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홍문동에서 보였던 당황함은 온데간데없고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모습이었다.진영숙은 그런 유경원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경원이 보고 좀 배워!”진영숙은 일부러 유영을 자극하려고 비웃음을 날렸다.나긋나긋하고 온순한 유경원과 비교하니 사사건건 자신과 부딪히는 유영이 더 한심하고 추악해 보였다.물론 유영이 과거에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는 이미 까맣게 잊은 진영숙 여사였다.유영이 뒤돌아서며 말했다.“그렇게 마음에 들면 끼고 사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발작을 일으키려는 진영숙을 내버려두고 현관을 나섰다.꼴에 부부라고 어쩜 저렇게 비슷한 말을 하면서 속을 뒤집어 놓는 건지!진영숙은 가슴을 부여잡고 통증을 호소했다.“쟤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그렇게 가르쳤는데 하나도 보고 배운 게 없어!”“이래서 서민은 들이면 안 된다는 거야!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애들과는 비교도 안 되지!”진영숙은 말할수록 짜증만 치밀었다.유영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대문을 나섰다.유영이 돌아간 뒤, 유경원은 진영숙을 위로하느라 진땀을 뺐다.“아줌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어차피 곧 이혼할 건데 그 여자한테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나요?”“그렇긴 하지만 쟤 하는 걸 보면 화가 안 나게 생겼어? 내가 그동안 그렇게 가르쳤는데 하나도 달라진 게 없잖아.”“그래요. 아줌마는 좋은 마음에 잔소리 좀 한 건데 이유영 씨가 나빴네요.”유경원은 진영숙이 무슨 말을 하든 일단은 치켜세웠다.그제서야 진영숙의 노기가 조금은 사그라들었다.그녀는 만족스러운 눈빛을 하고 유경원을 바라보았다.유영이 외부인과 짜고 세강을 물먹인 걸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렸다.외출하고 돌아온 강서희는 유경원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디저트를 만드는 진영숙을 보며 순간 표정이 표독스럽게 굳었다.하지만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언니 왔어?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딸을 본 진영숙의 표정이 조금 더 환해졌다.“경원이 좀 보고 배워.
반면, 강서희는 목에 가시가 찔린 것처럼 불편했다.유경원을 향한 적의가 눈빛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진영숙이 눈치채지 못하게 재빨리 갈무리했다.유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강이한과 엮인 여자는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진심으로 유경원과 잘 지내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한동안 대화가 오간 뒤, 유경원은 집으로 돌아갔다.둘만 남게 되자 강서희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물었다.“엄마, 경원 언니… 정말 오빠 짝으로 괜찮은 거 맞아?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왔는데… 뒷조사는 다 해봤어?”물론 근거 없는 의심은 아니었다.예전에도 진영숙은 며느리감으로 점찍은 사람이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고 하면 뒷조사를 철저하게 진행했다.하지만 유경원은 예외였다.유경원은 출국하기 전부터 강이한을 짝사랑했었고 그가 아니면 시집을 안 간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소홀한 점도 있었다.진영숙은 굳은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조사는 안 했지만 너도 봤잖아. 애가 아주 사근사근하고 품위가 몸에 배었어. 저 정도면 해외에서도 얌전히 공부만 했을 것 같은데?”강서희가 말했다.“그렇긴 하지만 외국이 어떤 곳인지 엄마도 알잖아. 경원 언니야 얌전한 성격이지만 외국 남자들이 좀 개방적이야? 그쪽에서 작정하고 꼬시면 순진한 언니가 안 넘어가고 견디겠어? 엄마도 빨리 손주를 보고 싶잖아. 난 그래도 조사를 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강서희는 진영숙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진영숙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도 맞아. 환경이 사람한테 끼치는 영향도 무시는 못 하지. 나중에 따로 조사를 해봐야겠어.”손주 얘기가 나오자 또 짜증이 치밀었다.그날 유영이 아이의 유골이 담긴 펜던트를 자신의 얼굴에 던질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그때 보였던 강이한의 충격 어린 표정으로 보아 유영은 여태 그 비밀을 강이한에게 얘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물론 진영숙은 유영이 강씨 가문의 아이를 낳게 할 마음이 추호
