디뼈가 부러졌다. 별것 아닌 부상이었지만 맞붙은 상대는 부상은 말할 것도 없고 옷자락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조씨 가문 가주는 진작 자신이 최 대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다만 한번 나선 이상 멈추기가 어려웠다.어떠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 전장에서 벗어나는 건 이제 불가능했다.바로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워밍업은 끝났어. 이제 그만 죽어!”원기를 이용한 최서준의 주먹은 조씨 가문 가주의 눈에 천강패의권보다 더 천강패의권 같았다. 도저히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어딜 감히!”“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최 대가가 오랜 시간 조씨 가문 가주와 싸워도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는 거지?”“설마 남양의 최서준이 조씨 가문 가주보다 실력이 월등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기 결과를 지켜보다가 탄식을 내뱉었다.진릉에서 무술 협회 회장이 나섰다는 건 곧 끝을 의미했다.그런데 이번에는 무술 협회장뿐 아니라 손씨 가문 가주까지 가세하니 실로 두렵기 그지없었다....“내 손아귀에 있는 사람을 살리려 하다니, 감히 주제도 모르고!”최서준은 날아오는 손씨 가문 형제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최서준은 그 틈에 방어 차원에서 묵직한 주먹을 날리는 등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그런데 그는 정작 자리에서 잠시 비틀거리더니 주먹으로 조씨 가문 가주의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해 얼굴 전체가 함몰되었다.조씨 가문의 가주는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날렸는데 최서준 옆으로 청록색 빛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조씨 가문 가주의 주먹은 손가락뼈부터 시작해 손목 팔뚝까지 서서히 무너져 버렸다.청록색 빛 그림자는 조씨 가문의 마지막 주먹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팔 전체를 부숴버리고 손씨 가문 형제의 합동 공격도 막아냈다.보이지 않는 파문이 퍼져나가자 안쪽 홀에는 무술 수련 고수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이 충격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부서져 안쪽 홀은 엉망이 되어버렸고 바깥 홀에 있던 사람들도 진작 모습을 감췄다.무술 수련자들도 이미 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채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이미 거기까지가 한계였고 더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주고받는 공격에 그들까지 부상을 당할 것이 뻔했다.“오늘부터 진릉에 조씨 가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서준은 손씨 가문 형제의 가운데 서서 차갑게 말했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조씨 가문 가주가 저렇게 죽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그러게, 남양 최 대가의 힘이 조씨 가문 가주를 죽이고 손 회장 형제의 공격까지 막아낼 정도로 강할 줄이야.”“오늘 이 전투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며 우리 모두 역사의 증인이야!”그 말에 다들 들뜨기 시작했다.더 이상 최서준이 상대가 되지 않을 거란 말은 나오지 않았고 거듭
“쳇, 이럴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사람을 시켜 불을 지르게 하지 말고 내가 직접 남양으로 달려가서 널 죽였어야 했어!” 손성호는 이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며 섬뜩하게 말했다.“진짜 당신이었네!” 이 말을 들은 최서준은 급격히 살기에 휩싸였다.단지 떠본 것뿐이었다. 손항준이 수상하다고 손씨 가문 전체가 그런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확인해 보니 역시나 손씨 가문 위아래가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곳 전체에 퍼져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사람의 살기가 이토록 짙을 줄이야.뼛속까지 사무치는 증오심이었다.최서준의 머릿속에는 한성 보육원의 형제자매들이 떠올랐고 더 나아가 원장의 자상하고 인자한 얼굴이 떠올랐다.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었다.이윽고 그는 몸을 휙 움직여 손씨 가문 사람들 곁에 나타났고 상대는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렸다. 또다시 휩쓸며 지나다니는 곳마다 손씨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아버지, 살려주세요!”“최서준, 난 그때 그 사건에 찬성하지 않았어!”“네 형제들을 죽인 건 가주야!”“나도 어렸어, 나도 어린애였다고!”“미안해요, 최 대가.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여기 모인 사람들은 손성운이나 손성호의 직계 후손들이었다.최서준은 자비를 구하는 이들의 호소를 못 들은 척했다.세상을 떠도는 사악한 악귀처럼 나타나는 곳마다 목숨을 거두어갔다.“최서준, 죽여버릴 거야!” 손씨 가문 두 형제의 마음도 순간 분노로 가득 찼다.두 사람은 최서준의 뒤에 따라붙었지만 그저 쫓아다닐 뿐 자신의 후손들이 연이어 학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절망적이야?” 손씨 가문 사람들 뒤에 최서준의 모습이 나타났다.“화가 나?” 말하며 그는 어느새 이미 다른 곳에 나타나 있었다.“그래, 그런 느낌이야.” 최서준의 잔영이 보일 때마다 손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걸 의미했다.서서히 수십 명에 달하던 손씨 가문 사람들 중
