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상영이 끝나자 누구부터 시작한 것인지 모를 박수갈채가 상영관을 울렸다.많은 사람들이 몰두해서 영화를 본 후 눈물을 쏟아내며 슬픈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진 감독님, 한마디 하시죠.”“한 마디 해주세요!”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입을 모아 외쳤다.진 감독은 그 장면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영관 내의 대부분 사람을 감동하게 했니 성공이 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진 감독은 천천히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감정을 약간 추스른 그는 그제야 마이크를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영화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와 제작진들의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이죠.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반 년에 봅시다.”진 감독은 그렇게 간단하게 몇 마디만 얘기한 후 무대를 내려갔다.“진 감독, 축하해. 딱 보니까 그림이 나오네. 이번 해 백상 대상은 진 감독이 받겠네.”장 감독이 진 감독에게로 걸어오면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과찬이야.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이잖아.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지.”진 감독은 겸손해하면서 얘기했다.“겸손은, 내가 진 감독을 모를까 봐? 다른 건 아니고, 내 새로운 영화가 제작 준비 중이야. 하지만 배우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진 감독한테서 사람을 한 명 빌릴까 해.”“사람을 빌린다고? 누구를?”진 감독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이 영화의 서브 남자 주인공 말이야.”장 감독이 얘기했다.“서브 남자 주인공? 그건 어려워. 여자 주인공을 빌리겠다고 하면 내가 도와줄 수는 있는데. 하지만 이 영화의 서브 남자 주인공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함부로 모셔 올 수 없어. 나도 정말 우연한 기회에 저분을 모셔 온 거니까.”진 감독은 난감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그래? 정말 아쉽네. 저렇게 좋은 연기 실력에, 특유의 카리스마까지 있는데. 정말 장은우 역할에 딱이란 말이야.”장철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리고 이 일은 물 건너갔다고 생
“멍해서 뭐 해요. 얼른 승낙해요.”임지아는 최서준보다 더욱 조급해했다.“흥미 없어요.”최서준이 내뱉은 몇 글자에 상영관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뭐라고? 장철수가 직접 섭외하러 왔는데, 그를 거절했다니.이럴 수가. 이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건가?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다니.장철수의 영화는 무조건 흥한다는 걸 모를 사람이 없었다.“이유 좀 물어봐도 될까요?”장철수도 깜짝 놀랐다. 그는 자기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의 무게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최서준이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할 줄은 몰랐다.“왜냐면 저 사람이랑 저 사람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최서준은 각각 임지석과 이진희를 가리켰다.이진희는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다가 최서준이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당황해했다.장철수가 누군데, 과연 최서준의 말 한마디를 들어줄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거 아니야?그냥 일할 때 임지아를 몇 번 뭐라고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이진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만약 저 사람들을 시야에서 치우면 내 영화에 참여해 줄 건가요?”장철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그 말에 이진희는 귀를 의심했다.이게 장철수가 맞나?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언론에 흔들리지 않던 장철수가 맞나?최서준 앞에서 잘 보이려고 애를 쓰다니.최서준의 연기력 때문에?이진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장철수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감독님, 에일리언은 아주 중요한 영화예요. 애들 소꿉놀이가 아니라고요. 저는 여자 주인공으로서 장은우 배역의 캐스팅에 발언권이 있어요.”이진희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겨우 용기를 내서 얘기했다.“지금부터 진희 씨는 에일리언의 여자 주인공이 아니야. 진희 씨는 해고됐어.”장철수는 이진희와 쓸데없는 얘기를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장철수 씨, 아무리 당신이 국내 탑 급 감독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면 안 되죠.”이진희는 화가 나서