그런데 이혼할 때가 되자 위자료 운운하는 것도 못마땅했다.왕숙은 강서희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는 계속해서 말했다.“아까 오셨을 때 비싼 차에서 내리더라고요. 저는 잘 모르지만…포르쉐면 비싼 차 아닌가요?”“포르쉐요?”강서희가 충격에 빠진 얼굴을 하고 다시 물었다.진영숙이 불쾌한 표정을 하고 왕숙에게 물었다.“걔가 포르쉐 끌고 온 거 아줌마가 직접 봤어?”“네. 상태를 보아 새것처럼 보였거든요!”진영숙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강이한이 전에 BMW를 사줬을 때도 못마땅했지만 어디 나가는데 너무 싸구려를 타고 다니면 세강의 체면을 깎는 것 같아서 참았다. 그런데 또 포르쉐를 구매했다니!강서희의 얼굴에도 질투가 가득했다.딸 강서희가 몇 번이고 졸랐는데도 진영숙이 사주지 않았던 게 포르쉐였다.양녀를 귀하게 키우긴 했지만 포르쉐를 흔쾌히 사줄 정도는 아니었다.강서희는 줄곧 갖고 싶었던 차를 유영이 타고 다닌다는 말에 얼굴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진영숙이 분개한 얼굴로 말했다.강서희도 굳은 얼굴로 말했다.“오빠가 너무 잘해줘서 그래. 둘이 정말 이혼하는 거 맞아?”“어떻게든 하게 만들어야지!”진영숙은 말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더는 이런 애를 집안에 계속 둘 수는 없어.’한편, 어제 고배를 맛본 강이한은 회사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어떻게든 동교 프로젝트 주변 개발권이라도 가져오고 싶었지만 이미 주변 시설은 다른 회사가 꽉 잡고 있었고 박연준 쪽에서도 개발에 박차를 가할 거라 그들에게 돌아올 기회는 많지 않아 보였다.내년의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고 산하의 부동산 기업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어떻게든 다른 방안을 연구해 내야 했다.어떻게 하면 손실을 메꿀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진영숙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차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 성격이기에 강이한은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인데요?”“너 걔한테 차 새로 사줬어?”진영숙이 다짜고짜 물었다.자초지종을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진영숙이 불쾌한 말투로 물었다.반면 강이한은 엄마랑 다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바로 전화를 끊었다.“오늘 회의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지.”그는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유영 그 계집애가 포르쉐를 끌고 집에 왔다니까?’지금도 아까 했던 진영숙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계좌부터 확인해 보았지만 거금이 빠진 내역은 없었다.그렇다는 건 그녀가 다른 사람의 카드로 차를 구매했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녀에게 한도 없는 신용카드를 선물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 지출이면 은행에서 확인 전화가 와야 마땅했다.하지만 그는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고 입출금 내역도 깔끔했다.카드로 산 게 아니라면 그 차는 누구의 것일까?소은지를 제외하면 유영은 청하시에 친구가 없었다.소은지 같은 직장인이 그런 호화 외제차를 구매했을 리는 없을 텐데 대체 누굴까?렌트한 것일까?아니면 해외에 있는 그 남자?점점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그의 주변으로 차가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조형욱은 상사의 호출에 긴장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대표님.”“로열 글로벌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어?”“보고서를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조형욱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답했다.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기에 조용히 메일로 보낸 것이었다.강이한이 눈을 확 부릅뜨자 조형욱은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며 식은땀이 났다.강이한은 메일에 접속해서 첨부 파일을 열었다. 안에는 로열 글로벌 회장의 가족 사항이 들어 있었다.자료에 의하면 그는 아내와 사이가 꽤 돈독했으며 부인은 첫째 딸을 출산한 뒤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했다.정국진은 몸 약한 아내를 배려해서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그래서 회사는 점점 몸집이 커졌지만 아들은 없고 의학을 공부하는 딸 한 명이 전부였다.그는 딱히 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없고 외부 활동에도 딱히 특별한 점이 없었다.그토록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 왜 유영과 그런 관계를 맺었는지 이해