“하나, 둘, 셋...”손으로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세어보았다.“손성운, 이제 여섯 명밖에 안 남았어. 그해 사건의 내막을 말하지 않으면 손씨 가문은 오늘 멸망할 거야!” 차갑게 말하는 최서준의 흉흉한 살기에 사람들은 그가 말한 대로 할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최서준, 꿈 깨. 넌 죽기 전까지 진실을 모를 테니 걱정 마.” 태허결 공법의 특수성으로 인해 손성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원기가 소용돌이치며 파문을 일으켰다.“최서준, 오늘 손씨 가문의 치욕을 네 목숨으로 갚아야 할 거야!” 손성운은 자신의 생일잔치를 열던 손씨 가문 저택이 이미 피로 붉게 물든 것을 맹수처럼 충혈된 두 눈으로 바라보았다.흑과 백의 원기가 충돌했지만 최서준은 이를 외면했다.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며 두 사람이 지키고 있던 여섯 명 중 한 명, 또 한 명이 쓰러졌다.“바람아!”손성호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죽은 사람은 그의 자식 중 한 명이었고 또다시 그림자가 번뜩이며 한 명이 죽었다.그렇게 몇 차례 반복 끝에 자리에 남은 손씨 가문 사람은 오직 두 형제뿐이었다.손성호 형제는 최서준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고 최서준이 자식들을 모두 죽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한수영, 저놈이 살인에 미쳐서 우리 두 가문까지 몰살시키는 건 아니겠지?”옆에 있던 엄씨 가문 가주가 이 지옥 같은 광경을 보고 중얼거리자 한씨 가문 미인이 말했다.“정말 죽이려 한다면 엄씨 가문이 도망칠 수 있을까요?”한수영이 되물었다.하긴, 저 무서운 고수가 자신의 가문을 죽이려 했다면 진작 아비규환이 됐겠지, 그가 이곳에서 가만히 지켜볼 틈이 있었을까.“최서준,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손성호가 버럭 소리치며 그의 모습이 허공에서 희미해지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손 회장이 죽기 살기로 싸우려는 거야!” 이 장면을 본 한씨 가문 가주는 충격에 휩싸여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소문에 손 회장은 좀처럼 나서지 않는데 한번 나서면 필시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
먼저 달려들다가 몇 발짝 떨어져 있던 손성운은 공격은커녕 서 있는 것조차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최서준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동안 손성운은 온몸의 모든 뚫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고 저항할수록 죽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살고 싶으면 무릎을 꿇는 길밖에 없다!그때, 최서준은 물론이고 형인 손성호마저도 손성운을 쳐다보지 않았다.“최서준, 내가 네 상대가 아니어도, 네가 나와 손씨 가문을 무너뜨려도, 네가 아무리 무서운 존재로 성장했어도, 그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개미에 불과해, 하하하!” 손성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에서 웃는 그의 모습에 최서준은 그가 미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손성호가 큰 소리로 웃을 때 손성운은 더 이상 압박을 견딜 수 없었다.털썩-손성운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동생아, 아직도 모르겠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도 저 망할 놈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손성호는 비통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고 동시에 혼돈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최서준은 그가 이미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자각하고 원기를 동원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종사 7단계까지 수련한 그가 원기를 뒤집자 종사 8단계의 경지에 도달했다.하지만 그게 다였다.최서준이 휙 움직이더니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손성호 앞에 도착해 있었고, 손성호가 미처 따라잡지 못할 빠른 속도로 손성호의 단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그 순간 이미 역전된 원기는 마치 근원이 잘린 것처럼 끊어져 버렸다.이미 한 번 자폭의 고통을 겪은 최서준은 당연히 두 번 다시 걸려들지 않았다.“죽음을 자초한다면 뜻대로 해주지!”최서준은 말이 끝나자마자 손바닥으로 손성호의 머리를 똑바로 내리쳤다.만약 이 손바닥을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무리 종사 7단계의 경지에 이른 몸이라도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바로 그때, 뒤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손성운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말했다.“최서준, 말할게. 우리 형