“왜 저한테 이렇게 집착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최서준은 바로 승낙하지 않고 되물었다.연예계의 탑급 감독이, 최서준의 연기만 보고, 그를 위해서 투자금도 포기하고, 심지어 그 어떤 조건이라도 들어주겠다고 말하다니.최서준은 이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따로 얘기 드려도 될까요?”장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최서준을 데리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갔다.“최서준 씨, 제가 찍을 것은 에일리언입니다.”“그래서요?”“최서준 씨가 에일리언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장철수는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그러자 최서준이 깜짝 놀랐다.에일리언에 적합하다니.설마 발견한 건가?“이게 바로 저를 찾아온 이유로군요. 일반인들이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영화에 나올까 봐 두렵지는 않습니까?”최서준이 되물었다.“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스크린을 보는 관객들은 모든 것이 CG 효과인 줄 알거든요. 하지만 진실한 촬영만이 관객들이 몰입하게 할 수 있어요.”장철수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벌써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장면을 상상했다.“생각해 볼게요.”최서준은 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전화번호를 남겨두고 임지아와 함께 자리를 떴다.첫 상영이 끝났다. 진 감독의 영화의 첫 상영이 끝나자 사람들은 빠르게 상영관을 빠져나갔다.그날 밤, 영화와 관련된 일들이 인터넷에서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실시간 검색어 10개 중의 5개는 진 감독의 영화에 관한 얘기였다.“서브 남주가 남주보다 인기가 많다니!”“장철수 감독이 나서서 섭외하려던 사람이 고작 신인이라고?”사람들은 첫 상영할 때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소문냈다.“최서준 씨, 곧 핫한 연예인이 되겠네요.”돌아가는 길, 임지아는 핸드폰으로 그 실시간 검색어들을 보면서 말했다.최서준은 아무렇지 않았다. 유명해질 생각으로 촬영을 했던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아무 대답이나 하려던 때, 최서준은 앞의 길에 한 노인이 묵묵히 서서 등을 보이고
남양시.해성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김지유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연신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젊은 남자를 바라봤다.“뭐라고? 그쪽이 내 약혼자란 말이야?”“맞아. 3년 전에 당신 할아버지가 우리의 혼약을 맺어주셨어. 이건 혼약서야. 못 믿겠으면 봐봐.”젊은 남자의 이름은 최서준이다. 그는 말하면서 옷 주머니에 넣어둔 혼약서를 꺼냈다.김지유는 혼약서를 확인한 후 죽고 싶은 충동까지 생겨났다.이 혼약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짜였다. 위에 할아버지 김호석의 글씨체가 있고 심지어 인감까지 찍혀져 있었다.김지유는 숨을 깊게 몰아쉬고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그쪽 이름이 최서준이야?”“맞아.”최서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또렷한 이목구비에 뽀얗고 탄력 있는 피부까지 더하니 아무리 인상을 찡그려도 남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타이트한 정장은 화끈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는데 그중에서도 한 줌 되는 개미허리가 유난히 인상적이라 프로 모델이 와도 무색해질 따름이었다.그가 야릇한 눈길로 빤히 쳐다보자 김지유는 사납게 쏘아붙였다.“지금 어딜 쳐다봐?”다만 이어진 최서준의 한마디에 그녀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얼굴은 90점, 몸매는 100점, 내 와이프가 되기엔 뭐 그럭저럭 봐줄 만 해.”“뭐라고...”김지유는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무려 재벌 가문 김씨 일가의 따님이자 해성 그룹 대표직을 맡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완벽한 여자다.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은 전제하에 자수성가하여 시가총액 2천억이 넘는 회사를 설립했다.그 외에도 남양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려 얼마나 많은 훌륭한 남자들이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는지 모른다.다만 눈앞의 이 촌놈은 검은 민소매에 헐렁한 바지, 거기에 지저분한 조리 한 켤레를 신고 있다. 잘생긴 얼굴만 빼면 아예 대놓고 촌스럽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런 촌뜨기가 감히 김지유한테 와이프로 봐줄 만 하다고 망언을 내뱉다니?그녀는 차오르는 분노를 꾹 참았다.“말해