“네, 다 확인했어요.”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승소할 수 있을까요?”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이혼 소송에서 이기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남자가 고개를 들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저도 모르게 오싹해지는 아주 매서운 눈빛에 유영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했다.눈빛 하나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변호사라면 믿고 일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양승호가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승소는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상대의 기분을 최악으로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네요.”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유영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낼 정도면 그는 눈치가 참 빠른 사람이었다.강이한은 청하시에서 아무도 이 사건을 맡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유영은 그의 모든 착각을 깨부술 생각이었다.생각해 보면 강이한도 참 악랄한 수단으로 소은지를 소송에서 제외했다.대체 언제부터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열하게 변했을까?유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바깥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스튜디오 문이 거칠게 열리고 강이한이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조민정도 굳은 표정으로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들어가면 안 된다니까요?”조민정에게도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사람은 처음이었다.로열 글로벌에서 일할 때는 직원들 모두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민정 씨는 일단 나가봐요.”유영이 담담히 말했다.조민정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강이한은 유영과 옆에 있는 양승호를 번갈아보더니 두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반면, 유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어차피 왔으니까 소개할게. 우리 이혼 소송을 맡아주실 양 변호사님이야.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양 변호사님 통해서 입장을 전달하면 돼.”‘또 이혼 얘기야?’강이한은 치가 떨렸다.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지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그가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어디 로펌이지?
안 그래도 화가 났던 강이한은 그 말을 듣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폭력?그게 그렇게 심각할 정도였나?“내가 왜 손찌검까지 했는지 정말 몰라?”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유영은 날이 선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받아쳤다.“매번 한지음 얘기가 나올 때마다 당신은 나한테 폭력을 썼어. 이유가 뭐였는지 그게 중요해?”무슨 이유였든 폭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일반인도 다 아는 논리를 그는 왜 자꾸 무시하는 걸까?유영은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서류를 검토했다.진지한 모습이 평소의 그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강이한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양승호가 앉았던 의자를 가져다가 앉았다.“일단 그 서류 내려놓고 얘기 좀 해!”그는 더 이상 그녀의 무시를 견디기 어려웠다.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와 함께한 10년 동안 그녀는 한 번도 직장 일을 해본 적 없었다.대체 뭐가 그녀를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었을까?유영은 마지막 서류에 사인한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용건이 더 남았어?”“내일 있을 할머니 칠순잔치에 나랑 같이 가.”“오늘 아니었어?”“내일이야!”날짜까지 착각한 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더 큰 짜증이 몰려왔다.하지만 그 자신조차도 전에는 날짜를 헷갈린 적이 많았기에 그녀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유영이 말했다.“봐서 알겠지만 나 요즘 굉장히 바빠.”강이한의 옆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유영의 일 처리 방식은 그를 많이 닮았다.과거 강이한이 바쁠 때 모든 일에서 예민하게 굴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그러했다.