남양시.해성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김지유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연신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젊은 남자를 바라봤다.“뭐라고? 그쪽이 내 약혼자란 말이야?”“맞아. 3년 전에 당신 할아버지가 우리의 혼약을 맺어주셨어. 이건 혼약서야. 못 믿겠으면 봐봐.”젊은 남자의 이름은 최서준이다. 그는 말하면서 옷 주머니에 넣어둔 혼약서를 꺼냈다.김지유는 혼약서를 확인한 후 죽고 싶은 충동까지 생겨났다.이 혼약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짜였다. 위에 할아버지 김호석의 글씨체가 있고 심지어 인감까지 찍혀져 있었다.김지유는 숨을 깊게 몰아쉬고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그쪽 이름이 최서준이야?”“맞아.”최서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또렷한 이목구비에 뽀얗고 탄력 있는 피부까지 더하니 아무리 인상을 찡그려도 남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타이트한 정장은 화끈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는데 그중에서도 한 줌 되는 개미허리가 유난히 인상적이라 프로 모델이 와도 무색해질 따름이었다.그가 야릇한 눈길로 빤히 쳐다보자 김지유는 사납게 쏘아붙였다.“지금 어딜 쳐다봐?”다만 이어진 최서준의 한마디에 그녀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얼굴은 90점, 몸매는 100점, 내 와이프가 되기엔 뭐 그럭저럭 봐줄 만 해.”“뭐라고...”김지유는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무려 재벌 가문 김씨 일가의 따님이자 해성 그룹 대표직을 맡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완벽한 여자다.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은 전제하에 자수성가하여 시가총액 2천억이 넘는 회사를 설립했다.그 외에도 남양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려 얼마나 많은 훌륭한 남자들이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는지 모른다.다만 눈앞의 이 촌놈은 검은 민소매에 헐렁한 바지, 거기에 지저분한 조리 한 켤레를 신고 있다. 잘생긴 얼굴만 빼면 아예 대놓고 촌스럽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런 촌뜨기가 감히 김지유한테 와이프로 봐줄 만 하다고 망언을 내뱉다니?그녀는 차오르는 분노를 꾹 참았다.“말해
김지유는 최서준을 빤히 쳐다보며 얼굴에 거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그녀의 옆에 있던 비서 반윤정도 시큰둥한 눈길로 최서준을 흘겨봤다. 거지 따위가 어딜 감히 대표님을 넘보려고?“그렇게 해.”최서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하지만 네 말은 소용없어. 이 혼약은 너희 할아버지가 정해주신 거니 내가 할아버님 병 치료를 다 마치거든 친히 혼약을 해지하셔야 해. 걱정 마, 할아버님만 동의해주신다면 나 절대 집착 안 해.”“아니.”김지유는 그가 미련을 못 버리는 줄 알고 점점 더 야유 어린 눈길로 돌변했다.“이건 내 결혼에 관련된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해. 우리 할아버지 병도 내가 방법 구해볼 테니까 넌 신경 쓸 필요 없어.”그녀는 냉큼 수표 한 장 건넸다.“이건 10억이야. 나랑 이 혼약 해지해주겠다면 이 돈 너 줄게. 나한테 10억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 같은 최하층 서민들에겐 아마 평생 먹고 놀 수 있을 테니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김지유는 비난 섞인 미소를 날렸다. 마치 거지에게 돈 주듯이 그를 깔봤다.최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됐어.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이런 거지 취급 당할 정도는 아니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결혼 무르겠으면 김호석 씨더러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라고 해.”말을 마친 최서준은 문을 박차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자리를 떠났다.“대표님, 저 자식 너무 경솔한 거 아닙니까? 뭣 하러 저런 놈한테 예의 갖추세요?”비서 반윤정이 씩씩대며 물었다.“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가여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뿐이야.”김지유는 입술을 꼭 깨물고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돈 없으면 남양에서 살아남기도 힘들어. 감히 장담하는데 저 녀석 사흘을 못 버티고 내게 돌아와 구걸할 거야. 에이 됐다, 쟤 얘긴 그만해.”김지유가 머리를 내저었다.“아참, 윤정아, 나 대신 남양 실세 최우빈이랑 약속 좀 잡아줘. 5년 전에 간경화 말기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던데 천재 의사라고 불리는 신의의 치료를 받고 다 나았대. 그 의사를 모실 수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