김지유는 최서준을 빤히 쳐다보며 얼굴에 거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그녀의 옆에 있던 비서 반윤정도 시큰둥한 눈길로 최서준을 흘겨봤다. 거지 따위가 어딜 감히 대표님을 넘보려고?“그렇게 해.”최서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하지만 네 말은 소용없어. 이 혼약은 너희 할아버지가 정해주신 거니 내가 할아버님 병 치료를 다 마치거든 친히 혼약을 해지하셔야 해. 걱정 마, 할아버님만 동의해주신다면 나 절대 집착 안 해.”“아니.”김지유는 그가 미련을 못 버리는 줄 알고 점점 더 야유 어린 눈길로 돌변했다.“이건 내 결혼에 관련된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해. 우리 할아버지 병도 내가 방법 구해볼 테니까 넌 신경 쓸 필요 없어.”그녀는 냉큼 수표 한 장 건넸다.“이건 10억이야. 나랑 이 혼약 해지해주겠다면 이 돈 너 줄게. 나한테 10억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 같은 최하층 서민들에겐 아마 평생 먹고 놀 수 있을 테니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김지유는 비난 섞인 미소를 날렸다. 마치 거지에게 돈 주듯이 그를 깔봤다.최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됐어.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이런 거지 취급 당할 정도는 아니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결혼 무르겠으면 김호석 씨더러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라고 해.”말을 마친 최서준은 문을 박차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자리를 떠났다.“대표님, 저 자식 너무 경솔한 거 아닙니까? 뭣 하러 저런 놈한테 예의 갖추세요?”비서 반윤정이 씩씩대며 물었다.“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가여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뿐이야.”김지유는 입술을 꼭 깨물고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돈 없으면 남양에서 살아남기도 힘들어. 감히 장담하는데 저 녀석 사흘을 못 버티고 내게 돌아와 구걸할 거야. 에이 됐다, 쟤 얘긴 그만해.”김지유가 머리를 내저었다.“아참, 윤정아, 나 대신 남양 실세 최우빈이랑 약속 좀 잡아줘. 5년 전에 간경화 말기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던데 천재 의사라고 불리는 신의의 치료를 받고 다 나았대. 그 의사를 모실 수만 있다
30분 후 최서준은 어르신이 알려주신 주소대로 도씨 일가에 도착했다.거실에서 50대로 보이는 도현수가 수중의 편지를 보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맞아, 그 명인의 필적이 틀림없어.”“아저씨, 이젠 드디어 제 신분을 믿어주시는 거죠?”최서준이 물었다.“사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아저씨가 도움을 청했다면서 저더러 아저씨네 가족을 보호하라고 하셨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도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서준아, 그게 실은 나의 비즈니스 상대 중 한 명이 익명으로 메일을 보내와서 우리 딸을 납치하겠다고 했고 난 그 즉시로 딸애에게 경호원 다섯 명을 붙였어. 그런데 그 녀석이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커오다 보니 다섯 경호원 모두 도망가버리게 만든 거야. 난 고민하다 못해 너희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어.”도현수는 눈웃음을 지으며 최서준을 바라봤다.“너희 사부님도 방금 네가 갖고 온 편지에 해결방안을 써주셨는데 바로 널 내 사위로 들이라데. 그렇게 하면 네가 정정당당하게 우리 딸을 보호할 수 있으니까.”최서준은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아저씨,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사부님 명령 거역하는 거야?”도현수는 계속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난 널 사위로 정했어. 이 일은 그냥 이렇게 해.”최서준은 어이가 없었다.“좋아요, 하지만 저는 딱 3개월만 아저씨네 따님을 지켜줄 겁니다.”그는 속으로 연신 머리를 내저었다.‘이 영감탱이가 정말 살아서도 애를 먹이더니 죽어서까지 제자를 괴롭히는 거야. 진작 날 해칠 걸 알았다면 ‘러브스토리’ OST도 불에 태워주지 않았을 텐데.’바로 이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내가 허락 못 해요!”한 여자가 기세등등하게 이쪽으로 뛰어왔는데 화장기 없이 눈부시게 예쁜 얼굴과 긴 생머리가 아주 인상적이고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늘씬하게 쭉 뻗은 새하얀 다리였다.그녀 뒤에 관리를 잘 받은 중년 부인도 서 있었는데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도연우는 두 눈에