하지만 강이한은 그녀가 이 자리에 앉기까지 그 남자에게서 받은 지원을 생각하면 다시 화가 치밀었다.“그 사람이 당신을 정말 예뻐하나 봐. 그 사람은 당신 결혼한 유부녀인 거 몰라?”그 남자 얘기만 나오면 그는 화가 났다.유영이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 남자가 유영에게 잘해준 것 또한 사실이었다.믿어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다른 남자에게서 그 수많은 것들을 받은 주제에 이 여자는 뭐가 잘났다고 아직도 이렇게 당당한 걸까?유영은 들고 있던 펜으로 책상을 내려찍었다.“내일 칠순잔치에 안 갈 거야. 아직 시간 있을 때 다른 파트너 알아봐. 한지음이 적당하겠네.”한지음 얘기가 나오자 유영의 눈빛도 차갑게 식었다.시력을 잃었다는 것마저 가짜였는데 강이한은 끝까지 그녀를 믿었다. 오히려 그녀의 추악한 본모습을 까발리려는 유영에게 폭력까지 썼다.한지음 얘기가 나오자 강이한의 얼굴도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둘 사이에 언제부터 이렇게 간극이 심하게 벌어졌는지 하나하나 따지려니 끝이 없었다.그녀를 빤히 노려보던 강이한이 말했다.“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랑 본가에 가는 거야.”경고와 협박이 담긴 명령이었지만 유영은 더 이상 그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여론전은 계속되고 있었다.유영에 대한 온갖 비난글이 인터넷에 폭주했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그녀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글도 보이긴 했지만 곧 수많은 악플 공격을 받고 사라졌다.퇴근하려고 밖에 나가자 정국진이 보낸 경호원이 바깥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유영을 취재한다고 찾아왔던 기자들도 전부 그들이 처리했다.한편, 청하병원.강서희는 틈만 나면 한지음의 병실로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유영을 빨리 이 집에서 내쫓을지 의논했다.TV를 틀자 기자들에게 포위된 유영이 묵묵히 차에 오르는 모습과 경호원이 그녀의 주변을 지키는 모습이 나왔다.강서희는 그 모습마저 불만이었다.“저런 인간을 경호하는 경호원이 다 있네.”솔직히 유영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전에는 강이한이 지켜주더니 나중에는 해외에서 만난 남자가 그녀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아직도 이혼을 안 하고 있는 걸까?생각할수록 강서희는 짜증이 치밀었다.한지음은 와인잔을 흔들며 강서희에게 질문을 던졌다.“해외에 있는 그 남자랑은 둘이 진짜 뭐가 있어?”“당연히 뭐가 있으니 저렇게까지 지원
돌변한 한지음의 표정에 강서희가 화들짝 놀랐지만 유영을 처리하겠다는 의지에 다시 표정을 수습했다.그녀는 오랜 시간 그들이 이혼할 날만 바라보며 살아왔고 더 이상 기다리기 싫었다.절대 실패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그 시각, 유영은 순정동으로 돌아왔다.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은지가 오기로 되어 있었기에 그녀는 주방장에게 부탁해서 간단한 요리도 준비했다.소은지는 그녀의 강아지를 안고 순정동으로 방문했다.해외에 있을 때 가장 그리웠던 것들 중에 반려견도 포함되어 있었다.소은지는 강아지를 안은 채 유영에게 다가오며 말했다.“전에는 네 외삼촌이 그냥 벼락부자인 줄 알았는데….”지금은 정국진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뀐 순간이었다.포르쉐만 해도 조카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순정동을 방문하자 이런 멋진 삼촌이 다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이런 외삼촌이라면 트럭으로 가져다 줘도 환영할 것 같았다.유영은 강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뭉치 이리 와.”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뭉치와 보낸 시간은 참 힐링되는 시간이었다.뭉치는 소은지네 집에서 대접 받고 지냈는지 전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것 같았다.소은지가 물었다.“외삼촌 결혼하셨어?”“그건 왜?”“아니, 결혼 안 하셨으면 나는 어떠냐 해서.”소은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항상 차분하고 냉정함을 않는 친구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정국진이 얼마나 유영을 총애하는지 알 수 있었다.유영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친구를 흘기며 답했다.“외숙모 건재하시거든? 안 그래도 외삼촌 때문에 강이한이 아버지 뻘 되는 남자 만난다고 나 엄청 욕했단 말이야.”만약 진실을 알게 된다면 강이한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하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냥 강이한이 멍청한 것 같기도 했다.소은지도 비슷한 상상을 했는지 유영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강이한 그 자식, 그분이 네 외삼촌인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난 전혀 궁