“그래? 그럼 혼자 가서 물건 사.”도연우가 싸늘하게 한마디 내뱉고 머리를 홱 돌렸다.최서준은 어깨를 들썩거리다가 홀로 길옆에 나가 택시를 잡았다.“기사님, 지오 그룹으로 가주세요.”도연우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화났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직장 동료들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짜증 나 죽겠어.」이 단톡방엔 멤버가 고작 5명이다. 다들 도연우와 아주 친한 동료들이다.곧이어 진아영이 답장을 보냈다.「연우 왜 그래? 누가 또 우리 연우 기분 잡치게 했어?」「아빠가 어디서 되지도 않는 촌놈을 데려와서 나보고 기어코 결혼하래.」도연우는 하소연할 상대라도 찾은 것만 같았다.「뭐라고?」「헐! 진짜야?」순간 단톡방이 발칵 뒤집혔다.「내가 너희들 속여서 뭐 해?」도연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타자했다.「가장 어이없는 건 아빠가 글쎄 나더러 그 촌놈을 우리 회사에 들어오게 소개해주래. 날 보호해준다나 뭐라나. 거절할 수가 없었다니까.」「괜찮아, 연우야.」오민욱이 답장했다.「이 일은 나한테 맡겨. 내일 바로 그 자식 찍소리도 못하고 멀리 꺼지게 해줄게.」「하하, 민욱이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그 녀석 내일 큰코다치겠다.」「그럼. 민욱의 외삼촌이 우리 이퓨레 인사팀 매니저잖아. 민욱의 한마디면 그 녀석 우리 회사 발도 못 들여.」「꽤 재미있겠는데.」뭇사람들이 신나게 떠들어댔다.도연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타자했다.「오민욱, 너무 모질게 굴지 마. 살짝 따끔하게 혼내주면 알아서 물러설 거야.」「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해.」오민욱이 답장했다.휴대폰을 내려놓은 후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최서준, 너와 내 차이가 얼마나 큰지 똑똑히 보여줄게.’지오 그룹 안에서.한 정장 차림에 위엄이 넘치는 남자가 최서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그간 무사하셨습니까 도련님.”만약 누군가가 밖에서 이 장면을 본다면 식겁하여 말을 잇지 못할 것이다.이름 최우빈, 지오 그룹 오너이자 남양 실세로 불리는
“도련님, 12년 전 박씨 일가에서 한성 보육원의 땅에 눈독을 들이고 그 당시 원장 진한성 씨가 갖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결국 불을 질러 보육원을 망가뜨렸어요. 그러고는 그 땅을 가져갔어요... 이 몇 년간 박씨 일가는 그 땅을 빌려 부동산에 뛰어들었고 단숨에 남양 5대 재벌 가문 중 일원으로 거듭났어요! 3일 후에 옥패 하나를 경매에 내놓을 예정이라는데 이 옥패는 한성 보육원에서 그해 남긴 유품이라 아주 신기할 것 같아요.”최서준의 살의를 느낀 최우빈은 보이지 않는 두 손이 자신의 목을 꽉 조르는 것처럼 공포가 밀려왔다.“박씨 일가 참 대단해!”최서준이 입꼬리를 올리고 싸늘하게 웃었다. 그의 미간에 살벌한 한기가 감돌았다.고작 땅 하나를 위해 한성 보육원의 108명 생명을 전부 불바다에 밀어 넣다니.최서준은 즉시 분부했다.“3일 후에 경매에 참여하도록 진행 시켜. 그 옥패는 박씨 일가의 손에 넘어가면 안 돼. 이참에 이자도 좀 더 받고!”그 옥패는 그해 보육원 원장이 길가에서 최서준을 발견했을 때 그의 몸에서 챙겨간 것이다.원장은 이 옥패가 최서준의 신상과 관련이 있다면서 잃어버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가 18살이 될 때까지 보관해두었다가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다.그런데 최서준이 11살 되던 해 보육원에 불이 났고 모든 게 뒤바뀌었다.최우빈이 머리를 끄덕였다.“도련님, 그리고 실은 그해 보육원 화재에서 일곱 명의 여자아이들도 다 살아남았어요...”“뭐라고?”최서준은 몸이 움찔거렸다. 그는 최우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감히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일곱 소녀는 그때 우물 속에 숨어서 살아남았지만 그 뒤론 전부 종적을 감췄어요. 누군가가 일부러 그 소녀들의 흔적을 지운 것 같아요.”“일곱 소녀라...”최서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일곱 누나일까? 다들 안 죽었다고?”“조사해, 계속 조사해! 알아내는 대로 가장 먼저 나한테 보고해.”그는 숨을 깊게 몰아쉬며 속으로 다짐했다.“누나들, 걱정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